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제국 최후의 불꽃, 칼 12세 (1편) - 장르소설 채널 (arca.live)


지난 편에 이어서, 대북방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겠다


자신감으로 가득하던 젊은 정복왕 칼 12세는 표트르 대제를 꺾고 대북방전쟁을 종결 짓기 위해 파죽지세로 러시아 영토를 침공


1708년 홀로프친에서 보리스 셰르멘테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을 크게 무찌르지만


불과 모스크바와 320km 떨어진 스몰렌스크에서 끈질긴 저항에 부딪혀 발이 묶이고 만다


러시아군은 그 유명한 청야 전술까지 동원하며 칼 12세의 진격을 막았고


표트르 대제 또한 모스크바에 남아 백성들을 독려하며 절대로 항복은 없음을 주지시켰다


그 와중에 시간이 흘러 겨울이 도래하면서 러시아 최강의 무기가 스웨덴군을 덮치니



무려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쌍으로 좌절시킨 동장군이 바로 그 주역 되시겠다


추위와 물자 부족, 그리고 러시아군의 게릴라에 시달리며 스웨덴군의 전투력은 날로 급감했고


설상가상으로 영내에 전염병까지 돌면서 수많은 병사가 사망


어쩔 수 없이 칼 12세는 모스크바 공략을 그만두고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기수를 돌리는데


물론 러시아의 반격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방면에 든든한 지원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지원군의 정체는 다름 아닌 코사크 기병 출신의 이반 마제파(Іван Степанович Мазепа)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의 리더이자, 한때 폴란드의 봉신이기도 했던 이반 마제파는 러시아가 자꾸 자신들에게 간섭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러시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칼 12세와 동맹을 맺은 후였고


칼 12세가 러시아 본토에서 쫓겨나 우크라이나로 퇴각해오자, 그를 맞아들여 도합 16,000명에 달하는 스웨덴-우크라이나 연합군을 결성했다


이 소식을 들은 표트르 대제 또한 42,000명에 달하는 대군을 끌고 스웨덴을 끝장내기 위해 친정을 개시


세기의 드림 매치라 할 수 있는 폴타바 전투의 서막이 열린다


(폴타바 전투 당시의 칼 12세와 이반 마제파를 그린 후대의 상상화)


하지만 불운하게도 칼 12세는 지휘 도중 심각한 다리 부상을 입는 바람에 전장에서 이탈했고


그를 대리하여 스웨덴 육군 부사령관인 칼 구스타브 렌셸드가 잠시 지휘봉을 대신 잡았는데 


이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져 지휘 체계가 붕괴하는 바람에 스웨덴군의 전열이 흐트러졌고


심지어 렌셸드가 무의미한 돌격을 지시했다가 1,000명에 달하는 선봉대를 쌩으로 날려 먹으며 빈틈을 노출


이를 놓치지 않은 표트르 대제가 친위군인 프레오브라젠스키 연대를 투입해 스웨덴군을 차례차례 갈아버린다



패색이 짙어지고 퇴로가 막히자, 칼 12세는 러시아의 추적을 피해 이반 마제파와 함께 오스만 제국으로 도주


오스만 술탄의 손을 빌어 복수 혈전을 하려고 했지만 설득에 실패했고, 동맹인 이반 마제파는 그곳에서 병들어 사망해버린다


그렇게 폴타바 전투는 러시아 제국이 자랑하는 완벽한 승리로 그 대미를 장식했으며


동시에 강성하던 스웨덴 제국이 한순간에 몰락하게 되는 신호탄으로도 작용하게 된다



당대 스웨덴 제국의 강력한 군사력은, 일명 카롤리너(Karoliner)라 불리던 최정예군으로부터 비롯했다


스웨덴은 인구가 적어 병력을 많이 동원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소수 정예를 육성하는 걸 국시로 삼았다


카롤리너는 엄정한 규율과 루터파 개신교에 대한 광신, 공격적이고 용맹한 전술이 합쳐져 탄생한 강군이었고


여러 전투를 통해 숙련병유능한 장교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군대의 질이 더더욱 향상될 수 있었다


