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들이 정한 최소한의-“

 

"그만 그만, 나는 그런 식상하고 쓸모없는 말을 듣기 위해 당신을 만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네."

 

"......당신 같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군, 나를 살인자라 부르지 않는 것만 봐도 말이야, 그렇다면 어느 정도?"

 

"6~70년 정도가 적절할 듯 싶군요, 사람 다섯을 정밀한 시술로 사지의 힘줄을 끊어내고 신장을 척출한 후, 코와 귀를 자르고 정성을 다해 치료한 후 얼굴을 완전히 뭉개버리곤 친절히 똥통에 처넣었으니까요."

 

"솔직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네, 그걸 살려내다니 말야, 말이 나온 김에 듣고 싶어서 말인데, 그놈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정신과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5명 모두 혀를 깨물어 혀가 잘렸지요."

 

"흡족하군, 의사가 그들에게 혀를 깨무는 정도로는 안 죽는다고 하지는 않았나?"

 

"아쉽게도요, 뭐 그런 말을 하려고 입술이 씰룩거리긴 했지만요."

 

"아쉽군, 당신이 대신 말해주는 방법은 생각한 적은 없는가?"

 

"항상 부모라는 놈들이 꼬여서 말입니다."

 

"어조가 난폭하군."

 

"그놈들도 당신들만큼 살아야 할 놈들이니까요."

 

"다른 놈들과는 달라 보이는군, 다른 어중이떠중이였다면 슬슬 정의니 진실이니 하는 이 세상에서 하등 필요가 없는 것들을 지껄이던데 말야."

 

"하등 필요없다는 말에는 공감하지 못하겠지만.......넘어가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니까요."

 

"그렇지,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야."

 

"저는 지금 당신이 고소하겠다는 수만 명의 일반인의 변호를 담당해야 합니다, 이제 제가......다섯번째네요."

 

"용케 일반인라고 해주는군."

 

"무죄 추정의 원칙이니까요."

 

"멋진 말이지, 극악무도한 범죄자도 일반인으로 만들어버리니 원."

 

하고 노인은 픽 웃어 보였다, 편안해 보인다.

 

"고소 내용은 명예훼손과 모욕죄군요."

 

남자가 피곤한 듯 서류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충분히 입증할 수 있지,가능한 놈들만 골랐으니까."

 

"그러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죠, 복수입니까?"

 

"그렇지."

 

"복수로 이 정도의 돈을 낭비한다고요?"

 

"낭비라니? 이 노인은 섭섭하구먼."

 

"섭섭하실 필요 없습니다, 시간도 돈도 엄청날 정도로 들어가니까요."

 

"용서 같은 말은 꺼내지 않겠습니다, 그딴 소리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호감이 가는군."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의 수고를 생각해서 경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돌하군."

 

남자는 노인의 말을 무시하고 말을 시작했다.

 

"고소 비용 전액 부담,1달에 한 번씩은 반성문을 5포인트 크기로 4페이지 분량으로 써오고, 500 만 원 이상의 돈을 단체의 이름으로 기부할 것."

 

"아직 한 달이나 남아서 그런지 여유가 넘치는군, 녹음중인가?"

 

"네."

 

"흠......그러면 완곡한 표현을 써야겠지, 꺼지라고 전해주게."

 

"많이 참으셨네요."

 

"알아주니 고맙군."

 

"일단 기대하지는 않지만 고쳐야 할 점을 말해보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긴 한데......."

 

"일단 내 손녀를 저렇게 만든 놈들도 처음에는 머리를 박고 반성문을 썼다네."

 

"그리고 그때 안심한 결과는 아직도 병원을 다니는 나의 손녀가 지고있네, 차라리 이 못난 할애비에게 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서 나는 반성문을 신뢰하지 않고, 고소비용은 내 코딱지로도 메꿀 수 있다네."

 

"기부는....쯧, 세금감면이라도 받겠다는 알량한 생각인건가?역시 부족한가보군."

 

"안 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저의 말을 들어주시죠."

 

"아니다 싶으면 돌려보낼 걸세."

