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벨 중에서 기괴한 플롯을 지닌 소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그게 바로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쿈'은 자신의 주위는 항상 따분한 일상이 이어질거라 믿고 이에 대해 불만이 없는 고교생이다. 그런데 오컬트광 여고생 하루히를 만난다. 하루히는 오컬트 동아리를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강제 입부시킨다. 그리고 기이한 사건을 찾아다니지만 기이한 사건은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하루히는 쿈에게 자신이 그 어떤 특별함과도 관련없는 평범한 인간이라는게 너무 실망스럽다며 푸념을 한다. 쿈과 하루히는 그날 밤 키스하는 꿈을 꾼다. 그건 꽤나 특별한 일이다. 그러나 그 둘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서로를 무시하고 다시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다.


 너무나 평범한 청춘 연애물 스토리다.


 그런데 이 작가는 주인공의 관점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개연성 없는 부조리한 서술자들을 투하했다.

 하루히가 모은 오컬트 동아리 부원들, 유키, 이츠키, 미쿠루가 바로 '부조리한 서술자'들이다. 이들은 독자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평범하고 시시한 이야기를 자꾸만 기괴한 스토리로 날조하려 시도한다. 


 '하루히의 정체는 이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가능한 변칙존재다.' (나가토 유키의 관점)

 '하루히는 이 우주를 창조한 신이다.' (코이즈미 이츠키의 관점)

 '하루히는 시간의 흐름 사이에 생긴 균열의 의인화다.' (아사히나 미쿠루의 관점)

  이들은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걸 증명하기 위해 독자에게 제각기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나가토 유키는 우주 최고의 지성체로써 현실공간을 조작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한편 이츠키는 초능력을 써서 가상공간 안의 괴인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한편 미쿠루는 10대 버전과 20대 버전 두가지 모습으로 등장하여 자신이 미래인임을 독자에게 증명한다.


  유키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은 증명되었다.

 이츠키가 초능력자라는 사실도 증명되었다.  

 미쿠루가 미래인이라는 사실도 증명되었다.


 하지만 이런건 하루히와는 아무 관계없는 증명이다. 이들이 특별한 존재라는게 하루히가 특별한 존재라는 증명으로 이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작중 하루히는 정말로 그 어떤 특별한 능력도 보여주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독자는 저 세가지 관점을 계속 신경쓰며 하루히를 왜곡된 시선으로 보게 된다. 하루히의 정체는 대체 뭘까. 대체 누구의 관점이 맞는걸까 하면서. 하루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마지막까지 누가 옳았는지 정답을 내리지 않는다.

 모든 관점이 충돌하는 상태로 이야기의 막을 내릴 뿐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플롯이 굉장히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관계는 지극히 평범하다. 그런데 이 둘의 평범한 관계를 자꾸 주변에서 '기괴한 오컬트적 관계'로 재해석하고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하루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독자에게만 그들의 관점을 강요하고 있다. 내 말이 맞으니까 무조건 내 말을 믿어라고. 아니 이게 대체 뭐야.


 게다가 저 해괴망측한 오컬트에 자꾸 가서 이 소설을 읽다보면 진짜 중요한 전개를 독자가 놓치게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그건 미쿠루가 하루히 앞에서 일부러 쿈을 유혹하여 질투를 유발시키는 장면이다.


 이 소설은 이 장면을 독자가 놓쳐버리게 설계되어있다.


 미쿠루가 남주를 유혹하고 하루히를 따돌릴 때쯤 되면 독자는 '씨발 하루히의 정체가 뭐지? 저거 일단 인간은 아니고 괴물이지?'하고 하루히에게서 심리적인 거리를 두고 있거든. 그래서 미쿠루의 유혹을 즐겁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 미쿠루가 귀엽지하고 흐뭇해하며 읽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무방비하게 읽으면 하루히가 어째서 점점 더 우울해져가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하루히가 우울해하는건 쿈 때문이다.

 쿈을 좋아하는데 쿈이 미쿠루에게 푹 빠져 자신을 봐주지 않으니 우울해하는거다.

 

 심지어 독자도 하루히를 보지 않도록, 작가는 세명의 서술자를 이용해 끊임없이 독자를 가스라이팅한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 아니야. 이 소설은 SF오컬트괴기소설이야'하고. 


 하지만 이거 연애소설이다.

 이 소설은 하루히가 왜 우울한지를 탐구하는 소설이고 그게 '사랑' 때문이었다는 결론을 숨겨두고 있는 연애소설이다.
 정말로 중요한 건 쿈과 하루히 사이의 사랑일 뿐, 하루히의 정체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거지. 

  

  서술적 장치를 통해 독자가 해답에 도달하는걸 필사적으로 방해하는 그 구조가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