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물 빠로서 참을 수 없는 케이스인데


바로 '범죄 코디네이터' 빌런임.





(이 밑으로는 셜록 홈즈 시리즈, 소년탐정 김전일, 탐정학원 Q, 검은방 시리즈, PSYCHO-PASS, GTA 5의 중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난 경고함)





우선 범죄 코디네이터 빌런의 원형은 말할 것도 없이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임.



범죄계의 나폴레옹이자 무려 <공포의 계곡>에선 셜록 홈즈를 작품 끝의 끝까지 엿맥이거나, <마지막 인사>에선 무적과도 같던 셜록 홈즈를 무려 유럽 본토까지 빤스런을 치게 만드는 장본인인 캐릭터.

말하자면 입아프지만 아이린 애들러와 함께 원작의 적은 비중에 비해 어마어마한 임팩트를 남긴 캐릭터임.

다만 워낙 급조된 캐릭터다보니 이 양반이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에 대한 심리묘사가 불충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수사 자문'인 셜록 홈즈와 대비되는 '범죄 자문' 캐릭터란 언급은 있지만, 후대 추리소설에 나오는 애들과는 캐릭터성이 사뭇 다름.



오히려 원작의 제임스 모리아티 묘사와 비슷한 캐릭터는 레스터 크레스트에 가까움. 복잡한 트릭을 짜기보단 인원을 모으고, 범죄계획을 짜주고, 거대한 정보망과 인맥을 가지고 있고, 필요할 경우 직접 수하들을 보내서 저지하는 마스터마인드 캐릭터에 가까움.

지금의 복잡한 트릭으로 셜록 홈즈를 엿맥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집착하는 관계성은 후대의 2차창작에서 뻥튀기 된 것에 가까움.


아무튼 이 범죄 코디네이터라는 캐릭터성 자체가 조금은 급조된 모습도 있고 원전에서 많이 변형된 모습도 있다보니, 후대 캐릭터들에게는 중대한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바로 사상적 동기의 결여임.


셜록 홈즈 원작의 제임스 모리아티 박사 자체는 문제가 없음. 이 양반은 그냥 돈 벌려고 하는 짓에 가까워보임. 당장 작중 언급으로 서재에 개비싼 그림을 걸어놓거나, 오른팔 세바스찬 모런 대령에게 연봉으로 6천 파운드를 꽂아준다는 언급을 보면 대단한 사상적 동기가 있다기 보단 돈 벌려고 하는 짓에 가까워보이고,

셜록 홈즈와의 대립도 어마어마한 사상적 대립보단 "어? 얘가 내 사업을 망치려하네? 어? 열받네?" 내지는 "하 ㅋㅋ 새끼 좀 치네 ㅋㅋ 나도 진심으로 간다" 에 가까운 감정으로 보여짐.


하지만 추리소설이 작품의 양식미를 중시하고 오타쿠스러운 자극적인 캐릭터성을 좋아하는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그리고 이후 홈즈 2차창작과 추리소설 후발 주자들이 "아니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기발하고 정교한 계획을 짜요"의 변명으로 범죄 코디네이터라는 요소를 차용하면서, 고작 '돈 벌려고'는 너무 궁색하고 짜치는 동기가 됨.

애초에 돈 벌려고 하는 조직범죄면 땅땅땅빵 하고 공구리 신발 신겨서 템즈강에 쳐박으면 되지 뭐한다고 탐정하고 두뇌배틀을 벌이고 사람을 토막내는 복잡한 트릭을 쓰겠음.


여기서 가장 실패한 캐릭터가 바로



소년탐정 김전일의 메인빌런 타카토 요이치임.


얘도 한때는 포스가 지렸던 시절이 있었음. 첫 등장인 마술열차 살인사건, 그리고 하야미 레이카 유괴 살인사건과 러시아 인형 살인사건 때는 호적수로서의 포스 덕에 단점들이 묻혔지만, 지금은 장기화와 연출 미스로 인한 여러 문제로 위상이 하락함.

