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역장에서 태어났다.


노역장에서 인간이 태어나는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루 24시간 중 18시간을 강제 노역에 임해야 하는 현실, 노역을 회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도인 임신휴가. 그것이 전부다.


노역에 동원된 사람들의 몸은 빠르게 망가져간다. 남녀 가릴 것 없이. 여성들은 그 노역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면제받기 위해 늙기 전에 아이를 가진다. 어떠한 안면도 없는 남성 노역자의 씨를 받아, 배가 빌 틈도 없이 계속.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수십 수백이다.


아이를 제대로 기를 수 있을 턱이 없다. 아니, 제대로 기를 의지 자체가 없었다. 그들에게 임신은 노역을 면제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으니.


수많은 아이가 태어나 근처의 숲에 버려진다. 노예들 모두가, 심지어 노역장의 주인도 이 마을에서 아이라는 존재가 갖는 도구로서의 성질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노역장에서 태어나 살아남았다.


내가 내 부모를 그나마 부모 취급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는 도구로 태어났으나 부모를 갖고 인간으로 자라났으니. 내 부모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아니 버리지 못했다.

이는 나를 구덩이에 묻어버리려던 마지막 순간, 어미의 마음속에 자식을 향한 연민이 마음속에 싹튼 탓이었노라고, 그 갓난아이의 작디작은 얼굴을 마주한 친부 역시도 그러한 탓이었노라고 훗날 전해들었다.


그렇게 나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아 버렸다. 노역장의 아이로.


그런 내게 예비된 미래는 너무나도 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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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매일매일이 노동의 반복이었기에.


그래서 노역에 대한 기억은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들만 얼핏얼핏 남아있다.


“117번. 손을 멈추지 말아라. 네가 여성 노역장에 배속된 유일한 이유는 네 나약한 힘에 비해 손재주가 그나마 영특하기 때문이다. 쓸모를 증명해라. 죽고 싶지 않다면.”


내가 8살이 될 적, 내 부모 모두가 과로로 인해 죽어버린 직후의 기억이다. 나는 어렸고 내게 할당된 생산량을 채울 능력이 없었다. 


관리인들은 언제나 나를 못마땅해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단순히 할당량을 못 채우는 노예였기 때문이라기엔 그 괴롭힘이 과했다.

나 말고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노예는 많았다. 애초에 할당량이라는 개념은 노예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허황된 장치였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내 취급은 그들에 비해서도 과했다. 내가 더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움직여라. 움직이라고. 이 새끼 지금 내 말이 안 들려?”


그 당시의 내게는 움직일 힘이 없었다. 일주일 넘게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 당연했다. 눈앞이 핑 돌고 손끝이 벌벌 떨리는데 기계적으로 마석을 예쁘게 깎아낼 수 있을 턱이 없다.


“…안 되겠군.”


끝내 관리인의 입에서 토해진 한마디는 내게 있어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그는 채찍을 집어들었고, 나는 도망칠 힘이 없었다. 내 등짝에 길다란 핏자국이 남을 때 비명을 터뜨릴 힘도 없었다.


그것이 내 끝이겠구나 생각했다. 어차피 할당량은 오늘도 채우지 못할 것이고, 내게 주어지는 식량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맞아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였을까. 의자에 앉아있던 내가 어느새 바닥에 엎어져 있음을 깨달을 때쯤, 어렴풋하게 의식이 돌아왔다.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고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비로소 의식을 완전히 되찾았을 때, 내 주변을 노예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관리인은 수많은 사람에게 구타당한 흔적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게 가족이 아직 남아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동시에 이제 그 가족마저도 없게 되리라고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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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에게 반기를 들었던 노예 8명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후 5년이 지났다.


나는 살아남아 13살이 되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보냈다면 성인이 되어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였다.


성인식을 치루는 시기와 아카데미 입학 시기가 13세로 정해진 이유는 13세의 생일에 별의 축복이 발현하기 때문이다.


