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걔가..."


"아니 근데..."


주말이 지나가고 한 주를 시작하는 교실 내에서는 학생들의 대화소리가 한껏 울려퍼지며 시끄러운, 그러나 정다운 소리를 자아냈다. 


누군가는 지난 학기에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의 회포를 풀며 대화를 나눴고, 누군가는 친한 친구와 정겹게 짓궂은 장난을 치며, 누군가는 약간 외설스러운 이야기를 하며 서로 낄낄대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다른 반으로 가 지난 학년에서 갈라진 친구들을 보러 갔고, 반대로 다른 반에서 오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연인과 이야기를 하며 친구들의 장난 섞인 질시가 어려진 시선을 받았고, 또 누군가는 다가오는 시험을 위해 문제집을 꺼내들어 풀었으며, 아니면 그저 피로에 찌들어 책상에 힘없이 엎드려 잠을 청하기도 했다.


-딩동댕동~


한창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는 수업이 시작했음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확 하고 꺼졌고, 이전 학기에서 종이 쳐도 선생이 들어와야 부랴부랴 준비하던 모습과는 달리 학생들은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속도로 제자리로 돌아가고 교과서를 꺼냈다.


"...."


방금 전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학생들은 한없이 굳은 표정을 짓고 굳게 입을 닫으며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적막의 분위기는 교실 밖 복도에서 척척거리는 군홧발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잠시 깨어졌다.


-드르륵


이윽고 몽골군의 검은 군복을 입고 총을 허리춤에 찬 교사가 철제 지휘봉을 왼손에 쥐고 교재를 오른팔로 감싼 채로 문을 열고 들어오고, 교탁에 서서 걸음을 멈추었다.


"반장 인사."


군홧발 소리가 멈춤과 동시에 교사가 그렇게 말하자, 반의 반장은 즉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차렷, 경례!"


""""안녕하십니까!""""


반장이 마치 군인이 외치는 듯한 소리로 크게 외침과 동시에, 허리를 45도 각도로   깍듯이 숙인 학생들의 합창소리가 반 전체에 쩌렁쩌렁 울리며 창문을 흔들었다.


학생들은 지극히 어색하고 딱딱한 자세로 부동자세를 취하며, 혹여나 책은 잡히지 않았을까 심히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행히도, 교사는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교재를 교탁에 펼칠 뿐이었다.


"다음."


교사가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무심히 그렇게 말하자, 반의 학생들은 재빨리 칠판 위에 걸린 4개의 나무 액자를 향해, 그러나 가장 중앙의 두 액자에 큰절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칠판 위에는 4개의 나무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그 중 중앙에는 몽골 황제의 사진과 몽골의 푸른 바탕에 흰 문양이 그려진 특유의 국기가 걸린 2개의 액자가 딱 붙은 채로 걸려 있었고, 한국 통령의 사진과 태극기가 걸린 액자는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성의 없게 걸려 있었다.


한국이 몽골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흔히 볼 수있는 풍경이었다.


학생들이 절을 다 올린 것을 확인한 교사는, 학생들을 따라 몽골 황제의 사진이 걸려 있는 쪽으로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고개 올려." 라고 무심히 말했다.


"....."


교사의 말을 들은 학생들은, 고개를 올렸고, "고개 내려"라고 말한 교사의 말을 따르며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렇게 학생들이 3번 고개를 올리고 숙인 후,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을 지은 교사가 역시 무심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전원 기립."


학생들은 재빠르게 일어나며 부동자세를 취했고, "앉아." 하는 교사의 말이 떨어지자 역시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반복된 폭력이 의식적으로 각인된 결과였다. 


교사는 잠시 학생들을 둘러보더니, 이내 한 곳에서 시선이 멈추며 얼굴을 찌푸렸다. 교사의 찌푸린 얼굴을 본 학생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얼굴이 백린처럼 하얗게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으며, 교사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척 척 척 척


교사는 철제 지휘봉을 집어들고 교실의 복도 창문 쪽으로 가더니, 이내 맨 끝줄에서 덜덜 떨고 있는 학생의 자리에 멈추었다.


그 학생은 손과 다리를 벌벌 떨고, 교복 와이셔츠가 축축해질 정도로 땀을 흘리고, 반복적으로 헉헉거리머 불안한 숨소리를 내쉬었다.


교사는 그런 학생을 보고 기가 찬 듯 허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야."


싸늘한 그 소리에, 학생은 곧바로 허리를 똑바로 세우며 기립했다.


"예..옛!"


"너 왜 책상에 교과서가 없어?"


"모...못 들고 왔..."


학생의 말이 끝마쳐지기도 전에 교사의 주먹이 학생의 배에 꽃혔다. 배에 주먹을 맞은 학생은 꺼어억하는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등이 새우처럼 고꾸라졌고, 그 학생은 맞은 부위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꺼억...꺼어억..."


고통에 신음하며 바닥에 누운 학생을 싸늘하게 내려다본 교사는, 이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서."


교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학생은 배를 맞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음에도 간신히 한쪽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한쪽 손으로는 책상을 걸치며 자리에서 낑낑대며 일어났고, 자꾸만 굽혀 가는 허리를 억지로 펴면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교과서를 못 들고 왔다고?"


"예..예..!"


"확실해? '못' 들고온거?"


"예..?"


"못 들고 온거 맞냐고, 니 말대로 못 들고 왔으면 다른반 애한테 빌렸어야지, 지금 이 시간까지 없어?"


"그..그게.."


"못 들고 온게 아니라, 안 들고 온거겠지 이 새끼야!"


-퍽


"아악!"


소리를 친 교사는 학생을 향해 군홧발로 조인트를 깠고, 학생은 다시 고꾸라지며 바닥에 주저앉으며 다리를 부여잡았다. 


"일어서."


"으윽...아아악...!"


그러나 학생은 이번에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리를 부여잡으며 계속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다. 


-빡


"끄아아아아악!!"


그 결과는 교사의 군홧발질이었다. 교사는 군홧발로 고꾸라진 학생의 명치를 제대로 가격했고, 학생은 더한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러댔다.


"..."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학생들은, 그저 푹 하고 고개를 숙이거나, 귀를 손으로 막고 눈을 감으며 외면할 뿐이었다.


저항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더 큰 폭력과 외면이었가에.


"넌 수업을 받을 자격도 없다. 수업 끝날때까지 엎드려 뻗쳐."


"끄으...으으윽..."


교사는 철제 지휘봉으로 책을 가져오지 않은 학생의 이마를 쿡 누르며 몸을 돌아섰고, 학생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팔로 지탱하며 엎드려 뻗쳐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서 교사는 몸을 휙 돌리고, 교탁에 서서 철제 지휘봉을 내려치며 말했다.


"앞으로 책 안 가지고 오는 새끼는 저렇게 세울 거다. 다 알아들었나?"


"....."


대답이 없자, 교사는 허리춤의 총을 만지작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것들이 단체로 귓구녕이 막혔나, 대답 안해?!"


"""""예!!!"""""


학생들은, 부랴부랴 정신을 차리며 온 교실이 다 떠나가라 짧고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길게 대답한 몇몇 아이들이 복날에 개 잡듯 먼지나게 두들겨 맞은 이후로, 길게 대답하는 아이들은 없어졌다. 


아무렴, 그것 하나로 하반신이 마비되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알았으면 다들 책 펴. 오늘 진도 4단원까지 나가야 하니까 빨리."


교사의 말에, 학생들은 진도가 너무 많다는 불평 없이 묵묵히 책을 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