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두통에 머리를 움켜쥔다. 요즘들어 이런 두통이 계속되고 있었다.

편두통이야 늘 겪는 공포스러운 일이지만. 이 두통은 다르다. 무언가. 먼 곳에서 누르는 듯한 

가느다라며 긴 압박감.


머리를 꾸욱꾸욱 눌러대며 나는 역으로 들어오는 KTX를 바라본다. 좀 쉬자. 얼마 없는 휴가를 투자해 휴식을 좀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 도망치는 것. 바보같이. 


나는 그렇게 KTX에 올라탔다. 푹신한 창가 의자에 걸터앉는다.

두통이 그치질 않는다. 분명 약을 먹었는데도... 차디 찬 창문에 머리를 문대며 모든걸 진정시키려 들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모든 시야가 어둠으로 뒤덮였다. 승무원이 눈치 채 줄까.


그리고 눈을 뜬다. 



소녀가 있었다. 옷이라고 할 수도 없는 누더기 옷을 입고. 지그시. 흥미로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양인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느낌의 보기 흔치 않는 인종으로 보였다.


소녀는 그러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속열차의 앞쪽 칸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몽롱한 상태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분명 승객들로 가득 찾을 고속열차의 모든 좌석들이 비어 있다... 이상한 일이다. 

무슨 일인지 물어볼 소녀는 벌써 열차의 끝까지 가 문 앞에서 멈춰서 있었다.


문을 어떻게 여는지 모르는 모양인지. 더듬어리며 당황하다. 결국 다시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나는 간단히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 주었다. 소녀는 놀란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고. 문을 바라봤다. 살짝 웃어보인 것 같았다.


"혹시... 여기 있던 사람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니?"


소녀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열차 앞으로 쭉 뻗었다.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의도는 명확해 보였다. 모든게 의문스럽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열차 객실이 이렇게 길었던가?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소녀는 그 와중에도 내 손을 잡고서 나를 꾸준히 이끌었다.

무언가. 뭔가가.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이 벌어지려고 하고 있다. 


삐꺽. 덜컹 덜컹.

흔들림. 삐꺽임. 

KTX의 바닥에서 이런 나무 삐꺽이는 소리가 나던가? 그리고 이렇게 덜컹거리던가?


의문 속에서. 나를 잡아 안내하는 소녀가 멈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소녀가 창가 자리에 앉은 터라. 나는 별 수 없이 복도쪽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낡은 좌석이다. 이상하다. 시간 여행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 창문 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녀를 바라본다. 그 아이는 가냘픈 목소리로 단 한마디를 꺼냈다.


"...부탁해."


그 한 마디를 들은 순간. 다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정신을 잃을 것만 같다...

무엇인가. 알아버린 듯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이. 이봐! 잠꾸러기. 일어나 봐!"


분명 다른 언어의. 그렇지만 어째선지 이해할 수 있는 목소리. 그리고 나를 흔들어대는 손. 나는 다시끔 정신을 차린다.


그 애는 어디가고. 왠 서양인 소녀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탔던 열차는 아니였다. 내가 아는 구형 전철도 이렇게 낡진 않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열차를 잘못 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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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느낌의 도입부로 시작하는 피어 앤 헝거 2 패러디 없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