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릭스 라이언하트의 사주팔자가 머릿 속으로 들어온다.


라이언하트, 사자의 심장.


용감하다의 한자인 감히 감, 용감할 감을 쓴 모양인데 그런 성씨가 어디있단 말인가.


컴퓨터 한자열 1번에 있는 걸 갖다 붙이는 것 마냥 억지로 해석해버리니 김이 팍 식는다.


[사주팔자 (EX)]


상대방의 가문 내 이름과 년, 월, 일, 시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스킬로 어떻게든 이어붙였지만 이세계의 스킬이 천지신명님의 위대한 뜻을 알기엔 한참 부족하다.


그래도 써야겠지.


"누가 지은 건지. 이름이 참 못났군."


"뭣, 라이언하트 가주께서 주신 이름이거늘!"


"그래서 못났다는 거다. 아름다울 미는 이름에 쓰기 적합하지 않은 한자다."


"한자...? 무슨 소리냐. 가주님까지 들먹이고 엉뚱한 이야기로 돌릴 생각은 하지도 마라."


"내게 맡겼으면 더 좋은 이름을 지어줬을 거란 이야기지."


동급생이라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긴 하지만 사주팔자와 달리 이름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서책에 엮은 붓을 꺼내 허공에 그었다.


"아름다울 미의 뜻은 좋으나 이름으로 쓰일 한자는 아니다. 그런 이름은 말년이 좋지 못한 이름이라서."


미인박명이라 하지 않는가.


사주명리학의 근본은 수나라에서 온 한자풀이라서 사자성어나 고사에 민감하다.


사자성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핵심만 엮어 교훈으로 만든 것들이라 언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의 이름엔 뜻이 명확하고 직관적인 이름은 되도록이면 피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부정적인 씨앗은 심지 않고 긍정으로 부정마저 덮어둘려는 선조들의 노력이다.


사주팔자를 상기하며 붓을 움직이자 지나간 곳엔 검은 먹물이 자국을 남겼다.


허공에 그림이 둥둥 떠다니는 기이한 모습에 칼릭스가 소리쳤다.


"놈! 아직 시합이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수작질을 하다니!"


시합이라.


이건 일종의 괴롭힘이었다.


멜린 영애를 쳐다봤다는 이유로 음험한 속내를 내비췄기에 교육시켜주겠다는 괴롭힘.


경기장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결투재판으로 정당함을 알리겠다는 미개한 방식이다.


그럼에도 내가 꿋꿋이 여덟 개의 한자를 적고서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칼릭스의 곧은 눈썹이 살짝 내려갔다.


"칼릭스 라이언하트, 서력... 아니 제국력 239년 7월 22일 10시에 출생했군. 맞나?"


"그걸 어떻게..."


"리처드 라이언하트, 엄격한 아버지와 벨니아 라이언하트, 유순하신 어머니 아래서 자랐군. 하지만 네 사주에 불이 넷이나 들어가니 불이 나무와 물을 다 태워먹을 사주다."


"그래, 감히 남작 가문을 뒷조사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그리고 아까부터 한자니 뭐니 무슨 소릴하는 늘어놓는 거냐."


"네가 없으면 라이언하트 가문이 더욱 번성했을거란 의미다."


사주명리학은 한 명을 아는 것만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불명확한 이론에 MBTI가 수나라에서 나왔으면 맹신했을 법한 이들이 어떻게 입을 털고 살겠는가.


이는 일종의 상담이며 남의 집 족보를 보는 것이다.


역술인들이 사주풀이를 나무에 비유하기를 튼튼한 뿌리가 있어야 기둥이 올곧게 서고 풍성하게 잎사귀를 피우며 탐스러운 과실을 맺는 과정이라 말한다.


어떤 성정을 가진 할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은 아버지가 나에게 내리베풀고 후대엔 어떤 자식을 낳겠냐고 묻는 것이 사주의 본질이다.


하지만 부모나 조부를 본 적은 없으니 사주팔자를 기반으로 여느 집처럼 예시를 든다.


기사가문이니 아버지는 엄격할거고 중세시대니 어머니는 유순한 것이 미덕이리라.


나무와 물이 고루 있는 집안이라 차가운 아버지의 성정 아래 고압적인 귀족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뒤로 나무처럼 포옹하는 어머니의 그림이 그려진다.


다만 제 성질머리 때문에 칼릭스가 불붙은 망아지처럼 날뛰지만 불을 끌만한 물이 없어서 집안에 화를 불러일으킨다.