노역장에서만 살던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게 은근한 친절을 베풀던 노예 덕이었다. 그녀는 범죄노예였으며, 아름다운 은발을 가졌으며, 최근에 아이를 낳았다. 내게 베푸는 친절은 아마 그녀의 자식의 미래에 나를 겹쳐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짐작했다.


바깥에서 온 그녀는 이 노역장 밖의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노예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게 드물게 별의 축복을 받은 이들은 마나를 움직일 수 있다고, 그리하여 손끝에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혹시 내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고도 잔잔한 목소리로 일렀다.


하지만 나는 내게 그런 기적이 깃들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내 생일을 모른다. 그리고 기적이 깃들 것이었다면 지금이 아닌 다른 기회도 너무나 많았다.


다만 이런 생각 정도는 했던 것 같다.


혹시라도 그런 기적이 깃든다면, 그 힘을 내 가족들을 지키는 데 쓰고 싶다고. 그것이 내게 가장 큰 생일 선물이라고.


그로부터 몇 달이 더 지나, 그날의 대화를 완전히 잊을 때쯤이었다.


“…117번. 최고 관리인님의 호출이다.”


내 8명의 가족을 죽인 그 관리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 140명의 가족들은 동시에 우뚝 굳었다.


나는 내 가족들이 그리 반응하는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적합도 심사입니까?”


“그래.”


대화는 짧았다. 관리인은 몸을 돌려 나아갔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적합도 심사. 성인이 된 모든 노예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점검.


일정 이상의 생산량을 꾸준히 유지하지 못한 노예는 적합도 심사에서 불합격하여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다. 나는 그 실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릴 적부터 쇠약하여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노예였다.


“자, 잠시만요, 관리인님. 잠시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 가족들은 날 보내지 않고자 했다. 그들은 내 미래를 짐작했고, 나 또한 그랬다.


아마 날 데려가려던 관리인도 그랬으리라. 그는 쯧 혀를 찬 후 이렇게 중얼거렸다.


“…불가능하다. 담당 구역으로 복귀해라.”


여전히 날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눈초리였다. 그는 대체 내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더 이상 신경쓸 틈은 없다. 내 가족들이 탄식을 토해내고 있으니. 난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가족들과의 마지막 인사에.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것이 내게 허락된 마지막 한 마디였다.


나는 관리인을 따라 노역장의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달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유달리 태양이 밝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죽기보다는 나들이를 나가기에 더 어울리는 날이었다.


나는 내게 주어질 죽음이 어떤 형태일지 고민했다. 생에 미련은 없었다. 5년 전에 죽었어야 할 아이가 아직까지 살아있으니 오히려 오래 살았다고도 여길 수 있겠다.


유일한 미련이 있다면.. 가족들에게 이별을 말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못했다는 것.


노예가 갖기에는 너무나도 감상적인 미련이었다. 나는 희망을 접고 얌전히 발을 옮겼다.


다만 별에게 빌었다.


부디 남은 가족들이 언젠가 이 생지옥을 탈출하기를.


만에 하나 내게 기적을 내릴 힘이 있다면, 그런 쓸모없는 일에 힘을 쓰지 말고 부디 내 가족들을 굽어살피기를.


그것이 내 마지막 소원이 되기를 빌었다.


- ……!

- …잡아! 저…….


걸은 지 얼마나 됐을까. 등 뒤가 소란스러웠다.


설마. 설마. 나는 그렇게 되뇌었다. 설마 5년 전의 멍청한 짓거리를 또 반복할 가족들이 있을 리 없다고.


“신경쓰지 마라. 뒤를 돌아보지 마라. 따라와라.”


내 앞을 걷는 관리인은 그렇게 말했다. 내 수갑에 연결된 사슬이 그의 손에 쥐여있었기에 나는 그리하려 노력했다.


