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확률로 얼음마녀 눈나 야짤 


10년 동안 완장질 한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새벽 3시, 자극적인 제목, 그리고 깡계.


게시글을 확인하니 역시나 '그 할매'였다. 익숙한 배경, 익숙한 인물, 익숙한 구도. 처음 봤을 때는 토악질까지 했었는데, 몇 년간 밤마다 만나니 이제 반갑기까지 하다. 


나는 조용히 삭제와 30일 차단 버튼을 누르고 커터칼을 들었다. 


팔에 감은 붕대를 풀고 거의 아물어가는 상처에 칼을 댔다. 


"윽."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지고 피가 흐르자, 상태창이 떴다. 


[악성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갤러리 포인트 10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글이 올라온 지 1분이 지나서야 할머니 하나를 지울 수 있었다. 


-완장 일 안하냐

-이 갤은 평화롭네

-???:안녕?나는 분탕이야 잘 지내보자!

-지금부터 완장찬양을 시작합니다

-주딱 월급 월 300실화냐


[완장찬양 게시글이 업로드되었습니다.]

[갤러리 포인트 30포인트가 업로드되었습니다.]


"시발놈들. 지워 줘도 지랄이야."


나는 눈앞에 보이는 화면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고 갤러리를 훑어봤다. 


한 놈이 썰렸으니까 내일 이 시간대까지는 그나마 평화롭겠지.


-A급 헌터 맨가슴 ㅓㅜㅑ.jpg


또 할매가 숨어 있을 법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방치하면 갤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 같아, 나는 다시 피가 흐르는 상처를 드러내야 했다. 


*


 어느 날 지구에 이세계로 통하는 게이트가 열리고 사람들이 초인으로 각성해 게이트에서 나오는 마물을 사냥해 지구를 지키는 세상.


이것도 수십 년 쯤 지나니까 사람들 다 적응하더라.


헌터와 마물이 없는 세상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물론 나도 헌터다. 


각성 능력이 '헌터 갤러리'라는 개쓰레기 능력이지만, 평생 각성을 못해 말하는 가축 취급 받는 것보다 100배 낫다. 


-헌터 갤러리 없었으면 진작 코렁탕 처먹고 있었을듯

-이거 만든 주딱은 뭐하는 놈일까

-아 엘프눈나 찌찌만지고 싶다


게이트가 열리며 몬스터와 함께 엘프나 수인 같은 이종족들이 들어왔고, 한동안 현실은 물론 인터넷 세상도 개판이 났다. 


인권 없는 이종족 사냥해서 인증하는 미친놈부터 인간을 다 죽여 지구를 정화해야 한다는 에코테러리스트 엘프 새끼들, 게다가 몇몇 지능이 높은 마물들은 인터넷을 통해 대놓고 마물이 되는 약을 처 팔고 있었다.


지구인과는 상식이 다른 이종족들과 고위 마물이 쓴 글들을 일일이 통제하기 어렵고, 글쓴놈을 잡기는 더더욱 어려운지라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모든 커뮤니티는 실명제로 바뀐 것이었다.


당연히 주민번호와 휴대폰번호를 인증하지 않으면 커뮤니티 이용이 불가능했고, 커뮤니티 실명제 덕분에 글 한번 잘못 쌌다가 통매음으로 잡혀가거나 고소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VPN을 쓰면 되지 않냐고?


아서라. 경찰 헌터 아저씨들이 마력으로 집까지 찾아와서 이노옴 한다.


원래부터 인권이 없는 이종족과 표현의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내가 각성해서 얻은 헌터 갤러리였다. 


드디어 나도 완장질이라는 것을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갤러리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도 덤이라 내 인생도 피는 줄 알았다. 


소설마냥 갤창으로 위장한 선남선녀들이랑 친목질도 하고, 포인트 모아서 먼치킨 되는 상상까지 해봤다.


분탕이 올린 혐짤을 지울 때 상처를 내서 피를 바쳐야 하고, 갤러리 포인트 환율이 원화랑 똑같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게이트가 열리기 전 무보수 완장보다 손톱만큼 나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딱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짐꾼 일이나 마석 채취 말고도 벌이가 생겼다는 기쁨인지, 억압적인 세상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킨다는 자긍심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둘 다겠지.


솔직히 나 아니면 누가 이렇게나 완벽한 익명 커뮤니티를 운영할 수 있을까?


헌터 갤러리를 이용하는 갤러들이 나한테 감사하고 있을 것이었다. 


-주딱 한남충인가봐ㅠㅠ A급헌터 오빠 찌찌 왜지워?ㅋ큐ㅠㅠ

-남초커뮤 잦같다 좆팔... 여성헌터 갤러리 없어??

-길마물도 생명입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팔을 몇 번 더 그은 후 붕대로 대충 지혈해 놓은 후에야 잠들 수 있었다. 


6시까지 대기타야 짐꾼 일 받는데 미치겠네.


