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연약했던 한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연약.. 연약이라. 고작 그런 간단하고 추상적인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유리같은 사람이었죠.

그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수도원을 드나들며 수많은 치료사들과 만나 죽지 않고 계속, 계속 꿋꿋이 살아갔습니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사경을 헤메다가도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또 다시 안도하는 부모, 그리고 자신의 치료행위에 뿌듯해하는 사제들과 수녀들. 51번째 치료에서, 소녀의 마음에 꿈이 피어났습니다.

신의 힘을 빌려, 그 신념으로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다친 사람을 보살피는 고결한 치유사. 소녀의 꿈이었습니다.

10살을 넘기지 못하리라 판단되던 소녀는 자신의 의지로 말미암아 11살이 되었고, 15살도, 20살도 넘겨내어서... 여전히 연약했지만, 그 안의 의지와 힘만은 강한 어엿한 성직자이자 치유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가장 가까이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모험가의 치료사가 되는 것을 택했고.

   “...여긴.”

 - 찰그랑.

 깨어나자마자 귀에 들리는 쇠사슬 소리.  그게 그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파티는 처참하게 패하고, 외모가 출중하던 그녀는 유일하게 살아남아 마족의 소굴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1년의 지옥이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마족의 손에 육신이 더럽혀지고, 알 수 없는 마법에 뇌가 간지럽혀지며 영혼이 더럽혀지고, 알 수 없는 약물에 육체가 뒤틀리며, 쾌락에 잠식당하는 일상의 반복.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모든 일과가 끝나서 바닥에 내던져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시간을 버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제 손에 치유되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며 신께 빌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해야만 했던 일을 당신께서 대신해 주시길.

 6달이 지나갔습니다.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꼬리뼈가 성장하며 꼬리가 자라나기 시작했고, 날갯죽지가 하루하루 아파옵니다.

 그런 변화에 그들은 만족해하며 오늘도 제 육신을 유린했습니다.

 제 육체를 탐하고, 안쪽까지 더럽혔죠.

 쾌락은 유혹입니다. 지금 그만두면. 지금 포기하면 편해질거라고 저를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치명적인 유혹.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전 필히 사람을 해치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될 것이기에.

 그들의 손길에, 유혹에, 굴하지 않으며. 몸은 굴했을지라도 정신은 굳건하여라. 쾌락따위에 무너질 신념이라면, 애초에 지니지 않는 것이 나았을 터일테니.

 그리고 1년째.

 그들이 거울을 가지고 왔습니다.

 거울에 비친건, 영락없는 마족이었습니다. 몸에 덕지덕지 묻은 정액이 미처 마르지도 않은, 한 마리의 볼품없는 몽마. 그 자리에서 제 목숨을 구한 미모는 여전히 제 자리를 꿋꿋히 지키고 있었어요.

 나는 신께 버려진건가.

 신께선 날 버리셨나.

 그들이 날 이렇게 만드는 동안 신께서는... 그래요. 제게 신경쓸 여력이 없으시겠죠. 한 세계를 굽어살피는 신이 한 마리의 마물과 인간 사이 언저리를 떠도는 미천한 치료사를 보살필 수 있었을리가 없죠. 당신이 날 버렸더라도, 난 이렇게 되는 동안 당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 마지막으로, 당신께 청하오니.

 부디, 언젠가는 저 악을 척결할 누군가를. 지금까지 그래왔듯. 저들이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없도록.

 마족의 더러운 손이 제 육체를 탐하러 다가오는 와중에도, 제 눈은 빛 한점 새어들어오지 않는 천장을 향해있었습니다.

 부디, 이 하찮은 몽마의 간청이 당신께 닿기를.

 그 순간이었습니다. 제 가슴을 움켜쥐려던 마족의 손목이, 하늘에서 떨어진 한 줄기 광휘에 잘려나가던 것은.

 비명을 지르는 마족을 뒤로하고 바라본 천장은, 찬란한 빛에 조금씩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빛이 한 줄기, 두 줄기씩 내려오며 제 몸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사라졌으리라 생각하던 몸 안에 웅크리고 있던 신성력이 고개를 들며 빛에 감응하고 있었죠.

 목소리. 여성적이면서 남성적이고, 앳되면서도 중후한 목소리가 뇌를 울렸습니다.

 그대는 자격을 증명했노라고. 여태까지, 미안했다고.

 빛의 강하가 끝나고 나니, 실오라기 하나 없던 몸에는 검은색의 사제복, 그 위에 검은 로브가 씌워져 있었습니다.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쓰니 뿔을 가릴 수 있었습니다.

   “지켜보고... 계속 함께하셨던...”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가장 신과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순간. 신께선 그때마저도 저와 함께였습니다.

 이 썩은 동굴의 마족을 단신으로 모두 죽일 힘이 손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고, 출구를 찾아서 세상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절 반겨줍니다.

 눈부신 햇살에도, 눈이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이 세상 밖에 나와 이 장면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은혜로울 뿐이었죠.

 손등을 무심코 보니 교단에서 성흔이라고 흔히들 부르는 문양이 새겨져있었습니다.

 성녀... 성녀라니.

 신께서 무슨 변덕을 부려 한낱 서큐버스를 성녀로 간택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신께서 제가 무엇을 하길 바라는지는 너무나도 선명했습니다.

 이 손으로 악을 척결하고 상처 입은 자를 구원하라.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제 신념은 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제게 쾌락을 주었지만 정신은 빼앗아가지 못했습니다.

 평생 지켜온 신념이 고작 1년의 세뇌와 조교로 지워질 리가 없잖습니까.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연약했던 한 몽마가 있습니다.

 낮에는 상처입은 자를 구원하고 치료하는 자. 교단마저도 그 정체를 모르는 성녀.

 밤에는 필사적으로 본능을 억누르며 악을 제 손으로 찢어발기고 내일을 기약하는 몽마.

 그녀는, 죽지 않고 꿋꿋이 살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