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의 처자요?"

"네, 나이는 스무살 쯔음이고 눈 같이 새하얀 긴 머리를 가지신 아가씨를 찾고 있습니다. 키는 5척(167cm) 정도시고 몸매는 마르셨는데 가슴이 좀 크신 편이- 아야!"

"남사스럽게 그거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나! 백발의 젊은 아가씨라 해도 충분하겠구만!"


특이한 옷을 입은 낯선 사람 둘이 지나가는 아낙네를 불러 묻고 있었다. 


"글쎄.... 백발의 젊은 처자요? 그런 여자가 세상에 존재할리가..."

"허 이번에도 허탕인..."

"백발 처자? 아 혹시 산 너머 동네 나무꾼네 새댁 말하는 건가?"

"뭐요! 그분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모른다는 아낙네의 답변에 실망하고 떠나려는 찰나, 지나가던 다른 아낙네가 끼어들며 말하자 두 사람은 크게 놀라며 그 아낙네를 붙들고 물었다.


"워매 깜짝이야! 좀 놔보쇼."

"아 실례했소이다. 그래서 아가씨를 알고 계시는... 아니 그보다 새댁.... 이라고 하셨소?"

"아 그렇수다. 산 너머 동네에 혼자 떨어져서 사는 나무꾼이 있거던요. 형편이 좋지 않아서 서른이 가까워질때까지 결혼을 못하더니 어느날 정말 참하고 아름다운 백발 처자를 데려왔다는 거에요. 저쪽 동네 사는 친척이 말해줬어."


"그럼 그 나무꾼네 집으로 안내해 주실수 있겠소이까? 사례는 드릴 터이니."

"아 근데 이걸 어쩌나. 죽었는데."

"뭐.... 뭐라고 하셨소? 죽었다니? 누가!?"

"모두요. 그 새댁은 열흘 전에 첫째애기 낳으려다가 죽었어. 애기는 간신히 엄마 뱃속에서 나오긴 했는데 하루를 못버티고 엄마를 따라갔고. 나무꾼도 안사람이랑 지 새끼가 동시에 죽으니 정신이 나가서 다음날 목 매고 죽었단 거에요."


"그런.... 그럼 무덤은...."

"저 산 중턱에 있수다. 난 빨래해야 해서 둘이서 찾으려 가보쇼."

"허...."



그렇게 두 사람은 터벅터벅 산으로 올라갔고. 얼마 후 홀로 위치한 집 근처의 무덤을 찾았다.


"김목도와 백소화와 아기의 묘. 소화 선녀님이 여기에 묻히셨군."

"하.... 상제님께는 뭐라고 보고해야 하지...."

"일단 시신 수습이나 하자고. 삽 들어."


그렇게 두 사람은 무덤을 파내서 관을 꺼냈다. 유독 큰 관 안에는 아직 부패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거의 온전히 남아있는 3구의 시신이 있었다. 목에 줄을 맨 흔적이 있는 서른쯤 되어보이는 청년과, 신생아, 그리고 날개옷을 입은 백발의 미녀, 선녀였다. 나무꾼으로 보이는 청년과 선녀의 시신은 아기를 사이에 두고 손을 잡은 모습으로 안장되어 있었다.


"그나마 시신이 안 썩은게 다행이구만.... 자네는 뭐하나?"

선녀의 시신을 들처맨 남자는 함께 따라온 부하인 여자가 나무꾼의 시신에 발길질하는걸 보고 물었다.


"이 망할 남정네가 감히 선녀님을 범해서 죽게 해? 이 개자식! 그런주제에 죽어서도 선녀님의 손을 잡아? 내 손으로 못 죽인게 한이다!"

"그만하고 뒷정리나 해!"


부하를 말린 남자는 뒷정리를 마쳐 무덤을 원상복귀시키고, 선녀의 시신을 포대로 감쌌다.

"그래 일단 정리는 다 했고.... 배고픈데 주막에서 밥이나 먹고 가지."

