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다.


환상향. 

 조금이라도 영기가 진한 곳을 찾아 비승대 밑에 만들어진 수사들의 도시.


 이 환상향에 있는 내 거처가 고위 수사들의 싸움으로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모아둔 재산도 모두 먼지로 돌아갔으니, 몸에 지니는 보패 말고는 땡전 한 푼 없었다.


오호 통재라.


 해가 질때까지 숙소가 없으면 아마 어슬렁거리다가 사라져 고위 수도가문의 단약으로 다시 태어나겠지.


저녁이 되기까지 대략 일곱 시간. 


돈을 구해야 한다! 


아주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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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거리를 찾아다니던 걸어다니던 내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길가에 있는 객잔 안쪽. 간단한 음식만 시켜 놓고선 사람들을 구경하듯 훑어보고 있는 소녀.


 내 촉이 소리치고 있었다. 돈. 돈 냄새가 난다!



 확실한 목적이 없어보이는 눈빛. 비싸보이는 옷감과 여기서도 은은히 느껴질 정도의 법력. 하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라?


어디 거대 수도가문에서 수련만 하던 아가씨가 도망이라도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한미디로,


돈 뜯어낼 월척이라는 뜻이다. 




*

*

*




 객잔에 들어가 그녀의 앞에 턱 앉았다. 


 나를 기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 눈빛으로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표정은 틀림없이 너는 뭔데 갑자기 나타났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싱긋 웃어보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누구신지?“



 좋아, 일단 꺼지라는 말은 듣지 않았으니-시작은 나쁘지 않다. 



“길거리를 지나가던 도중 소저의 눈빛에 홀려 여기까지 오고 말았군요. 혹시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라고 부르-흠, 이것도 막혔나.”


“예? 잘 안들렸습니다만?”



“백 도우라고 부르시게.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진청이라고 합니다.”


“그래 진청. 흠.”


“진 도우라고 부르면 되나? 그래서 내게는 무슨 볼일이신지? 그대가 내 눈빛에 홀렸다기에는,”


 그녀는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이며 나를 노려봤다.


“자네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원하는 게 있다고 티가 나네만. 빨리 말하게. 내 인내심은 원체 조그만 편이라서 말이지.”



“아이고, 저는 그저 백 도우의 근심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말을 건 것인데. 뭘 섭섭하게 그러십니까 백 도우? ”



“근심이라. 그대가 내 생각을 어찌 아는가?“


”나름의 방법이 있지요.“



 가문에 갇혀 자란 귀한 아가씨가 원할 거? 뻔하지.


답답한 집안의 속박과 무한히 이어지는 수련으로부터의 해방, 일탈 뭐 그런 거 아니겠나. 



”백 도우, 혹……자유를 원하고 있지 않으신지요?“


백 도우가 나를 지긋이 처다본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한쪽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정답이구나!



”어쩨 많이 답답한 처지이신 듯한데 말입니다. 속박에서 풀려나고 싶지 않으신지?”



너무 직접적이지 않게.

최대한 간접적인 어휘를 사용해서.



“진정한……자신을 되찾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눈빛에서 느껴져서 말이죠. 제가 그걸 봐버렸으니 어찌 매정하게 지나치겠습니까? 당연히 도와야죠!“




 백 도우는 눈을 내리깔며 한손으론 얼굴을 괴고 다른 한손으론 식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거 참. 진 도우. 아무리 봐도 사기꾼인 것 같은데 말이지…“


 잠깐 말을 끊고 식탁만 두드리던 그녀.

구부렸던 허리를 세우며 내 눈을 바라본다.



“이왕 이리 된 것. 한번 믿어보겠네. 나를 돕겠다고?”



걸렸구나!



그때.



땅바닥, 정확히는 발 아래 흐르던 지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게 웬 일인가 싶을 정도로 지맥이 요동쳐, 사람이 서있지를 못할 정도로 땅이 흔들리더니-이내 쩍 하고 땅이 갈라지며 진흙으로 된 사람 형상의 것들이 틈에서 기어나왔다.



그리고는 이것들이 나와 백 도우에게 곧바로 달려드니!



[풍여자유공-진청류: 무영벽]



풍계 법력을 끌어모아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바람벽을 급히 세웠다.


바람으로 만든 벽이라 금방 뚫리겠지만 잠깐은 버텨줄 터.  나는 그틈에 백 도우를 뒤돌아보았다. 


 꽤나 당황한 나와 달리 백 도우는 이런 상황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백 도우, 어찌 그러고 계십니까? 제 공법은 전투에는 영 좋지 않아 백 도우가 도와주셔야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자 백 두우가 쿡쿡 웃으며 하는 말이


“진 도우, 미안하네만 난 도움이 되지 않을 걸세. 지금은 법술을 거의 못 쓰거든. 법력이야 어디 가지 않는다지만 #!$#!@#!@* 때문에 법술은… 담뱃불이나 붙일 수 있으면 다행이겠군.”



뭐?


“이왕 이리된 것. 나는 진 도우만 믿고 있겠네. 표정이 왜 그러나. 날 먼저 도와주겠다 다가온 건 진 도우가 아니었나?”



그러고선 천연덕스럽게 술을 한 잔 따라 꼴깍 넘기는 것이 아주…



 오랜 세월 환상향에서 ‘약간의 비합법적 장사’를 하던 나도 이렇게 얼굴에 철판을 까는 년은 간만에 본다 싶었다.



하지만  환상향에서 그 긴 세월동안 살아남은 내가 이렇게 호구잡힌다?

어림도 없지.



”물론 도와드려야지요. 헌데 백 도우. 일이 이리되었으니 제가 할 일이 생각보다 품을 많이. 꽤나 많이 들일 것 같습니다만…“


”아 물론 일이 해결되면 삯은 넉넉히 쳐줘야지. 내 그리 염치도 없게 보였는가?“



”아이고 그럴 리가요! 저는 당연히 백 도우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그녀가 피식 웃으며 술을 한 잔 더 넘겼다. 



“그럼 됬으니 어디 한번 솜씨 좀 보여주시게 진 도우. 나는 이, 음. 이 술 이름이 뭔가?”


“그건 환백주라는 놈입니다.”


“그래 이 환백주와 진심어린 교감을 나누고 있겠네.”


“아쉽지만 백 도우, 그건 다음에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풍여자유공:진청류-상향폭류]



 이번에 시전한 법술은 무영벽을 유지하고 있던 기류를 폭발시켜 하늘로 올라가는 거대한 바람을 만드는 것. 무영벽이 해제되며 발생한 충격파로 괴물들은 잠시 밀려났지만 시간이 없다. 


 급하게 백 도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말을 할 때가 아니란 걸 아는지 덥석 손을 잡는 그녀. 


”혹시 말입니다만, 풍계 공법을 익힌 적은 없으시죠?“


”없네만?“


”그럼 꽉 잡으십시오. 꽤나 흔들릴 테니!“


백 도우와 나는 상향폭류 안으로 뛰어들었고.


그리곤 하늘로, 하늘로. 


마치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자유로이 솟아올랐다.


이제 먼 곳에 안전하게 착지하는 일만 남았는데. 



다음 순간 나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머리에 백만 년 묵은 벽곡단처럼 딱딱한 돌맹이가 들이박는 고통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