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가 행방불명된지 100일.


휴양을 떠난다고 둘러댄지 100일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일은 왕을 알현해서 보고를 하는 날. 행방불명은 짐꾼이었던 나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용사에게로의 모든 업무는 나를 통해서 했기 때문에, 내가 적당히 둘러대도 사람들은 믿었다.


그렇지만 이젠 한계다. 왕은 다른건 몰라도 보고 만큼은 반드시 용사를 직접 시켰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행방불명이라고 털어놓는다? 말도 안된다. 그 동안 한 거짓말을 모두 털어놔야 한다. 그럼 나는 보나마나 단두대행이다.


나는 짐에 들어 있는 용사님의 장비를 쳐다봤다. 


…하는 수 밖에 없었다.



----


101일째 되는 날.


왕은 속았다. 애초에 용사를 본 사람은 별로 없다. 가끔씩 나타나 보고를 하니까 겨우 '실제 있는 사람이네' 정도로 인식하는거다. 그러니, 디테일한 차이 점 정도는 무시해도 좋았다.


용사를 가장 많이 보고, 옆에 있었던 건 나다. 흉내 내는 정도라면 할 수 있었다. 그 흉내는 통했다.


한 것 까진 좋았다.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사님은 도대체 어디에 가신걸까. 어째서 내 연락도 받질 않는 걸까.


용사님의 행방불명을 처음부터 말하는게 좋았을까? 죄책감도 든다.


아니, 이게 맞는 거라고 생각한다. 용사가 사라졌다고 하면 왕국은 난리가 날거다. 용사가 있음으로써 유지 되던 억제력도 사라지고 만다.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잘 한 것이다.


---


151일째 되는 날.


오늘의 알현 역시 가볍게 속아 넘겼다.


그 사이에 용사가 해야하는 토벌들도 내가 직접 나가 해결했다. 난이도가 낮은 토벌 임무여서 다행이었다.


용사님 같은 비범한 사람을 따라가려면 짐꾼인 나도 최소한 따라갈만한 실력은 있어야 했다. 다른 모험가에게 부탁할까 싶었지만, 모험가란 것들은 입이 가벼워서 믿을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 나도 용사님 흉내라면, 낼 수 있다.



---


500일째 되는 날.


용사님이 보유 했던 스킬과 특성들을 모두 평소에 꼼꼼히 기록했던게 도움이 되었다. 그것들을 보며 혼자 독학해서 습득했다.


위력은 물론 용사님이 하던 것과는 천지 차이지만,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나는 여전히 용사 대행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용사님은 반드시 돌아오실 것이다. 여전히 연락은 안되고 있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비밀 수행이라도 하고 계시는 거다.


그 때까지, 용사님의 자리를 내가 지켜놓아야 한다.


---


990일 째 되는 날.


마족과의 전쟁이 벌어진지 66일째.


전선 최전방에 출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곳에 왕국 최정예 파티가 갔다가 전멸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용사를 보내기로 했다.


본래는 용사는 가능한 전력을 아끼다가 마왕성으로의 길이 열리면 그 때 보내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명을 받아들고 전선으로 향했다.



---



1000일차.


".....용사님?"


최전방의 전선. 그리고 그 지평선에 서있는 누군가를 보며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모르겠는가? 반평생을 모셔온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은 거기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뭐냐. 왜 거기에 있지? 내 장비도 입고?"


오랜만에 듣는 용사님의 목소리는 맥이 없었다. 차갑다. 따스하고 온화한 용사님이 아니었다.


어째서 마족의 편인 것처럼 그쪽에 계신거에요? 어째서 이쪽을 보며 칼을 겨누는 거에요?


"됐다. 너도 이리 와라. 너라면 믿을 수 있다. 그 자식들을 위해서 일할 필요 없다."


용사님이 날 필요로 하신다. 날 부르신다. 그러니까, 당연히 가야 한다.


나는 용사님의 짐꾼이니까.


"얼른 와라. 기다려줄 시간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나는 용사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대신, 용사님이 들었던 검을 더욱 굳게 쥐었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거냐?"


"용사님, 용사님은 용사님으로 계셔야 해요."


"용사라고 부르지 마라. 나는 이제 용사가 아니다."


"아니요. 용사님은, 여전히 용사님이시라구요. 그런 추잡하고 더러운 마족의 기사가 아니라."


"추잡하고 더러운 건, 그 쪽이잖냐. 평생을 바쳐 봉사해도 바뀔 낌새도 보이지 않는 버러지들."


"아니요, 아니요. 그러니까, 용사님이 모두를..."


"됐다. 요점은 싫다는 거잖냐.그렇다면 너도 죽어라."


"...그런가요."


용사님에게 이길 수 없다. 누구보다 잘 안다. 그 동안 용사님의 흉내를 냈어도, 원조를 이길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해야만 한다. 용사는, 끝까지 용사여야 한다. 용사님이라면 여기서 물러나지 않을테니까.


---


1001일차.


용사님은 내 손으로 죽였다.


용사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용사님은 스스로 모르는 버릇마저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용사보다도 더 용사 같았다. 용사 역할을 누구보다도 훌륭히 수행해냈다.


감정은 죽인다. 지금은 슬픔도 기쁨도 필요 없다. 탄식도 후회도 가장 나중으로 미룬다.


마왕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지금은 마왕 토벌만을 생각하자. 


나는, 용사 대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