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맞아요. 서로 살아왔던 시간은 다를테지만요."


이 자리에서 놀라지 않을 수 있었던건 오직 모든 진상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한 사람 뿐이었다.

물론 이 시설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완전 불가능한건 아니다. 외부와 격리되어 시간축이 고정된 이곳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시설의 총 책임자인 나 조차도, 이런 상황은 단번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저딴 미친년이랑 같은 사람일리가 없잖아?! 어딜봐서 저년이랑 내가 같은사람이라는거야?!"


하지만 가장 격렬하게 반응하는건 역시나 실험체 2321번 쪽이었다.

생체 발화 능력자. 반-조직 활동을 일삼으며 연구시설에 테러를 일삼다가 포로가 되어 수감된 여자 꼬맹이.

첫 만남 때 부터 까탈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줬던 녀석은 이용 가치가 없었더라면 진작에 처분되었을 만큼 상부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주시겠습니까, 에블린 박사님."


냉담하고, 말주변도 없고. 그나마 한다는 말도 내 근무 태도에 대한 지적이 대다수였던 보안담당관 에바는 평소처럼 가라앉은 목소리로 처음 말을 내뱉은 에블린 박사에게 해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차갑기 그지 없는 성격 처럼, 보안담당관의 외모는 갈색 머리칼과 적안을 가진 실험체 꼬맹이와는 상반되는 은발과 벽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겹치는 부분을 지적하자면, 그 빈약하기 그지없는 흉부 크기 정도일까.


"제가 아무리 기억 소거를 받은 전적이 있다 하더라도, 실험체 2321번과 저는 신체적으로 일치하는 특징이 별로 없습니다."


"저 미친년이 정말로 나라면, 무식하게 주먹질에 몽둥이질만 하는게 아니라 능력도 쓸 수 있었겠......아악!"


"그리고, 에블린 박사님과 저 또한 일치점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보안담당관은 여전히 기운이 쌩쌩한지 낄때 안낄때를 구분 못하고 설치기 시작한 실험체 꼬맹이를 주먹으로 응징하고서 시선을 잠시 내게로 돌리기 시작했다. 나를 그렇게 죽일듯이 노려본다고 해도, 나는 갑자기 불려나와서 이상한 헛소리를 들어줘야하는 제 3자인데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에블린 박사에게 눈을 돌려, 저 여자가 뭐라도 말하길 기다리는것 뿐이다.


"에바? 챙겨먹고 있는 약 말인데요, 혹시 제때 먹지 않으면 속이 뜨겁게 달아오르는것 같은 감각이 들지 않던가요?"


".....그걸 어떻게."


"그 약, 능력 억제제거든요. 아마 그 시기쯤 저라면 모르고 있을테지만."


두 사람이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던 말던, 에블린 박사는 개의치 않고 흥얼거리며 팔짱을 끼고서 이 상황 자체를 즐길 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실험체 꼬맹이와 보안담당관의 시선은 에블린에게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나랑은 너무 다르게 생겼는데."


"뭐, 확실히 성장이 뒤늦게 찾아온건 사실이라서. 그래도 내가 너희 미래라는걸 알고 있는게, 너희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오지랖은 넓은 주제에 맨날 알아듣기도 힘든 이상한 말만 하는 아줌마가 정말로 내 미래라고? 날 납치한 쓰레기같은 놈들 사이에 껴서는 맨날 야근에 커피를 달고 사는게?"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일 본부에서 요청할 실험체 이송에 관리자님이 승인하신다면 말이지."


"내가? 내일?"


하루가 무한히 반복되는 이곳에서 내일 이라는 개념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단어였지만, 박사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 수 있었다. 

외부 시각으로 9시간 즈음 뒤, 정기 보고와 시설 점검이 동시에 이뤄질 예정이니까. 하지만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건지.


"내일 정기 보고때 마지막 안건으로 실험체 2321번을 본부로 이송하라는 요청이 내려올거랍니다. 그리고 그 요청을 수락하시면, 저기 있는 저는 아마 본부로 압송되어서 이것 저것 실험을 당하게 될테죠. 아마 1년 반정도 시간이 지나면 발화능력은 충분한 수준으로 억제될테고, 기억 소거 절차 이후에 저는 다시 이곳에 보안요원으로 배치될거랍니다."


"......그럴리가 없어."


보안담당관 에바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현실을 부정하려 하고 있었지만, 에블린 박사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대충 7년 정도 뒤에, 그러니까...... 담당관님이 사망하신 다음이 되려나요? 그때 즈음 부서 재배치가 된 저는 연구원이 되어서 이렇게 되어버렸답니다."


"잠깐, 내가 죽는다고?"


"네. 7년쯤 뒤에 일어날 격리 실패때문에요. 저쪽에 있는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살릴수도 있었겠지만......"


에블린 박사는 미묘하기 그지 없는 눈빛으로 나와 에바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가벼운 한탄을 토해내고서는 고개를 저어버렸다.


"그래서 말이죠, 혹시 내일 있을 이송 절차를 거부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사는 남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폭탄발언을 몇개나 연달아 꺼내놓고서는, 곧바로 내게 결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꼬맹이고 보안담당관이고 박사고간에, 성가시기 그지 없다는 점에서는 최소한 비슷하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정말로 전부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단말이다.







연령대랑 성격이 확연하게 다른 히로인 a 와 b, c가 사실 전부 동일인물이면 어떨까 싶어서 한번 써봤음

뭔가 꼴릴거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