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많은 질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중 몇 가지는 너무나 직설적이라서 가슴을 찢어버리기도 한다.


"왜 죽으려고 해요?"


일주일 전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받은 질문이 바로 그런 축에 속했다.


***


째깍째깍. 클래식하다고 도저히 포장할 수 없을 정도로 낡은 아날로그 시계가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침 7시로 맞춰 놓은 알람은 진작 고장 났지만 365일 24시간 변함 없는 기상 시간은 절대로 고장 나지 않는다.


"거짓말쟁이. 또 늦잠 잤죠?"

"...미안."


촤르륵. 언제부턴가 움직임을 멈춘 커튼이 걷어지며 가득 쌓인 먼지가 내려앉았다. 몸에 매우 해로운 회색 눈덩이는 다행히 바로 열린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날아갔다.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온 붉은 빛이 사방에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다만 그림자는 점점 길어졌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조그만 주방에서 들려 왔다. 이윽고 씁쓸하면서도 달달한 냄새가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커피 냄새였다.


"늦었지만 모닝 커피 마시세요."

"고마워."


떨어지는 햇빛을 받으며 마시는 모닝 커피는 생각보다 더 진했다. 그리고 아무리 강력한 카페인이라고 해도 저 아늑한 노을을 이길 순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자각했다.


"아니! 또 누우면 어떡해요! 빨리 일어나서 세수라도 하세요!"

"...알았어."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엄마한테도 듣지 못한 잔소리를 들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곰팡이가 자신이 세면대를 정복했음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에 맞춰 춤추고 있었다.


아마도 이 집에서 가장 깨끗한 수돗물로 대충 눈꼽만 땐 뒤 나오니 커피 잔 대신 왠 도시락이 선반에 놓여 있었다.


"오늘은 필요 없는데..."

"커피 마시고 도시락. 아침 루틴이었잖아요.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으면서 필요 없다고 하면 곤란해요."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니 몇 년 전에 연습하다 기어이 포기한 옆 나라 방식 계란찜과 마파두부가 고개를 내밀었다. 뒤이어 고슬고슬한 쌀밥의 똘망한 시선까지 받으니 반응을 생각하기도 전에 침샘이 먼저 움직이고 말았다.


"거 봐요. 먹고 싶었잖아요. 그러니까 라면만 먹지 마요."

"...시끄러."


도시락 옆에는 정장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다림질을 한 적도 배운 적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정장을 입고 도시락을 챙기니 평범한 직장인이 금 간 전신 거울 안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웃는 모습도 좋잖아요."

"저건 내가 아니야."

"뭐 어때요. 다녀오세요."

"...그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동네에서 유명한 등산로였다. 저녁에 정장을 입고 등산하러 온 모습 때문인지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그저 멍하게 초입을 걸을 뿐이었다.


동네에서 유명한 등산로 치고는 시설이 많이 열악했다. 식수대에서 나오는 시뻘건 물은 하다못해 곰팡이 폈던 세면대 물보다 오염돼 보였다. 그보다 시선을 끈 것은 곳곳에 가로 놓인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찢어지고 늘어난 폴리스 라인 때문에 가뜩이나 더러운 곳이 더 더럽게 느껴졌다.


"잠시만요!"

"네?"


대놓고 출입 금지라고 써져 있음에도 산속으로 향해서 일까.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경찰 한 명이 말로 붙잡으며 달려왔다.


"여긴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네."


경찰 말 안 들으면 어쩔 건가. 또 그 끔찍한 감옥으로 갈 수 는 없지 않는가. 그런데 형광 옷 입은 경찰한테 제지 당할 때, 어젠가 저를 탈락 시킨 이름 모를 회사의 면접관이 떠오른 건 어째서 일까. 그 사람이 입었던 정장과 저 경찰복이 겹쳐 보이기라도 한 걸까? 아무튼 경찰 말 대로 걸음을 돌려 주변을 살피니 낡은 정자가 하나 보며 그곳으로 걸어갔다.


"아, 그리고 곧 있으면 전면 통제령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적당히 계시다 내려 가세요~."


딴에는 배려하고 싶었겠지만 듣는 귀는 오지랖으로 들리는 걸 어쩌겠는가. 최대한 반응 하지 않으며 정자 귀퉁이에 앉고 나니 그제야 작은 등산로가 한 눈에 들어왔다. 산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동네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뒤엉켜 이방인을 괴롭혔다. 떨어지는 벚꽃 사이사이 묘하게 붉은 꽃이 함께 떨어져 더욱 짙은 봄비를 만드는 게 퍽 아름다웠다. 마지막 꽃이 진 자리에는 어느새 푸른 잎이 돋아나 곧 있으면 제 세상인 여름이 온다는 걸 알렸다.


성인 두 세 명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등산로 입구가 저 멀리 보였다. 그리고 그곳은 당연히 경찰관이 지키고 있었다.


"하아. 여길 왜 와서는..."


이만 가자. 혼자라서 쓸쓸하더라도 여기 보다는 집이 나아.


체념에 잠겨 일어나려고 하니 옆에 두었던 도시락이 떠올랐다. 하다못해 밥이라도 먹고 돌아가자 생각하며 오른손을 뻗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오른손이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그리고 들려온 놀라운 목소리.


"짜잔!"

