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하는 말이었지만 심히 긁혔다.


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내 아래로 들어오라니까. 내 밑에 오기가 어디 쉬운줄 알아? 내 기술 배우려는 사람들이 한 트럭인데 넌 친구라서 하게 해주겠다는거야 임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친구가 만든 생활 마법들은 대박을 쳤다. 그 마법들은 대단히 유용했다.


이를 테면 식기를 자동으로 세척해주는 마법, 청소를 해주는 골렘을 만드는 마법, 가만히 있으면 안마를 해주는 마법 등등


생활의 질이 달라지는 마법이 대부분이었다. 이 마법의 특허는 대부분 친구가 갖고 있었고 이 마법으로 수익을 내려면 친구의 허가가 필요했다.


다만, 예외 조항으로 마법사의 제자일 경우 특허는 일부 공유되었다.


때문에 친구의 제자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알았어. 내일 까지 생각해서 말해줄게."


"내일? 아이고 참. 지금 당장 하겠다고 해도 모자란데…. 그래, 알겠다. 너도 심란하겠지."


친구는 내 등을 한번 토닥이고는 떠나갔다.


나는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친구와 나의 시작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내 꿈을 추구했고, 친구는 돈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것. 썩어도 마법사여서 입에 그럭저럭 풀칠은 할 수 있지만….


이런 삶은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


"저기 오빠?"


그렇게 힘 없이 터덜터덜 걷고 있을 때,그 때 누군가 날 불렀다. 소리가 난 곳을 보니 로브차림을 한 소녀가 있었다.


"....누구세요?"


"아~ 그냥 점술사. 심란해 보여서."


"미안하지만 돈 없어요."


나는 그냥 가려고 했지만 점술사는 날 붙잡았다.


"에이, 그러지 말고. 첫 손님은 무료니까, 상담 어때?"


"됐다고요."


"지금 기껏 호의를 배풀어주고 있는데 이러기야?"


"남이사. 그냥 가세요."


나는 기운도 없고 일단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점술사는 끈질겼다.


"오빠, 지금 돈 때문에 고민이지?"


"아 예 예."


"흐음. 오빠 친구는 잘 나가고, 오빠는 지금 갈고 닦은 마법으로 돈을 못 벌어서 속상한거잖아?"


나는 점술사를 돌아보았다. …그냥 무늬만 점술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예. 그래서요. 뭐. 해결책이라도 있어요?"


"참고로, 오빠 전공 마법은 뭐야?"


"....폭렬 마법이요."


"뭐어~? 폭렬? 끼하하하하하하핫"


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보나마나 오빠도 그 씹덕 애니 보고 영향 받아서 마법 배운거 맞지?"


"아니야!"


나는 발끈해서 외쳤다. 그 애니가 나오기 전에도 나는 그 마법 전공이었다고! 


그 애니가 유행하는 바람에 패션 폭렬을 하는 씹덕들이 많아서 나도 씹덕으로 오해 받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런걸로 오해 받을 때마다 상당히 열 받았다.


"우후후후. 미안 미안. 상처 받았어? 다 알고 있어. 오래전부터 폭렬 마법 전공이었지?"


"알고 있었으면 왜 물었어요?"


"이런건, 상대방의 동의가 중요한거야. '알아도 된다' 는 허락을 받아야 하거든~"


무슨 말인지 이해는 못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음~ 그러면 어떻게 할까. 좋아, 재밌으니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할까?"


"요즘 점술사들은 소원성취도 부업으로 하나요?"


"그럴리가~ 굳이 따지자면 점술사 쪽이 부업이지."


"본업은 뭐길래요?"


그러자 점술사, 아니 소녀는 킥킥킥 하고 웃고는 내 귓가에 다가왔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신님♡"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자칭 신으로부터 떨어졌다.


"에~ 뭐야? 좀 더 놀라도 좋은데. 리액션 실망이야~"


"자칭 신이 이 길거리에서 점술사를 부업을 하고 있을리가 없잖아요."


"오빠 예리하네~ 물론 진짜 신은 아니고 야매 신이긴 하지만, 그 정도는 좀 봐줘~"


그러면서 얼렁뚱땅 애교를 부리며 그걸로 얼버무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아 예. 수고하십쇼."


"아~잠깐 잠깐 오빠~!"


소녀는 내 소매를 잡았다.


"아 뭐요. 돈 없다고요."


"아~ 오빠 진짜 인기 없는 남자 아니랄까봐. 됐어 그냥 서비스 해줄게. 원하는 소원 없어?"


"멋대로 기원해주고 돈 뜯어가는건 사양인데요."


점술사들은 '기원' 이라는 것을 하곤 한다. 행운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어서 종종 쓰기는 하지만 그 효과를 실측하기는 어려워서 사기꾼이 많았다.


"진짜 오빠가 딱해서 그러는 거니까, 소원 말해봐? 말한다고 손해 볼 것도 없잖아?"