 

"네,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생님의 고소가 손녀분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노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남자는 희망을 느끼며 말을 이어간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대중들은 개돼지만도 못합니다, 아마도 손녀분은 다시 악플들에 시달릴 겁니다, 대중들은 개돼지만도 못하지만, 능력은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하니까요."

 

"도저히 저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댓글들이 손녀님의 SNS를 점령할 겁니다.“

 

”이제야 겨우 잊히고 있었는데 다시 그 일을 꺼내는 것은 다시 손녀분의 심장에 비수를 박는 일입니다.“

 

”식상한데?“

 

”그게 중요한 겁니다, 세상은 식상하면 식상할수록 진실일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그놈과 비슷한 말을 하는군.“

 

”네?“

 

노인은 조용히 손에 들고 있던 매실차를 홀짝였다.

 

”.....정말 그쪽에서 가르쳐 주지 않던가?“

 

그 말에 남자는 다시 서류를 다급히 뒤적이기 시작하고, 노인은 허둥지둥 숙제를 꺼내는 애를 보듯 부드러운 눈길을 주고있었다.

 

5분 정도 서류를 뒤적였을 때쯤, 노인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놈들의 인생을 작살내겠다고 생각했을 때였지.“

 

”그때 그놈은 나를 막아섰어, 더 이상의 개입은 그 아이에게도 상처고, 나머진 경찰에게 맡기자는 것이였지.“

 

”그리고 그 애에게 그 개새끼들이 개새끼짓을 했을 때, 그놈의 얼굴은 아직도 얼굴에 선명해, 꼴에 아빠라고 모든 것을 자신에게 가중하고 있었지.“

 

”아내도 빨리 떠나보내고,항상 실실 쪼개며 그 아이를 키웠던 그놈이 처음으로 절망하는 걸 본 기분은........썩 유쾌하지 않았지.“

 

”그러고도 그놈은 그놈의 천성을 버리지 못했어, 또다시 나에게 경찰들에게 맡기자고 했을 때는 결국 그놈의 뺨을 때릴 수밖에 없었다.“

 

”말싸움 끝에 나는 그놈을 설득시켰고, 그 개새끼들은 사이좋게 개집으로 날아갔지.“

 

”그리고 그 아이가 처음으로 목숨을 버리려 했을 때, 난 그놈이 그렇게 처절히 울부짖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 애의 SNS에 달렸던 댓글들은.........토할 것 같았지.“

 

”지금 당장 보여줄 수도 있다네, 전부 복사해 두었으니.“

 

남자는 침묵했다.

 

”그 댓글들에 그놈은 편지 하나와 함께 영원한 꿈의 세계로 넘어가 버렸다네, 수없이 지우고 다시 쓴, ‘죄송합니다.’단 한마디만을 남기고 말이지.“

 

”그날 이후 그 아이의 마음은 완전히 닫혀버렸지, 나조차도 열 수 없을 만큼 단단한 자물쇠가 걸린 채로 말이야.“

 

”요즘도....그때를 후회하곤 한다네, 한번이라도 물어볼걸, 한 번이라도 학교에 가 볼걸 하고 말이지.“

 

”그놈의 염병할 회사 일이 뭐라고....“

 

하고 웃는 그의 눈가는 어느샌가 촉촉해져 있었다.

 

”미안하네, 초면에 거지 같은 소리를 했군.“

 

”......죄송했습니다, 멋대로 입을 놀렸습니다.“

 

”됐네, 어짜피 꽁꽁 숨긴다고 사라지는 일도 아니니까.“

 

”그놈들이 말하더군요, 이번 합의에 응하지 않으면 전문 로펌을 동원하겠다고 말입니다.“

 

”알고 있다네, 법조계에도 친분은 꽤 있으니까.“

 

”.......때려치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짓거리도.“

 

”그래, 당신 같은 사람들은 불의에 전혀 타협하지 않으니까.“

 

”아뇨, 아예 이 짓을 집어치워야 할 것 같습니다.

