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물이 이용하는 재미 요소는 등장인물의 시야와 그걸 내려다보는 독자들 간의 정보 격차임.

우리가 당연히 아는걸 저 등장인물들은 모른다는 것. 이 포인트가 독자들에게 우월감을 주고, 그 등장인물이 하고 있는 착각이 풀리는 것에 대한 기대감까지 이어지지.

루크 애비가 다스베이더인걸 알고 스타워즈를 보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야.

내가 니 애비다, 이게 나오는걸 기대하고 진실을 알게 되거나 자신의 착각이 수정되는 등장인물의 반응을 보는 재미.

물론, 착각이라는 그 상황 자체를 유머러스하게 이용하는 소설도 있고, 이 소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해.

이 작품의 줄거리.

주인공은 본 앤 블러드라는 다크판타지 게임의 열성 팬이야. 언제나처럼 그 게임을 주제로 삼는 마이너갤을 돌다가 후속작 스포일러를 듣고 말지.

이 스포일러가 어느 정도냐. "와! 언더테일 아시는구나!!"급의 스포임. 작품의 선악구도, 반전, 핵심 떡밥 등을 전부 포함하는 악질적 스포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은 이 스포에 대해 존나 빡쳐서 댓글을 갈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 스포일러는 가짜고, 스포글에 쓰인 선악구도부터, 대부분 내용이 들어맞는게 하나도 없기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대댓이 달리지만.

그 댓글을 봐야 할 주인공은 이미 이 세계에 없었지.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선악구도가 하나도 맞는게 없다는 거야.

이 스포일러를 믿은 주인공은 작품 속 여러 극악무도한 악역들을 선역으로 착각하여 동료로 영입하고 오히려 진짜 선역들에게는 적대하는 그림이 나옴.

그리고 그렇게 있다가 보니 어느새 주인공의 일행은 “검은 송곳니”라는, 제국의 몰락을 꾀하는 어둠의 조직으로 불리우게 되지만, 자신이 그 조직의 수장인걸 주인공 본인만 모르는게 이 작품의 기본적 베이스이자 줄거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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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주인공이 빌런을 영입한다고 해서 이게 빌런물인건 절대 아님. 빌런을 선역인 줄 알고 영입하는 선에서 주인공의 성향은 매우 선에 가깝고, 위협받는 제국이 오히려 판타지에서 자주 보이는 부정부패가 판치고 뿌리부터 썩은 악의 축이지.

태그에 붙은 #구원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의 손길이 없었으면 원작 그대로 악의 길을 걸었을 히로인들이 주인공의 손에 구원되어 그 누가 봐도 악한 힘을 주인공의 뜻을 위해 쓰는 것도 참 재밌는 포인트야.

갈수록 주인공에게 얽힌 운명과 인연은 많아져만 가고 주인공이 흑막으로서 지니는 위협은 높아져만 가는데, 주인공만 몰라.

근데 이 주인공만 모른다는 점이 답답함을 주지 않음.

왜냐면, 주인공이 조직의 수장인걸 본인만 모르는건 맞는데, 주인공이 그 이름을 계속 빌려씀. 한 마디로, 본인이 본인을 사칭하는거임.

그렇기 때문에 작품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가 있는거고.

이 시점에서 이 작품은 썩은 제국을 뒤집는 혁명을 다루는 혁명물이 되고, 주인공의 착각은 분위기 환기를 위한 감초가 됨.

이 밸런스가 참 좋더라고.

착각 구도가 이것만 있는건 아님.

주인공이 선의로 구해준 사업가 캐릭터가 있는데, 둘이 주어를 생략하고 대화를 해서 주인공은 그 사업가 캐릭터를 “나잇값 못하는 칠칠맞고 겁 많은 누나”로 알고, 그 누나는 주인공을 “웃는 얼굴 뒤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야망과 잔혹함을 숨긴 극악무도한 어둠의 조직 수장”으로 알게 되는거임.

소설이 진행될수록 착각들은 풀리겠지만, 원래 착각물들은 그런 착각이 풀리는 과정에서 또 다른 오해를 심기 때문에 태그의 의미가 무뎌지는 일은 없겠지.

가벼운 분위기의 흑막물이나 다크판타지를 찾으면 추천함.

킬링타임용으로 괜찮고 연재주기도 좋으니 먹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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