"소원?"


잠깐 생각했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것보다 더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마법사로서, 사람들이 날 존경했으면 좋겠네요."


"돈이 아니라?"


"돈이어도 좋긴 하지만요."


그러자 소녀는 흐응~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그 소원, 들어줄게."


"그거 참 고맙네요."


자칭 신님이 소원을 들어준다는게 기대는 하나도 되지는 않았다.


자칭 신인 소녀는, 떠나가는 나를 손을 흔들며 배웅 했다. 요즘은 참 정신 이상한 사람 많구나.


---


-땡땡땡땡떙떙


한참 자고 있을 때 눈이 떠졌다.


밖에 시끄러웠다. 종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당장 일어나서 밖을 살폈다.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어쩐지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모두 대피하세요! 빨리!"


갑옷을 입은 군인이 거리를 뛰어 다니면서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무슨 일이야?


나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바깥에는 난리가 나있었다.


"으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야! 너 뭐해! 빨리 도망쳐!"


누군가 나를 부른다. 친구였다. 친구가 나를 부르길래 엉겹결에 그쪽으로 갔다.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마족들의 습격이래! 자세히는 몰라! 일단 튀어! 저쪽으로 가면 군인들이 있으니까 그 쪽은 괜찮을거야!"


친구가 앞장 서서 뛰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이쪽 모퉁이만 돌면...!"


군인들이 있을 것이다, 라고 친구는 그리 말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퉁이를 돌아도 그곳에 군인들은 없었다.


-그르르르릉...


대신 쓰러진 군인들의 시체를 포식하고 있는 곰 형태의 마족이 있었다.


몸이 얼어 붙었다. 마주치자마자 온 몸의 털이 삐쭉 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포 같은 것이 아니다. 마족과 마주치는 순간, 분명히 어떤 요소가 작용했다. 모종의 마력이,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붙잡는 느낌.


"어, 왜.. 왜...."


털썩하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가 주저앉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것 같았다. 


마족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으, 으으으으...."


친구는 패닉이 온듯 싶었다. 그럴 법도 하다. 최근 수십년간 마족 구경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눈 앞에는 짙은 죽음.


한 때 군대에 있었던 나는 그나마 경험이 있어서 생각 정도는 아직 할 수 있었다.


가파지는 숨을 고르고, 눈 앞의 적에게 집중했다.


마족과 마주치면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마족의 발이 인간보다 빠르기 때문에.


그러니까, 살려면 죽여야 한다.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수도 없이 연습 했던 마법을 떠올렸다.


"나는, 주홍보다 깊고, 깊은 주홍이오…."


손을 앞으로 뻗고, 마물들을 노려본다. 내가 영창을 외기 시작하자 마물들은 위협을 감지했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를 덮치기보다 빨리, 영창을 외웠다.


"그대 업화조차 주홍이라!"


-콰아아앙!!


마법은 마족에게 직격했다. 화려한 불꽃이 마족의 안쪽에서부터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불꽃은 마족의 시체조각마저 활활 태워버렸다.


"허억, 허억 허어억..."


생물에게 사용해본게 몇년만인지. 준비도 안하고 마력순환도 안하고 포션도 없는데 깡으로 성공한건 거의 기적이었다. 단 한번의 마법이었지만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나는 친구놈을 보았다. 친구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히, 히이..."


나는 제정신이 아닌 친구를 일단 일으켜 세웠다. 어쨌든 여기도 위험하다.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쳐야 했다.


"야 임마 정신차려!"


나는 친구놈의 뺨을 몇대 때렸다. 그제서야 친구는 좀 정신을 차린 듯 싶었다.


"헉, 허억... 고, 고마워..."


"됐어. 그것보다 군인들이 있을 만한 다른 곳 어딨는지 알아?"


"아마 여기서…."


뭔가 말을 하려던 친구놈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친구는 날 보고 있지 않았다. 내 뒤에 있는 뭔가를 보고 있었다.


나도 따라서 홀린듯이 친구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고래가 있었다.


"…뭐?"


하늘을 나는 고래. 분명히 어마어마하게 떨어져있을 것이 분명했음에도 보자마자 경외감이 들었다.


-Woooooooooo


그 고래가 울었다. 그 울음은 천지를 뒤흔들었다. 나조차도 서있기 힘들 정도였다. 친구놈은 그 소리를 듣더니 쓰러졌다. 친구를 불러보지만 의식을 잃은 모양이었다.


나 역시도 어지러웠다. 저 고래는 분명히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마족들을 수송하는 일종의 대형모함이었다. 그리고, 지금 마을을 습격한 마족은 저 고래로부터 온게 틀림 없다.


허나, 저것은 복무 시절에도 본 적이 없다. 까마득한 옛날, 대전쟁때의 역사책에서나 봤던 것이다. 그게 이런 시골촌에 있을리가 없잖는가.