- 당장 정지하라! 더 이상 움직이면 폭동이다!


등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더라도.


신경쓰지 않고자 했다.


- 아아아악—!!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채찍 소리가 들려온다. 문이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자 했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117번, 발을 멈추지 마라. 따라와라.”


나는 내가 마지막으로 빈 소원조차도 별에 닿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대낮에 떠 있는 별이라고는 하나뿐이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것이 내게 예비된 끝인가? 소망했던 그 무엇도 이뤄지지 않는 게 끝인가?


“117번, 명령 불복종인가?”


내 가족이 날 위해 죽어가는 소리를 무력하게 듣고만 있는 것이, 나의 끝인가?


“117번!!”


쩔그럭. 내 손목에 묶인 사슬이 강하게 끌려갔다.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엎어졌다.


어지럽다. 그 까닭이 내가 오래 굶어서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몰랐다.


나는 묶인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흙바닥은 정확히 태양의 빛만큼 뜨거웠다.


여전히 등 뒤에서는 가족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117번, 한 번만 더 명령에 불복종한다면 즉결 처형하겠다.”


그 순간. 나는 겪었다.


비명도, 고함도, 내게 죽음을 선고하는 담담한 목소리도.


숲에서 들려오는 한가로운 새소리도, 작열하는 세상 속 날 부르는 목소리도..


그 모든 소리들이 내 머릿속에 섞여든다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117….”


여전히 태양빛은 뜨거웠고, 온 세상의 소리는 서서히 잠겨들었다.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차가운 무언가가 내 시야를 가렸다. 온 세상이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이 빌어먹을 나약한 몸뚱아리가 드디어 태양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타들어가는 것인가?


뇌가 뒤흔들리는 어지러움 속 기억은 흘러간다. 무정한 별, 소망, 원망, 무력감...


그리고 13세의 생일.


그 무엇도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 속, 난 여전히 태양빛이 내게 내리쬐고 있음을 떠올렸다.


곧이어 내 몸속의 모든 핏줄이 터져나가는 듯한 감각이 찿아왔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은 지독한 고통과 상쾌한 해방감이었다.


나는 의식을 잃는 순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태양빛이 내 손끝에 깃들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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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붉게 물들었던 세상이 서서히 제 색을 찾았다. 눈에서 핏기가 빠져나가고 어지러웠던 머리가 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붉었다. 피의 그것이 아니라 불길의 그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본다. 온 노역장이 작열하는 불길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내 손끝을 내려다본다. 여전히 희게 타오르는 태양빛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리했는지는..


난 머릿속에 떠오른 가정을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덮어 지웠다.


무심코 고개를 휘저었다. 정말 지옥도가 되어버린 내 고향 속에서 내 가족의 흔적이라도 찾기 위함이었다.


타들어간 시체들이 보였다.


무너진 잔해에 깔린 시체들이 보였다.


어쩌면 저것이 내 가족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 속에서 나는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아직 숨을 쉬는 사람을 찾아냈다. 날 유독 좋아했던 은발의 여인이다.


“…아이야.”


이름조차 모르는 은발의 여인은, 숯검댕이 된 자신의 아이를 보석이라도 되는 듯 껴안고, 다 타들어가는 다리를 이끌고 내게로 다가왔다.


불길이 이글거리는 노역장 한가운데, 내 뺨에 닿은 여인의 손은 어째서인지 소름끼치도록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고, 그녀는 날 품고자 했다. 부서져가는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이고자 했다.


내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흩어질 듯 연약했다.


“아이야, 네 잘못이 아니란다..”


자애로운 목소리였다.


그녀가 내게 자신의 아이를 겹쳐보았듯, 나는 그녀에게 내 어미를 겹쳐보았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뺨에 닿았던 손은 허물어졌다. 내게로 엎어진 몸뚱아리는 더 이상 산 자의 것이 아니었다.


내 생일 선물은 이다지도 지독한 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