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버튼이 있으면 누를 거임?]

└[연타함]

└[왜 안 누름???]


"이 새끼들 또 불행 포르노 떡밥이네."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다가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여간 자기 불행한 걸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 참 많았다.

삶이 힘들면 이겨낼 생각을 해야지, 도망치려는 생각만 하니 계속 불행한 것이다.

나는 살면서 자살을 할 고민같은 건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이겨냈다.

그러니 이런 떡밥이 참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비틱질이나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4% 정도 손실난 주식 거래 화면을 캡쳐해서, [주식 떨어져서 죽고싶다ㅠㅠ]라는 글을 올렸다.

총 평가액은 3억. 커뮤니티에서 죽고싶다는 뻘글이나 올리는 이런 애들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액수였다.

예상한 것처럼 수많은 질투와 부러움의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그중에 조금 이상한 댓글이 하나 있었다.


[ㄱㄷ]


"음?"


뭘 기다리라는 거지.

그냥 어그로인가 싶어서 신경쓰지 않으려는데.

눈 앞에 이상한 홀로그램같은 것이 떠올랐다.


[이 버튼을 누르면, 죽습니다!]


"…어?"


그건, 버튼이었다.

새빨간 버튼.

그 아래에는 '이 버튼을 누르면 죽습니다'라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문장이 쓰여있었다.


"상태창…?"


웹소설에서 보던 상태창이 떠올랐지만, 역시 그 내용은 도저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버튼을 누르면 죽는다니.

이런 걸 누가 누르겠냐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그 아래로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경우, 당신과 가까운 인물 한 명이 죽습니다!]

[제한시간 : 10m]


"뭐?"


이건, 협박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가 다시 사라졌다.

결론은 간단했다.


누르지 않는다.


어차피 어린 시절에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스스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오던 삶이다.

친한 사람이라고 해봤자 가끔씩 동창회에서나 보는 친구들이 전부다.

그래서 나는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제한시간 종료.]


곧 버튼은 눈 앞에서 사라졌다.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

.

.

영문을 알 수 없는 '버튼'은 금방 내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냥 피곤해서 꿈이라도 꿨던 모양이다, 하고 생각했다.

딱히 아는 사람 누군가가 죽은 것도 아니었고, 부고 연락같은 게 오지도 않았다.


그런 비현실적인 일보다는 현실에 보다 집중해야만했다.


나이를 먹었으니 연애도 하고 적당한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할 생각이었다. 부모는 없었지만, 주식으로 번 재산이 꽤 있었으니 부족함은 없다고 생각한다.


결혼정보회사에 간단한 이력을 올리고 선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한 여성과의 연애를 시작했다. 그냥, 늙어서 혼자 사는 것보다는 이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낫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

.

.

사랑은 사람을 바꾼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나는,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녀는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었다.


그녀와의 연애는 내 심장에 햇볕처럼 스며들어 얼어붙은 심장을 녹여주었다.


어느새, 나는 이 사람이 없으면 죽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녀와 결혼을 한 것도 그리 충동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우욱."


그리고, 아내가 임신했다.

축복이었다.


"흐하핫, 나, 아빠 되는 거야?"

"후후, 그러게."


"아아, 이럴 게 아니라, 조심해야지. 미리 좀 준비해둘걸. 산모한테 좋은 음식이 뭐가 있더라? 키위?"

"고마워, 자기."


행복했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

.

.

아내의 출산일.

나는 분만실 바깥에 앉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렸다.

초조했다.

다리가 떨렸다. 혹시라도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계속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 스트레스 탓일까.

눈 앞에 이상한 게 보였다.


[당신은 버튼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집행합니다.]


버튼? 집행?

그게 무슨 의미인지 떠올리기도 전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어디선가 비상벨같은 알림음이 울리고, 이곳저곳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의사가 나를 불렀고.


"…죄송합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나는 의사의 멱살을 잡고있었다.

아내가 죽었다.

아이를 분만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고 한다. 긴급하게 수혈했지만, 마치 심장마비라도 온 것처럼 심장이 멈춰버렸고, 아이를 출산하던 도중이기 때문에 전기적인 제세동도 불가능했다.


한참이나 의사에게 고함을 쏟아내던 나는, 곧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내가 죽었다.

나의 축복, 나의 사랑, 나의 삶….


그리고, 충격으로 미쳐버린 것일까.


눈 앞에 또다시 기이한 버튼 하나가 떠올랐다.


[이 버튼을 누르면, 죽습니다!]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경우, 당신과 가까운 인물 한 명이 죽습니다!]

[제한시간 : 10s]


새빨간 버튼.

그제서야 분만실 앞에서 아내를 기다릴 때 눈 앞에 떠올랐던, [집행합니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커뮤니티를 하다 보았던,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던 기억 하나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내가 죽은 게, 내가 버튼을 누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아니,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이건 그냥 내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보는 환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짜라면?

