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났어 더스트?"


월요일의 너는, 웃으며 나를 맞이한다.
이건, 그런 약속이기 때문에


"뭐야. 왜 물었는데 대답을 안 해! 설마 어제 나 혼자 축제 다녀온 거 때문에 아직도 삐친 거야?"


석양처럼 주홍빛을 띠는 그녀의 풍성한 머릿결이 한차례 흔들리며 따뜻한 해바라기의 향기가 났다.


"더스트! 어제 뭐 잘못 먹었어? 아침부터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건들면 부러질듯한 가냘픈 손끝이 내 뺨에 닿은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답했다.


"미안. 앨리스. 잠이 덜 깼었나 봐."


얼떨결에 내뱉은 변명치곤 그럴싸했지만, 그녀는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얇게 뜨고선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야? 어제 일 때문에 삐쳐서 내 말 무시한 건 아니고?"


"정말 아니야. 난 어제 일 때문에 전혀 삐치지 않았어."


-오히려.


쓸대없는 말을 내뱉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내 눈가를 유심히 바라본 뒤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음! 눈가가 안 떨리는 거보니 거짓말은 아니네. 더스트 너는 거짓말을 하면 눈가가 떨리는 버릇이 있더라?"


"...다음부턴 안대라도 들고 다니던지 해야겠네."


 만족한듯한 내 손목을 잡은 뒤 음식이 차려진 탁자로 날 이끌었다.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와플이야! 큰맘 먹고 딸기도 넣었어!"


"매일 아침이 와플이라면 일찍 일어나는 보람이 있을 텐데."


"아침마다 기름 반죽 치대는 내 입장은 생각 안 하는 거야?"


장난스럽게 눈가를 찌푸리는 그녀의 모습에 작게 미소 지은 나는 자리에 앉아 와플을 먹었다.


와플을 한입 머금자,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단맛이 혀끝을 자극한다.
분명 설탕량 조절을 실패한 것이다.


익숙한 일이다. 매번 그녀의 당분 넘치는 와플을 맛보았기에 이제는 이 달달함이 없으면 어색할 정도다.


"너무 달아. 설탕을 많이 넣은 거 같은데."


"그래? 으음- 다음부턴 좀 적게 넣어볼게."


익숙한 문답이 오간다.
달디단 와플을 맛본 탓에 새콤한 맛밖에 느껴지지 않는 딸기를 먹으며 식사를 마쳤다.


"그러고 보니. 부엌 찬장에서 열쇠를 발견했는데 '지하실 열쇠' 라고 적혀있더라구."


"말 그대로 지하실 열쇠야."


"우리 집에 지하실이 있었던가?"


"우리 집은 아니고, 직장 지하실 열쇠야."


파르르-


빈 그릇을 치우느라 떨리는 내 눈꺼풀을 보지 못한 그녀는 이내 내게 되물었다.


"직장 지하실 열쇠가 왜 부엌 찬장에 있어?"


"그곳에 열쇠를 둘 때까지만 해도 부엌 찬장이 아니었거든."


"가끔 더스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니깐."


어깨를 으쓱인 그녀는 흥미를 잃은 듯 뒷정리를 끝마친 뒤 다가와 말했다.


"그럼. 오늘은 뭐하고 놀까?"


살아온 세월에 반비례하게 천진난만한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자 느꼈다.


오늘도 언제 나와 같은 월요일이 시작됐음을,



-




수요일의 너는 멍한 표정으로 날 맞이한다.
이건, 그런 일상이었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앨리스?"


"아."


나의 물음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잠깐 생각을 했어. 우리가..어제 뭘 했었는지 말이야."


"어제는 비가 와서 온종일 집에 있었잖아."


"..그렇네..비가 왔고..하루종일 집에 있었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차례 내 눈가를 바라보는 그녀.
눈가가 떨리지 않음을 확인한 그녀는 안심한 듯 한숨을 쉬었다.


"요새 들어 자꾸 깜빡하는 빈도가 늘어난 느낌이야."


"책에서 보니까. 기억력을 올리는데 중요한 게 딱 두 가지가 있다던데."


"그게 뭔데?"


