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반가워. 다들 짤 올리길래 해야될 것 같아서 대충 갤러리에 있는 거 올렸는데 문제 없겠지?

이런 곳에 글 쓰는 게 처음이라서 좀 어색한 건 양해 좀 해줘.

글을 쓰긴 했는데 보는 사람마다 좀 피폐하다고 해서 주의하고 봐줘.

——————

아이는 하늘을 바라봤다. 새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하얀 구름이 그토록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이가 집에 있는 막대기를 위로 들고 힘껏 뛰면 천장에 막대기의 끝이 닿을 만큼 자라났을 적에, 아이는 자신의 어머니가 천장에 매달려 움직이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겨울이면 길거리에서 종을 흔드는 선교자들이 하늘에 떠있는 인간은 천사랬는데, 어머니는 천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애로운 아이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했는지 심한 악취가 났다.

하지만 아이의 키는 천장에 닿지 못했기에 아이의 어머니가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돕지 못했다. 물론 아이의 천사를 천국으로 보내줄 수도 없었다.

얼마 뒤 근처 상가에서 신고가 들어와 파란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찾아와 아이의 어머니를 데려갔다. 그것이 긴 이별의 시작이었다.

보육원이라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아이는 여러 세상들을 만났다. 머리에 주먹만한 땜빵이 있는 세상은 아이에게 어른들이 자신에게 큰 해를 가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다리가 하나인 아주 조그만 세상은 아이에게 자신이 잘못 태어나서 어른들에게 버려졌다고 말했다.

그 세상들의 색채는 너무도 어둡고 음침한 지라 아이는 그 세상들에 섞여들 수 없었다.
다행이도 보육원 안에는 이런 아이가 마음을 의탁할 수 있는 쉼터가 존재했다. 그것은 아이와 같은 인간은 아니었으나 차근차근 종이를 넘기며 깨우칠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책이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빨간 코 사슴이 이끄는 썰매를 부리는 신기한 할아버지를 만났으며,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를 돕는 착한 왕자와 함께 모험을 떠났다.
그런 경험들은 보육원 주변을 둘러싼 어두운 기운을 아이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주는 보호막이 되어줬다.

아이는 책들을 통해 자신을 향한 세상의 유리조각들을 싱그럽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아이는 점점 자라났다. 그가 팔을 위로 뻗고 문을 지나갈 때 문틀을 잡아챌 수 있을 만큼.

그런 어느날 보육원의 주인은 그가 이제 많이 컸으니 사회로 나가 살아가라고 하셨다. 그는 그것을 충격으로 받아드렸다. 여태껏 잘 살아왔던 이곳을 떠나야한다니, 정말이지 무서웠지만 그에게 선택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가 사회로 나갈 무렵 그의 손에 쥐어져있던 건 보증금 200에 월세 25인 작은 단칸방과 보육원의 주인이 그에게 쥐어준 200만 원 뿐이었다. 이것이 보육원이 그에게 미친 마지막 보은이었다. 그는 배운대로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일터를 찾으려 하였지만 기초 교육만 받고 자란 그를 받아주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상하차, 막노동 등 그의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정당한 수익을 모두 합쳐봤자 월세와 국가에 내야하는 몫을 내고 나니 그에게 떨어지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그런 그의 삶에 만족하며 살았다. 온종일 무거운 벽돌을 나르고 잠시 주어진 휴식시간에 피곤한 몸을 녹여주는 뜨거운 믹스커피를 먹으며 마지막으로 크게 불타고 있는 황혼의 드넓은 하늘을 보고있노라면 그 걱정어린 손길이 그의 구겨진 마음을 조심스레 어루만져주고 그가 들고잇던 유리조각을 조금 나눠받아 줬다.

늦은 밤에는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단칸방에서 잠들었다. 보일러조차 없는 차가운 바닥이었으나 곳곳에 보육원 주인의 애정이 쓸어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버틸 수 있었다.

때는 무더운 여름날의 비가 공기를 눅눅하게 적시는 날이었다.
그는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지 못하는 바람에 인력사무소에 제때 갈 수 없었다. 비에 젖은 공기가 그의 무거운 어깨를 내리눌러 그 날은 더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창문밖으로 보이는 세상에 눈을 흘기고 있었는데, 저 멀리 어딘가에 그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무언가가 반짝였다.

