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여러분은 '뇌제(雷帝)'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서브컬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그 명칭을 들어봤을 것이다


주로 무시무시한 폭군, 혹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미치광이를 묘사할 때 많이 쓰지


오늘은 그 단어의 원형을 제공한 러시아의 군주, 이반 4세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도록 HAJA



시작하기 전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는데


이반 4세가 즉위할 당시만 해도, 러시아는 아직 '러시아(Россия)'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러시아라는 국명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건 한참 나중인 표트르 대제 시절이고


이반 뇌제가 통치하던 시절의 러시아는 일명 '루스(Рꙋсь) 차르국'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일반적으로 러시아의 황제라고 하면 '차르(Царь)'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를 텐데


러시아 역사상 차르 칭호를 최초로 쓴 군주가 바로 이반 뇌제였기 때문


때문에 러시아라는 이름을 써야 할 때는 대신 루스 차르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것이니 헷갈리지 말길 바란다


자, 서론이 길었으니 슬슬 본론으로 진입하도록 하자



서기 1530년, 이반 뇌제는 루스 차르국의 전신인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공, 바실리 3세와 대공비 옐레나 글린스카야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실 바실리 3세는 이반의 친모인 옐레나와 결혼하기 전, 살로메이라는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었는데


도무지 아들을 얻지 못하자 종교계의 만류를 뿌리치면서까지 이혼을 강행하며 옐레나를 새 아내로 들였고


모스크바 대주교는 이에 분노하며 "그대는 온나라가 피눈물을 흘리게 할 사악한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는 저주를 퍼부었다고


그렇게 새장가를 들어서 얻은 아들의 훗날 행보를 감안하면, 정말이지 소름 끼치는 예언이 아닐 수가 없다



웃기는 건, 그렇게 고대하고 또 고대하던 아들을 얻은 바실리 3세가 고작 3년 후에 꼴까닥 죽어버렸다는 것


이반 뇌제는 고작 3살이라는 나이에 모스크바 대공 작위를 물려받게 되었고


대공이 너무 어리니, 당연히 권력은 섭정 역할을 맡은 어머니 옐레나에게 넘어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비극의 포문을 여는 시발점이 되었다


왜냐고? 어머니인 옐레나가 정치를 못해도 너어어어무 못했던 것



이반과 유리 형제의 어머니이자, 명문가 글린스키 가문의 영애였던 옐레나 글린스카야


그녀는 분명 아들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한 어머니였지만, 안타깝게도 똑똑한 정략가는 못 되었다


사실 노련한 정략가가 되기에는 나이도 너무 어렸다. 섭정 역할을 시작했을 때가 고작 23살이었으니


게다가 성격도 거만하고 고압적이라 입만 열면 주변인의 반발을 샀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정국이 어찌저찌 굴러갔다


친정인 글린스키 가문 사람이자, 그녀의 숙부였던 미하일 글린스키 공이 나름 수완을 발휘해 조카딸을 지켜주었기 때문



하지만 미하일 공은 중도에 조카딸과 정치적 갈등을 빚은 나머지 무자비하게 팽을 당했고


다른 버팀목이 필요했던 옐레나는 귀족들을 견제할 새로운 정치적 파트너를 섭외하는데


막상 데려온 것은 얼굴만 잘생겼지, 실상은 기반도 없고 무능하기만 한 젊은 귀족 텔렙네프 오볼렌스키였다


섭외 이유도 참 기가 찼다. 현재 자신이 사귀는 애인이고, 아들 이반이 텔렙네프를 아버지처럼 잘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


정치를 큰 그림 없이 그때그때 자기 감정 가는 대로만 하니, 당연히 무수한 정적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몇 년 못 가 옐레나는 누군가 술에 탄 독을 마시고 의문의 암살을 당해버린다


자신이 지켜주어야 할 어린 아들들, 이반과 유리 형제를 덩그러니 남겨둔 채



물론 섭정 역할을 해줘야 할 태후가 사라진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진짜 문제는 무능한 옐레나가 아들 이반을 위한 정치적 기반을 거의 다져놓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모스크바 대공의 권력은 땅에 떨어졌고, 슈이스키와 벨스키 등 유력 귀족 가문이 앞다투어 득세


고작 7세였던 이반은 청각장애인이었던 동생 유리와 함께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남아야 했다


당시 모스크바 대공국은 귀족과 군주 간의 알력다툼이 현대인의 상상 이상으로 치열했던 국가였다


귀족들은 이반을 아예 병신 호구 새끼로 키워서 감히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고 싶어했고


때문에 어린 이반에게 정상적인 군주제 국가라고는 가늠하기조차 힘든 온갖 학대를 가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만 간추려 볼까?