당장 앞만 봐도 칼릭스는 성격이 불같아서 지랄맞고 성질이 급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사냥하는 들개마냥 꼬리를 치켜세우지 않나.


놈의 사주에 불이 4개인 건 사주를 안 봐도 알 정도였다.


"네 사주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용두사미라고 한다. 운이 어렸을 때 고점을 찍고 서서히 내려가서 말년이 안 좋은, 네 이름같은 사주지. 너는 유복하고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이쁨과 귀함을 온 몸으로 받고 부족한 것 없이 살았을거다."


귀족이라면 당연한 얘기였다.


아무리 낮다고 해도 계급사회인 이상 남작이 95%이상의 평민보다 못할 일이 없으니.


"그 사주에서 두 번의 변곡점이 있다. 11살즈음에는 적은 물임에도 크게 데였지. 이는 사람관계를 뜻한다. 오줌이라도 쌌다가 혼났거나, 가출을 시도했다 어머니께 들켰거나. 13살때는 큰 물에 화를 입었다. 이는 큰 재해니 너희 가문 근처에서 홍수라도 났었나보군."


흠칫 어깨를 떨었다.


거짓말을 못하는 건지 맞춘 게 신기한 건지.


어느쪽이건 동조하는 꼴을 보아하니 들어맞은 쪽으로 추가 기울었다.


"이후로는 쭉쭉 상승세다. 나이 스물에 많은 사람들 속에서 존경과 경외를 받지만 여성 편력이 심하고 남작의 장자치곤 결혼도 늦다, 동생이 있으면 네가 가주되진 못할거고. 36살에 결혼해서 슬하엔 자식이 없으며 56살이 되면 급사할 팔자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도 축하해줄 일은 있지. 네 사주엔 자식이 셋이나 있다. 18살에 두 명, 도화살이 꼈고 남 위에 군림하는 놈한테 자식이 없을리가 없지. 누구랑 잤나? 메이드? 창녀?"


"지랄하지마라! 그건... 그건 한순간의 치부일 뿐이다. 멜린! 지금 내겐 너밖에 없어!"


적을 앞에 두고도 뒤를 바라보는 칼릭스 라이언하트의 뒷모습은 처량해보였다.


이때까지 멜린의 기분에 맞춰 남을 괴롭히고 결투재판을 벌인 것만 몇 번인데, 우여곡절 끝에 얻은 파트너를 이렇게 잃을 순 없다고.


동시에 자작이라는 신분 상승의 기회를 놓칠 수 없던 칼릭스였지만 오히려 본인이 인증하는 꼴이 되버렸으니 상황은 처참했다.


"그리고 21살에 한 명. 21살이면 네가 지금..."


한창 칼릭스의 우스운 과거로 소란스럽던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멜린 영애에게로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남작 영애의 임신이 공개적으로 밝혀지는 것 아닌가.


누군가와 붙어다니고 연애한다는 소문이 돌아도 소문은 어디까지나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뒤에서 오가는 소리들은 아무리 부풀려져도 소문이라서 잡아떼면 그만이겠지만 방금도 칼릭스의 고백을 듣지 않았나.


두 창녀의 자식을 봤음에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막았다는 사실을.


사주풀이에 공신력이 생겨버린 지금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한정되어 있었다.


칼릭스를 버리거나, 임신한 것을 인정하거나.


칼릭스와 잘 어울리는 황금머리에 롤빵머리 아가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기장을 훑었다.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에 배를 감싸며 호다닥 뛰쳐나갔다.


"나, 나는 아니야!"


"메, 멜린!"


뛰쳐나가는 멜린을 바라만 보던 그는 닭쫓던 개 신세가 되어 검을 늘어뜨렸다.


"사람은 덜 됐는데, 아랫도리는 제 일을 톡톡히 하는군."


"이 새끼가!"


칼릭스는 내 말에 곧바로 달려들었다.


흐트러진 자세에서도 곧바로 치고나오는 빠른 공세는 아카데미 내 검술 2위라 자부할만한 실력이었다.


눈으로는 채 따라잡지 못할 가공할만한 속도.


하지만 오늘 내 일진은 조금 좋은 편이라서.


이세계의 사주풀이는 신탁에 가까운 힘이 있어 대운이나 세운보다 일진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일간 [천을귀인]


옥황상제께서 나를 내려다보시고 보살피는 최고의 운세는 스스로도 믿지 못할 움직임으로 검을 피하게 만들었다.


우측 위에서 사선으로 내려베고 횡을 긋고 점을 찌른다.


가슴께를 스치고 배를 지나쳐서 목 끝에서 칼침이 번들거린다.