그것의 정체는 바로 고양이였다.
삼색의 털을 지니고 있는 고양이의 반짝이는 눈이 그의 시선을 가로챈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고양이는 그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자리를 옮기거나하지 않았다. 난 이렇게 갇혀있는데 너는 그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는구나, 도대체 누가 짐승이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뜻밖에 볼 거리인 고양이를 계속해서 흘겨보았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러는 자신이 한심해보여서 냅다 집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미지근한 온도의 물방울들이 그의 어깨를 때리며 돌아가라 만류하는 것을 뒤로 그는 잰걸음으로 고양이를 향해 다가갔다.

바닥에 고인 물들이 그의 신발에 채이며 거친 흙의 색으로 양말을 물들였지만 신경쓸 바 아니었다. 지금의 이 모험은 항상 반복되고 갇힌 생활을 해왔던 그의 인생에 대한 반항과도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고양이에게 다가가길 계속해 일곱 걸음 남짓 거리를 남겨뒀을 즘, 먼저 움직인 것은 고양이였다. 흠뻑 젖은 털뭉치가 그에게 안겨왔다.

이게 정신을 놨나? 하고 생각할 무렵, 고양이 목에 달랑거리는 철편을 발견했다. 생참치,라는 글씨가 음각되어있었다.

어떤 인간이 자기 고양이 이름을 생참치로 지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길 잠시, 어쨌거나 이 집나온 고양이를 발견한 것은 자신이니 주인을 찾아주는 것도 자신인 게 이치상 옳은 일이었다.
아니라면 파묻혀 죽을 것만 같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발악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품에 조금은 버거운 감이 있는 생참치를 안고서 그는 동네를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전통시장부터 그가 갔어야 했을 인력사무소까지, 아파트 숲부터 반대편의 논밭까지, 도시의 온 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생참치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아파트 숲 앞으로 돌아온 그는 놀이터 그네에 걸터앉아 생참치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네 주인은 다시 찾아오지 않으려는 모양이구나, 그는 그런 생각을 품고있었다. 그의 어머니 또한 그랬으니까. 이젠 그의 천사였던 이가 어디로 갔는지, 어째서 다신 돌아오지 않는지 어렴풋이 알게된 그에게 그 기억은 가슴아린 상처였으나, 현실이 그런 것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내리는 비가 생참치를 마음껏 적셔 춥게 하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아주는 것 뿐이었다. 마치 책이 그에게 해줬던 것처럼.

생참치가 자신을 쓰다듬는 손길에 노곤한 마음을 웨에옹~하고 내뱉었다. 그가 이 고양이를 자신이 데려가 키워야하는지를 고민 중이었을 때, 그와 고양이는 다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참치야! 생참치!”

웨에옹~ 하고 대답하는 생참치를 보며 그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아직 이 고양이는 자신과 같은 세상에 갈 채비가 되지 않은 듯했다. 그는 다시금 생참치를 안고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얼마지나지 않아 소리가 정말 가까이서 들려왔고, 그걸 들은 생참치가 품에서 뛰쳐나가 한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 생참치를 따라 상가 근처 골목에 도착하니 한 여성이 생참치를 안고 서있었다.

“어디갔었어!”

웨오옹~ 한결 같은 생참치의 울음을 들으며 그 훈훈한 광경을 바라보고있으니 이내 생참치를 얻은 여자가 왔던 것으로 추정되는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참 기묘한 여정이었던 것 같다.
하늘은 아직도 비를 뿌려대며 우산 없는 이들에게 시련을 내리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잔잔한 운치가 되어주지 않겠는가?

그는 지금 그 어떤 이가 될 수 있는 수혜를 누리고 있었다. 그가 바라 마지않던 종류의 세상이었다.

이튿날 아침 그가 행복한 꿈에서 깨어난 뒤, 자신의 몸이 불덩이처럼 변해있는 것을 이불 속에서 발견했다.

몸에서는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온 몸을 돌아대며 열을 발산하고 있지만 그는 추위를 느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오들오들 떨고있는 그는 머리가 몽롱하고 지끈거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웃음이 멎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아직도 행복한 꿈 안에서 살아가고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내리 인력 사무소에 나가지 못했다.

