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이젠 부스러기로 화한 빛바랜 상업 지구를 훑는다.


재와 모래, 먼지와 핏물로 반죽된 진창이 그의 갑옷에 흠결이라도 남기겠다는 듯 튀어 오르고, 바람은 그의 출입을 거절하듯 뜨거운 잿가루와 시취를 실어 날랐다.


그는 전쟁의 승리자였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뭐였더라. 지키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힘이 부족했다? 그렇지 않았다.


일검에 건물을 베고. 일권에 바위를 부수고. 나 자신에게 검과 주먹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끝없이 질문했다.


검과 주먹은 무엇에 닿을 수 있었나? 지킨다. 구한다. 이리저리 미사여구를 가져다 펴 발라봐야 그 본질이 폭력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었다.


반짝거리는 갑옷에 튄 흙먼지가 그렇게 무거운 적이 없었고, 그 뜨거운 바람에 실려온 작고 쉬어빠진 단말마가 그렇게 시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그는 영웅이다.




고작 며칠 뒤엔, 왕궁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주요 인사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가지런히 말아놓은 연초와 새콤짭짤한 파티 음식, 와인과 품격 넘치는 말투, 복식, 약간 불편한 고간의 보호대, 튜닉.


잔을 쉴 새 없이 부딪히고, 목 너머로 쉼 없이 퍼붓고, 얼굴엔 미소.


그 두터운 갑옷 안이 숨 막히도록 답답해, 창밖 테라스로 향했다.


이건 대체 얼마일까, 투구 몇 개, 화살에 꿰뚫린 대가리가 몇 개? 부러져 박힌 검이 몇 개? 그 전장에 사람을 눕힌 살인자는 여기에도 팽배했다. 사실은, 그도 자신이 가장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웅이다.



얼마 후 그는 거리를 걸었다, 익숙한 악취와 드잡이질 소리, 조용히 창문을 닫곤 세상과의 격리를 택한 이웃들.


그들의 창고 문에 걸린, 아주 반짝거리는 새 자물쇠.


두 블록 걸을 때마다 보이는, 약간 피 묻은 더럽고 녹슨 갈퀴. 찔린 사람은 아마 죽었을 테지, 싯누런 진물을 흘리며.


그렇게 생각한 탓이겠지만 악취 속에 섞인 시취가 느껴졌다.


무너진 치안, 달빛에 하이얀 갑주, 반짝이는 그는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다.


그래, 그는 영웅이었다.




“아.”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대중 앞에 섰다, 예의 갑주와 칼을 찬 채.


그는 처형대에 오른 채, 많은 전우에게 둘러싸여 그 모가지를 내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젠 어쩌지?”


그의 갑주는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다, 검고 붉은 반점이 갑옷을 덮었고, 칼은 검집에서 가볍게 뽑히지 않았다.


왕국의 칼날은, 왕을 결딴내고야 말았다.


툭,


길로틴의 칼날이 떨어져내렸다.


툭.


그는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