"지금이 밥먹을 때에요!?"

"먹어야지 그럼. 우리 지금 수색하면서 밥도 잘 못챙겨먹었잖아."

"그렇긴 한데.... 솔직히 저도 배가 고프네요...."

"시신은 일단 저 집안 옷장에 숨겨두고 갔다오자. 혹시 모르니 부적으로 봉인시켜두고."



그렇게 둘은 근저 주막에서 국밥을 시켜먹으며 대화를 했다

"그런데 왜 나무꾼 자식은 선녀님께 날개옷을 다시 입힌 거지?"

"숨겨두고 있다가 죽어버렸으니까 그제서야 미안해서 입힌 거겠죠."

"그러기엔 뭔가 이상한데.... 날개옷 모양새를 보니 찢어진걸 다시 이어붙인거 같았는데...."

"- 크하하하 거참 꼴 좋다 그 망할 나무꾼 자식!"


갑자기 주막 끝쪽 자리에서 들린 나무꾼을 욕하는 소리에 둘은 먹다 말고 귀를 기울였다. 사냥꾼으로 보이는 사내가 다른 사내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꼴 좋다니? 불쌍하지도 않나? 아내도 잃고 애도 잃었구만."

"그 년은 원래 내 꺼가 되어야 했었다니까?"

"그건 또 뭔 소리야."

"아니 거 들어봐. 내가 작년에 사슴 한마리를 사냥하려 했는데 그 사슴놈이 뭐라 했는지 아나? 한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목욕하는 연못을 알고 있으니 살려달라는 거야. 워낙 옆구리가 적적해서 속는 셈 치고 따라갔더니 진짜 선녀가 목욕을 하더라? 그래서 날개옷을 찢어버리고 선녀를 협박해서 아내로 삼으려 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나무꾼 그 개자식이 나타나서 도끼 뒷날로 날 후려친거야. 제대로 싸웠으면 한주먹거리도 안될 녀석이.... 어쨌든 그 자식에게 선녀는 빼앗겼지만 결국 그놈은 남의 여자를 빼앗은 벌을 받은 거... 컥! 뭐야 당신들!!!"

"다시 말해봐라. 뭐라고 했나?"

"켁.... 잠깐만 살려.... 거기 누구든 날 도와... 여.... 여긴 어디야! 주막은 어디가고 산 한가운데로!"

"말해봐. 뭘 하려 했냐고."


사냥꾼은 잠시 저항을 시도했으나 둘에게 제대로 얻어맞고 아는 사실을 전부 불기 시작했다.


"쿨럭.... 그... 저는 말한대로 선녀님을 범하려 했는데.... 그게 나무꾼 때문에 실패해서...."

"그건 알고 그 후에 나무꾼은 뭘 했는데?"

"듣기론 나무꾼 녀석은 그 후로 갑자기 시장에서 바늘하고 실, 비단을 샀다는 거에요. 날개옷을 고쳐주려 한거 같은데... 근데 애 생긴거 보면 고 자식도 욕망을 못 참은... 끄으윽!!!"

"사감 없이 말하라고."

"내가 아는건 이게 전부요! 아 더 알고 싶으면 근처 절 주지스님이나 찾아가 보쇼. 그놈이 목 매기 전에 절에 찾아가서 존나 하소연했다는데...."

"그래. 그럼 잘가라."

"예...? 왜 칼을....?"


-댕겅


"아니 그럼 대체 일이 어떻게 된 거에요? 나무꾼이 나쁜놈이 아니었나? 아니 결국 날개옷 가지고 협박은 한건가?"

"일단 그 절에 가보자고."



그렇게 둘이 절로 들어가자, 불당에서 홀로 목탁을 두드리던 스님이 뒤를 돌더니 물었다.


"혹시 천계에서 오셨습니까?"

"그걸 어찌...."

"옷차림만 봐도 보입니다. 뭘 궁금해할지는 아니까 알려드리지요."