일주일을 고통과 고뇌의 시간으로 채운 끝에 그는 새로 일을 구할 일터를 찾았다.

하지만 어찌 동굴에 묶여 그림자만을 바라보던 원시인이 세상의 색채를 마주하고도 다시 동굴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에게 그날의 비와 생참치와의 추억은 동굴 밖  원시인의 다채로운 세상과 다를바 없었다.

조그맣게 면접을 보고 그 다음주 아침부터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생참치를 돌려줬던 그 골목 옆의 자그마한 카페였다.

상하차, 노가다 만큼의 돈은 벌리지 않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그드드득하고 구멍을 뚫는 드릴소리도 없었고, 험상궂은 아저씨들의 고함소리도 없이, 오직 잔물결 같이 귀를 간지럽히는 재즈풍의 카페 음악이 그를 어루만졌다.

출근 시간도, 점심 시간 언저리도 아닌 때인지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은 전무했다.

그는 조용히 책을 펼쳤다. 오늘 오던 길에 동네 서점에서 대출한 것이었다. 오늘은 한 남자와 여자의 애정어린 세상을 탐독할 예정이었다. 예컨대 로맨스였다.

남자는 무료한 삶을 살아오다가 문득 여자를 만난다. 이후 어떤 계기를 통해 사랑에 빠지고,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져나간다. 카페에서 일하던 남자가 갑작스레 찾아온 여자를 만나서—

“영업하세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몸을 반쯤 내밀곤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말에 긍정을 하고 여자가 시킨 카푸치노를 만들어 가져다주었다. 전에 일했던 이가 황급히 인수인계만 해주고 도망치듯 떠난덕분에, 굉장히 서툰 손길로 엉망을 겨우 면하게 만들어진 카푸치노를 여자의 자리에 가져다주자 여자가 감사인사를 했다.

다시 카운터에 앉아 책 속에 빠져 헤매고 있으니 시간이 훌쩍훌쩍 지나갔다.

“저기… 뭐보세요?”

다 마신 컵을 가져다주러 온 여자의 접근을 눈치 못 챌만큼. 깜짝 놀라 책을 던질 뻔하곤 여자에게 대답했다.
여자는 아 그 책 재밌죠, 하고 배시시 웃었다.
그런 여자의 얼굴이 세상을 가득 채운 듯하여 심장이 날뛰어댔다.

그렇게 잔뜩 얘기를 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책을 덮고서 그는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다.

그에게 인생의 봄은 오지 않으려나보다.
책 속의 남자와는 다르게 작달만한 그의 카페엔 정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역시 책은 책이구나 하고 깨닫는 날이었다.

가게 문을 닫는 사장을 돕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은 넓고 아름다웠지만 지극히 무심했다. 불만은 없으나 나름의 섭섭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걷는 그의 가슴 부근에 뭔가가 툭, 하고 부딪혔다.

“아야,”

때아닌 가냘픈 목소리에 그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에 비해 왜소한 체격의 인형이 보였다.
익숙한 목소리에 얼굴, 생참치를 데려갔던 그 여자였다.
그가 느끼기로 인생 처음으로 운명이 그의 박동에 맞춰 걸어가는 순간이었다.

절대적인 흐름이 그의 심장박동과 공명한 후에 시간은 총알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머뭇거리며 말을 붙였던 그 첫 날의 추억으로부터,
그가 일한다는 카페에 그녀가 놀러왔던 일,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일을 태만히 한다는 이유로 알바에서 해고되고 미안하다며 그녀가 밥을 샀던 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로수가 양쪽을 가득 메운 길을 걸은 일,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정리를 도우며 은근한 눈빛을 주고받은 일,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그를 도와준다며 오는 그녀의 손을 은근히 붙잡은 일,

