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낡은 자명종이 울리자 침대 위의 남성이 비몽사몽한 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 남성은 비틀거리며 샤워실로 향했다.


"..."


샤워를 마치고 난 뒤 거울 속에 비친 사내의 얼굴은 눈 두덩이가 음푹 들어가 척 보기에도 어딘가 아픈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내는 입가를 메만져 표정을 푼 뒤 웃는 것 처럼 가꿨다. 


빠르게 정장으로 환복 한 남편은 집을 나서기 전에 깜빡했다는 듯 말했다.


"여보, 애들아 다녀올게~"


기분좋게 집을 떠난 사내는 곧 5년 동안 몸 담고있는 익숙한 일터에 도착했다. 자기 자리로 찾아가 익숙한 모습으로 오전 업무를 손보고 있을 때 였다.


"야. 창운아. 김창운"


사내, 김창운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부스스한 머리에 뿔테가 휘어진 안경을 쓰고 있는 남성이 서 있었다.


"아. 최 과장님."


"그... 좀 괜찮냐?"


"네? 아, 이거요. 요즘 점점 눈이 퀭해지더라고요.  잠 좀 자면 괜찮아지겠죠."


"아니 그거 말고..."


"야, 최과장."


그때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그 쪽을 바라봤다. 

머리가 반 쯤 벗겨지다시피 한 중년 남성이 인상을 찌푸린 체 최과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쓸 때 없는 소리 하지말고 자리 돌아가."


"부장님 그게... 아니,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김대리 너도. 힘들면 억지로 안나와도 되니까 집에서 쉬어. 휴가 처리 해줄테니까."


"아뇨... 전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


다소 날 선 분위기 속에서 하루 업무가 시작 됐다. 김창운은 능숙한 솜씨로 보고서를 정리하고 외주 업무 또한 일사천리로 진행하며 피곤해 죽을 것 같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뛰어난 일처리 능력을 보였다.


덕분에 퇴근 시간 전에 깔끔하게 일을 마친 김창운은 정시 퇴근을 했고, 집에 가기 전 꽃집에 들려 평소 아내가 좋아했던 라일락 꽃다발을 하나 산 뒤 귀가했다.


"나 왔어~"


김창운의 밝은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으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늘도 늦나보네. 무슨 놈의 회사가 매일 야근이냐..."


김창운은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몇번 신호음이 들린 끝에 목소리가 들렸다.


"아 여보세요? 소담 어린이 집..."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이며-]


"아 맞다. 나중에 다른 번호로 알려 준다고 했던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인 김창운은 이내 졸린 눈을 비비고 식탁 위에 있던 약을 하나 꺼내 먹은 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귀가하기 전 까지만 눈을 붙일 요량으로 짧게 선잠을 청했다.


'여보~


하지만 잠들기도 전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김창운은 그녀에게 다가가 양팔을 벌리며 껴안았다.


"다녀왔어? 오늘도 고생했네. 매번 야근 하느라 힘들지?"


'괜찮아. 이미 익숙해졌어.'


'아빠 다녀왔어요!'


"응. 주희도 어서와. 오늘 어린이집 재밋었어?'


'네! 오늘은 그림그리기 했어요!'


"주희야 배고프겠다. 밥먹으면서 얘기하자."


김창운은 어리광부리는 주희를 번쩍 들어올려 식탁에 앉힌 뒤 아까 전 사왔던 꽃다발을 아내에게 넘겼다. 

햇살처럼 환한 미소를 짓는 아내의 얼굴에 김창운은 아까까지 몰려오던 수마와 피로가 모조리 날아가 버리는 듯 했다.


식탁위에 있던 전날에 먹은 음식들을 대충 치운 뒤 새로운 반찬을 꺼내 세팅한 뒤 오붓하게 가족끼리의 식사를 시작했다.


그 때 김창운은 순간 눈 앞이 흐리게 보이며 두통끼가 느껴지자 다급히 식탁 한 켠에 놓여진 약통을 집어들어 한 알을 털어 넣었다. 먹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두통이 가라앉고 시야가 다시 또렷해지자 한숨 돌렸다는 듯 길게 한숨을 쉬었다.


'또 그래? 요즘 자주 그러는 거 같은데.'


"요즘 좀 무리해서 그런가? 어떻게든 야근 안하려고 하다 보니까."


'어이구~ 서방님. 집에 일찍 오는 것도 좋지만 몸이 최우선이에요~'


'아빠 아프면 안돼!'


"흐흐흐. 걱정마. 자 밥이나 마저 먹자!"


김창운은 식사를 끝마친 뒤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들어가서 쉬겠다 한 뒤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끝마치고 집을 나서려 할 때,


툭-


"응?"


무언가 발치에 치여 고개를 내리자 어젯밤 아내에게 넘겼던 꽃다발이 식탁 옆에 떨어져굴러다녔다. 

그러곤 식탁 위를 확인하자 싸늘하게 식어있는 반찬이 그대로 담겨있는 식기들이 놓여져 있었다. 


"...바빴나보네."


기껏 선물한 꽃이 바닥에 놓여져 있고 정리조차 안되있는 식탁을 보고 살짝 짜증이 올라 왔으나, 최근 계속 야근 탓에 밤늦게 돌아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작게 한숨을 쉰 뒤 회사로 향했다.