그렇다면, 저건 뭐지? 환각이라는 말인가? 그럴리 없다. 저건 현실이다.


고래로부터 까만 무언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흙이라도 뿌리는거 같다. 하지만 그럴리는 없었다. 저 점 하나하나가 마족들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 모르겠다.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게 전부였다. 이 모든게 꿈인것 같다.


"오빠~! 살아있었네~? 다행이다!"


혼탁한 의식속에서 언젠가 들어본 천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억에 있는 로브. 


"점술사...?"


"죽었으면 AS 해주려고 했는데 말이지~ 그 부분은 필요 없게 됐네?"


무슨 말을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됐다.


"너, 너.. 점술사면 마법도 쓸 줄 알지? 내 친구 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어? 이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어서…."


"오빠. 그게 아니지. 도와주는 건, 친구가 아니라 오빠야."


"....?아니, 그러니까 날 도와주려면 친구를…."


"아니. 저기를 봐."


점술사는 손으로 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방향은 그 고래가 있다.


나는 시선을 돌리려고 했지만 점술사가 힘을 주어 내 고개를 고정시켰다. 이상하게 저항할 수 없었다.


"자, 똑똑히 봐. 저걸 죽이는거야."


"죽인다고?"


뭐를? 설마 저걸?


"손 내밀어. 자. 그렇지."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점술사는 내 손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내 손은 저 고래를 향하게 되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쪼끄마한 소녀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영창은 알고 있지? 항상 전력으로 사용하고 싶었잖아?"


폭렬 마법의 나쁜 점은 화력 조절이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상에서는 쓸 상황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라면.


두근거리는 심장이 폭발할 것 같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영창이라면 수도 없이 외고 연습했지만 어째서일까?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서가 분명하다.


"뭐야? 영창 까먹었어? 아~ 그렇구나. 부끄럼쟁이구나? 기분이다~ 이것도 서비스 해줄게."


소녀는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소녀가 영창을 외기 시작했다.


""불신자의 주홍은 그대 어머니보다 깊고 깊은 주홍이니.""


그리고, 그 영창은 나도 입으로 같이 외고 있었다. 소름돋는다. 멈추고 싶다. 하지만 멈춰지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 내 몸에 빙의라도 한 것 같다.


""용서 없는 색은 주홍이라, 주홍으로 그대 채워가""


손 끝에서 모여지는 강대한 마력. 그 중심으로 마법진이 여러겹으로 펼쳐진다. 그 마법진은 수도 없이 봐서 안다. 확산 마법진. 통과하는 모든 마법들이 그 성질이 증폭 되는 마법진이다. 그리고 포격 마법의 위력을 증대 시킬 때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내 앞으로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그리고 더욱 더 많이. 끝도 없이 앞으로 펼쳐졌다. 포신과도 같다.


""색색으로 현현하여라─""


탄환이 준비 됐다. 손 끝에 마력이 모였다.


""그대, 업화조차 주홍이라!""


발사된 마력은 확산 마법진을 차례 차례로 통과하면서 배로 증폭되었다. 2배, 4배, 8배, 16배....


그것은 하늘에 별 대신 떠 있는 검은 무리들을 모두 뒤덮고도 남을 정도로 커졌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온 몸에 반동이 달렸다. 몸이 흔들린다. 눈 앞에는 섬광. 다리는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다. 하지만 결코 꺾이지는 않았다. 누군가 나를 지탱하는 것 같다.


억겁의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은 끝나고, 섬광이 잦아들었다. 


몸은 해방되었다. 몸이 쓰러져 무릎을 꿇었다.


"하아, 하아…."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온 몸이 부서질 것 같이 떨렸다. 팔은 뜨겁기까지 했다. 팔을 당장 잘라버리고 싶은 고통이었다.


"후후후, 오빠, 저걸 보라구."


소녀가 내 턱을 잡고 들어 올린다. 하늘에서는 별무리가 떨어져내렸다. 아니, 별무리가 아니었다.


내 마법에 타오르는 마족들이었다. 죽은 마족 시체들이 모조리 산산조각나서 불타 떨어지고 있었다….


"하,...."


"어때? 장관이지? 이걸 오빠가 했다구."


"내가…?"


"어때, 이 정도면, 존경을 한 몸에 받기는 충분 하지?"


존경?


그 단어에 기시감이 들었다.


누군가 그 말을 했었지. 그래, 다른 누가 아니라 내가.


소녀는 내 눈 앞에 섰다.


소녀의 뒤로는 불타 떨어지는 마족들의 시체 파편. 마치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나온 아이 같았다.


"오빠는 이 마을을 구한 영웅이 된거야. 소원 이루어졌네? 오빠♡"


소녀는 엄지를 척 하고 들어올린다. 순수하게, 정말 좋은 일을 했다는 듯이.


"하, 하하…."


그걸 보면서 당장 나오는 것은 실소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