왜 항상 컵라면만 먹냐고 따지던 그녀가 귀여워 티격댔던 일,

처음 그녀의 집으로 놀러갔던 일,

비가 오던 날 정자 끄트머리에서 머리를 털다가 문득 고백했던 일,

복도형 아파트의 현관에서 머뭇거리다가 냅다 입을 맞췄던 일,

품에 안긴 그녀와 박명의 일출을 바라봤던 일,

막일을 하다가 크게 다친 그의 몸을 보고 그녀가 눈물을 흘렸던 일,

일하던 페인트 시공 업체에서 그를 받아줬다는 소식에 울먹이던 그녀를 껴안았던 일,

퀴퀴한 반지하가 아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충만감에 바보처럼 웃었던 일,


직장 전출로 이사를 가게 됐다는 그녀의 뒷모습을 차마 잡지 못했던 일,


딱딱한 인생을 다시 살기 싫어 그녀가 옮긴 곳으로 빚을 내어 이사를 가버린 일,


이사한 자신에게 미안하다며 펑펑 울던 그녀가 안쓰러워 함께 눈물을 흘린 일,


문득 그녀가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된 게 신기하다며 깍지 낀 손을 들어보인 일,


생참치를 떠나보냈던 일,


함께 자전거를 타며 한적하게 시간을 보낸 일,


직장에서 혼나고 온 그녀를 데리고 바닷가를 다녀온 일,


청소 좀 하고 살라며 등짝을 맞았던 일,



그럼 네가 들어와 살면 안되냐고 말하자 얼굴을 붉혔던 그녀가 귀여웠던 일,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난 일,



근본도 없는 놈이라며 내친 아버님에게 무릎을 꿇은 일,



절대 울게 만들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허락을 따낸 일,



3번의 헤어짐, 4번의 만남 끝에 첫 번째로 영원을 약속했던 느티나무 아래에서의 일까지.

행복했던 시간들은 고속도로의 불빛들처럼 그의 눈에 일렁이는 잔상만을 남기고 빠르게 지나갔다.
세월이 어느정도 흐른 후 바라본 그녀의 얼굴에는 시간이 유예를 준 듯 여전히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어느덧 그는 중소기업의 과장이 되어있었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술배가 튀어나오려 하고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토끼 같은 자식들이 수염괴물이다! 라며 달려들기 일쑤였고, 가끔씩 야근을 하고 돌아오면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기다리다 잠든 그녀를 보며 숨 죽여 웃었다. 없는 집 살림에서라도 어떻게든 팔다리 비틀어가며 자식들이 어디가서 꿇리지 않게 했다.

행복했다.

꽃이 피어나 언젠가 져버린다 한들, 그때의 아름다움만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듯이, 산뜻한 봄날 여우비의 옷 적심에 기분 나빠할 이 없듯이

매일 매일 아둥바둥 톱니바퀴처럼 살아가는 세상이었지만, 잠시 이탈하여도 정비를 해줄 수 있는 쉼터가 있다는 사실에, 돌아갈 집에 조금 싱거운 된장찌개를 끓여주는 여인이 있다는 사실에 그는 조금이라도 몸을 더 움직이지 않으면 행복에 겨워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특히 대리시절에 자신도 반쯤 잊고 살아가던 그의 생일날, 늘 데면데면하던 첫째놈이 아빠 사랑해요라며 어린이집에서 삐뚤빼뚤 크레파스 글씨로 끄적인 편지를 고사리 손으로 꼭 쥐여주던 그때에는, 자신의 인생이 틀리지 않았구나, 어린 날의 불행은, 방황은 지금을 위한 것이었구나 하며 천장에서 눈을 땔 수 없었다. 자식 앞에서 우는 부모가 될 수 없었으니까.

종종 바닷가로 캠핑을 떠날 적에, 카시트에 앉아서 공갈 젖꼭지나 물고있던 둘째가 어느덧 커서 생선구이는 싫다며 투정을 부리는 모습에, 몰래 생선 한 점을 떼어다 밥 위로 올렸던 것은 몰래 녹화해서 파일에 넣어놨다.

얼굴에 주름은 늘어만 가고 자식들이 어느정도 커서 방 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을 때, 그녀와 오붓하게 맥주에 영화를 즐기며 그땐 그랬지하며 사담을 풀며 살아가는 인생.



너무 행복해서였을까.


이 극치의 단란한 가족을 하늘이 시샘이라도 하였을까.

그는 어느날 회사를 마치고 돌아오며 들어선 그와 가족의 집 문이 활짝 열려져 있음을 발견했다.

매미가 찌르르하고 울던 여름날이었다. 범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며 사유는 그저 하고싶었더랬다.

