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달만한 버선발 돌부리에 넘어질라


아이야 아이야 도망가지 말거라


따뜻했던 어미품 놓아둔 체 어딜가랴


아이야 아이야 겁먹지 말거라


아픈 것은 잠깐이고 두려움도 잠시란다....












을씨년스러운 짙은 어둠 속에서 머리에 보따리를 진 여인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어딘가로 바삐 향하고 있었다.


아니, 향하고 있다기 보다는 도망치고 있다는 쪽에 가까우리라. 


달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숲이었지만 이미 여러번 오고간 것인지 여인은 퍽 익숙하다는 듯 넘어지지도 않고 빠르게 달려갔다.




여인 뒤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검은 무언가가 튀어나와 여인의 뒤를 덮쳤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구니 안에 있던 떡과 함께 흙바닥에 나자빠졌다. 


다급하게 몸을 일으킨 여인은 그 자리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검은 그림자를 향해 손을 싹싹 빌며 애절한 어조로 소리쳤다.


"사...살려주세요!! 제발... 아,아직 약속한 시간이 남지 않았습니까?"


"..."


"조,조,조금만 더 모은다면.... 이제 얼마 안남았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


여인의 간절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검은 것은 아무런 대답 없이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것의 얼굴은 희뿌연 털이 자라 있고, 꼬랑지 부근에는 길죽한 무언가가 돋아나 걸음걸이에 맞춰 흔들거렸다. 


자신에게 대답조차 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 것을 본 여인은 이내 간절했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며 흡사 원귀(怨鬼)처럼 바뀌어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죽일 놈!! 처음부터 그럴 생각 따윈 없었던게지?! 그러면서 선심쓰는 척 갈취 할만큼 갈취해놓고 이제와선 토사구팽이더냐!!"


"..."


"내 죽어서도 저주 하겠다! 구천을 떠돌아 망령이 된다 하여도 네놈을, 네놈들을 저주 할 게야!!!"



끼아아아아--!!



그렇게 을씨년한 숲에선 고통에 찬 비명과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서서히 사그라들어 영영 사라져 버렸다. 


마을 끄트머리에 지어진 낡은 초가집에서 어두운 방안에 앉아있는 남매들이 아롱거리는 작은 호롱불에 의지한 체 같은 이불 속에서 떨고 있었다.


"오빠. 나 배고픈데..."


"조금만 참아. 엄마 올 시간 거의 다 됐어."


어린 누이의 칭얼거림에 소년은 익숙한 솜씨로 달래며 부드럽게 소녀를 쓰다듬었다. 이내 문 밖에서 무언가 기척이 생기더니 낡은 창호문 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소녀는 어미가 왔다 생각하여 밝은 얼굴로 한달음에 달려가려 했으나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소년이 소녀를 제지하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엄마...가 맞나요?"


"오빠?"


"엄마가 맞다면, 문풍지를 뚫어서 손을 보여 주세요."



소년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감지한 듯, 소녀 또한 겁을 덜걱 집어 먹었다. 문 밖의 존재는 그 말에 문풍지를 조심스럽게 뜯어내더니, 이내 손을 불쑥 집어 넣었다.


"손이 왜 이렇게 거칠거칠 하신거죠?"


"추운 계절에 힘든 일을 많이 해서 이렇게 됐단다. 이 어미가 얼어버린 손을 녹일 수 있게 문을 열어다오."


소년은 또 다시 질문 하였다.


"목소리는 왜 그렇게 굵직하신거죠?"


"너희들이 보고싶어 힘들게 뛰어 오느라 목이 말라서 그렇단다. 이 어미가 물 한 바가지 마실 수 있게 문을 열어다오."


"그럼 문풍지로 눈동자를 보여 주세요."



소년의 질문에 문 밖의 존재는 뚫린 구멍에 눈을 가까이 가져가 눈동자를 보여줬다. 그 모습에 소년은 다시 한 번 물었다.



"눈이 왜 그렇게 흐리멍텅 하신거죠...?"


"오늘 하루가 몹시 고됐기에 피곤해서 그렇단다. 지친 어미가 어서 몸을 뉘일 수 있게 문을 열어다오."



거기까지 대화를 마친 소년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체 소녀를 데리고 뒷문으로 빠져나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내 뒤 쪽에서 다급한 음성들과 함께 여기저기서 횃불이 밝혀지더니 성난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망쳤다!!"



