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왜 이렇게 밝은 걸까. 언젠가 친구에게 물었을 때 친구는 ‘여름이니까 그렇지 병신아.’라고 놀리며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었다. 그 말이 맞았다. 여름의 태양은 너무나도 밝았다. 제대로 눈도 뜨기 힘들 정도로.

 

  그럼에도 한가지 분명히 기억나는 건 있었다. 네 얼굴. 나의 손을 잡아끌며 보여주었던 그 환한 미소는 겨울이 된 지금도 뇌리에 분명히 박혀 있었다. 천애 고아였던 나를 처음으로 이끌어준 그 손. 고등학교 3년 동안 친구 하나도 없이 지내던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와 준, 나의 친구.

 

  “…배고프다.”

 

  한골마냥 차갑게 식은 반지하방 아래에서 나는 무심코 내뱉었다. 제대로 난방도 되지 않는 반지하방은 한겨울을 버티기엔 너무나도 추웠다. 네가 있었다면 좀 더 나았겠지만, 지금은 내 곁에 네가 없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몰랐다.

 

  초여름 처음 만난 우리는 여름방학 내내 붙어있었다. 매일 만나서 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얼굴을 보고, 카페 갈 돈도 없어서 공원에 앉아서 하루 종일 수다나 떨고, 저녁에는 오늘도 공부 하나도 못 했다고, 수능 망칠 거 같다고 호들갑이나 떨고. 가끔 내가 먼저 약속 장소에 앉아있으면 너는 뒤에서 몰래몰래 다가와 나를 깜짝 놀래켰다. 그리곤 깔깔거리며 웃던 너는 라벤더 향이 났다.

 

  너는 알까. 네 덕분에 나에게 여름은 보라색이 되어버린 것을.

 

  추억 속 네 향기를 맡으려는 것처럼 킁킁거리며 나는 냉장고 속의 고깃덩이를 대충 집어 들었다. 전기도 간간히 끊기는 낡아빠진 방이지만 방 자체가 워낙 차가운 덕일까, 도축한 지 일주일이나 지난 고기인데도 아직 싱싱했다.

 

  “봐, 언제나 좋은 점 한 가지는 있다니까..”

 

  네가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겠지. 뽐내는 듯한 네 얼굴이 떠올라 나는 피식하고 살짝 웃음 짓곤 가스버너를 켰다. 가스가 다 떨어진 것일까, 버너는 몇 번 틱틱거리더니 그대로 꺼져버렸다. 난 다 쓴 가스를 대충 바닥에 집어 던지고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부탄가스 중 하나를 대충 집어 들었다. 그제서야 만족할 만큼 올라오는 화력. 고기를 그 위에 얹고 나는 다시 너를 생각했다.

 

  “야, 방 좀 정리 하라고 했지.”

 

  가을에 학기가 시작하고 네가 처음 내 방에 왔을 때 뱉은 말이었다. 너는 그렇게 말하면서 방 안의 이불을 개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바닥을 청소했었지. 그때의 내 방은 어땠더라. 더럽긴 했어도 지금보단 깨끗했던 거 같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방에 얼룩이 가득하진 않았으니까.

 

  “쨔잔~ 어때? 이 정도면 네 방도 볼만하지?”

 

  방 청소를 끝마치고 네가 했던 말이다. 그리곤 너는 내 침대 위에 드러누웠었다. 나도, 무슨 용기였는지 네 옆에 드러누웠었다. 싱글 사이즈의 작은 침대 속에서 나는, 우리는 그렇게 처음 입을 맞췄었다. 오래된 매트리스의 꿉꿉한 냄새도, 방금 청소하느라 흘렸던 약한 땀 냄새도, 전부 너의 풋풋한 살내음에 묻혀 사라졌다.

 

  “그립네.”

 

  무심코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뭐가 그립다는 걸까. 첫 키스가? 가을이? 아니면 네가? 모르겠다. 어쩌면 전부일지도.

 

  -치이익

 

  고기가 익는 소리가 망상으로부터 나는 불러들였다. 나는 황급히 고기를 뒤집었다. 고기의 반대쪽은 살짝 불에 그을려 있었다. 처음 굽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곤 해도 아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고기도 아닌데, 좀 더 신경 써서 굽지 않으면.

 

 

  -딸깍.

 

  대충 고기를 구운 나는 방구석에 주저앉아 TV를 틀었다. 오래된 구식 브라운관 TV였지만 기특하게도 아직까지 작동해 주고 있었다. 나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네가 사라진 이후론 TV 소리만이 내 방에서 나는 유일한 사람의 소리였다.

 

“다음 속보입니다. 신림동에서 사라진 이 모양의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경찰은 근방의 CCTV를 확인한 결과 우발적 범행으로 판단하고 용의자인 김 모 씨를…”

 

  -딸깍.

 

  밥 먹는데 재수 없게. 모처럼 기분 전환이나 하고 싶었는데, 나는 그런 것조차 네가 없인 제대로 하지 못하나 보다. 저 사건 때문에 어젯밤에도 경찰차가 이 근방을 돌아다녔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반지하는 경찰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방안까지 들어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경찰, 빨리 사라지면 좋겠다.”

 

  네가 했었던 말이다. 늦가을 또는 초겨울 우리는 학교가 끝나면 항상 내 방으로 모였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공부한다는 핑계로 내 방에 모이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맞췄었다. 그날도 우리는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때 경찰차가 지나가고, 네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우리 때문에 온 걸지도.”