하지만 이 글은 범죄 코디네이터 빌런에 관한 내용이지 김전일 리뷰가 아니니까, 딱 이 친구의 문제에서 범죄 코디네이터 캐릭터의 한계점에서 기인하는거만 논해보겠음.


우선 첫번째 문제는, 추리물의 장르적 특성상 범인이 패배하고 트릭이 밝혀질 수 밖에 없는 엔딩이라는 점임.

당장 강대한 빌런 캐릭터로 유명한 그린 고블린, 조커, 타노스만 봐도 끝의 끝에는 주인공에게 패배할지언정 주인공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나 패배의 기억을 맛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임.

근데 사상적 동기를 '예술 범죄' 같은 거창한 신념과 '주인공을 나의 예술범죄로 정정당당하게 이기겠다'로 잡아버렸으니까, 찌질하게 주인공 주변인 칼찌하고 해버리면 가오가 상해버림. 그럴거면 처음부터 007빵 얍을 했지...

그렇다고 얘가 주인공을 이겨먹고 진상이 영원히 미궁에 빠지는 에피소드를 넣자니, 탐정이 진상을 아예 몰라버리면 그 추리물을 왜 봄 ㅋㅋ 정답 공개 안하는 퀴즈도 있음?

또 <공포의 계곡>처럼 끝에 끝까지 주인공 엿먹이고 정신승리하는 전개를 보여주자니 그것도 하루 이틀이고....

결국 범죄를 코디하고->주인공이 트릭을 개같이 털어버리고->주인공들이 한 발 늦어서/일단 잡아서 체포까진 했는데 탈옥->빤스런 이라는 원패턴 전개가 될 수 밖에 없음.


두 번째는 명확하지 않은 수입원임. 제임스 모리어티 교수는 대놓고 돈벌려고 하는 짓이지만, 타카토 얘는 돈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가 안나옴. 작중 묘사를 보면 딱히 범인들에게서 삥을 뜯는거 같지도 않아보이는데 말이지. 기껏해야 망령교사의 살인에서 금 빼돌리는거 정도? 근데 트릭 스케일을 생각하면 한두푼 들 것도 아닌데.


세 번째는 위에서 잠깐 나왔던 공감하기 힘든 동기과 행동논리임. 

예술 범죄가 뭔데? 범죄가 어떻게 예술이 돼?

애초에 김전일한테 자꾸 털린다 싶으면 김전일을 부르지 말던가? 김전일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저러고 또 김전일은 지가 불러오자했으면서 범인들 실패했다고 죽이는 이유는 뭐야? 애초에 니 계획대로 했다가 털린 애들 아니야?

물론 '범인(凡人)들이 이해할 수 없는 환상적 동기와 괴팍한 행동논리'를 가진 빌런들은 많음. 또 라이벌리티가 주요 동기인 빌런도 많음. 당장 조커만 봐도 뭔가 이해할 수 있는 동기가 있는 애는 아니잖아. 다만 이런 캐릭터들의 문제라면 가오가 상하는 순간 확 중2병으로 보여버린다는 것임. 그 전형적인 케이스가 우리 타붕이고. 트릭 퀄리티 떨어지자마자 바로 범부 되서 이젠 팬덤 동네북이라고.


결국 타카토 요이치라는 캐릭터는 이 문제들을 포함한 여러 문제로 인해 지금은 동네북으로 몰락했고, 나이 40 넘고 아직도 중2병 놀음이나 하는 신세가 됨.


그래도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님. 당장 범죄 코디네이터라는 캐릭터성이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매력적이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예시로는 같은 작가진의 작품 탐정학원 Q의 조직 '명왕성'이 있겠음.