"이런 멍청한 새끼! 그러기에 그냥 바로 들어가자니까!!"



"시끄럽고 어서 쫒기나 해! 마을 밖으로 나가면 귀찮아진다고!"




어미를 따라 숲 속에서 나물이나 버섯 같은 것을 찾으러 간 경험이 있던 소년은 덕분에 어두운 숲 속에서도 어미 못지 않게 길을 찾아 빠르게 도망 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어린 아이의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뒤 쪽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에서 멀리 벗어 날 수 있었고, 소년은 곧 오밤중에 주린 배를 부여잡고 발바삐 뛰어야 했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누이가 울음이 터지려고 했기에 걸음을 멈추고 달래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울음이 그칠리가 없었다. 소년은 혹여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 올 존재들을 떠올리며 무언가 요깃거리라도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 보았다.



"아...!"



그리고 구름이 살짝 걷히고 밝은 달빛이 내리쬐자 소년의 눈에는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엄마다!!"


"정말? 오빠? 엄마 어디있어?"


"저기 계셔! 어서 가자!!"



소년의 말에 소녀는 울음도 그치고 배고픔까지 잊어 버렸다. 소년은 소녀의 손을 붙잡고 어미가 보이는 쪽으로 다시 발바삐 뛰어가기 시작했다. 



어미의 지척에 도착한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그 품에 뛰어들어 울음에 찬 목소리로 칭얼 거렸다.



"엄마! 엄마! 왜 이렇게 늦었어?"


"엄마아아아...."



한창 울기 바쁠 때, 소년은 이상한 것 하나를 느꼈다. 평소라면 어미 또한 따스한 두 팔로 둘을 안아줬을진데 지금은 아무런 미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따스하고 부드러웠던 품은 묘한 비린내와 함께 차갑고 딱딱하기 그지 없었다. 본능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쭈뼛한 느낌에 소년은 고개를 조심하게 들어 올리자




두 망막에는 동아줄에 목이 감긴 체 혓바닥이 동아줄 끄트머리와 함께 아래로 늘어뜨려진 어미의 모습 이었다.



"흐아아아악-!!!"


"오빠?!"


"아,안돼... 보면...안돼..."



다급하게 소녀의 눈을 가린 소년은 바들바들 떨리는 몸과 목소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아..."


그리고, 이내 뒤에서 서서히 불빛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소년의 망막에는 이번엔 짙은 절망과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


.


.



요란한 굿판이 한창인 마을 한복판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중년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무릎을 꿇고 무당을 향해 연신 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중년은 품안을 뒤적이더니 허연 털이 늘어진 호랑이 가면과 솜과 천으로 만든 호랑이 꼬리가 달려있는 허리띠를 꺼내 들었다.


"..."


탁한 눈빛으로 그 것을 말 없이 바라 본 중년은 질끈 눈을 감더니 다시금 그 두개를 품 안에 갈무리하고 변변찮은 안주조차 없이 병째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곧 그가 앉아있던 자리에 누군가 다가와 중년의 바로 앞에 앉았다.



"수고 하셨소. 여기 보수요."

쩔렁-


한 눈에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가 쇳소리를 내며 출렁 거렸다. 중년은 말 없이 물끄럼 주머니를 바라보다 그 것 또한 품 안에 챙겨 넣었다.



"덕분에 주인마님도 매우 흡족하는 듯 하오. 그리고 이 일은 어서 잊길 바라오. 그 것이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니."

그 말을 끝으로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발을 멈춰섰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 하시오?"

"...무엇을 말이오?"

"본인 자식들을 보내기 싫어 다른 집의 자식을 호환에게 인신공양하고, 그 일을 맡은 마을 놈들이... 이후에도 잘 먹고 잘 살 것 같소?"

중년의 말에 청년은 물끄럼히 그를 바라봤다. 중년은 차마 그 눈빛을 마주 볼 수 없다는 듯 가만히 술잔만을 쳐다 보았다.


"글쌔... 저마다 선택이 아니겠소. 그 사이에서 희생되는 존재의 마음은 내가 알 길이 없지."

"..."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 것들이 전부 지옥에 떨어 졌으면 좋겠구려."


그 말을 끝으로 청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술잔에 비춰진 중년의 모습이 보였다. 


곧, 술잔 겉에 맺혀진 물방울이 표면을 따라 식탁으로 떨어졌다. 마치 중년이 흘린 눈물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