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목표에 모든 삶을 건 자가 그 목표를 이룬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생명은 그 끝에 닿기 전에 스러지기에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의 범주를 뛰어넘은 초월자들일 것이다.

  수선이라는 거대한 목표의 끝에 다다른 신선들이 기장 적합한 존재라 할 수 있겠다.

  그들에게 물으면 백이면 백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어놓는 것이다.

 할 짓 없이 뒹굴기나 하는 놈팽이들만이 남게 된다고.


  도원경.

  도를 깨우치고 윤회를 벗어나 신선의 경지에 발을 들인 존재들이 기거하는 이상향.

  마르지 않는 샘물, 푸르게 우거진 초목, 한 입 베어 물기만 해도 하늘의 도를 깨우치게 될 정도로 맛난 복숭아가 손만 뻗어도 닿는 곳에 널려 있는 모자람이 없는 세계.

  이 곳에서 지내는 신선들은 대부분이 유유자적 평화롭게 살아간다.

  늘상 보던 얼굴들과 바둑이나 두건, 하계 돌아가는 꼴로 이야기를 나누건, 백 년 단위의 게으른 낮잠을 퍼질러 자건.

  다만 신선 쯤 되어도 대세를 거스르는 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갈! 무릇 도라 함은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천리를 대행하여 이를 조정함에 있음이니!

  사술이나 다름 없는 진법 따위가 닿을 수 없는 지고한 영역이 존재함을 어찌 모르는가!"


  "흥, 늙은이가 세월이 지날수록 경지가 오르기는 커녕 노망만 깊어지는구나.

  음양오행이야말로 만물의 근원이니, 제 손으로 빚어내는 것 없이 있는 것을 빌려오기만 할 줄 아는 주제에 도를 논한단 말이냐!"


  한적하던 도원경에 어느 남녀의 노성이 퍼지더니, 하늘이 검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틈새에 밝은 빛이 점점이 나타나더니, 이내 셀 수 없는 유성우가 되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에잉, 쯧. 저 치들은 또 시작인가?"


  "허허, 이번엔 12년을 버텼으니 오래 버텼다고 해야하지 않겠소."


  천지가 뒤집힐 듯한 무시무시한 재앙이 예고 없이 들이닥쳤으나, 지켜보는 다른 신선들은 자주 본 일이라는 듯 시큰둥할 따름이다.


  이윽고 붉은 궤적들이 지상에 닿으려는 순간, 공간이 일렁이는 듯 하더니 무수한 유성들이 중력를 거스르며 마치 꽃잎처럼 휘날리기 시작했다.

 심장을 울리는 듯한 굉음을 일으키며 저들끼리 부딪히고 깨어지던 유성우는 이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시퍼렇게 광채를 내뿜는 기의 실이 가닥가닥 솟구쳐 오르더니, 유성우가 쏟아진 칠흑의 틈새 위에 고고하게 떠 있는 백색 수염의 노인에게 사나운 기세로 휘몰아쳤다.

  노인이 도복을 펄럭이며 손을 내젓자, 거목도 뿌리채 뽑아낼 듯 맹렬한 폭풍이 몰아치며 날카로운 기운을 모조리 흩어냈다.

  도원경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발을 붙이고 꼿꼿하게 서 있던 백발의 노파가 무위로 돌아가버린 한 수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렇게 각자 한 수 씩의 공방을 거치고는, 또다시 소리 높여 서로를 매도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고약한 사술이로고! 순리대로 흘러가야 할 기운을 억지로 잡아채 비틀어대는 것을 감히 하늘의 도라 하는가!"


  "회심의 첫 수가 말 그대로 박살이 나 놓고 입만 살았구나! 세상이 빚어둔 것을 자기 것인 양 으스대는 꼴은 호가호위라 함이니, 빌어먹는 거지와 무엇이 다르다고!"


  지켜 보는 뭇 선인들의 감상은 이러하다.

  그 놈이 그 놈이지 무엇이 다르다고?