택배라는 말에 의심없이 문을 열은 미련한 여자를 망설임없이 칼로 찌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어미의 비명에 놀라 튀어나온 남학생 둘을 보며 그녀를 밀쳐내곤 달려드는 남학생 B군에게 수차례 깊은 자상을 새기고는 A군의 반항이 거세자 홀연히 사라졌다.

엄마와 작은 아들이 죽고, 큰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게 한 큰 사건이었다. 뉴스에서도 왕왕대며 떠들 정도였다. 듣자하니 화를 당한 것은 그의 집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분노한 군중이 그를 사형하라며 넓은 광장에서 시위하고 드문드문 문 앞에 걸린 흰 꽃을 보며 텔레비젼 속에서 엉엉 울다가 그만 실신하는 누군가의 어미들은 몹시도 자극적이었다.

그런 모든 것들이, 고통들이 마치 그 자신을 꾸짖는 것만 같아서, 마치 왜 그들을 지켜내지 못했냐고 그에게 성을 내는 것 같아서 그만 그는 자신의 귀를 닫고말았다.

어쩌다 이리 됐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날아갈 듯 행복했건만, 견딜 수 없는 압박에 잔뜩 움츠려들어 품 속 가득 끌어안고있던 유리조각이 그를 찔러댔다.

눈을 또륵 또륵 굴려보지만 온 세상이 높은 파도가 되어 그에게로 쇄도하는 듯 했다.

그게 너무나 두려워 두 손으로 눈을 가려봐도 입으로 단말마가 뛰쳐나오려 몸부림쳤으며 눈에 올린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으며 달래어보니 얕게 벌린 입으로는 한숨밖에 나오는 것이 없었다.

그 메마른 한숨에 건조한 얼굴을 어루만지려 흘러나온 따뜻한 물방울을 느끼고서야 그는 자신이 울고있음을 깨달았다.

가족들 앞에서 못난 아비가 될까 두려워 끝내 흘리지 못했던 가장의 눈물은 그의 인생을 대변하듯 뜨거웠다. 세상을 불태울 만큼.


2개월이 소요됐다.

그의 아들이 안정기에 들어서고, 그가 자신의 직장으로 복귀하기까지, 겁없이 세상에 덤볐다 부러져버린 그에게 세상이 내린 유예기간은 고작 2개월이었다.

회사로 돌아오니 주변인들 또한 어련히 알아차린 듯 그를 대하는 태도가 몹시 조심스러웠다.
그게 정말 가증스러웠으나, 남은 그의 새끼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이 끝난 후에는 혹여 첫째마저 자신이 곁에 없는 사이 날개를 달고 날아가지 않을까 싶어 병원까지 달려가 그곳에서 함께 밤을 보냈다.

큰 병원 건물내 중환자실, 그곳 또한 다양한 세상들이 존재했다. 그 세상들은 그가 어릴 적 겪었던 세상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깊고 짙으며 명확한 적의를 품고있는 세상이었으며 어떤 세상은 얼마나 그 삶의 연명이 고통스러운지 밤새 소리를 질러댔다.

남몰래 눈물을 삼키던 그에게 내리쬐는 보름달을 보며, 그는 문뜩 자신이 옛날 보육원에 있을 시절 읽었던 동화들이 떠올랐다.

인생은 동화가 맞았다. 다만 그의 동화 속에서 가련한 그에겐 핀란드의 빨간 옷 입은 할아버지나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를 위한 금발의 왕족 소년이 없었을 뿐이었다.

아리따운 공주를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어야할 콘크리트 궁전 속 늙은 왕자의 이야기는 항상 끝맺음을 또렷하게 하지 않는 매정한 동화처럼 막을 내려버린 것이었다. 그의 인생을 읽는 어린 아이들은 그저 그것으로 만족할 게 분명했으므로.

그의 아들이 마침내 깨어났을 때는, 자꾸 어눌한 말투로 벽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해댔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과다출혈과 코마상태의 후유증으로 뇌에 가는 혈액이 너무 부족해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 했다.

간신히 구한 그의 첫째 아들마저 이 세상을 편견어린 시선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정신과, 상담소 등을 다니며 그의 아들을 되돌리려 노력했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자꾸만 그의 어미가 보이는 것처럼 부엌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그 광경이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시련이 그에게 온 것인가.