길드에서 치유 포션이라도 살까 생각했지만, 주딱 일로 하루에 만 원도 못 버는데 저질이 10만원이 훌쩍 넘는 포션을 사는 건 낭비였다. 


월세 낼 날도 다가오는데 더 이상 돈을 쓸 수는 없었다.


치킨은 커녕 컵라면도 못 먹는데 포션은 무슨.


고민에 더해 상처가 욱신거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대충 몸을 뒤척이다 일어나니 오전 다섯 시 반.


한여름이었지만 긴팔 점퍼를 입고 집 밖으로 나섰다. 


자해 흉터 들켜서 잘리는 것은 사양이었다. 


벌써부터 따가운 햇살이 눈을 찌르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갤을 켜서 글을 싸질렀다. 


-불속성 마물 때문에 존나 덥다 시발 사람 다 녹겠네


*


 점심 시간. 


운 좋게 친절한 파티를 만나 던전 안에서나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짐꾼에게까지 밥값 주는 파티장 누님 사랑합니다.


오늘 들어간 게이트는 D급 게이트.


강해봤자 고블린이나 나오는 게이트라 그나마 안전하게 게이트 중간까지 갈 수 있었다. 


실적을 증명해 줄 고블린 귀와 돈 되는 마석만 짐에 넣으면 되는지라 힘도 그렇게 들지 않았고.


시스템이 드디어 헌터 갤러리 주딱의 노고를 알아 주는 건가 싶었다. 


[띠리링-]


그때 구닭다리 40년대식 스마트폰이 울렸다. 


[엄마]


요즘 엄마 사는 동네에 게이트가 많이 열린다는데 괜찮으시려나.


아무래도 불안이 가시지 않아 눈치를 보며 통화 버튼에 손가락을 들이댔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편하게 전화 받고 오세요."


마음씨까지 비단결 같으신 파티장님께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전화를 허락해 줬다. 


다른 헌터들 같으면 짐꾼 주제에 싸가지가 없다면서 갈궜을 텐데.


오늘은 뭔가 되는 날이라 생각하며 밝게 인사했다. 


"여보세요."


[XXX 씨 아드님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오늘 S급 게이트가 열려서 어머님께서 중태에 빠지셨는데, 보호자가 아드님 뿐이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어, 엄마가요?"


"게이트 보스인 파이어 드래곤의 수하들이... 으아아악!"


[(경고)저격글이 올라왔습니다.]


구급대원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뭐? 저격글?


분탕은 쳐도 저격당한 적은 없었는데 무슨 일이야?


"여보세요? 괜찮으세요?"


[뚜- 뚜-]


"짐꾼님! 조심하세요!"


콰쾅-


갑자기 게이트 안 동굴에서 폭발음이 울리더니 천장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동굴 천장을 뚫고 날아다니는 드래곤 한 마리가 파이어 파티원들과 짐꾼들을 향해 브레스를 뿜고 있었다. 


"으아악!"


운 없게 드래곤 바로 밑에 있던 헌터들이 불을 맞고 재가 되어 스러져 갔다. 


이게 뭐야.


분명히 D급 게이트였는데. 


나 같은 허접한 헌터도 쓰러뜨릴 수 있는 고블린만 나와야 했을 텐데.


왜 S급 마물인 파이어 드래곤이 나오는 거지?


변종 게이트인가?


"놈은 아직 살아 있군..."


온 몸에 불을 휘감은 파이어 드래곤의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우리 파티 중 누군가가 드래곤의 심기를 거슬렀나? 


드래곤의 기분을 불편하게 만들 강한 헌터는 이 중에 없을 텐데. 


"위대하신 용이시여! 도대체 어떤 연유로 연약한 인간들을 핍박하시는 겁니까!"


파티장이 드래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안 꿇으면 우리도 죽일 것 같아서, 파티원들과 짐꾼들은 슬금슬금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녀의 어깨는 부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파티장은 S급 마물 앞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물었다. 


놈은 마음에 들었다는 듯 콧김을 뿜으며 대답했다. 


"헌터 갤러리 주딱 놈이 감히 이 몸을 저격했기 때문이다."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내가 미쳤다고 드래곤을 저격해?


헌터 갤러리 능력을 각성하고 쓴 글이 하도 많아 도대체 무슨 글이 드래곤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감히 필멸자 주제에 더위 하나 못 참아서 이 몸을 모욕해? 주딱 네 이놈! 어디 있느냐!"


놈은 분노를 터뜨리며 발을 굴렀다. 


동굴 위에 붙은 종유석들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잘못해서 맞으면 피떡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지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어떤 글이 위대한 드래곤을 분노케 했는지 떠올려야 했다. 


잠깐, '더위 하나 못 참아서'라고?


나는 머릿속으로 갤러리를 띄워 글을 찾아냈다. 


-불속성 마물 때문에 존나 덥다 시발 사람 다 녹겠네

-글쓴이 : ㅇㅇ(주딱)


이러다 다죽어~


ㄴㅇㅇ : 하찮은 인간 주제에 드래곤을 모독해? 반드시 찾아내 사지를 찢어 주겠다!