  자연의 요소를 끌어 와서 자신의 의지대로 부리는 것이니 순리라 할 수 없고, 음양오행의 기운 또한 본디 세상 만물에 존재하는 것을 빌어 쓰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선인들은 끼어들지 않은 채 그저 흐뭇한 미소를 띠며 두 사람이 아웅다웅 다투는 꼴을 구경만 할 따름이다.


  일백여 년 전, 동시에 지고의 경지에 다다르며 도원경에 발을 들인 두 사람은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견원지간이 되어 으르렁거렸다.

  긴긴 세월 고행길을 걸어 마침내 경지에 다다른 자에게 건네져야 할 찬사가, 서로의 탓에 반절로 뚝 나뉘어져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서로 제가 더 잘났다고, 마땅히 자신이 더욱 우수한 깨달음으로 경지에 닿았다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미 수 천년 전에 도원경에 닿아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던 선인들 입장에서는 그들에 비하면 덜 여문 두 사람의 다툼이 하나의 유희가 되어 있었다.

  마치 마을 아이들이 티격대는 걸 따스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심정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일백여 년 동안 수 차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승자 없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으니, 슬슬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하는 엉덩이 가벼운 자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두 사람 모두 기운이 넘치는구나, 허허."


  단정한 흑발의 옥면서생이 두 노인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이제 갓 이립을 넘겼을 법 한 생김새이나, 그가 바로 이 도원경을 빚어낸 것으로 알려진 산혼 선인이었다.


  "산혼 선인, 오셨습니까."


  "크흠, 부끄러운 모습을..."


  "됐다, 어제 오늘 일이더냐."


  도원경에까지 다다른 선인이라 함은 모두가 극의에 다다른 자들이나, 최고 선임이라 할 수 있는 산혼 선인 앞에서 행패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두 사람은 싸움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산혼은 여전히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두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다, 하나의 제안을 건네었다.


  "자유, 진혜. 두 사람이 각자의 도를 서로의 위에 두려 한 지 어느 새 일백년이나, 길항하여 결론을 내지 못 하고 있으니 이제는 방식을 바꾸어야 할 때로다.

  내 두 사람에게 한 가지 재미있는 겨루기를 알려줄 터이니, 한 번 해 보겠느냐?"


  "오호, 산혼 선인께서 제시해주시는 방식이라면, 저 사특한 노괴도 입을 열지 못 하겠지요. 저는 좋습니다!"


  "누가 할 소리를. 저 또한 도망칠 이유가 없지요."


  "하하, 좋다, 좋아.

  방법이란 거창할 것이 없다.

  내 나의 산혼술로 두 사람의 혼백을 작게 떼어 내어 분신을 만든 후 하계로 보낼 것인 즉, 두 분신은 하계의 범인으로 태어날 것이다.

  같은 마을에서 영근도 자질도 환경도 동일하게 자라날 것이니, 둘 중 먼저 도원경에 다다르는 분신의 주인이 더 지고한 도를 깨우쳤음이 아니겠는가?"

  

  "매우 훌륭한 방법입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어쩌다 운이 좋아 신선이 된 늙은이의 실체를 까발릴 좋은 기회로군요. 홀홀홀."


  "음, 두 사람이 흔쾌히 승낙하였음이니, 지금부터 산혼의 술을 펼치겠네.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내 기운을 받아들이시게."


  산혼 선인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손가락을 튕기니, 두 사람의 미간으로 하얀 실과 같은 기운이 쑥 하고 파고들었다.

  약간의 어지러움과 함께 혼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며 가벼운 탈력감에 잠시 사로잡혀 있던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자 어느 새 실에 돌돌 묶인 희끄무레한 구슬 두 개를 볼 수 있었다.

  산혼 선인이 발을 가볍게 구르자 지면에 투명한 물거울이 생겨났다.

 거울을 들여다보자 크게 특징이 없는 하계의 마을 하나가 보였다.

  그대로 구슬이 묶인 실을 낚시라도 하듯 물거울에 던져 놓은 산혼 선인은 잠시 손가락을 휘적인 후 손을 털어내었다.


  "자, 되었네. 이제 저들은 각자 자라나며, 인과에 따라 수도의 삶에 들어서게 될 것이야.

