오늘 낮에 나는 방공호를 찾았다. 그런데 그 속에서 누군가가 내 가슴에 총을 겨누고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갑자기 머리카락 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나는 죽었구나. 뭐 하러 이 방공호에는 들어 왔지' 하고 잠시 떨면서 살폈다.



그는 군인이었다. 소년인민군인데 온몸이 피투성이었다. 얼굴은 너무나 앳된 소년이었다. 내가 피를 멈추게 하고 해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내게 맡기라고 위로의 말을 했다. 그는 다소 안심이 되는가 보다. 굳은 얼굴이 좀 펴지는 것처럼 보였다. 


16~17살 정도 보이는 소년인데 허리에 총상을 입고 신음하면서 이 방공호로 숨어든 것으로 보인다. 교전중은 아닌 것 같고 폭격이나 파편에 맞아 피를 몹시 흘린 것처럼 보인다. 



인민군이나 적대세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게 역시 동족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본능적인 불쌍함 때문일까? 낡은 혁대가 있어서 그것을 풀어 그의 몸을 바짝 휘어 감고 조여 피가 나지 않게 하였다. 


그도 내가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인지 안도의 한숨과 신음소리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수척한 얼굴에다가 고통으로 괴로움이 더해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가족은 어떠냐고 했다. 


평양 근처가 고향이고 2남중 장남인데 뽑혀서 1주일간 총 쏘는 훈련만 받고 일선으로 곧장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훈련 중 폭격에 배를 맞아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는 것이다. 파편에 맞은 것이다. 나는 조금만 참고 있으면 집에 가서 약이며 거즈 등 약품을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 동족끼리 이렇게 전쟁을 하다니 이게 무슨 고약한 일이란 말인가요. 학교 다니다가 여기까지 끌려 왔으니 한심하기 그지없소이다. 누구보다 어머니가 보고 싶소" 하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철모 속에 나타난 그의 얼굴은 나와 같이 10대 초반 소년의 천진난만한 풀빛 얼굴이었다. 철부지 개구쟁이 소년과도 같았다.


그는 겨우 몸을 추스르며 "빨리 동무네 집에 가서 구급약을 가져오기요. 어서!" 


"잘 알았소, 피가 더 나오지 않게 여길 꼭 누르고 있으시오."



나는 그 길로 집에 가서 말하고 집에 있던 구급약통을 집어 들고 방공호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우리의 적, 원수지만 동포의 목숨은 살려야 하지 않겠나. 


적십자 정신이 무엇이겠는가하고 다시 방공호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소년병은 꼼짝하지 않은 채 누워 있는 게 아닌가. 



"군인아저씨 약 가지고 왔어요. 자. 약 발라 줄게요"하였으나 그 10대 소년 침략군은 끝내 숨지고 말았다. 싸늘한 몸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조용히 죽어갔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끝으로 가엾은 소년병은 세상을 등진 것이다. 난 무서웠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저 소년병이 무슨 죄가 있어서 가혹한 형벌을 받았는가. 우리 육친이 죽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측은하고 허전하여 집에 와서 그런 말을 했더니 모두 숙연해 하며 조용해졌다.



출전: 이현희, '내가 겪은 6.25: 전쟁하의 서울 90일', 효민, 2008, p.159-161.


출처: https://m.blog.naver.com/minjune98/22339021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