식은땀이 흐르는 와중에도 내 몸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급하게 하면 될 일도 그르치게 된다. 네 꼴을 봐라, 옷 깃 한 번을 스치지 못하는군."


"닥쳐라!"


"내가 질 것 같진 않으니 네 일운도 봐주도록 하지."


들어오는 검과 동시에 쥐고 있던 책이 파라락 소리를 내며 책장을 넘겼다.


별이 빛나고 허공에 적었던 한자들이 책에도 한 획씩 그려진다.


불길함을 보여주는 붉은색이 형형하게 빛났다.


"오늘의 네 일진은 인사신인 삼형살이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코가 깨질 살 중의 살이다."


인사신은 호랑이, 뱀, 원숭이를 뜻해 포악하고 사납기 그지없는 생물이다.


그러한 셋이 뭉쳤으니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저돌적이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참지 못해서 본인을 해하는 경우가 많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릭스의 굳건한 하체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발목이 뒤틀렸다.


무게 중심이 엇나가 초식의 모양이 사라지고 칼이 뒤뚱거리다 청량한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쿠당탕


이내 우스꽝스럽게 무너지는 칼릭스.


코가 깨지진 않았지만 소리만 들어도 팔다리 중 하나는 부숴진 게 확실했다.


"끄으으윽..."


어처구니 없는 결말에 심판조차 흐리멍텅한 표정으로 구경하는 것을 보곤 주위를 둘러봤다.


발목을 붙잡고 우는 소리를 내는 칼릭스를 본 사람들은 천천히 경기장을 벗어났다.


승리를 축하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남작 영애의 가십거리가 터졌으니 누구보다 이 사실을 빨리 전해야한다는 비둘기가 반, 그리고 귀족이 졌는데 환호했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 지 알 수 없는 게 반.


심판 역시 결과도 말하지 않은 채 도망쳤다.


*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이 모두 경기장을 떠나고 적막만 남은 곳에서 칼릭스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부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진짜로 팔까지 부숴지면 검사로서 하루 이틀의 요양으로 끝날 게 아닐 것 같아서.


"그래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남작의 가문을 먹칠하고 비난했으며 장자의 치부를 까발리고 미래 부인으로 맞이할 멜린 자작 영애를 추락시킨 이가 아직도 경기장에 남아있었다.


코를 쥔 칼릭스 앞에.


"코는 아직 안 깨졌는데. 부적이라도 쓸거냐?"


그는 영문모를 노란 종이를 팔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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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실 천을귀인, 삼형살은 하루 일진이 아니라 인생을 통튼 운명에 쓰임.

원래라면 칼릭스에게 도화살에 삼형살끼고 오늘 일진은 물이 불을 이기는 자오충이니 대흉이다, 몸을 조심해라 정도가 적당함

임펙트가 없어서 임의로 바꿈.

ps2) 사실 이것도 아닐 수 있음 공부하다보니 배워야할 게 많아서 지적받을 수도 있음



첫 글이라 어떻게 써야할 지 몰라서 일단 대강 써봤음


사주팔자를 신봉하는 엄마의 강요로 용한 역술인의 수발을 들고 하루 종일 있다보니 귓동냥으로 듣고 간간히 수업받던 남주가 빙의한 웹소는 어떨까


온갖 살이 다 껴있는 기사 여주를 만나서 놔두진 못하고 해주를 위해 주인공이 여주 이름을 다르게 부르고 따라다니면서 덜렁이 수준으로 만드는거지

이름이 제 힘을 발휘 못하는 글자로 이루어진 걸 억지로 뜯어고친거라 웃긴 이름인데 주변에서 잘 어울린다고 여주 이름을 남주가 부르는 장붕이로 부르기 시작함

원래 바꾼 이름은 주변 사람들이 불러줄 때부터 진정한 의미를 가짐

미친놈 소리듣고 이름도 모르는 머저리 소리 들어도 구해주는 전개 순애거든요


따까리가 주인공한테 오늘 죽은 목숨이랬다가 천기누설로 생사부에서 삭제된다던가


흑막 나왔더니 부모에 해당하는 월주가 없어서 아니 애미 애비가 없는 사주팔잔데 어떻게 살아있냐? 소리치고



이런 거 구상하고 재밌어보인다 생각했는데

사주팔자는 생각보다 자극적이지 않고 좀 슴슴한데다 다 배우고 써먹을 수 있으면 철학관 차리는 게 돈 더 벌 거 같아서 못 쓰겠더라


누가 써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