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담배가 싫다.


냄새도 지독한 게 옷에 배기라도 하면 아무리 빨아도 미약하게 나마 나는 듯한 느낌이 들고.


피고 남은 담배 꽁초들은 아름다운 거리를 망가트리는 불순물의 역할이 되며.


무엇보다 담배 연기는 너무 매워서 눈물이 나니 정말 싫다.



"그러니까 담배 좀 그만 피시라고요 스승님"


"캬하하핫! 빌런 녀석들 족친 다음에 피는 담배가 얼마나 맛있는데 이걸 포기하라고?"



자꾸만 눈물이 나게 하는 담배 연기를 손으로 휘저으며 내뱉은 내 경고에도.


특유의 상어 이빨이 인상적인 붉은 머리의 여인.


내 스승이자 현 우리나라의 히어로 탑 10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집단 [리그]의 2인자 역할을 맡고 있는 히어로.


플레임은 내 경고를 듣는 둥 마는 둥 웃어 넘기며 가볍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창가로 향해 계속해서 담배를 뻑뻑 피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히어로라는 분이 어린 애들도 보는 마당에 담배를 피는 건 아니죠!"


"어차피 애들도 나중에 커서 피울 건데 뭐...그냥 예습이라고 생각해"


"그걸 지금 말이라고..! 에휴..됐다..그냥 아예 이참에 시가나 피우시죠? 더 일찍 뒤지게"


"이 자식이 스승님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아 이건 선 넘었다 한대 맞겠네..


지난번처럼 같은 불속성이니까 괜찮다면서 손에 화염을 휘감고 때리시진 않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며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뒤 눈을 감으며 곧 찾아올 충격을 대비하였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잠시 후 머리에서 느껴진 감촉은 지난번과 같이 불타는 메테오가 떨어지는 듯한 통증이 아닌.


쓰다듬기보다는 헝클어 트리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무척이나 포근하고 따뜻한 스승님의 손길이었다.



"...캬하하하! 짜식 쫄기는!"


"아 뭐에요! 제가 애도 아니고.."


"넌 10년이 지나도 내 눈에는 애송이야!"



기껏 사람들 눈에 정갈하게 보이려고 꾸민 머리인데.


그 머리를 단숨에 헝클어 버린 스승님에게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제멋대로인 스승님의 모습으로 인해 차올랐던 분노는 빠르게 식어 허탈함만이 느껴졌다.


저런 사람이 세계 최강을 논할 때 꼽히는 사람이라니..


물론 빌런들이랑 싸울 때만 되면 180도 달라지시만.


아무튼.



"아무튼 진짜로 담배 좀 줄이세요! 아무리 꼴초여도 하루에 4갑을 피우는 미친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그 미친 사람이 니 스승이다 이 자식아!"


"아아악! 미친 사람아! 머리 탄다고!!!"


"스승한테 반항을 하면 머리가 불탈 각오는 해야지!!"



도저히 스승의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녀였지만.


명실 상부 한국에서 가장 강한 히어로 중 2번째인 그녀기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그녀와의 사제 생활이 딱히 불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저주 같은 힘을 다룰 수 있게 해준 그녀에 대한 감사함이 컸으면 더 컸지.


그러나.


이런 행복한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


-쾅! 콰광!


-에에에에에엥!!!!


사방에서 귀를 통해 들어와 내 뇌를 흔드는 거대한 폭발음과 싸이렌 소리.


그리고 무언가가 일으킨 거대한 폭발로 인해 부숴진 체로 널브러져 있는 도시의 건물들까지.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학원에서 돌아오는 학생들로 인해 붐볐던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원인은 빌런의 테러였고.


미국에서 활동하던 오라클이라는 녀석들이 단체로 일으킨 테러에 수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스승님! 제발 정신 좀 차려보세요!"



그리고 나의 스승님 또한..


오라클의 수장으로 보이는 빌런 녀석과의 전투 중 인질들로 인해 틈이 생기셨고.


그 결과 녀석을 제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부상을 입으셨다.



"젠장!! 구급대원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너무나도 어리석고 아둔했다.


인질이 남아있다는 빌런의 거짓말에 속아 스승님께 합류하지 못한 것이 이런 결과로 돌아오다니.


내 잘못이다.


조금만 더 빨리 스승님에게 합류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까지는..


아니 빌런과 싸울 때 조금만 더 주의를 해서 다리를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스승님을 병원으로 바로 데려갔을 텐데...


아니..애초에 빌런 자식을 제압하려고 하는 게 아니었어..아예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썩을 빌런 새끼들!!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게 뭐가 그리 즐겁다고 이런 짓을..!!



"그..만.."


"스승님! 정신 차리고 있으세요! 금방 구급대가 올 거에요..!!"