출근하고, 최대한 제 시간에 퇴근하기 위해 노력하고, 늦게 집에 들어 온 아내와 딸을 반기며 챗바퀴 같은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날도 똑같이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보고 있던 와중 이었다. 


주르륵-


"어엇..."


코에서 뜨거운 액체가 흐르는 것을 느껴 다급히 코를 들어올린 김창운은 한순간에 서류가 피범벅이 됬기에 낭패를 봤다. 한 눈에 보기에도 심상찮은 출혈량 이었기에 사람들이 달려왔다.


"이거 금방 안멈출 거 같은데? 야 안되겠다. 구급차 부를테니까 바로 퇴근해서 쉬어!"


"하지만 부장님..."


"하지만이고 뭐고 지금 니 얼굴을 봐! 이게 사람새끼 얼굴이냐?!"


부장의 일갈에 김창운은 자리에 놓여진 거울을 들여다 봤다. 예전보다도 한층 더 헬쑥해진 안면이 피에 젖어 도저히 사람같은 얼굴로 보이지 않을 지경 이었다.


다른 직원들도 티를 안냈을 뿐, 김창운의 상태가 심상찮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주변을 감도는 분위기에 가시방석에라도 앉아 있는 것 같이 느껴진 김창운은 결국 병가를 받고 구급차까진 아니어도 집으로 가 쉬겠다 결정했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도착한 김창운은 간신히 멎은 코피에 입맛을 다시며 식탁 위에 놓여진 약병에서 약을 꺼내 먹었다.


'여보?'


"응?"


먹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그 쪽을 바라보자 아내와 딸이 이제 막 돌아온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일이야? 이렇게 일찍 돌아오고..."


'괜찮아. 이미 익숙해졌어.'


'아빠! 다녀왔어요!'


"어..."


'네! 오늘은 그림그리기 했어요!'


어딘가 겉도는 대화에 멈칫한 김창운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을 치다가 바닥에 놓여있던 리모컨을 밟았다.


띡-


그 탓에 TV에서 전원이 켜지면서 아나운서의 나레이션이 거실에 울려퍼졌다.


[OO대교 참사가 일어난지 벌써 1달이 지난 가운데, 서울시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이전의 모습을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으며...]


"저게..."


김창운은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TV 위로 시선을 돌리자 자신과 아내와 딸이 해맑게 웃는 모습으로 찍혀있는 가족사진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지금 껏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두 명의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었다.


"무,무슨...으윽!!"


극심한 두통이 다시금 시작됐다. 거칠어지는 호흡과 함께 심장이 발작이라도 일으킬 것 처럼 뛰기 시작했다.



'여보!! 주희야!!'


'아,아빠...나 아파...'


'살려줘 여보... 우리 딸 어떡해...'


머리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 십개의 차들이 이리저리 얽혀진 체 수 많은 비명과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대교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김창운은 홀로 차에서 빠져나와 다 찌그러진 차 문을 열려고 발악했으나 잠금장치가 죄다 망가져 단단하게 잠겨있는 문은 열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곧 이어 구급대원이 뛰어와 날뛰는 김창운을 차에서 떼어내고 차문을 열기 위해 작업에 들어가려는 순간 이었다.


꽈아아앙-!!


'폭발한다!! 피해!!'


'우와아아악-!!'


충격 탓에 기름이 새고 있었던 것인지, 구급대원이 미처 구조를 하기도 전에 차에 불이 붙었고 순식간에 화마가 주변을 덮쳤다.

김창운의 망막에는  차 안에서 불에 타 고통에 미쳐 날뛰는 두 명의 모습이 새겨졌다.


'아아아악-!! 여보!! 끼아아아아!!'


'뜨거워!! 아빠! 엄마아악! 아악! 뜨거워!! 뜨거워!!'


'으...으허...으허허허...'


실시간으로 거멓게 타들어가며 살점이 녹아내리는 두 명의 모습을 본 김창운은 그대로 고꾸라지듯 기절해 버렸다. 


잊고있던 사실을 기억해낸 김창운은 서서히 비틀려지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여...보...?'


'아...빠....'


"히익, 히익."


녹아내린 플라스틱 인형처럼 살점이 죽죽 늘어지기 시작하는 두 명의 모습에 김창운은 다급히 식탁 위의 약병을 들어올려 입안에 털어넣기 시작했다.


아무런 상표도, 성분도 적혀져 있지 않은 하얀색 알약.


일을 겪은 뒤 [고통을 잊게 해주고, 행복한 기억만 느끼게 해준다]라는 중국인의 말에 껌뻑 넘어가 구입해버린 약.


'여보? 얼굴이 왜그래? 괜찮아?'


'아빠 어디 아파요...?'


"여,여보... 주희야..."


다시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둘의 모습에 김창운은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또 다시 코피가 왈칵 솟아나기 시작했으나, 김창운은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은 체 둘을 껴안았다.



아무런 온기도,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 또한 상관 없었다.



고통 뿐은 현실보다도 차라리 행복한 몽상이 좋았다.


자신의 정신과 몸이 서서히 썩어 들어가는 것을 어렷품하게나마 알고 있었으나, 멈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