그녀의 물음에 나는 어제 먹다 남은 도넛을 반 쪼개어 u로 스마일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단 걸 먹어 뇌를 활성화 시키기, 웃음을 자주 짓기"


"흐음- 단 걸 많이 먹는 건 알겠는데, 웃음이라~"


자연스럽게 내가 나눈 반쪽짜리 도넛을 머금은 그녀는 이내 손뼉을 치며 말한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


"어차피 평소에 웃음을 늘려봤자 소용없을 것 같으니, 주말이 끝나서 가장 암울할 월요일에는 서로 웃으며 맞이해주는 거!"


그녀는 이내 손가락으로 입가를 들어 올려 웃음 표정을 지었다.


"좋아! 내가 깜빡할 수도 있으니 네가 꼭 기억했다가 내가 월요일에 웃지 않으면 말해줘야 해! 약속이야!"



"...그래"


언제나와 같은 수요일임을 상기시켜주는 약속.


그 약속을 마음속으로 되새긴 나는 생각했다.



또다시 수요일이 시작되었음을,



-



"...더스트"


금요일의 너는 떨리는 얼굴로 억지로나마 미소를 지은 체 나를 맞이한다.
너는, 아직 약속을 기억하였기에


"..앨리스"


"아침부터 미안하지만...약속하나만 해줘."


"어떤 약속?"


"오늘 하루 동안은…. 거짓말 하지 않기로"


또 하나의 약속이 늘어났다.
나만이 기억하고 있을, 늘어남에도 늘지 않는 약속이.


"약속할게."


"...."


내 눈가가 떨리는지 조심스럽게 확인한 앨리스는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와 앉은 뒤 말했다.


"나...좀전에 지하실에 다녀왔어."


"그렇구나."


새삼스레 놀라진 않는다.
그녀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었기에


"목요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렴풋이 지하실로 들어갔던 기억이 나서, 조금...무섭고...뭔가 그래서..지하실에 들어가 봤어."


"그래서?"


떨고있는 그녀를 안심시키며 조심스럽게 쓰다듬자 그녀는 조금 진정한 듯 심호흡한 뒤 이어 말했다.


"작은- 재단이 있었어. 뭔가 꺼림칙하게 생겼는데, 더더욱 이상한 건...그건.."


"..."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그녀를 좀 더 기다려주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선 흘러내듯 말했다.


"재단 위에 누워있는 게...나였어...내가.. 눈을 감고 누워있었어..."


"..그랬구나."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음에도 평탄한 어조로 말을 하는 나에게 앨리스는 고개를 돌리고선 물었다.


"더스트- 너는 그 재단에 대해 알고 있던 건 거야? 그건...도대체.."


"앨리스"


나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내 눈동자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답했다.


"그건 전부 다 허상이야. 이 집에 지하실 같은 건 없어."


"...뭐?"


"너는 헛것을 본 거야. 분명 어제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우리 둘이 과음을 하였기에 아직 술이 덜 깬 거지."


나의 말을 듣고선 어안이 벙벙해 보이던 그녀는 이내 내 눈가가 떨리지 않음을 확인하곤 중얼거렸다.


"거짓말이...아니네.."


"거짓말이 아니야. 앨리스. 아직 숙취가 있는 거 같으니 조금 자고 일어나는 게 어때."


"그래..그래야겠네...더스트. 나 잠시만 잘게."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걸어가 침대에 풀썩하고 누운 그녀는, 이내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읏"


그녀가 잠들자마자 마비 기운이 사라진 듯 부작용으로 아려오는 눈가를 매만지던 나는 익숙한 듯 그녀를 안아 들은 뒤 지하실로 향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최대한 천천히,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편한 게 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발걸음을 움직였다.


"음.."


중요한것이 빠져나간 듯 깃털처럼 가벼운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무릎이 시큰거린다.


분명 20년 전까지만 해도 거뜬히 안아 들었거늘.



-



일요일의 너는 싸늘한 껍데기만 남긴 체 날 맞이한다.
이건, 그런 저주이기 때문에

이틀에 한번. 마나를 불어넣음에도 일주일을 체 못넘긴다.


"그래."


