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하아.."


손에는 이미 감각이 없었다.


이미 가족들과의 재회도 뒤로 한 채 쫓기는 나날이 벌써 보름 째였다.


"쫓아라! 저들을 놓치면 안된다.!"


그리고 그 보름 동안 저들은 나를 끈질기게 쫓고 있었다.


이미 두 발.. 열 발가락의 어느 곳도 성한 곳은 없었다.


눈 덮인 산 사이에 피어오른 붉은 매화꽃과는 다른 초라한 검붉은 내 발자국이 나를 따라 그들을 꾀어오고 있었다.


'그때.. 그가 오지만 않았어도..'


이미 뒤늦은 후회가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마치 방금 깬 꿈처럼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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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


"그래, 들어오거라."


어릴 적, 항상 나는 아버지의 곁에 있기를 원했다,


늘 전쟁에서 승리하여 주변의 부족들을 복속하시는 위대하신 아버지, 그 분은 항상 활을 들고 계셨다.


'피잉'


내가 그렇게도 아버지를 찾아갔던 이유도 늘 아버지가 쏘셨던 그 활 때문이었다.


'휭'


'피잉'


늘 곁을 지키던 수많은 장수들과 함께 하셨던 아버지의 소리가 다른 화살소리..


남들은 직선으로 밖에 움직이지 못하던 인형과 같이 감정이 없던 그 화살과는 다른 무언가가 실려있던 소리였다.


'투웅'


"오늘도 전하의 활 솜씨는 여전하십니다."


"그래. 아직도 여전하구나.."


살아있는 듯 표적을 감아가며 맞추는 아버지의 활 솜씨는 화살에게도 생명을 부여하듯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날았고, 그런 아버지에게 붙은 별명은 당연하게도 궁신이었다,


그러나 신하들의 찬사를 받을 때마다 항상 무표정으로 일관하시는 그런 아버지의 얼굴에서 나는 슬픔을 느끼곤 하였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어울리는 별명이 궁신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늘 마움 속에 보이는 슬픔이 피눈물이 되고, 그 피눈물을 활 끝에 쏘는 그런 아버지에게는 오히려 이전의 별명이자 본명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붉은 어둠', 늘 어둠에서 붉은 색의 한을 품어내는 아이라는, 아버지의 본명인 '주몽'.


그것이 내가 생각한 아버지의 인생을 가장 잘 묘사한 표현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서라도 아버지를 만족시켜드리려 누구보다도 노력했었다.


병법, 경제..


늘 전쟁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이 척박한 졸본에서 항상 중요했던 건 바로 사람이었기에 그런 사람을 한명이라도 더 살리려 시작한 내 첫 흥미였다.


아무나 살아서는 쓸모 없이 군량미만 축낼 수 있기에 형에 대한 기준을 유능한 인재를, 국가에 충심이 있는 자들을 살리려 밤낮을 고민했고, 강을 끌어오기 위해 자연스럽게 지리에 대해서도 관심이 갔다.


항상 근심이 많으신 그런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뭐든지 하려는 나는 그렇게 어느덧 어엿한 하나의 국가를 책임지는 주축이 되어가고 있다는 자각도 하지 못한 채 늘 안팎의 사람들을 시찰하고 그들을 도우며, 흙을 만지고, 물에 젖는 그런 삶을 살아갔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풍년을 맞이한 한 고을에서 군량미를 조달받고, 인근 마을의 주민 중 겨울철 변방을 책임질 병사가 될 이를 차출한 뒤 돌아왔을 때의 일이었다.


늘 익숙하게 걸어온 길이었으나 유독 멀게만 느껴졌던 그 날의 산길을 타고 해가 떨어질 때 쯤 돌아온 궁에는 전과는 다른 위화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폐하가 오늘 좀 이상하시지?"


"&*%#@!"


적잖이 놀란 듯한 문지기들과 어수선한 안쪽에서의 시끌벅적한 소리..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걸까 걱정되었던 나는 서둘러 궁으로 환궁하였고, 거기서 나는 생애 처음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앞에 서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해유류'


그날 내가 보았던 그 남자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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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버지가 그를 본 이후 나는 나에게 마땅히 돌아갔어야할 태자의 자리를 빼았겼다.


늘상 성격이 급하지만 나를 믿어주었던 형님, 그런 우리의 우애를 알고 지켜봐주신 어머니..


이 나라를 세우고, 발전시켜왔던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우리를 버렸던 이유는 하나였다.


'적자'


'해유류'.. 아니 이젠 '고유리'로 이름을 바꿔불릴 그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이전에 북쪽에 두고 와야했던 아버지의 아이였다고 한다.


그의 생모는 이미 북쪽의 부여의 궁에 갇혀 여기로 오질 못하였고, 우리는 부여와 대립한 입장이었으니 이러한 내용의 사살유무를 따질 수도 있었다.


허나 그 남자의 품에서 나온 단도의 조각 하나, 그 단도의 조각이 아버지의 소매에 나온 칼의 손잡이와 딱 맞게 들어간 걸 확인한 순간 이러한 의문은 더이상 가치가 없는 질투로 바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미 오늘부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억지로 유지해온 건강이.. 아니, 어찌보면 발악일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를 본 이후 급격히 수척해지기 시작했고, 여름이 지나가기도 전에 더이상 말을 하기도 어려운 몸으로 바뀌시더니 나와 형님, 그리고 그를 부르시고는


"늘 건강하거라. 이 나라는 이제 너희들의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친 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건강하셨을 적의 어두운 표정을 하시길..


죽기 전이라도 나와 형님을 바라보길 바랬더만..


마지막 가는 길에 미소로 살아있는 우리를 뒤로하고 죽은 지 오래된 첫 처를 만나러 가신 아버지가 미웠고,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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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식으로 백제 설화를 기반으로 만든 소설 없나..


솔직히 설화의 판타지 요소를 살린 역사물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 아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