그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그는 비루한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세상에 한탄과 복수를 하고싶었으나, 그는 가장이었다. 그는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저신의 무리를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그는 현재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퇴사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와 그의 아들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퇴직금, 국가 지원금 등을 모두 모아 만든 목돈을 털어 산 속으로 들어갔다. 반쯤 오지로 보이는 산 속의 그의 집은 자연이 보우하듯 고요했다.

국가에서 만들어놓은 농민 지원 정책으로 그는 그 산지를 벌목하고, 개간하여 밭으로 삼고 소를 키웠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그곳에서 그는 편안함을 느꼈지만, 여전히 마음 한켠에, 아니 마음 가득히 들어차있는 착잡함과 공허함을 메울 길이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로, 추억은 황충떼와 같았다.
예고없이 찾아와 마음 속을 휩쓸듯이 사무치고, 이후에는 텅 빈 곳간처럼 서글픈 향수가 찾아온다. 하지만 더욱 버거운 것은, 황충떼와 달리 그는 이것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이미 멈춰버린 그의 박동을 세상은 억지로 끌고 맞춰갔다.

시간이 총알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그 총알의 끝에 매달린 그는 그 흐름에 자신만이 이질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있음을 알았다.

농장이 유명세를 타 이따금씩 티비 프로그램에서 찾아오고, 점차 수요가 늘어 돈을 벎에 부족함이 없이 풍족해졌다.

그의 아들이 소에게 그만 밟혀 죽어버렸다. 잠시 소를 방목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만히 누워 산 속 깊이 고요한 숲을 바라보는 아들의 눈에서 그는 여전히 그 집의 부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항상 느끼던 그 풍경이 없다는 사실에 그만 날개를 달고 날아가버린 것이었다.

아무래도 혼자 남은 그의 아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였나보다.

이렇듯 그의 인생은 하나를 주고 하나를 앗아가는 짓을 반복했다.

그런 세상 속에서 그는 점차 풍화되어갔다.

마침내 정신이 나가 미친 짓을 반복할 노인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쁜 일이 있을수록 더욱 이를 악 물고 버텨냈다. 산 속에 옮겨놓은 그의 가족들의 무덤 앞에 앉아 그 각오를 다졌다.

그마저 끈을 놓아버린다면, 이 세상 속에 그의 자취가 남아있다는 것을, 행복한 가정이 그 안에 존재하였음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었으니.

그는 세상이 그에게 해를 가하지 못하게 숨어살았다. 농장 밖으로 나가는 일을 최소화했다.

그의 동네 이웃들이 찾아오면 매몰차게 내쫓았다.

그 탓에 그는 동네에서 미친 노인네로 소문이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금 세상의 고통이 그의 대문을 두드리도록 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이가 칠순을 넘어 그의 인생이 황혼에 다다랐음을 직감한 때에, 그는 다시 산을 올랐다.

가족들의 묘가 있는 곳을 향해서였다. 묘에 수북히 자라난 잡초들을 뽑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 하늘이 무척이나 편안해보였다.

그의 가족들은 분명 저런 곳에서 편안히 살 것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짊므로서 그들은 자유를 윤허받았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다시금 잡초를 뽑으려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그는 자신이 무덤가에 누워있음을 깨달았다. 이제서야 하늘이 자신에게도 자유를 허락하나보다.

그는 애써 반항하지 않았다.

연륜이 가득찬 노인인 그는 자신의 인생을 복기했다. 평탄치만은 않았던 인생이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면 불쌍하다 위로를 받을 인생이 분명했다.

세상은 언제나 그가 가장 높은 계단에 올라섰을 때야 그를 밀어 떨어뜨렸다.

그렇게 아둥바둥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인생을 살던 그는 이제 날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런 그가 생각하기로 누군가 자신에게 똑바른 사람이었냐 묻는다면 그렇다 말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똥이 무서운 사람이었으니.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봤다.
모든 걸 내려놓은 그 일순간에 아무런 근심이나 헛된 마음 없이 눈에 담을 수 있었던 공활하고 푸른 하늘이 그토록 아름답지 않을 수 없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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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야 봐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