1. 아침 해가 뜨면 대공의 침실로 박차고 들어와서 마구 소리를 지르고 위협하기

2. 어린아이는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주제로 논쟁을 벌여서 대놓고 기 죽이기

3. 놀 시간은커녕, 최소한의 쉴 수 있는 시간도 안 주고 일하라고 몰아붙이기

4. 낡고 냄새나는 넝마나 누더기를 입으라면서 휙 던져주고 가기

5. 흙도 털어내지 않은 더러운 신발을 대공이 자는 침대 위에 버려두기

6. 밥조차 제대로 안 줘서 대공 형제가 궁궐 쓰레기통을 뒤져 끼니를 때우게 놔두기

7. 권력을 되찾지 못하게 하려고 주변의 인간 관계를 강제로 단절시키기

8. 귀족끼리 결투를 한다며 대공 앞에서 칼과 창을 휘둘러서 일부러 겁주기



만약 이반이 평범한 아이였다면 정말 기가 팍 죽어서 귀족들이 원하는 허수아비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동생이었던 유리는 이 끔찍한 경험으로 인해 사람이 반쯤 망가지고 말았으니까


그러나 이반은 평범하기는커녕, 훗날 뇌제로 불리게 될 무시무시한 저력을 지닌 소년이었고


일부러 고분고분한 척, 얌전한 척 연기를 하며 자신이 친정을 시작할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내면에 한평생 꺼지지 않을 증오분노, 그리고 광기의 화염을 불태우면서 말이다


(뇌제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황후, 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의 조각상)


어쨌거나 이반은 온나라에 소문이 날 정도로 총명한 어른으로 자라났다


명재상 마카리 대주교에게 교육을 받아 독서와 글쓰기, 연설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고


역대급으로 큰 도서관을 모스크바에 지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을 틈틈이 수집했으며


재색을 겸비한 영애, 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를 부인으로 맞아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았다


이윽고 1546년, 17세가 된 이반은 스스로를 대공이 아닌 차르라 칭하며 본격적으로 루스 차르국의 시작을 선포


친정을 개시했음에도, 한동안은 마음 속에 품은 복수심을 내보이지 않은 채 유순한 성군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내가 어릴 때 너무 싸가지 없게 굴었지? 미안해. 우리 이제부터 잘해보자 ㅎㅎ"라고 선 사과까지 박으며 자길 학대한 정적들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이반은 수도에 인쇄소를 건설해 성경을 출판하고, 종교 회의를 열어 교회를 개혁하고, 낡은 군제를 혁파해 국력을 끌어올렸으며


외적으로는 숙적인 카잔 칸국과 아스타라한 칸국을 격파하고 시베리아로 영토를 확장하는 등 무수한 업적을 남겼다


덕분에 백성들은 간만에 성군께서 나셨다며 입을 모아 이반을 찬양했지만


몇 년 가지 않아 이반의 리미터가 풀리면서 그는 본격적인 뇌제로 거듭나게 된다



이반이 폭주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황후 아나스타샤의 때이른 죽음이었다


공식 사인은 병사였지만, 유년기 내내 귀족들의 등쌀에 시달린 이반은 결코 이를 믿지 않았다


그는 암살을 당한 어머니 옐레나와 아내 아나스타샤를 겹쳐서 보았고, 곧 사악한 귀족들이 독약으로 황후를 살해한 것이라 단정


천천히 다져온 강력한 황권을 총동원해 귀족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에 앞장섰던 것이 바로 차르가 직접 키워낸 무시무시한 친위대, 오프리치니크(опри́чник)였다


(차르의 명을 받고 출동하는 친위대와, 공포에 질린 백성들의 기록화)


오프리치니크는 오늘날 서브컬쳐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포의 친위군단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차르의 황명이 떨어지는 즉시 출동, 루스 차르국 곳곳에서 학살을 벌였으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무차별적으로 쓸어버리면서 극단적인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숙청 대상으로 지목된 죄인은 친위대에게 납치를 당한 뒤, 말 뒤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가혹한 고문을 받았고


고문이 끝나는 즉시 끓는 솥에 집어넣어 삶아 죽이는 팽형, 말뚝을 박아 죽이는 십자가형, 심하면 당시로선 금기에 가까웠던 화형까지 공개적으로 당했다


초반에는 그래도 차르의 정적이었던 귀족만이 숙청 대상으로 지목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스케일이 커져, 귀족과 평민 가릴 것 없이 무작위로 친위대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게 된다