 

노인의 눈이 커진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억울한 사람을 구한다는 그런 알량한 사명감에 취해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악인을 전력을 다해 변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쓰레기 짓으로 벌어 들인 돈으로 누리는 쾌락은 아무런 감흥도 없었죠.”


"원고가 보내는 원망 썩힌 눈빛에 아무런 감흥도 받지 않았을 때, 변호사가 되고 처음으로 토했습니다, 제 양심과 도덕을 게워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더군요."

 

“아니라고,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에게 거짓말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오늘 확실히 알았습니다, 저는 어느샌가 불의에 타협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저‘어쩔 수 없다’는 말로 모든 회피하고 있었던 겁니다.”

 

“.......죄송합니다, 초면에 쓰레기 같은 말을 해버렸군요.”

 

“......그러면 어쩔 수 있게 만들어야지.”

 

“내 손녀를 도와주게.”

 

“네?”

 

얼빠진 소리가 남자의 입에서 나오자 노인은 흐뭇히 그를 바라보았다.

 

“뭐 그런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나, 내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해, 그리고 자네 같은 애들이라면 그 아이의 상처에 조금이라도 새 살갗이 솟아나게 할 수 있겠지, 적어도 나 같은 속세에 찌든 놈보단, 꿈을 향해 달리는 멍청이가 훨씬 나아 보이니까.”

 

“........말에 가시가 있습니다만.”

 

“겨우 이 정도를 가시라고 하는 걸 보니 역시 멍청이가 맞군.”

 

그러곤 쾌활히 웃는 노인의 얼굴엔 진심에서 나오는 기쁨이 있었다.

 

“이 주소로 찾아가 보게, 내 이름을 부르면 아마도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 보내 줄 걸세, 돈은 충분히 주지.”

 

“딱히 돈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다 똑같다네, 자네 같은 멍청이라도 마음속에는 돈이라는 요물이 자리를 잡고 있겠지.”

 

남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 가 보게.”

 

“그럼........”

 

남자는 문을 닫으며 노인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호랑이 같은 얼굴로 매실차를 홀짝이고 있었지만, 분명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있었다. 

 

산속 깊은 곳,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왜소하지도 않은 이 건물이 단 한 명을 위해 지어졌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았다.

 

“아가씨는 위에 계십니다, 그 전에 알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다부진 체격의 남자는 목을 한번 풀고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모든 전화기기, 녹음기, 수첩, 필기도구와도 같은 아가씨를 불안하게 할 만한 모든 것의 반입은 금지됩니다.”

 

“아가씨의 언질이 있지 않는 한 면담은 하루 1시간씩 아침, 점심, 저녁에 시행되며 아가씨가 원치 않을 땐 바로 취소됍니다.”

 

“또한 조금이라도 아가씨에게 위협을 줄 수 있을 만한 행동을 한다면 그 즉시 제압당하고 상담은 영원히 종료됩니다.”

 

“이상, 질문있으십니까?”

 

“.....아니요.”

 

“그럼 들어가시죠.”

 

카드키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커다란 홀이 모습을 드러낸다.

 

커다란 나무와 따듯한 햇빛이 비추는 병원의 홀은 분주히 몇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깁니다.”

 

경호원의 발만 쫒아가던 남자는 한 병실 앞에 섰다.

 

“아가씨, 심리치료사가 왔습니다.”

 

언제부터 자신이 심리치료사인지 물어보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하던 순간.

 

“꺼져.”

 

안에서 엄청나게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겠습니다.”

 

“너도 전에 있던 놈처럼 되고 싶은 거냐?”

 

문이 열렸고, 경호원은 남자를 방 안에 밀어넣고선 문을 닫았다.

 

그는 눈을 들어 아까 그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목소리의 근원은 놀랍게도 여자였고, 전체적으로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온몸에 가득한 상처와 거즈, 그리고 비쩍 말라 팔의 뼈 사이 공백이 보이는 몸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너는 뭐 하다가 여기까지 굴러 들어온 거야?”

 

도저히 좋게 끝날 것 같지 않지만, 남자는 담담히 걸어나갔다.

 

“사람들의 등골을 처먹다가 왔습니다.”

 

여기서 더 이상 물러난다면 그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