그렇게 주지스님은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무꾼은 어느날 병든 어머니의 몸보신을 위해 잡으려 한 사슴에게서 선녀가 목욕하는 연못을 아니까 살려달라는 유혹을 들었다. 그리고 사슴을 살려주고 선녀가 목욕하는 연못으로 갔으나 심성이 선해 차마 날개옷을 훔쳐 선녀를 협박하려 나서지 못하고 계속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 병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을 사람에게 부모가 죽기 전에 장가도 못간 불효자라는 소리까지 듣고 나무꾼의 울분과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혼인하고 대를 이어야 하지 않겠냐는 욕망과 압박. 그러나 양심 때문에 시도도 못하고 계속 종종 목욕하러 오는 선녀를 바라만 봤다고 한다.


그러다가 같은 사슴에게 넘어간 사냥꾼이 날개옷을 찢고 선녀를 범하려 하자, 그는 지금이라면 자기가 나서서 사냥꾼을 쓰러트리면 선녀를 차지해도 아무런 도덕적 책임이 없다 생각해서 사냥꾼을 기습해 쓰러트리고 선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날개옷이 찢어져서 안절부절해하는 선녀의 모습을 보고 동정심을 느낀 나무꾼은 선녀에게 손을 대지 않고 집에 데려온뒤 자기가 날개옷을 고쳐보려고 하였다. 그리고 어찌어찌 날개옷을 고쳤으나 그는 이렇게 굴러들어온 기회를 자기 손으로 놓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분노와 한심함 때문에 날개옷을 찢어버릴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또다시 그런 자신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결국 날개옷을 찢지 못하고 감정이 격해져서 오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뒤에서 몰래 지켜보던 선녀는 그런 나무꾼에게 깊은 동정심과 애정을 느꼈고, 울고 있는 나무꾼을 뒤에서 감싸주며 하늘로 안 돌아가고 당신의 아내가 되어주겠다고 사랑 고백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 덕분에 고민과 괴로움에서 해방된 나무꾼은 선녀와 사랑을 나누었고 곧 아이가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선녀가 아이를 낳다가 죽고, 아이도 곧 죽자, 나무꾼은 자기 같은 무능력한 놈이 선녀님을 탐해서 죽게 만들었다고 절망하고는 주지 본인에게 하소연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와서 목을 매었다. 나무꾼이 목을 매었다는 소식을 들은 주지스님은 안타까운 마음에 죽어서는 꼭 함께하기를 빌며 나무꾼을 선녀와 아기와 한 관에 넣어 합장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둘은 다시 나무꾼의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고... 참.... 미련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네요.... 그런 사람에게 모르고 발길질이나 한 나는 참...."

"이미 지나긴 일이고,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해야지."
"네.... 선녀님의 시신을 가지고 천계로 돌아가..."

"아니. 선녀님의 시신은 다시 묻자."

"네?"


"상제님은 나무꾼도 천한 놈팽이로 취급하며 귀한 딸과 같이 묻히는걸 허락하지 않을거야. 그러니 우리가 지금 여기다 묻고, 못 찾았다고 보고하자고."

"아.... 근데 그건 좀...."

"이렇게 미련할 정도로 착하게 산 사람인데 죽어서까지 고통받게 하는건 좀 아니잖나."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여기 묻으면 천계에서 파견된 다른 사람들이 찾을 가능성이 크다고요! 다 소문났을 건데!"

"아..."

"다른 으슥한 곳으로 이장하죠. 여긴 산짐승에게 파해쳐진 거로 위장하고."

"그러자고."


그렇게 둘은 세 시신을 들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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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으로 순애나 피폐 스토리 만들어보려다, 차라리 관찰자 시점에서 보는게 낫겠다 싶어서 만들어본 이야기임

선녀랑 나무꾼도 각색하기 존나 좋은 소재라 생각되는데 누가 선녀나무꾼 모티브로 이야기 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