아내는 죽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내 삶의 이유였던 아내가 죽었다.


그렇다면, 그냥 이 버튼을 누르고 죽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갔고.


나에게 주어진 10초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제한시간 종료.]


버튼은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멍하니 버튼이 사라진 자리를 보고있던 것을, 나름 진정한 것이라고 생각한 간호사가.

나에게 아이를 안겨주었다.

그제서야 '죽음'이 아니라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


이 아이를 낳다가, 이 아이 때문에 아내가 죽었다. 이 아이 때문에!

아니, 나 때문이었나? 그 버튼 때문이었나?

모르겠다.

혼란스러웠다. 증오와 의구심과 자책감과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서 어지러웠다.

그리고.

아이가 웃었다.


"……."


잘 모르겠다.

도저히, 도저히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아내를 따라 죽어버리고 싶었다.


단지, 아이의 웃음을 보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이 눈물이 나와서.


나는 아이처럼, 어쩌면 아이보다 서럽게.


울었다. 

.

.

.

아빠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성별이 다른, 딸아이를 키우는 일이라면 특히 그랬다.


여자아이의 성장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나는, 여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여자가 어떤 변화를 겪는지 아이에게 조언해줄 수 없었다.


의욕이 없기도 했다.

아내의 죽음은 나에게서 모든 의욕을 앗아갔다.


나는 아이를 거의 방치하듯이 키웠고.


"아빠…."

"…."

"괜찮아요…? 죄송해요…."


아이는 그런 나를 위로했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알 수 없었다.


"…딸."

"네에…."


"아빠가 미안해…."


딸의 위로 덕분에 방황을 끝낸 나는, 이제 딸을 위해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딸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하는지,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부족함 없이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그게 딸을 향한 사랑인지, 아니면 단순히 아내를 향한 사랑이 남긴 의무감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맹목적으로 딸을 위해서 살았다.

딸은 성장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커버려 어른이 되었다.


딸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 조금 섭섭했고.


어느날 딸이 남자친구를 데려왔다.


"아빠, 내 남자친구…."

"내 딸은 못 준다 이놈아!"


"꺅! 아빠!"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우리 딸을 사랑하는구나.

이제 이 아이가 내 삶의 전부가 되었구나.


나는 조금 모자란 아버지처럼 굴었지만, 착한 딸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해주었다.


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흘렀고.


"크흠, 이보게."

"네, 아버님."


"식은… 언제 올릴 건가?"

"아! 아빠!"


딸은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

.

.

딸의 결혼식 날.

내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그 어렸던 딸이 벌써 결혼이라니, 실감이 가지 않아 한참이나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주름이 참 많았다.


"아빠!"

"어어, 우리 딸…."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했다.

하객들의 박수 소리, 결혼식장의 조명, 모든 것이 전부 낯설었다.


이미 한번 결혼해보았는데, 어쩐지 딸의 결혼식이 스스로의 결혼식보다 더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눈 앞에 이상한 것이 떠올랐다.


[당신은 버튼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그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딸이 있는 힘껏 나를 밀쳤다.


옆으로 밀쳐진 탓에 넘어지는 나의 눈에, 천장에 장식되어있던 조명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 바로 아래에는 딸이 있었다. 


나는 손을 뻗었으나.


[집행합니다.]


닿지 않았다.


비명소리, 조명의 잔해, 피, 깨진 유리, 비린내, 열기, 한기, 모든 것이 뒤섞였다.

어느새 나는 딸의 손을 붙잡고 울고있었다.

딸의 결혼식을 마주한 아버지들이 그렇듯이, 딸의 손을 붙잡고 한참이나 울었다.


그리고 눈 앞에 '그것'이 떠올랐다.


[이 버튼을 누르면, 죽습니다!]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경우, 당신과 가까운 인물 한 명이 죽습니다!]

[제한시간 : 1s]


[제한시간 종료.]


1초.


이번에는 버튼을 누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 [제한시간 종료]라는 글자를 보며.


나는, 그제서야 모든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깨달았다.

.

.

.

한강 다리 위에 섰다.


내가 죽어버리면 된다. 내가 죽어야했다.


내가 죽지 않아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한강의 물살에 몸을 던졌다.


한강에 닿는 순간, 충격이 몸을 덮쳤다.

.

.

.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신마비요…?"

"네. 아마 의식을 차리시더라도 움직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의사에게 환자의 상태를 묻는 남자.

그 목소리의 주인을 나는 알고있었다.

사위였다.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뜰 수도, 입을 열 수도 없었다.


"장인어른…. 죄송합니다."


오직 듣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저 때문입니다. 저 때문에… 서영이가…. 제가 그날에 결혼식을 올리자고만 하지 않았어도 서영이는…."


사위는 울고있었다.

한참이나 울먹이던 사위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나에게 약속했다.


"제가, 서영이를 대신해서 장인어른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나는 죽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