물론 일부 오컬트나 마술적 요소를 제외하면 극히 현실적인 분위기를 추구하는 김전일과 달리, 탐정학원 Q는 국가 공인 탐정....탐정양성소....치트키 최면...등등 비현실적 요소가 늘어나서 1:1 비교는 힘들지만, 그래도 작가진들이 타붕이의 한계를 느끼고 보완할려는 시도가 보여 가져왔음.


우선 행동논리가 훨씬 이해가 가게 짜여짐. 명왕성은 독고다이 타붕이와 달리 비밀결사임. 그렇기에 활동비가 필요할 것이고, 그 활동비는 의뢰인의 전재산을 계산하고 그 절반을 보수로 가져가는 식임. 또한 의뢰인(범인)을 꼬리자르기 하는 것도 비밀결사란걸 생각하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게 됨. 개인이면 몰라도 조직에는 규율이 필요한 법이니까.


또한 탐정학원Q 자체가 박수 칠 때 깔끔하게 떠난 작품이다보니, 원패턴 전개가 어느정도 가려지고 치밀한 트릭이 끝까지 유지되면서 가오가 삼. 대부분의 조직원이 끝까지 포스를 유지했고, 수장은 세계관 최강자인 주인공의 스승과 공멸하고, 최고 인기캐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조직을 재건하는 엔딩을 맞이하면서 끝까지 최종보스로서의 간지를 유지하게 됨.



아따 강민이햄 씨다 씨

한국 게임계의 영원한 명작인 검은방 시리즈의 메인빌런 허강민.

이 양반도 위에서 언급한 타붕이의 영향을 크게 받은 캐릭터로 보임.

첫 등장이 평범한 인남캐로 등장해서 진범이었단게 밝혀지는 반전이라던가, 그 이후 사건에 직접 개입하기보단 원한이 있는 자들을 부추겨서 범죄를 코디네이팅 해주는 점이나, 꼭 주인공을 이악물고 자기 게임에 어거지로 끼워넣거나, 자신이 주도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는 등 여러모로 오마주가 묻어나오는 캐릭터임. 특이한 헤어스타일이나 첫 등장때 안경을 끼고 나오는 사소한 요소도 있고.


일단 게임이 길게 안끈 점(못 이어간거지...EA 씹새들...)은 위에서 한번 써먹었으니 넘어가고

이쪽도 금전적인 부분에서 훨씬 명쾌한 답을 제공함. 1편과 2편은 가족이 풍비박산 나면서 생긴 어마어마한 각종 보험금을 사용했다고 하고, 3편에선 백선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지원을 받았다는 설정이 생기면서 훨씬 현실적인 느낌을 줌.


그리고 이 친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인공과의 라이벌 관계에 대해 좀 더 보강이 이루어졌다는 점임.

사실 타붕이가 백날천날 명탐정이니 우린 평행선이니 하는 중2병 개지랄병을 떠는 것에 비해, 오리진인 마술열차 살인사건에서 김전일과 크게 엮일 여지가 안보이는게 사실임.

각종 외전이나 뒷설정에서부터 타붕이가 원래 좀 사이코 기질이 있었단걸 제쳐두더라도, 얘가 마술열차 살인사건을 벌인 이유는 자기 엄마를 죽이고 마술노트를 빼앗은 환상마술단에 대한 복수지 여기에 김전일은 1도 연관이 안되어있음. 그렇다고 김전일이 진상을 밝혀내서 얘가 복수를 못했냐면, 마지막까지 엿맥여서 최후의 생존자까지 겉바속촉으로 만들어 죽임. 즉, 얘는 김전일과 라이벌리티를 이룰만한 요소가 "새끼 좀 치네 ㅋㅋ" 정도인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병적일 정도로 김전일에 집착함. 차라리 고등학교 동문에, 타붕이 어머니와도 생전 교류가 있었고, 틈만나면 타붕이 담그겠다고 총들고 벼르는 아케치 형사가 더 라이벌로서 어울릴 정도임.


하지만 허강민이란 괴물을 만드는 과정에는 주인공 류태현이 깊게 얽혀있음.

