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장붕이들 중 북유럽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널리 알려진 서유럽사에 비해, 북유럽이나 동유럽 같은 곳의 역사는 우리에게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역사를 까보면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요소들이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스웨덴 제국의 군주, 유성(流星)왕 칼 12세이다



스웨덴 제국은 17세기 초부터 18세기까지 이어진 스웨덴 왕국의 황금기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칼 12세는 대외 팽창 및 산업 발전으로 스웨덴 사상 최대의 판도를 확보했던 정복왕인 동시에


지나치게 이른 죽음과 후계자 미지정으로 인해 스웨덴이 급격히 쇠망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참고로 유성왕은 일본 사학자들이 붙여준 별칭으로, 니들이 상상하는 그 유성(Meteor) 맞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적들을 무친 듯이 휩쓸고 다녔기에 붙여준 이름


별명만 봐도 알 수 있듯, 칼 12세는 한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전쟁 군주였다


15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해, 고작 18세 때 대북방전쟁이라는 큰 전쟁에 휘말렸고


34세의 나이가 될 때까지 이 대북방전쟁에서 맹활약하다가 그만 총탄에 맞아 요절하고 만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 낭만 넘치는 전쟁 군주의 삶 전반에 대해 알아보도록 Haja



소년왕 칼 12세가 막 즉위할 당시만 해도, 스웨덴 제국의 실권은 국왕이 아니라 섭정위원회에게 있었다


전임자인 칼 11세가 워낙 갑작스럽게 죽은 데다가, 전통적으로 왕권을 견제하려는 귀족들의 입김이 거셌기 때문


하지만 칼 12세는 발톱을 숨긴 채 고분고분한 애송이를 연기하며 섭정위원회를 안심시켰고


어린 왕을 우습게 본 귀족들은 서로 갈라져서 아귀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역공의 기회를 잡은 칼 12세는 왕당파 귀족과 연합해 반대파를 모조리 숙청


아버지 칼 11세 생전의 강력한 권력을 모두 회복하며 전제 왕권을 확립하게 된다



자, 여기까지만 보면 이제 소년왕의 앞날에 탄탄대로만이 남았을 것 같은데......하필이면 시기가 좋지 않았다


고작 3년 후, 승승장구하던 스웨덴을 상대로 폴란드/러시아(루스 차르국)/덴마크-노르웨이가 연합을 결성해 쳐들어왔기 때문


원래 이웃이 잘 나가면 밟고 보는 게 유럽의 유구한 전통


폴란드와 덴마크-노르웨이는 북방에서 강자랍시고 설치는 스웨덴이 영 꼴보기 싫었고 


러시아는 당시 스웨덴이 차지하고 있던 발트해의 패권을 빼앗는 걸 국책으로 삼고 있었다


게다가 운명의 장난인지, 이 연합의 맹주 역할을 하던 러시아의 차르는 세계사적으로도 아주 유명한 명군이었으니



다름 아닌 러시아의 광개토대왕이자 세종대왕이라고 할 수 있는 표트르 대제(Пётръ I)가 칼 12세의 적수였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의 근대화를 위해 발트해의 항구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를 위해 스웨덴을 얄미워하던 주변국에게 외교 사절을 보내 은밀히 연합을 구성하는 한편


러시아 사상 최초의 근대적 군대라 불리는 프레오브라젠스키 연대(Преображенский лейб-гвардии полк)까지 총동원


문자 그대로 사방에서 스웨덴을 숨도 쉬지 못하도록 전력으로 밀어붙인다


(루스 차르국의 프레오브라젠스키 연대를 묘사한 당시 삽화)


비록 스웨덴이 북방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한들, 체급으로만 보면 너무나도 작은 강소국()에 불과했고


그러므로 결정적인 전투에서 스웨덴을 한번만 제대로 꺾으면 회생 불가능한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


실제로도 이는 굉장히 합리적인 판단이자 제대로 된 전략이었다 


인구로 보나, 생산력으로 보나, 경제 규모로 보나, 북방 소국인 스웨덴과 동방 대국인 러시아는 비교가 불가했으니


소모전이 지속되면 먼저 거꾸러지는 건 덩치가 작은 스웨덴일 수밖에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이치였다