다행이다 스승님이 정신을 차렸으니 일단 내 옷으로 상처 부위를 지혈하면서 응급처치를 하고.


구급대를 기다리거나 스승님을 들쳐 업고 이곳을 벗어난다면 분명 스승님을 살릴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러면 할 수 있을 거야..분명..



"제자야...나..아무것도..안..보여..."



그러나 있을 지도 없을 지도 모르는 빌어 먹을 신에게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빌고 또 빌었던 나의 희망은.


역시나 최악의 결과도 돌아왔다.



"스승님...?"



분명 스승님은 현재 눈을 뜨고 계셨다.


그러나.


언제나 그녀의 열정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것만 같았던 두 눈은.


차갑게 식어버린 장작처럼 초점 없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안돼요..제발..."


"무서워...제자...나..좀..안아줘...나..너무..추워...무서워...싫어.."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뭇가지처럼 파들 파들 떨리는 그녀의 손 끝.


언제나 밝고 당당하던 그녀의 얼굴은 죽음의 공포에 집어 삼켜져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그렇지만.


나로써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스승님..따뜻하게 해드릴게요.."


"....제자..."



업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히어로들 중 하나로 만들어 준 불꽃.


단순히 대상을 태우는 것을 넘어 그 대상과 연결된 모든 것을 연쇄적으로 태워버리는 이 불꽃은.


태생부터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일반적인 능력들과는 달리.


소유자가 자신의 제자에게 계승해야만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계승을..해줘.."



업화를 계승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업화 사용자조차 불태워버릴 정도로 뜨거운 불로 소유자를 불태우는 것.



"스승님..죄송합니다"



나 자신조차 불태울 정도로 뜨거운 불꽃이 흘러나온다.


그녀의 추위를 녹이고.


그녀의 두려움조차 녹일 정도로 뜨거운 불꽃을 내뿜으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캬하하...따뜻해...제자..."


"..네..스승님..."



괴롭다.


피부가 불타는 것을 넘어 녹아내리고.


폐에 있던 공기가 불에 타버리며 숨조차 쉬기 힘들어진다.


그러나 난 불꽃을 거두지 않았다.



"제자..좋은..스승이..아니라서..미안해...맨날..때려서..미안해..."


"....괜찮습니다.."



그녀의 온 몸에 묻어있던 피가 불꽃에 의해 집어 삼켜진다



"가르쳐...준..게..없어서..미안해..."


"...괜찮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업화가 불꽃에 의해 집어 삼켜진다.



"...사랑한다고..좋아했다고..말..못해서..미안해..."


"...괜찮습니다"



그녀가...업화에 의해 집어 삼켜진다.



"안녕히..안녕히..가십시요..스승님..곧 따라가겠습니다.."


"응..기다릴게...사랑해.."



두 입술이 포개진다.


==


"씨발! 도대체 왜 그 망할 자식들이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인 건데!"



며칠 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내게 들려온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스승님을 죽인 오라클의 수장과 나머지 단원들에게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이 내려진 것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평소 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주장했던 스승님을 눈엣가시로 여긴 정치인들과.


리그의 수장인 저스티스 그 개자식이 녀석들에게 거액의 뒷돈을 받고 형량을 낮춘 것이었다.


심지어는 뉴스 등 각종 언론매체에서 스승님에 대한 각종 거짓 루머를 퍼트려.


한순간에 스승님을 빌런들에게 뒷돈을 받으며 각종 불법적인 거래를 한 쓰레기로 만들어버렸다.


그녀가 최후의 최후까지 지키려 했던 시민들은 언론의 물타기에 넘어가.


그녀가 본인들을 똑바로 지키지 못해 피해를 입었다며 그녀의 무능함을 비난했다.



"이 개새끼들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스승님이.


그녀가 지키려고 했던 나라와 국민이 도리어 그녀를 꿰뚫는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아아..아아아악!!!!"



고작 저딴 놈들이 지키려고 스승님이 죽었단 말인가.


저 인간만도 못한 것들로 인해 스승님이 스스로를 희생하셨던 말인가.


고작.


고작 저딴 것들 때문에!



"으아아아아아!!!"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분노로 인해 그 때 입었던 상처가 벌어지고 피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은 온 몸에서 흐르는 피보다도 더 많고 짙었다.



"다..죽여버려주마.."



복수.


복수를 해야만 한다.


스승님이 마지막까지 지키려던 정의를 위해.


스승님이 마지막까지 지키려던 시민들을 위해.


스승님이 마지막까지 지키려던 나를 위해.


그리고 그녀를 위해.



"죽일 때까지 불타 올라주마"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담배를 꺼내 들어 불을 붙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날 핀 담배는 너무나도 달콤했다.


너무 달아서 눈물이 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