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끝은 이미 스승의 목에 겨누어졌다.


아주 조금만 힘을 주면 스승의 목은 절단나리라.


스승의 눈을 마주보았다. 반짝이는 눈동자. 비단결처럼 흐르는 머리카락. 사제지간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구혼 했을 아름다운 사람.


여인의 몸으로 그 경지까지 도달한 유일한 사람.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 없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이제 와서 두려울리 없다.


그러나.


손은 떨릴 뿐, 움직이지 않는다.


"장붕아. 뭘 망설이느냐?"


"....."


방금전까지 나와 합을 나누던 이의 태도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저항하려는 의지도 없다. 그저,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를 한 모습이었다.


지금의 나는 누가봐도 빈틈투성이다. 반시체가 된 스승이라 할 지라도, 이런 나 정도는 단숨에 물리칠 것이다.


그런데도 스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검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장붕아. 지금 너는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어째서 그러하느냐?"


"사랑하는 이의 목을 어찌 제 손으로 친단 말입니까?"


그러자, 스승은 웃었다.


"그러느냐. 나는 네게 사랑받고 있었구나."


"....."


대답할 수 없었다. 제자가 스승을 사랑한다니. 금기 중의 금기였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온다면, 하고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지. 기억하느냐?"


그랬었나.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그 동안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다만 그랬던 것 같은 느낌은 있었다.


"그 때 네 대답은 무엇이었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신 말해주마. 그 때의 너는 망설임 없이 목을 치겠다고 했다."


"...."


"거짓말이 되었구나."


"....."


"혹은, 그 때 한 그 말은 농담조였을지도 모르지. 한창 굴리던 때였으니 스승을 죽이고 싶었겠지."


스승은 그리운 모습으로 웃는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옛날을 떠오르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다.


"장붕아. 하지만, 이건 농담이 아니다."


스승은 웃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말을 건넸다.


"내 신체는 이미 죽어가고 있고, 정신 또한 그렇다. 네가 나를 지금 살려준다 한들 얼마 있지 않아서 다시 한번 더 너를 치러 올 것이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몇 번 정도는 그럴지도. 하지만 이것은 끝이 없는 저주다. 그리고 너는 지금 인간이지. 인간의 몸으로 몇 번이나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맞는 말이었다. 스승은, 꼭두각시로 전락해 몇 번이고 나를 치러 올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내 주변도 위험해진다.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아."


스승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약한 인간이로구나."


"인간은 원래 유약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을 벗어나야 한다."


"어째서입니까?"


"인간이란 모든 것을 지킬 수 없다.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니, 모두를 지키고 싶다면 인간을 벗어나야 하는 법이지."


"그 모두에 당신은 없는데도 말입니까?"


그 말에, 스승은 눈이 커진다.


"후, 하하하하. 제법 여심을 흔들 줄도 알게 되었구나."


"재미있신가 봅니다."


"재미있고 말고. 나는 네게 사랑받는 여인이니. 그것이 기쁘기 그지 없다. 미련이 없을 정도로."


"...기쁘다고...하셨습니까?"


"그래. 스승이 아무리 강했기로서니, 여인이 아닌 줄 알았더냐. 멋진 남자에게 사랑 받는다는 건 기쁜 일이지."


나는 심장이 두근 거렸다. 스승을 사모했다. 지금껏 그것을 억눌렀다. 스승의 마음을 알고 나니, 더더욱 몸이 떨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스승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그렇지만, 장붕아. 할일을 하거라."


"그건... 할 수 없습니다."


"내 목숨이 얼마나 중하다고 한들, 모든 이들의 목숨보다 중할리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을 보다 당신을...."


거기까지 말하고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스승이 내 배를 걷어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컥, 커억.."


"그런 말은 하지말거라. 입으로 뱉게 되면 그 자체로 주술이 되느니라."


배를 부여잡고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저는..."


"이제 그런건 됐다. 나를 얼른 베어라. 그것으로 너는 인간을 벗어난다. 그러면 모든 것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모두를 지키려면 당신을 베어야 한다니, 당신은, 제가 가장-"


"그렇기 때문이다."


스승은 나를 본다.


"가장 사랑하는 이를 베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너를 옭아매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된다. 탈태 하고 싶다고, 늘 말하지 않았느냐?"


그랬다. 경지에 이르고 싶다고. 고수가 되고 싶다고. 그러나, 그러고 싶던 것은 다름 아닌 스승 때문이었는데.


스승은 검을 들고 있는 내 손을 꾹 잡았다. 그리고 그 검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나는 이것으로 좋다."


"그럴리가...."


나는 안다. 스승이 늘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평생을 보내며 늙고 싶다던, 그 말을.


"장붕아. 사고를 바꾸거라. 이것은 증명이다."


"...증명이라니요."


"다름 아닌 네가.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증명."


숨이 멎는다. 스승이 내 손을 놓아주지 않는다. 허용하는 것은, 자신의 목으로 향하는 것 뿐.


"자. 증명해보거라.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손이 떨린다. 그 손을 스승이 잡아준다.


천천히, 손에 힘이 들어간다. 


눈물이 난다. 


그렇지만, 이를 악문다.


스승이여.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러니, 증명하겠습니다.


이윽고, 스승의 목에 닿은 칼날에서 붉은 액체가 베어 나온다.


스승은 웃는다.


"좋구나.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칼을 쥔 손에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직후, 털썩 하고 사랑했던 것이 쓰러졌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걸 멈추려고 하지는 않았다.


흘러내리는 것은 인간성이다. 이것이 모두 흐르고 나면, 인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기뻐하는 것이다.


나는 스승의 마지막 수행을 해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