ㄴㅇㅇ : 주딱 잘가...



세상에 불속성 마물이 지 하나뿐인가.


어이가 없었지만 반항할 수단은 없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죽어라!"


아무리 화를 내도 내가 나서지 않자, 화가 난 드래곤이 날개를 한 번 휘저었다. 


화르르-


방금 뿜은 파이어 브레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센 불길에 맨 앞에 있는 파티장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살아남았다. 


"으아아악!"


파티장이 죽자 패닉에 빠진 헌터 한 명이 도망갔다. 


그 비명을 신호로,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파티원들은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드래곤의 화력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죽을 힘을 다해 달리는 파티원들이 놈의 만들어낸 불에 타며 고통에 찬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그들을 구할 수 없었다. 


"제발... 제발... 엄마라도 보게 해주세요, 시발!"


나는 활활 타는 동굴마냥 불타는 갤러리를 확인하며 도망쳤다. 


눈에 엄마 얼굴이 아른거렸다. 


나를 욕하는 글들과 그새를 틈타 혐짤을 올려 대는 분탕들을 처리하려면 팔을 썰어야 할 것 같았지만, 일단은 살아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무릎 꿇은 행렬 맨 뒤에 있어서 게이트 밖으로 나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살아남았다. 


나는 게이트 안으로 뛰쳐나가자마자 목청을 높였다. 


"아, 안에 파이어 드래곤이 있습니다! 제발 누가 길드에 지원을..."


간곡히 도움을 요청했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밖에 있는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갤러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창을 띄워 갤러리를 확인했다. 


파티원 모두가 죽었는데 살아남은 유일한 짐꾼.


사람들은 내가 파티 몰살의 원흉인 헌터 갤러리 주딱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새로고침 버튼을 한 번 누르자, 새 글이 하나 올라왔다.


-어리석은 주딱 놈아, 게이트 밖으로 간다고 살아날 성 싶으냐?


*


 -주딱<-병신새끼면 개추ㅋㅋㅋㅋ

-주딱 신상 떴다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주딱

-이게 헌터 갤러리? 이게 헌터 갤러리? 이게 헌터 갤러리?

-주딱 사람 새끼 맞냐?


나는 죄라도 지은 것마냥 얼굴을 가리고 엄마가 사는 동네에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 앞에 하나같이 헌터 갤러리 창이 떠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욕하고 있었다. 


"그러길래 왜 주딱 달고 드래곤을 욕해?"


"죽은 파티원들만 불쌍하게 됐네."


"대형 커뮤 완장이면 조심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들이 빡빡하게 서 있는 지하철.


바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손톱으로 미친듯이 붕대에 가려진 상처를 긁었다. 


누구 덕분에 표현의 자유를 얻었는데.


누구 덕분에 잡혀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데.


고작, 고작 게시물 하나로 내 능력과 헌신이 부정당하고 있었다. 


"아, 시발. 주딱새끼 천안문하네."


옆에 있는 남학생이 중얼거렸다. 


순간 녀석이 주딱이 나라는 것을 알아냈을 까봐 숨이 찼다. 


"허억, 허억..."


"뭐예요, 아저씨. 기분 나쁘게... 뭐야!"


투둑, 툭.


손톱으로 긁은 상처에서 나온 피가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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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상태창이 눈 앞에 나타났다. 


내가 글을 삭제했다는 증거들이.


"저 새끼가 주딱이다!"


남학생이 나를 손가락질 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번 역은 XX동, XX동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 왼쪽입니다.]


"잡아!"


내가 헌터 갤러리 주딱이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아프다. 


팔도 아픈데, 엄마 생사도 모르는데 이렇게 쫓기고 있다니.


할머니도 지워 줬는데. 


할아버지도 지워 줬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갤러리를 지킨 사람은 나였다. 


몸을 다쳐 가면서.


고통을 참아 가면서.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나를 죽이고 싶어 한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띠링-


[XXX씨 사망했습니다. XX병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가 왔다. 


"엄마."


나는 달리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외동아들이라는 놈이 엄마 임종도 못 지켜 주고...


나는 도대체 왜 살아온 거지?


"넘어졌다! 잡아!"


나를 잡기 위해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퍼억-


스킬이 담긴 발차기를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죽는다.


나를 때리는 무리 중에 나보다 강한 헌터도 있을 테니.


"죽어!"


"이 쓰레기 같은 새끼!"


죽어가면서까지 마음에 상처를 입어야 하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갤러리를 켰다. 


그 많은 갤러들 중 한 명은 나를 옹호해 주길 바라며.


-지금부터 완장찬양을 시작합니다


역시 누군가는 내 노력을 인정해 줬구나.


안심하며 글을 누른 순간.


익숙한 구도, 익숙한 배경.


그리고 익숙한 '할머니'.


-찐인줄 알고 싱글벙글 들어온 병신 주딱이면 개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