이들은 차르의 명령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반역자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살해했다


친위대가 사람을 죽일 때는 죄를 입증할 증거도 필요 없었고, 당연히 상응하는 재판도 필요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학살은 차르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에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딱히 한 개인이나 가문만이 숙청 대상으로 지목되는 게 아니라서, 때로는 도시 하나를 통째로 불태워버리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전통적으로 강한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던 노브고로드 공화국으로


단 1번의 오프리치니크 공격으로 인해 무려 12,000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덕분에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한때 모스크바와도 경쟁했던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한순간에 힘을 잃고 처참히 몰락하고 만다



(이반 뇌제의 충신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마카리 모스크바의 이콘)


심지어 교회와 성직자, 공신, 가까운 황족마저도 친위대로부터 안전할 수 없었다


그나마 스승이자 평생의 벗이었던 마카리 대주교(Макарий Москва)가 살아있을 때는 사정이 좀 나았지만


마카리 대주교가 늙어 죽자, 2차로 억제기가 깨진 뇌제는 수많은 성직자들을 살해, 교회를 파괴하고 재산을 강탈했으며


뇌제의 외가쪽 사촌인 블라디미르 공작, 뇌제의 최측근이었던 피멘 대주교 등의 고위 인사들도 삐끗 실수하면 오프리치니크에게 목이 날아갔다


이렇게 미친 듯이 피에 굶주린 학살을 반복하기 자그마치 10년


더는 막을 자가 없어진 이반 뇌제는, 슬슬 가치가 떨어진 오프리치니크마저도 공식적으로 토사구팽해버렸고


만인을 제 앞에 무릎 꿇린 무소불위의 전제 군주가 되어 전 루스 차르국을 공포로 다스려나간다



비록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정점에 섰지만, 말년에 이를 수록 이반 뇌제의 정신은 불안정해졌다


뇌제는 그 누구도 전적으로 믿지 못했고, 언젠가 어머니나 아내처럼 암살을 당할 거라는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도 황후 아나스타샤가 죽기 전 낳아준 황태자, 이반 만큼은 제법 끔찍이 아끼며 삶의 유일한 안식처로 삼았고


일찍이 그를 계승자로 점찍어 전쟁터에 데리고 다니거나, 후계자 교육을 몰빵해서 시키는 등 나름대로 많은 케어를 해주었다


하지만 황태자 이반은 아버지의 공포 정치에 불만이 많은 인물이었고, 이러한 노선 차이로 인해 부자 간의 불화가 종종 벌어졌는데


어느 날, 이 불화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고 마는 참혹한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평소 이반 뇌제는 자신의 황태자비를 두고 싸가지가 없는 며느리라며 대놓고 싫어했는데


임신을 한 그녀가 날이 더워서 얇은 옷을 입고 다니자, 어디 감히 그런 경박한 차림새를 하고 다니냐며 마구 구타를 가했다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은 황태자비는 그만 아이를 유산


결국 폭발하고야 만 황태자 이반이 화를 내며 아버지를 통렬히 저주했는데 


아들의 반항에 순간 삔또가 나가버린 이반 뇌제는 난로가 옆에 있던 부지깽이를 집어 황태자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고


두개골이 깨진 황태자 이반은 그만 뇌진탕으로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1885년, 일리야 레핀 작. 이반 뇌제, 아들을 죽이다)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이반은 미치광이처럼 울부짖으며 의사를 찾았지만


두부에 치명상을 입은 황태자 이반은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고, 3일 후 병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뜬다


사랑했던 아내가 낳아주고, 자신이 가장 총애했던 아들을 스스로 죽여버린 이반 뇌제는 헤어나올 수 없는 실의에 잠겼고


결국 아들이 죽은 지 고작 3년 후인 1584년, 3월 18일 


신하들과 체스를 두려고 하다가 별안간 쓰러지며 급사해버리고 만다

(사인은 뇌졸중이었던 것으로 추정)


이반 뇌제의 사후, 차르의 자리는 아들인 표트르 1세가 계승했지만, 막상 표트르 1세도 후계자를 제대로 지정하지 못한 채 죽어버렸고


하도 이반 뇌제가 황족을 많이 죽인 바람에 그 뒤를 이을 사람이 마땅히 없어, 결국 왕조의 피는 단절되어버리고 만다



지금까지 중세 러시아의 군주, 이반 뇌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틀림없이 성군의 자질을 지녔고, 유년기의 참혹한 기억만 없었다면 정말 성군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무시무시한 폭군으로 타락해버린 비참한 굴곡의 소유자라 정리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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