  우리는 10년에 한 번 이 물거울을 통해 그들의 삶을 짚어 보며 성과를 확인할 것이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인들도 증인이 되어줄 터이니, 그간은 서로 다투지 말고 자신의 분신을 응원이나 하게나."


  "예, 산혼 선인!"


  두 사람이 절도 있게 대답하였다.


  "흠, 이미 선인에 다다른 자들의 분신이니 별 일 없으면 도원경에 다다르기까지 500년이면 되려나?"


  "쩝, 그 동안 간간히 쌈박질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당분간은 조용하겠군."


  "뭐 어떤가. 이건 내 감이지만, 분신 구경이 쌈박질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돌아가는 모양을 구경하던 선인들도 뭔가 새로운 구경거리가 생긴 것에 작은 기대감을 안는 것이었다.

  그리고 10년 뒤, 첫 물거울 관측일이 되었다.


  "큭큭, 진혜 네 놈의 분신은 벌써 어디서 엎어져서 뒈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군?"


  "흥, 네 분신이야말로 똥통에 빠져 거름이 되었을지 알 바인가."


  "자자, 조용. 어디 한 번 보도록 하지."


  여전히 서로를 견제하는 자유와 진혜는 이미 자신 쪽이 큰 격차로 앞서 나갔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산혼 선인이 하늘에 펼친 큼지막한 두루마리에 물거울로 보이는 하계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하고, 기대에 부푼 두 사람의 눈동자에 비친 하계의 모습은.


  "지네야, 뽀뽀쪽!"


  "뽑뽀쪼!"


  10살의 자유가 볼을 내밀고, 마찬가지로 10살의 진혜가 입술을 갖다대는 장면이었다.


  "크허어어억!!"


  "끄흐읍!!"


  무릇 선인이라 함은 이미 경지가 완성에 다다른 자들로, 기운을 다룸이 마치 손발과 같아 결코 뒤틀리거나 어지럽혀지지 않는 법이나, 이 순간 두 사람은 하계의 수도자들이나 두려워 할 주화입마에 한 발짝 걸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울컥 치솟아오르는 피를 삼키며 기운을 다스리고 있자, 주위에서 폭소가 들려온다.


  "크하핫, 경쟁하라고 보내 놓은 애들끼리 정분이 나도 크게 난 모양이야!"


  "큭큭, 기껏해야 코흘리개 아이들이 아닌가. 그런 거창한 건 아닐 테지만, 거창해지는 게 한 순간이긴 하지?"


  "거 봐라, 내가 훨씬 재밌는 걸 볼 거라 말했지! 내 감은 잘 맞아들어간다니까!"


  신날 대로 신난 다른 선인들을 매섭게 노려보는 자유와 진혜였으나, 한참 먼저 도원경에 들어선 선배들인데 뭘 어쩌랴.

  진정이 되자마자 산혼 선인에게 기어가다시피 달려들어, 하소연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산혼 님, 이건 뭔가 잘못된 겁니다!"


  "어서, 어서 저들을 다시 불러들이십시오! 분명히 천기가 고약하게 일그러진 것입니다!"


  "어허, 이미 하계에 연을 구축한 혼을 어찌 멋대로 거두겠는가.

  두 사람이 이미 동의한 일이니, 이제부터 우리는 조용히 지켜봐야만 할 따름이네."


  "이런, 이런 현실이 있을 리가 없다!"


  "원시천존이시여..."


  두 사람의 절규를 하계의 범인들이 어찌 알리오.

  하늘을 덮은 두루마기에선 어린 자유와 진혜가 아무것도 모른 채 꽁냥대고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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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천지 원수인 경쟁자와 승부를 겨루기 위한 내기로 하계에 보낸 분신들이 순애물 찍는 걸 손가락 빨며 지켜보는 액자식 선협물 소재.

기본적으론 하계의 분신들이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가는 수선 생활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간간히 피토하는 선계 인물들 그려주는 전개로 하면 되지 않을까.

도가 수선법엔 방중술도 있다면서요?

운우지락 직관도 나올 수 있을지도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