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fr3SDHQS_c?si=Qsc5XEegdgYVIEgR




익사한 빌딩이 처량하게 고개를 내민 어느 해역, 

작은 보트에 탄 소년은 녹슨 칼로 갈매기의 배를 가르며 자신이 이 바다에 내던져진 시점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오래전 일마냥 빛바랜 며칠전, 해적들의 칼에 찔려 죽어가던 아버지가 마지막 생명을 불사르며 자신을 구명보트와 함께 내던져진 그 날인지.

아니면 배 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 날인지. 

도무지 결론을 낼 수 없었던 소년은 축 늘어진 갈매기의 내장을 뜯어내고는 가슴살을 한 입 베어물었습니다.


그렇게 해류의 발길을 따라 이어진 소년의 표류는 몇날며칠이고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바다를 떠다니는 그물조각을 건져 그럴듯한 지붕과 침대를 만들었고, 한때 배의 일부였을 듯 했던 판자를 깎아 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평생이지만, 바다를 떠도는 모든 것을 자원으로 쓰며 살아온 소년에게는 익숙한 일이었기에 소년의 작은 보트는 어느세 작은 집이라고 할만한 모양을 갖춰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보트를 꾸민다 한들, 큰 파도 한번이면 보트 따위는 산산조각 날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트를 버리고 섬이나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빌딩의 첨단 따위를 찾아봐야 먼저 자리잡은 위험한 야생동물이나 먹잇감을 찾아 바다를 떠도는 해적들의 만만한 먹잇감이 될 뿐입니다.

시한부나 다름없는 삶.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바다 위에서 나고 자란 보트피플의 삶이란 이런것을.


그렇게 시간은 더 흘러갑니다.

그동안 자애를 보였던 바다도 슬슬 한계인가봅니다.

파도의 신경질스러운 손짓에 보트가 바스러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모은 적재물들이 모두 떠밀려갔기 때문입니다.

소년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물이 차오르는 보트와 녹슨 칼, 입고있는 옷 뿐입니다.


죽음이 선고된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소년은 저 드넓은 수평선 너머에서 시선을 때지 않습니다.

소년이 아직 희망을 품고 있는지, 아니면 절망에 길들여진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저 수평선을 응시할 뿐입니다.


그때였습니다.

소년이 있는 방향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돛을 단 작은 범선이 눈에 들어온 것은.

돛을 통제하는 이가 없는지 비틀비틀 그저 바람을 따라 휘둘리는 작은 범선.

돛을 잡은 이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여행자를 끌어들이는 함정인지 소년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렇기에 소년은 칼을 입에 물고 검푸른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배웅하듯 고개를 치켜들고 가라앉는 보트를 뒤로하고...

소년은 모든 힘을 쥐어짜 파도를 해치고 물살을 가르며 배를 향해 필사적으로 해엄쳤습니다.

소년의 아버지가 소년을 바다로 내던질때처럼, 

소년은 자신의 생명을 불사르며 검푸른 바다를 가로질렀습니다.

그렇게 소년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선측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서 보는 것은 다른 법입니다.

늙은 고래처럼 무수히 많은 탄흔과 상처가 뒤덮인 배는 마치 유령선을 연상케 했기 때문입니다.

사다리를 타고 배 위로 기어올라온 소년은 칼을 단단히 쥐고 배를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너덜너덜한 돛이 유령처럼 매달려 펄럭이는 돛대들을 지나, 

검붉은 피얼룩이 스며든 갑판을 가로질러,

탄흔을 통해 바람이 통하는 적갈색 장갑을 두른 갑판을 들어섰습니다.


소년은 그곳에서 소녀와 만났습니다.

그순간 소녀는 소년과 만났습니다.


갈색 피부와 긴 곱슬머리를 가진 꾀죄죄한 소녀.

어두운색 피부와 덥수룩한 머리를 가진 남루한 소년.

오늘 처음봤지만 어딘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봅니다.


1분.

2분.

3분.

4분.

5분.


몇 분이나 지났을까요?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에게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시간은 멈춘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


파도와 바닷새만이 속삭이는 두 장소에서

두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가만히 서로를 바라만 보았습니다.

서로의 처지가 너무나도 비슷해 보여서겠지요.


소년은 입을 열어 무엇인가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었습니다.

소년은 입을 다물었고,

소녀 또한 마찬가지었습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정적.

정적을 깬건 우렁찬 나팔같은 뱃고동 소리였습니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갑판으로 나와 난간에 몸을 기대어 저 너머 수평선을 응시합니다.

일렁이는 저 너머 수평선을 넘어 다가오는 형체.

너무나도 멀리 있었지만, 그것은 눈 앞의 그 무엇보다 선명하였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배들이 이루는 대선단이 파도를 가르며 저 멀리서 서서히 수평선을 가로질러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대한 도시를 짊어진 것만 같은 거함들을 중심에 두고 여러 상선과 군함들이 대열을 이루고, 그 뒤를 가지각색의 배들이 무질서하게 따르는 그 모습을 본 두 사람은 마치 검푸른 수면 아래 가라앉아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도시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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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면이 400m 정도 상승한 미래, 인류 최후의 생존자를 태운 배들이 드넓은 바다를 누비며 서로를 사냥하던 시대에 잔혹한 사냥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은 소년과 소녀가 둘이서 바다를 여행하는 아포칼립스 여행물이 보고싶다.


선상반란을 일으켜 노예상들을 모두 죽이고 배를 차지한 노예들이 그들에게 배운 방법으로 소년과 소녀를 속여 배를 빼앗고 두 사람을 사로잡으려 하고, 

무자비한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갈방어마냥 거대하고 부유하지만 다른 방주선단을 잘 사냥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뒤를 쫓던 배들이 어느세 쫓는 행위 자체에 매몰되어버린 모습을 목격하고, 

소년과 소녀를 사냥하는 것에 정신팔려 자신들보다 더 큰 부족의 방주도시가 자신들을 추격하는 줄도 모르는 이들에게 쫓기는 등의 모험을 하며 성장하는 아포칼립스 성장 여행물이 보고싶다.

그러니 빨리 써오거라. 빡치게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