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큐버스는 가장 염세적인 종족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반드시 죽이게 되기 때문일까.


그것이 본능이라면 상관 없겠으나,

지성이 있다면 마땅히 그 운명을 저주할지니.


옛 부족사회 때, 서큐버스는 남자 잡아먹기를 당연시 여겼다. 사실 그는 슬픔을 막기위한 둑이었으되 종족을 고립시키는 족쇄이기도 하였다.


근대에 들어 사상의 물결에 그 강력한 둑은 무너지고 자유에 몸을 맡긴 미숙한 서큐버스들은 자신의 손으로 진정한 사랑을 죽이게 되었다.


그래서 서큐버스는 정신병을 달고 산다.




먼 옛날, 처음 서큐버스라는 종의 굴레를 벗어난 퀸은 제 종족의 명운을 슬퍼하며 신께 빌었다.


 그리하여 신이 이 종족을 가여히 여기니. 일생에 최소한, 반드시 한 번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줄 사람을 만나도록 해주었다. 


 보통 그런 사람은 열 생에 한 번을 만나도 축복이기에 이는 실로 대단한 자비가 아닐 수 없었으나 서큐버스는 꿈을 파는 자, 정기를 마셔야 살 수 있는 저주받은 종족.


꿈을 거닐 수 있으되 현실에서 그 정신은 한없이 위태롭다.


꿈 속의 모든 욕망을 주무르되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쥐지 못하기에 육신을 통해 생에 처음 맛보는 정신적 사랑은,

그런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연緣은 모든 꿈을 공허하게 만들고 육신의 통제를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서큐버스는 정기를 마시는 종족. 통제를 잃은 욕망은 눈 앞에 있는 먹이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집어 삼킨다.


서큐버스는 생에 처음 사랑을 하고

그날, 생에 처음 연인을 죽인다.


그렇게 서큐버스는 미친다.


가끔 그 연을 지켜내는 자도 있고

더 드물게는 다시 연이 찾아오는 자도 있지만


누천년의 역사에서도 그런 일은 일백을 넘지 않았다. 


보통 그 연이란 것이 가장 열렬하고 미숙할 때 찾아오기에, 너무도 쉽게 소중한 것을 살라먹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평생 헛된 사랑과 추악한 꿈에 매몰되어 살아가야 함을. 

이제 삶에 휴식처란 없음을.


자비로운 축복은 기나긴 삶 속, 반드시 한 번은 찾아오는 악랄한 시련으로 화했다. 퀸은 절망했고 반쯤 미쳐 성 안에 자신을 봉했다.


수명과 아름다움을 얻고 정기를 마셔야 하는 업을 짊어진 그들이었기에. 애틋한 눈으로 죽어간 정인情人의 눈동자에 비친 바닥없는 절망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4할은 여기서 자살한다. 


 서큐버스이기에 그들은 순수한 사랑을 동경한다. 인간의 가장 더러운 욕망 사이를 거니는 종족이기 때문일까. 더욱 진흙탕 속의 연꽃을 선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는다. 순수한 사랑은 서큐버스들에게 삶, 그 이상이기에.


5할은 체념한다. 


남들도 다 이렇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혈통을 저주하며 다른 흔한 서큐버스들처럼 홍등가에 꿈을 팔러 들어간다. 서큐버스는 거친 자들을 품는 마지막 요람이다. 추악하고 포근한 꿈으로 세상의 불행을 마취한다. 


 항상 자살을 꿈꾸는 그녀들은 세상의 모든 자살 희망자들을 품는 길바닥의 성모가 된다. 서큐버스의 꿈은 세상 무엇보다 달콤하므로, 세상 끝까지 내몰린 이들에게 안락한 죽음을 선사한다.


 최후에는 몸을 팔고, 누구의 씨인지 모를 아이를 배고서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몇 년 후, 젊은 서큐버스들이 상경한다. 불행의 수레바퀴는 반복된다.


1할은 부정한다.


끝내 미쳐버린 이들. 이들은 기약없는 사랑을 기다리며 종교에 귀의하거나 퀸의 성으로 간다. 무수한 세월을 거쳐 다시 찾아올 운명을 고대하기 위해. 


그들은 일겁을 기다리며 말라가니 곧 몇백년에 걸친 자살이나 진배없다.


마지막은 상대를 죽이기 전에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자신을 멈추는 이. 100년에 1번 보기도 힘든 전설같은 이야기. 대부분 경지에 이른 수도자였다고 한다. 어쩌면 미쳐버린 이들이 종교에 귀의하는 이유일지도.


결국 거의 모든 서큐버스는 자살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나마 옛날, 처음 축복이 내려왔을 때에는 거의 모든 서큐버스들이 자결했으니 지금은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 그도 모를 일이었다. 서큐버스들의 눈 속에 휘몰아치는 그것은 분명 인세의 지옥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종족들은 대부분 이를 몰랐다. 관심도 없다. 서큐버스는 밑바닥, 생각날 때 뽑아쓰는 휴지같은 것들이니까.


가끔 찾는 저급한 주전부리, 더러운 욕망의 쓰레기통, 공중화장실의 변기같은 것들, 평소에는 가까이 하기 싫은 불결한 창녀들.


모든 행위는 꿈속에서 이뤄지지만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까지 떨어진 서큐버스들은 몸을 판다.


그들의 퀸은 유일하게 그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미쳐버린 후 수천년 동안 성을 나오지 않았다. 가끔 찾아가는 서큐버스들도 성에 들어간 후 나오지 않았다. 수많은 소문이 있지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종족은 들어갈 수 없고 서큐버스는 다시 나온 전래가 없다.


고귀한 씨족들은 최대한 부족 안에서 생활한다.

정해진 파멸의 때를 늦추기 위해 이성을 멀리한다.

가장 순결한 정기를 먹고 가축처럼 철저히 통제당한다.

이들은 때가 되면 신께 제물로 바쳐진다. 이 악랄한 시련을 멈추기 위한 제물로.


젊은 서큐버스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라 도시로 나가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배고 돌아온다. 살아남아 고향을 책임지는 이들은 종족을 위해 아이들을 절망으로 내몬다. 도시는 순수를 삼키고 껍데기를 내어놓는다. 그 속은 온갖 오탁으로 가득 차있다


서큐버스들은 기다린다.

이 굴레를 벗어날 날을,


그리고 태어난다.

옛 지모신의 핏줄은 이은 아이

온 세상의 사랑을 받는 대지의 후예

저주의 근원을 입은 태초의 약속과


하늘에서 추락한 

황금 나팔을 든 천사

연민하는 소금의 왕

별의 눈을 가진 소년



이 두 사람은 서로를 본 순간

지독한 운명을 예감하였고


인세의 악의에 삼켜지지 않기위해 발버둥치는 그들은


이내 모든 굴레를 부술 수레바퀴가 되어

모든 종의 저주를 불태우고 세상을 정화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