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저희는 뭐 오의나 절초 같은 거 없습니까? 기왕이면 이름도 좀 멋진 걸로.”

 “이놈이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구나.”

 수련이 지겨웠는지 제자가 또 헛소리를 했다.

 “도가도비상도라, 도라 부를 수 있으면 도라고 할 수 없는 법. 같은 이치로 진정한 오의는 매일매일의 수련으로 쌓는 실력인 법이다. 옆길로 새지 말고 정진하거라.”

 “그놈의 도가도비상도, 아무리 생각해도 말하기 싫은 주제 얼버무리는 거 같단 말이죠. 질문만 하면 도가도비상도래.”

 “떽! 이눔시키가 의심만 많아가지고! 길거리에서 빌어먹던 걸 주워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날을 세워가며 가르쳐 놨더니! 아이고, 내가 무슨 업보가 쌓여서 이런 놈을 제자라고 들였을꼬.”

 “아, 그건 감사하긴 한데요...”

 자기도 찔리긴 했는지 제자가 슬그머니 말꼬리를 늘렸다. 도성 저자에 열 살도 안 된 꼬마 아이가 점을 용하게 친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도사가 덜렁 아이를 제자로 들인 후, 말이 제자지 사실상 제 자식처럼 키운 것을 소년도 알았기 때문이다.

 제자가 쭈그러들자 스승도 한결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사실 지루하긴 할 터였다. 수련이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 높이 올라 내려다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올라왔는지 알기 어려운 법이다.

 스승은 제자를 불러 자신이 앉아있던 바위에 나란히 앉히고는 이야기했다.

 “제자야, 네가 아직 첫 번째 경지를 넘지 못해 느껴지지 않겠지만, 우리의 수도와 무림인의 공부는 겉만 닮았지 완전히 다른 곳을 바라보는 다른 길이란다.”

 “정확히 어찌 다른 겁니까? 무인들도 경지에 들면 도인처럼 하늘도 달리고 바위도 가른다는데.”

 “그래, 그러면 경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자꾸나.”

 스승은 제자에게 물었다.

 “무림인들이 경지를 어찌 나누는지 알고 있느냐.”

 제자가 답했다.

 “뭐, 3류, 2류, 1류에, 절정, 초절정으로 가다가 화경에 이르지요. 실제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위에 현경이 있다고 하고.”

 “그래 하지만 우리에게 3류부터 초절정까지는 없는 경지다. 전부 같은 경지지.”

 제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예? 하지만 3류가 백명이 덤벼도 초절정의 옷깃조차 못 스치는데 말입니까?”

 “그래. 3류고 1류고 절정이고, 검도에 있어서는 같은 경지다. 벨 수 있는 것을 베는 경지지. 어디까지 벨 수 있느냐가 다를 뿐.”

 “그 무엇을 벨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 지점이 무공과 수도가 갈라지는 곳이지. 무림인에게 있어 단련은 벨 수 있는 것을 늘려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의 수련은 벤다는 행위 자체를 한 차원 더 도약시키기 위한 발판이지.”

 “벤다는 것을 도약시킨다니,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거기서부터가 다음 경지다. 베고자 하는 것을 베는 경지지. 검에 의지가 담기는 것을 넘어 의지가 곧 검이 되고 마음이 그리는 검로를 가로막는 것이 없다. 이를 무림에서는 강기라 부르고 이 경지를 화경이라 하지.”

 “...그러면 현경이 있다면 어떤 경지일까요?”

 “베어야 하는 것을 베는 경지. 검이 의지를 초월해 당위(當爲)가 되는 경지니라. 베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앉아서 검을 휘둘러도 천 리 밖이 검에 닿고 마음 가는 데로 휘둘러도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다. 그리고 상상의 경지가 아니란다. 높으신 검선들께서 도달하신 경지고 무림인들 중에도 옛날에 두세 명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고로 그 옛날은 어느 정도로 옛날인가요?”

 “음? 어디 보자...”

 스승은 기억을 더듬었다. 가물가물하지만 위낙 인상적인 인물이었던 터라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백하고도 오십여년 전에 마지막으로 현경에 다다른 무인을 보았었구나.”

 “이백오십. 알고는 있었지만 단위가 다르군요 스승님.”

 “무얼. 그리고 네가 우선 도달해야 할 경지가 그곳이다. 무공이 아닌 검도에서는 천통(天通)이라 부르는 경지다.”

 “제가 그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겠습니까?”

 “이미 반쯤 오른 놈이 걱정도 많구나.”

 “예?”

 스승은 어리둥절한 제자의 얼굴에 흐리게 웃었다. 길거리에서 광대짓을 하는 어린놈이 천기를 읽는 것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웃은 게 고작 십 년 전이었다. 늦은 나이에 입문해 고작 십 년 만에 화경, 검도에서 말하는 소성(小成)을 앞둔 천고 재능을 가지고서 왜 저리 자신감이 없는 건지. 언제 한번 또래를 만나 보게 할까 싶기도 하고, 자만하지 않게 계속 저리 둘까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아무튼, 너와 내가 가는 검의 길(劍道)은 그 끝이 무림인들의 공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멀고도 높다. 내가 너에게 괜히 장생법을 먼저 가르친 것이 아니야. 길을 가며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정취가 있는 일이지만 지나치게 몰두해 눈길을 빼앗기거나 걸음을 멈춰서는 아니 된다.”

 “예, 스승님.”

 제자의 눈에서 의심이 가신 것을 본 스승은 흡족하게 웃었다.

 “그럼 다시 가서 수련하거라.”

 “네! 아, 그런데 혹시 다음 경지도 있나요?”

 제자의 물음에 스승은 잠시 생각하다가 제자의 등을 밀어 보냈다.

 “당장 두 번째 경지도 오르지 못한 놈이 별 게 다 궁금하구나. 궁금하면 네가 올라와서 알아보거라. 힘이든 지식이든 너무 날로 먹는 게 아니야.”

 “거 닳는 것도 아닌데 좀 알려 주시죠.”

 “떽!”

 스승은 목검을 휘둘러 제자를 다시 수련장으로 보냈다.

 목검은 아무것도 베지 않았지만 제자는 힘차게 수련하고 있었다. 미혹을 베어낸 것이었다.

 베지 않고도 베나니, 이는 의지와도 당위와도 다른 이치였다.

 도은무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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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소재로 구상하긴 했는데 이게 선협이라기 보단 도가무협 같아져서 어느 쪽으로 구분할 지 애매해서 그냥 소재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