 

  “무슨 말이야?”

 

“봐봐, 우리 아직 학생인데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여기서 불건전한 짓이나 하고 있잖아.”

 

  풋. 네 말에 너는 웃었다. 그리곤 다시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겨우 이런 거로?”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너는 나를 밀쳤다. 아차 하는 순간 나는 침대 위에 넘어져 있었다. 내 위에 앉은 너의 표정은 여전히 장난기 가득했지만, 조금은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이 정도는 돼야지 경찰이 잡으러 오지 않겠어?”

 

  네가 고개를 숙여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네 숨결이 귓바퀴에 닿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내 가슴에 올려놓은 네 손으로 내 심장 박동 소리가 전해지지 않을까 부끄러웠다. 네 몸이 유난히 부드럽게 느껴졌다.

 

“어때?”

 

  네가 물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아무리 나라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얼굴을 붉힌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씨익 웃으며 내 뺨을 어루만졌다. 곧 네 엉덩이가 내 고간 위에 올라갔고, 잠시 후 따뜻한 살점이 내 물건을 감쌌다.

 

  수능 일주일 전,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 나는 침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너는 없었다. 너의 향기도 이젠 없었다. 기분 나쁜 비린내만이 침대에 가득했다. 네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단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너를 볼 수 없단 사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심지어 네 부모님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네가 본다면 울보라고 놀렸겠지만, 이제 그런 말을 해줄 너는 없다. 그래서 나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사실 매일 울고 있었기에 이제 와서 굳이 요란 떨고 싶지도 않았다.

 

  “세수나 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세수를 한 나는 지저분하게 얼룩진 거울을 바라보았다. 퀭한 눈이 보였다.

 

  “너무 걱정하는 거 아냐?”

 

  수능이 끝나고 나서, 퀭하게 있는 나에게 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치만… 너랑 같은 대학을 가고 싶었는데...”

 

  “그래봤자 겨우 2시간 거리야. 대학 가서도 자주 만나러 올 테니까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응?”

 

  수능이 끝나고 나는 결국 너와 같은 대학에 갈 수 없었다. 나는 이 근처 대학으로, 너는 서울의 명문대로 진학이 결정되었다. 솔직히 너와 떨어지기 싫었다. 대학교에 간 네가 나를 잊을까 봐 두려웠다. 나보다 훨씬 잘생기고 멋진 선배들 사이에서 내가 지워질까 무서웠다.

 

  “절대 그럴 일 없다니까. 맨날 만나러 올게. 자,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내가 그렇게 말하면 너는 항상 그렇게 말하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가냘픈 손가락이지만, 그 손가락엔 특이한 마력이 있어, 나는 손가락을 걸면 안심이 되곤 했다. 내가 그렇게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면 너는 그제서야 웃으며,

 

  “좋아 울 자기 착하지. 자 칭찬의 뽀뽀.”

 

  라고 하며 입술을 내밀었다. 나는 부끄러워 하면서도 그런 너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서로 그렇게 입을 맞추고 나선 부끄러운 듯 웃으면서도 너는 나를 당겼다. 나도 저항하지 않고 너에게 끌려갔다.

 

  “울지 않겠다고 약속…”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왼쪽 새끼손가락에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당연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 손가락에는 너 같은 마력은 없었다. 일주일 전의 그 일이 원망스러웠다. 그 일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 울보가 될 일은 없었을 텐데. 네가 내 옆을 떠날 일은 없었을 텐데.

 

 

  일주일 전, 대학 OT가 끝났다고 너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너를 놀래켜 주기위해 몰래 네 학교 앞까지 찾아갔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네 옆에 서서 웃고있는 남자를. 그리고 그에게 마주 웃어주던 너의 미소를.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두근거렸다. 눈앞이 붉어졌다. 네가 나에게 걸어둔 마법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누구도 나에게서 너를 빼앗아 갈 순 없었다. 너는 나만의 것이어야만 했다. 저런 듣도보도 못한 잡것이, 너와 나의 사이를 방해할 순 없었단 말이다!

 

… 그래서 나는 주변의 벽돌을 집어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너를 지키기 위해선 그 길뿐이었다.

 

  남자는 울부짖었다. 다보다 체격도, 키도 훨씬 더 큰 건장한 남자였지만 벽돌에 머리를 먼저 맞으니 영 힘을 쓰지 못했다. 겨우 이런 거로 쓰러질 주제에 너를 넘보다니. 어이가 없어 비웃음이 나왔다.

 

  “무, 무슨 짓이야!! 내 친오빠라고!!”

 

  네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나는 그제서야 아래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너와 닮은 얼굴, 너와 같은 머리색. 네 오빠였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남자는 싸늘하게 식고 있었다.

 

  나는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뒤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울부짖는 너의 소리가 들렸다. 살려달라고 네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 그 누구도 나에게서 너를 빼앗아 갈 순 없다. 그게 너라고 해도.

 

 

  -쾅쾅쾅!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김민호 씨? 김민호 씨 맞으시죠? 경찰입니다. 조사할 것이 있어서 나왔습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작게 웃었다. 결국 찾아냈구나.

 

  방 안을 둘러보았다. 피로 얼룩진 방은, 라벤더 향이 아니라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뭐가 되었건 너의 향이란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 잘 있어.”

 

  마지막으로 나는 냉장고 속의 ‘너’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가스에 불을 붙였다.

 

  -콰앙!

 

  미리 사둔 가스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가스 주제에 왜 이렇게 밝은 걸까. 나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