다만 이 계산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맹점이 존재했는데


모두가 애송이 소년왕인 줄로만 알았던 칼 12세가, 실은 전쟁에 도가 튼 중국사의 항우 같은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대북방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칼 12세는 친정을 선포, 군대를 이끌고 직접 전장으로 나서는데


이때 그는 적국이 군세를 모아서 스웨덴을 치게 놔둔다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폴란드 방면에선 14,000명의 군대가, 덴마크 방면에선 16,000명의 군대가, 러시아 방면에선 무려 40,000명의 군대가 몰려오는데


힘은 세도 체급은 꼬마 수준인 스웨덴으로서는 이 공세를 절대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


그래서 그는 적들이 연합군을 형성하기 전, 하나씩 각개격파해 동맹 자체를 붕괴시킨다는 작전을 수립


이를 위해 당시 막강한 해군으로 유럽의 바다를 주름잡던 영국과 손을 잡기로 하는데


영국 또한 동방의 러시아가 슬금슬금 바다로 기어 나오려고 하는 것에 경각심을 느꼈던 지라 바로 칼 12세와 동맹을 결성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는 대신, 함대를 빌려주어 칼 12세가 북유럽 곳곳으로 병력을 실어 나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리고 칼 12세는 8,000명의 군대를 인솔해 덴마크 코펜하겐에 상륙


단숨에 덴마크 군대를 초전박살내버리며 덴마크-노르웨이를 대(對)스웨덴 동맹에서 이탈시킨다



이에 화들짝 놀란 러시아 군대는 전열을 재정비해 스웨덴령 리보니아와 에스토니아를 침공하는 것으로 대응했는데


덴마크를 무찌른 칼 12세는 지체없이 그리로 진격해 러시아군과 정면 승부를 실시


과감하고도 예리한 전술로 에스토니아의 나르바 시에서 3만에 달하는 러시아 군을 격파하는데 성공한다


(구스타브 세레브스트롬 작, 나르바에서 승리한 스웨덴군)


이때 러시아군은 그냥 지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몰살에 가까운 대패를 겪었고


표트르 대제가 알토란처럼 키운 정예병이 전멸하는 건 물론, 무기와 물자까지 모조리 노획을 당해버렸다


이에 기세가 오른 칼 12세의 측근들은 내친 김에 모스크바까지 쳐들어가 표트르 대제를 처단할 것을 건의했고


표트르 대제도 군대가 전멸한 지금 스웨덴군이 러시아로 진입하면 살아날 길이 없어 절망하고 있었지만


이때 칼 12세는 러시아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후방을 안정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


측근들의 건의를 무시하고 폴란드를 짓밟기 위해 기수를 남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이 한 번의 판단이, 결국 칼 12세의 몰락을 불러오는 중대한 실수로 작용하고 만다



어쨌거나 폴란드 방향으로 이동한 칼 12세는 여기서 또 2만에 달하는 폴란드-러시아 연합군을 마주하는데


이때 1만의 스웨덴군을 이끌고 용맹한 돌격을 감행, 또 다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쥔다


당시 스웨덴군의 전사자가 4,000명이었던 반면, 연합군의 사상자는 14,000이 넘어가는 수준이었다고


승세를 잡은 칼 12세는, 2년 후 벌어진 클리슈프 전투에서 또 폴란드군을 격파. 아예 스웨덴의 속국으로 삼아버린다


그리고 이때부터 폴란드는 러시아를 버리고 스웨덴 편에 서서 대북방전쟁에 참전


이 시기가 칼 12세의 리즈 시절이자, 스웨덴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자랑하던 전성기이다


(스웨덴 제국 최대 판도, 이 당시 발트해는 사실상 스웨덴의 내해였다)


누가 봐도 대북방전쟁의 최종 승리자는 표트르 대제가 아닌 위대한 젊은 군주 칼 12세였고


전 유럽이 앞다투어 사절을 보내 그를 찬양하며 스웨덴의 무궁무진한 영광을 빌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칼 12세가 확실하게 끝내버리지 않은 채 동방에서 웅거하고 있던 러시아


그리고 패배의 분을 삭이며 칼 12세에게 복수하기 위해 매일 칼을 갈고 있던 표트르 대제 쪽이었다




원래는 칼 12세의 이야기를 한번에 다 끝내려고 했는데,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한번 자름


다음 칼럼에서는 칼 12세의 드라마틱한 몰락과 표트르 대제의 약진에 대해 상세히 다뤄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