칼 12세가 대북방전쟁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카롤리너들의 맹활약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폴타바 전투에서 완패하면서 이 카롤리너가 모조리 갈려나갔다는 점


칼 12세는 그래도 포위를 뚫고 달아나는데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카롤리너들은 이때 전사하거나 포로로 붙잡혔고


포로가 된 대다수는 러시아의 새로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 노역에 동원되거나 저 멀리 시베리아로 끌려가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다


러시아야 체급이 워낙 크니, 나르바 전투 때 정예병이 칼 12세에게 몰살을 당했어도 군대를 재건할 수 있었지만 


체급이 작은 스웨덴은 똑같이 강군을 재건하는 게 불가능해 그대로 몰락해버리고 만다


결국 대북방전쟁을 시작할 때 표트르 대제가 했던 계산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


그리고 스웨덴이 러시아에게 대패를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칼 12세에게 굴복했던 국가들도 앞다투어 일어난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유능한 장군이었지만, 탁월한 외교관은 못 되었던 게 바로 칼 12세


혈기왕성한 국왕은 연이은 승리에 자만하여 주변국들을 굉장히 고압적으로 대했고


대부분의 외교를 "니들은 무조건 내 말 들어라. 꼬우시면 나랑 한 판 붙던지?"라는 식으로 처리했다 


물론 칼 12세가 연전연승할 때야 주변국들은 불만스러워도 순순히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폴타바 전투에서 칼 12세의 예기가 꺾이자, 그간 누적해온 외교 실패의 업보가 제대로 돌아온 것


덴마크와 폴란드가 국경을 공격했고, 프로이센을 위시한 독일계 국가들까지 숟가락을 얹으려 들면서 스웨덴은 대위기에 봉착


별 수 없이 오스만을 거쳐 스웨덴으로 되돌아간 칼 12세는 덴마크를 공격하면서 재기를 노렸으나


정예병 카롤리너가 싸그리 갈려나간 이상, 스웨덴군은 더 이상 옛날과 같은 저력을 낼 수가 없었고



결국 1718년 11월, 칼 12세는 덴마크의 요새 할렌을 공격하던 중 어디선가 날아온 눈 먼 총알에 맞아 전사하고 만다

(위의 그림은 국왕의 시체를 운송하는 카롤리너 패잔병들의 기록화)


그의 나이, 아직 팔팔할 시절인 향년 34세 


하지만 진짜 문제는 칼 12세가 죽은 이후에 터졌다


평소 스웨덴 귀족들이 뻣뻣하게 구는 걸 아니꼽게 여긴 칼 12세가 일부러 후계자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자꾸 개기는데, 합법적인 후계자가 생기고 나면 누군가 반드시 역심을 품을 거라고 믿었던 것


그러나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급사를 해버리자, 옥좌가 텅 빈 스웨덴 제국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고


정쟁 끝에 칼 12세의 여동생인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잠시나마 정국을 안정시키지만 


스웨덴의 황금기는 그대로 끝나, 칼 12세 때 확보한 영토도 모조리 빼앗긴 채 북방의 소국으로 쪼그라들고 만다......



반대로 스웨덴을 격파하고 발트해를 확보한 러시아는 그때부터 승승장구


표트르 대제의 개혁을 통해 동방의 신흥 강국으로 거듭나며 전 유럽이 러시아의 저력을 경계하게 만들었고


특히 러시아를 막고자 칼 12세의 동맹 역할을 했던 영국이 이 사태에 유달리 패닉


훗날, 대영제국이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는 대 러시아 겐세이 작전을 수립할 계기를 마련한다



이상, 여기까지 스웨덴 제국의 최대 판도를 확보했던 유성왕 칼 12세에 대해 알아보았다


젊고 야심찬 나이에 최고 권력자가 되어, 마음껏 재능을 뽐내며 제국의 전성기를 열었지만


단 한 번의 오판과 불운으로 인해 몰락해버리고 만 것이 진정 유럽판 항우라 해도 부족함이 없겠다


긴 글을 읽어줘서 고맙다, 장붕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