으아아아아아아악!!!


하마터면 입 밖으로 비명을 꺼낼 뻔했다. 만약 그랬다면 저 고약한 경찰관이 분명 달려왔을 테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겨우 억누른 뒤 얇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긴 왜 따라왔어?"

"그야 혼자 있으면 저도 쓸쓸하거든요."


어느새 뚜껑 열린 도시락에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숟가락을 미처 가져오지 못해서 나무젓가락으로 계란찜을 먹자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마파두부랑 밥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몇 젓가락 먹으니 차갑게 내려앉았던 몸에서 열기가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맛있어요?"

"그래."

"다행이네요. 아, 그보다 저길 보세요!"


가리키는 방향은 조금 전까지 경찰이 지키던 입구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 오줌이라도 싸러 갔는지 두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올라갈 수 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꼭 올라가야 할까?"

"올라가지 않을 거면 여기는 왜 온 건가요?"


맞는 말이다. 빠르게 도시락을 정리하고 주변을 살피며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등산로에 들어설 때까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동네에서 유명한 산 치고는 등산로 마저 열악했다. 입구가 그나마 넓은 축에 속한 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등산로가 아니라 야산을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가라앉던 태양은 본격적으로 숲 속에 들어가자마자 모습을 감추었다. 칠흑 같은 어둠... 까지는 아니고 주변 식물 때문에 이리저리 부서진 빛이 나름 시야를 밝혀줬다.


"이제 거의 다 왔네요."

"...그래."


우거진 숲이 점점 갈라지더니 갑자기 확 트인 공간이 시야를 덮쳤다. 마침내 쓰러진 햇빛 대신 달빛이 넓은 공간을 비췄다. 오로지 돌로만 이루어진 공간. 숲에서 걸어갈 수록 좁아지더니 이내 발 디딜 틈 없이 좁아진 공간. 아래에서 위로, 다시 위에서 아래로 강한 바람이 사정 없이 뺨을 때리는 공간. 한 번 떨어지면 그 누구도 다시 올라올 수 없는 절벽 가장 끝에 앉아 먹다 남은 도시락을 다시 꺼냈다.


"여기는 아직도 춥네요."

"...그러게."


젓가락조차 없어서 손으로 음식을 퍼 먹었다. 흙 묻어 더러운 손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칼바람은 숲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지만 개걸스럽게 밥 먹는 소리는 차마 먹을 수 없어 다시 뱉기를 반복했다.


"돌아갈까요?"

"그래."


도시락을 깨끗하게 비운 뒤 왔던 길로 내려왔다. 입구에는 조금 전 경찰관이 멍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 달린 무전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무언가 단서를 찾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체포하거나 말을 걸지도 않았다.


"역시 집이 최고야! 안 그래요?"


아무도 없는 집은 이제는 반기지도 않았다. 더러운 식기가 가득 쌓인 주방에서 썩은 내가 올라왔다. 세면대를 점령했던 곰팡이가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먼지 쌓인 시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실리콘으로 막힌 창문은 암흑을 비출 뿐이었다.


삐용 삐용. 밖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소리. 알람 소리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 결정할 시간이 왔다는 걸 의미한다.


"정말로?"

"그래. 정말로."


커다란 못이 박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길 몇 초. 이윽고 결심한 듯 못에 굵은 밧줄을 매달길 또 몇 초. 미리 만들어 둔 고리에 목을 넣고 의자 위로 올라가는 데 마지막으로 몇 초.


"듣기만 하세요."

"..."


의자가 쿠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갔기에 대답할 수도 없었다.


"절벽에서 제가 한 질문 기억나요?"


탕탕탕. 희미해지는 의식 너머로 급한 소리가 건물을 가득 채웠다. 누가 올라오나?


"사실 저도 죽고 싶었어요."

"떨어져 죽으면 많이 아프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아저씨가 결국 산에 오르기를 기다렸어요."

"왜 아저씨였는지는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믿어요."


""지금 이 집, 화장실에서, 그 밧줄로 목이 조일 때 제가 무슨 기분이었는지 아나요?""


뭘까. 알 수 없는 힘이 내 왼팔을 휘감았다. 턱걸이 하나도 잘 못하는 내가 왼팔 하나 만으로 밧줄을 오를 때 놀랍게도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 나의 죽음이 저 남자의 죽음을 막았구나."


쾅! 쾅! 쾅! 누군가 강하게 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낡은 경첩이 부서졌고 총 든 형사들이 들이닥쳤을 때 흐릿한 내 시선에 처음 보는 캔들이 들어왔다. 캔들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홀로 강렬하게 불타오르고 있는 작은 불을 머금고 있었다.


"그러니까 절대로 죽지 마세요. 아저씨가 겪을 고통에 제가 겪을 고통까지 함께. 찔려 죽거나 꿰뚫려 죽거나 잘려 죽거나 뭉개져 죽거나 익사해 죽거나 불타 죽거나. 아무튼 죽기 전까지 부디 우리 세 사람의 고통을 느껴 주세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서 진중하지만 분명 앳된 목소리가 왔다 갔다 하더니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다. 


콜록거리는 날 강제로 끌고 가는 경찰의 발에 걸린 캔들이 넘어졌다. 제 위치 잃은 불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 참. 생일 축하해요. 평범한 살인마 씨."


불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