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오후.

그럭저럭인 저녁.

동네를 거닐며 해가 지는 모습을 본다.

해질녘.

노을이 아스팔트 숲을 덮고, 거리가 군청색으로 물든다.

푸른 색.

나는 불현듯 오싹해졌다.

왼팔의 안쪽이 미칠듯이 간지러워지는 것이다.


도망치듯 건물로 돌아와,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이웃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엘레베이터에 올라탄다.

엘레베이터 안의 데스크에선 여러 이야기들이 나온다.

연예인이 바람을 피웠느니, 주가가 떨어지느니, 그래.

마약이 사회문제가 되느니 하는.

마약.

마귀 마 자에 약 약 자.

소름돋는 감각이 등을 타고 올라온다.

오늘은 운수가 없다, 운수가-


기분나쁜 하루는 잊고, 집에 가서 자자, 고 생각하며, 

도어락을 누르려고 할 때,

집 앞에, 소포가 있다.

난 택배를 시킨 적이 없다.

애시당초 이상하다.

이 택배, 어떤 스티커도 없다.

이상할 정도로 덕지덕지, 테이프로 감싸져있는 것이다.


아닐거다,

그건 이제 끊었어.

잘 지냈잖아, 잘만 잊고-

아-


나는 맨발로 급하게 문을 열고 차디찬 복도 바닥에서 택배를 들고 집에 들어와 테이프를 손으로 뜯고 테이프가 신경질적으로 늘어나고 손끝이 아프고 손톱이 나가 피가 나고 칼을 가져와서 상자를 찢고 이제는 아예 상자채 부욱, 북- 찢어버리고는-


파랑.

아, 베이비 블루.


우선 주사기가 필요하다.

다행히도 내겐 버리지 않은 주사기가 남아있었다.

나는 찬장을 열어젖혀 주사기를 찾아본다.


협십증 약, 감기약, 아스피린 정, 아달린 정, 붕대, 파스, 연고-

그리고 바늘.

비닐백에 담긴 주사기를 꺼낸다.

소름돋는 날카로움이 내 비릿한 눈빛을 반사한다.

아, 이 그리운 감각-

나는 불현듯 그리워진다.


주사기에 파랑을 넣는다.

그리고 근질거리던, 이미 너덜해진 팔에 바늘을 꼽는다.

행복 0.5 온스, AB형 1 온스.

흔들지도, 젓지 말고, 쌓아서.

한 번에 들이키고, 남은 한 모금조차, 일말의 혈구조차 으깨고 부숴서, 핥아먹듯 넣어서.

아, 끝났어.

또 해버렸어. 

어쩌지, 이거 큰일인데, 들키면,

아-


처음 약을 하던 날이 불현듯 떠오른다.

처음에는 따끔하다. 곧 꿀렁하다. 조금 더 뒤,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없다. 대뇌가 절제되는 듯한 감각. 한번 찔려버린 감각에, 잊을 수가 없다. 마음이 뚫려버린다.

온 몸의 구멍이 뚫린다. 동공, 땀구멍, 목, 요도.

어깻죽지에 핀 인공의 날개가 아찔하다. 토가 나오고 숨을 들이킨다. 숨을 쉴 수가 없다. 틈이 없다.


아-

나는 또 중독되어버렸다, 찔려버렸다.

이성은 거부하지만 새겨진 몸은 솔직하다. 

화학적 도취. 선악과의 편린.

나는 무릉도원에서 천도복숭아를 한움큼 베어물었다.

뇌가 녹아버렸다.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갈 수 없다.

몸이 꼬인다. 접히고, 용접되었다.

녹아내린다. 또 가버렸다. 아릿할 정도로 달콤하다. 

바람이 불어온다. 싸늘한 바람- 

찔려버릴 정도로 차다.


몸을 섬뜩한 철봉에 기댄다. 

순간 휘청거린다 - 나는 떠오른다.

이 푸르른 아스팔트 숲을 나는 날아오른다.

한 평의 해안선, 나는 이걸로 족하다.

타나토스가 유혹하고,마왕이 손짓한다.

주마등이 스친다-

어리던 시절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프란시스 잠, 마리아 릴케-

나는 찰나의 시인이다.

큰 굉음이 덮친다. 붉은 색이 따뜻하다.

노을이 떠오른다. 따뜻한 색이다.

난 온 구멍을 열어젖혀 햇살을 쬐인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낮잠 잘 시간인가 보다.

면전 우유도 이불도 없으나 몸을 뒤척여 편안하게 눕는다.


노을이 지고 어둠을 이불삼아 덮는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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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도 맥락도 없지만 약빨고 죽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대리만족이랄까요.

명목만 대회지 자기만족입니다.

좋은 밤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