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스트리아의 고대~중세



신성로마제국이 포로로 잡은 노예를 먼 섬나라로 보내고 보내고, 이들이 어보리진과 캥거루를 몰아내고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을 건설함.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 탓에 이들은 중세의 긴 기간 동안 상당기간 유럽에서 소외되어 있었음. 합스부르크 제국은 신성로마제국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유럽 본토에 지배층이 거주했는데 이들이 바로 에스파냐 합스부르크임



2. 대항해시대와 에스파냐의 무적함대


합스부르크 제국의 두 영토인 오스트리아와 에스파냐가 바다를 두고 떨어져있었다. 이 지정학적 불리함은 항해술의 발전으로 극복됨.


당시 배는 범선으로 노예들의 인력으로 배를 움직였는데 오스트리아는 캥거루를 훈련하여 범선을 움직일수있도록 하였다. 덕분에 오스트리아-에스파냐 제국은 많은 범선을 보유하여 최대의 패권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지나치게 많은 은을 수입하여 에스파냐에 인플레가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에스파냐 사이의 물가차이로 인해 세금정책이 맞물리지 않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에스파냐 합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는 서로 반목하게 되고 오스트리아가 캥거루 공급을 중단하며 에스파냐는 영국과의 해전에서 대패한다.




3. 마리아 테레지아의 모성 외교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몰락

 

 마리아 테레지아는 모성을 이용한 외교술을 사용한 오스트리아의 황제다. 테레지아는 유럽 왕족과 만날 때마다 유칼립투스 잎사귀로 장식한 드레스를 입고 나와 신비한 요정으로 자신을 연출했다. 


게다가 테레지아는 코알라를 꼭 끌어안고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코알라는 테레지아가 안았을 때만 얌전하게 안기고 다른 사람이 안으면 난동을 부렸다. 이를 본 유럽의 황제들은 테레지아에게 어머니 신 가이아와 같은 힘이 있다 믿게 된다. 실은 코알라의 주식인 유칼립투스를 이용한 연출일 뿐인데.


유럽 각국의 왕실은 테레지아의 신비한 모성에 매료되어 테레지아의 딸들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오스트리아는 유럽대륙의 장모국으로 패권을 쥐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로 시집간 마리 앙투아네트가 굶주린 농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캥거루를 먹으면 될텐데"라는 망언을 하게 되고, 분노한 민중에 의해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프랑스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은 축소되었으나 테레지아 왕실은 정략결혼의 결과로 독일 제국의 왕가와 하나가 된다. 



4. 오스트리아, 영연방에 가입하다


오스트리아의 지배층인 합스부르크가 독일 지배에 집중하며 합스부르크의 본토인 오스트리아 섬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진다. 이때를 틈타 오스트리아는 공화국 독립을 하고만다. 


독일제국은 오스트리아 섬의 독립을 저지하려 했으나, 오스트리아가 영국 해군에게 범선용 캥거루를 제공하여 지원함으로써 실패로 끝난다. 이때부터 영국의 진정한 해상패권 제국주의가 시작된다.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아래에는,

수많은 캥거루의 눈물과 피가 흐르고 있었다



4. 나치의 오스트리아 침공과 제노사이드


나치는 세계 2차대전 초기 석유를 확보할 방안을 물색한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 2300억 배럴의 석유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는 사우디의 2600억 배럴 다음가는 세계 2위의 매장량이다.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압제에 불만을 품고 있던 캥거루 노예들을 매수하여 해상반란을 유도한다. 그들이 바친 전함을 이용해 나치는 너무나 간단하게 오스트리아 섬을 정복한다.


하지만 이게 웬걸.

히틀러가 지독한 유대류 혐오자란걸 캥거루들은 예상치 못했다. 히틀러는 유대류인 캥거루들을 잡아 가스실로 보냈고 가죽을 벗겨 군용품으로 사용했다. 현재 군용장갑을 흔히 캥거루 장갑이라 부르는건 이때의 흔적이다.


히틀러는 합스부르크의 후예인 독일인이 오스트리아 섬의 합법적인 영토임을 주장하며, 오스트리아를 독일화하기 위해 바그너 등 독일 음악가의 음악회를 장려했다.


독립 이후에도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시드니에서 오페라 하우스를 중심으로 매년 짤츠부르크 음악축제가 열리고 있는건 이때 음악회 문화가 수입되었기 때문으로 볼수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문화를 전파한 것이다.





대역물 소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