우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떡밥인 백화점 붕괴사건에서, 주인공 류태현은 허강민의 작은동생과 자기 여친 여승아 중에서 여승아만 구하는 선택을 함. 이후 동생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음주의료사고로 사망함. 심지어 4편에서야 밝혀지지만 여승아가 자신이 살기위해 허강민의 동생을 고의적으로 죽이려했다는 진실까지 나옴.

이후 이 죽음이 연쇄작용처럼 이어지면서 허강민의 가족은 풍비박산, 작은동생은 물론 군대에 있던 큰 동생, 부모님까지 줄초상이 나면서 허강민은 정신줄을 놔버리고, 이 죽음들에 책임이 있는자들을 밀실에 모아놓고 하나하나 죽이려 드는 것이 검은방 1의 스토리임.

김전일과 타붕이의 서사보다 훨씬 많이 얽혀있고, 심지어 1편에서 허강민은 류태현과 또 다른 주인공 하무열에 의해 마지막 한 명을 더 죽이지 못하기까지 함.

이정도는 되어야 라이벌리티가 성사가 될만하지.




마지막으로 볼 캐릭터는 PSYCHO-PASS의 메인빌런 마키시마 쇼고임.


우선 이 친구의 중대한 차이점은, 신본격 추리물인 김전일과 달리 PSYCHO-PASS는 하드보일드나 사회파 추리물,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까운 장르임. 그렇다보니 얘는 복잡한 트릭보단 범행계획을 짜는 마스터마인드이자 테러리스트에 가까움. 어찌보면 원점회귀지. 사상범 모리아티 느낌.


일단 이 친구의 사상적 동기도 훨씬 이해하기가 쉬움. PSYCHO-PASS는 멋진 신세계 느낌의 SF 디스토피아 세계관이다보니, 사상적으론 그런 사회에 반대하는 고전적 테러리스트인 마키시마 쇼고의 논리가 더 그럴싸하게 들리는 부분이 있음. 물론 임마는 또라이 맞긴 함.


또한 주인공과의 악연과 대비도 더 명확한데, 우선 캐릭터 디자인부터 정반대로 짜여져있으면서 계속해서 '두 사람은 동류'라는 언급과 연출이 나오면서 그 대비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됨.

그리고 주인공 코가미 신야가 잠재범으로 전락한 것도 이 마키시마 쇼고의 범죄에 친구가 살해당해서 인간 전시물이 된 것에 멘탈이 나가버린 것을 생각하면, 이쪽도 훨씬 디테일한 악연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음.


그리고 호적수란 면에서는 더욱 보강되어있는데, 세계관 최강자급의 두뇌를 가진 두 사람이 서로의 계획을 엿맥이는 재미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전투력이 세계관 최강자 수준인 주인공과 호각으로 겨루는 전투력까지 가지고 있음. 실제로 첫 대면에선 (비록 만신창이 vs 멀쩡이긴 하지만) 맨손격투로 주인공을 제압하는가 하면, 두 사람 다 만전 상태인 최후의 결투에선 주인공을 거의 압도하기까지 함.

이런 호적수의 면모를 더 강조하는게 연출인데, 마키시마가 책을 인용하는걸 유일하게 받아친 사람이 코가미고, 작중에서 무적에 가까운 전투력을 가진 코가미를 기습이나 억까 없이 호각으로 겨룬 사람도 마키시마가 유일함.

즉, 서로를 막을 수 있는 자가 서로 밖에 없단 점이 이 라이벌리티를 더 흥미롭게 만듬.



범죄 코디네이터 자체가 써먹긴 어렵지만, 잘만 써먹으면 매력있는 캐릭터가 나오는 캐릭터성이라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음.

문제는 추리물 유행이 조때부렀으야....

나는 아직도 백마탄 초인을 기다리고 있다...

웹소에 정통 추리물 바람을 불어줄 백마탄 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