잠자듯 누워있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은 어제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더 이상 작은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


"...."


아니.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더 보인다.

찬란하던 금발은 어느새 푸석푸석해졌으며, 보드라운 볼살은 홀쭉해져 생기를 잃었다.

어렸을적 보고 설렜던 붉은 홍채는 닫혀있어 볼 수조차 없다.


"주제에 감상에 젖었군."


모든것이 멀쩡하였던 순간이 떠올 것 만 같았기에,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앙상한 손끝에 달린 반지를 빼낸다.


-화르륵


반지를 빼자마자 타오르는 그녀의 몸.

화려하고 짧게 타오른 뒤 재(더스트)만을 남기고 간 모습이 마치 성냥 같다고 느껴질 때쯤 불이 꺼졌다.

"...."

그녀가 사라졌음을 확인한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앨리스에게로 향한다.

"니가 살아서 지금의 나를 봤다면 어땠을까. 미련한 약속에 목매어 멍청한 짓을 반복하는 나를 보았더라면.."

....

부패방지의 마법을 걸어 생전의 모습 그대로 잠든 앨리스.

그 모습에 더 이상 흐를 눈물마저 메마른 노인은 자리에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살아서..그 두 눈으로 나를 보았더라면..."


멍청한짓 그만두라며 혼내주었을까?



소리가 되어 내뱉어지지 못한 후회가 목구멍을 맴돌며 쿡쿡 찌르는 아픔을 만들어낸다.

그 고통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이내 심장에 도달하였고, 타는 듯한 심장의 고통이 이어지자 심장이 흘리는 투명한 피가 눈을 타고 흐른다.


"...이제와서는 의미 없는 상상이지..."

성냥과도 같은 여인이었다.
별볼일없는 흑마법사인 자신을 받아준 여인.

그녀의 곁은 불을 피운 성냥처럼 따뜻하였고, 얼어붙은 내 심장에 불을 붙여준 뒤 사그라졌다.


그 잠깐의 따뜻함을 잊지 못해 계속해서 성냥에 불을 붙이고 있는 자신은, 어리석은 성냥팔이 소녀일 테고.

'피곤하네...미안해 더스트...조금만..조금만 자고 일어날게..'

'앨리스..! 눈 감으면 안 돼!'


'조금만...자고 일어나면...월요일이니까...다음주는..정말 멋진 일주일을 보내자..약속..해줘..'

'약속할게..그러니까 제발! 눈 감지 마!'



손안에 덩그러니 놓인 반지를 바라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마지막 약속이자 저주의 시작이었던 그 순간을.


"멋진 일주일인가"


굳이 입에 담아보았지만, 불가능한 일임에는 변함이 없다.

"바보 같은 일이로군."



그럼에도 반지를 움켜쥐어 마나를 흘려보낸 나는 청년의 외형을 덮어쓴다.

마나를 머금은 반지는 이내 여인의 형상으로 변하였고, 얼마 안 가 눈을 뜬 여인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


"..더스트? "



"앨리스"

껍데기 뿐인 그녀를 바스러질 듯 껴안자 그녀는 멋쩍은 듯 미소 짓는다.


"뭐야 갑자기- 왜 안 하던 포옹을"

"그냥. 너를 너무 사랑해서, 이 지치지 않은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해서"


내 품에 껴안긴 그녀는 미칠 듯이 떨리는 내 눈가를 볼 수 없다.

그러니 마음 놓고 듣기 좋은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그녀가 다시 시작될 일주일을 멋지다고 여길 수 있도록.

이 지옥 같은 속죄의 굴레가 하루빨리 끝날 수 있도록.



'거짓 없이 말하기로 약속해줘.'



문득 그녀의 약속이 떠올랐지만 상관없다.

그 약속은 앨리스와 한 것이 아닌 텅 빈 껍데기와 한 것임으로.

"사랑해 앨리스. 너와 함께하는 나날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파르르-

익숙하게 거짓을 내뱉으며 그녀와 함께 침실로 향한다.


악몽을 꾸며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월요일이 올 테니.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온다면,


"일어났어 더스트?"


너는 또 한 번 웃으며 날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