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스러운 스파게티 괴물이 나를 집어삼켰다.

아무래도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다.

개발자인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유저 여러분까지 집어삼킨 걸 보면.


처음엔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야 뭐 침대에 누워 자동사냥이나 돌리던 와중에 갑작스래 게임 속으로 떨어졌으니.

하지만 그래도 나름 씹덕 물 좀 먹은 인간들이라고, 우리들은 상상 이상의 속도로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 떨어지고 닷새 째에는 벌써 몬스터를 사냥하기 시작했으니 말 다 했다.

심심할 때마다 머리 안에서 이세계 전생 시뮬레이션을 돌린 보람이 있었어.


문제는 슬슬 생존을 걱정하는 단계에서 벗어난 유저들이 현실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하면서였다.

선구자들의 빅데이터로부터 이런 경우의 해결책은 보통 하나였다.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


하지만 이 게임은 가챠겜이고, 당연히 오래도록 서비스를 이어가기 위해 적의 정체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유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여기저기 흩뿌려진 떡밥 조각모음을 통한 추론 뿐.

그리고 금방 그들은 한계에 도달했다. 그야 그렇다.

최종보스는 애초에 정해지지도 않았으니까!

시나리오라이터 혼자 대략적인 방향성만 잡아둔 상태.

시발. 내가 이 사실을 밝히면 분명 사지가 갈기갈기 찢길 것이다. 절대 개발자인 건 들키면 안 돼.


결국 우리들은 세상에 흩뿌려진 단서를 찾기 위해 아주 사소한 것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이 세계는 내가 개발한 게임 그 자체였다. 닮은 이세계 같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말인즉슨, 좆소기업 특유의 기상천외한 버그들도 그대로였다는 것.

하지만 그걸 유저가 구별할 방법이 있을리도 없어서.


"세레나의 방에 있는 문은 들어갈 수는 있지만 안쪽에서는 텔레포트로밖에 나갈 수 없었어. 분명 세레나의 보호자는 적의 협력자일거야."

버그다. 이벤트 중 한 번밖에 들어갈 일이 없는데다 어차피 페이드아웃으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니 여태 방치했을 뿐이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 언데드는 성속성 데미지가 치명이 아니야. 숙소 NPC의 말을 참고하면 이들은 사제였던 것이 틀림없어."

버그다. 다른 몬스터의 데이터를 끌어쓰다 코드가 꼬여서 속성이 노말로 고정된 것뿐이다. 연장점검까지 했는데 못 고쳐서 사료 뿌렸던 건 까먹은 모양이다.

"님들 여기 인스턴트 던전 보물방에 무기 수납하면서 뒷걸음 대시로 들어가면 우주로 워프하는 거 앎? 텔레포트 안 통했음 죽을 뻔 ㅋㅋㅋㅋㅋ"

시발 그런 버그가 있었다고?

"그건 버그네."

"버그야."

"개발자 시발새끼."

미안하다.


"그럼 백작저택 3층 구석방 강제로 열어도 심연밖에 없는 거 이것도 버근가?"

"그것도 버그네."

"버그야."

"개발자 시발새끼."

미안...앗, 아니.


그건 버그가 아니다.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본다.

여태까지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분명 그건 전에 선배가 윗사람 몰래 멋대로 넣어둔 이스터에그였을 터.

일개 개발자 주제에 에고만 강해서 자주 게임 내에 이상한 요소 끼워 넣다가 하나 큰 사건이 터져서 해고당했지.

당연히 롤백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퇴사한 지금도 남아있었을 줄이야.

뭐라고 했더라?

백작의 서재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책을 뭐 어떻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그 책 제목이.

아.

아앗.


'...네크로노미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선배 그 씹새끼가.

이 세계에 크툴루를 풀었다.


대충 남들 몰래 자기만 아는 이스터에그/백도어로 크툴루 잡으러 다니거나 아님 우연히 발견한 척 다른 전생자들 끌어들이다 의심받고 하는 그런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