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4월, 그는 라인 전선에 있었다.

그는 36년까지만 하더라도 그 누구보다 행복한 남자였다. 부모님은 에디슨 제국전기회사의 임원이었고, 그의 집은 런던 중앙시의 거대한 정원이 딸린 주택이었으며, 집에는 그 귀한 에디슨 사의 소형 컴퓨터와 국제 아프리카 문명 협회가 아프리카에서 '인도적으로' 가져와 판매하는 수많은 보석과 이국의 유물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여인인 오랜 친우 리사마저 자신의 곁에 있으니, 심심하면 몸을 기계로 교체한 노숙자들에게 찢겨지는 45%의 런던 시민들에 비해선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젊은이, 그래서 왜 그 좋은 인생 납두고 왜 지랄맞은 군에 들어와서 멀리 타향인 여기까지 온 거요?"

시팔. 말 끊는 것 봐라. 아무리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할방탱이라도 역시 독일 놈들은 자랑스러운 영국 신민인 나랑 비교가 되지 않는가 보다. 독일 보헤미아 촌놈이 런던을 알아? 촌동네 독일제국 카이저만 보는 너희가 우리 엘리자배스 여왕님을 알아?

"독일인들은 그게 문제입니다, 사랑의 힘이 그 무엇보다 위대한데."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할까.

자동화 위기로 '기계로 개조한 인간은 인간이 아님! 햐햐 래볼루숑!'을 외치며 런던 주식시장이 꼬라박고,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일어난 반란에 부모님이 연류되었다고 안보부에 체포당하고,
집 안 물건들을 전부 갑자기 쳐들어 온 검은 셔츠단들이 때려부수고, 런던 중앙청에 끌려가 부모님 일과 무슨 연관이 있냐고 심문당하고,  프랑스가 왈로니를 침공한 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부터.

리사는 나에게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집에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았고, 길에서 말을 걸어 보려 해도 쌀쌀맞았다.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유는 충격적이었다.

리사가 나의 부모님에게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제국을 배반했다나. 그리고 나 또한 똑같다고. 제국을 배반한 부모를 두었으면 당연히 그 죄를 대신 인정해야지 반성할 생각 없이 죄를 피하려고만 한다고.

그 이야기를 전해준 친구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곧 중앙청 쪽에서 내 부모님을 카네기 강철회사가 진행하는 사하라 녹지화 계획에 대한 강제 노동형을 선고할 것이라 얘기하곤, '배신자'  한 마디를 내뱉고는 사라졌다.

나는 곧장 런던의 뒷골목을 달리고 달려, 리사의 집으로 달려갔다. 문을 미친듯이 발로 차자, 곧 내가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어릴 적부터 함께한 여인이 보였다.

"어떻게 너가...너가 나에게 이러니..."

"내가 왜 이러냐고? 그럼 너는?"

그 말을 내뱉는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차가웠다.

"밖을 봐, 모두가 제국을 위해 나서고 있어. 모두가 프랑스와 러시아의 미친 짓에 맞서 하나로 뭉쳤다고! 그런데 너희 부모님은 제국의 왕관인 미주 식민지 독립파한테 자금을 찔러줬지!"

"그건 우리 부모님의 일이야...나는!"

"닥쳐, 이전에도 너는 제국에 관심이 없었어. 너는 항상 의심하고, 불평만 많았잖아! 노동자들을 과하게 대우한다, 외교문제가 너무 강경하다! 우리는 태양이야! 태양 아래 살아가는 신민이면, 책임을 지라고!"

그리고 나는 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쏟아지는 비에 내 몸을 맡기며, 나는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집은 몰수되었지, 돈도 당장 없고, 잘못 나다니다간 검은 셔츠단에게 맞기나 하지...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봍어있던 모병 포스터였다.

-제정국을 지켜라! 프랑스와 러시아라는 악마에 맞서라!-



**


"그래서 내가 여기 있다네요, 보헤미아 할아버지."

그래,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지. 포성과 연기가 가득한 좆같은 독일 참호에 말이야.

"아니, 할방탱이 독일은 대체 얼마나 약한겁니까? 2주만에 로트링겐과 라인이 프랑스군에 뚫리고, 6주만에 베를린이 러시아군에 함락당하는 게 말이 되냐고요?"

아무리 대공황에, 태평양 식민지 반란, 군축이 합쳐쳤다고 해도, 한때는 영국과 서슬퍼린 눈빛을 나누던 독일이 이렇게까지 되다니, 영국인이지만 조금 시큰거렸다.

"영국인, 이건 대독일을 위한 시련이다! 나는 첫 번째 대전쟁 시절, 16세에 징집되었다. 내가 21살이 되었을 때 전쟁이 끝났지. 첫번째 대전쟁은 누구보다도 지옥같았지만 독일은 영국이라는 동맹과 함께 프랑스-유대 제국주의자들을 이겨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고 말고! 나는 40대의 이 나이에 다시 한번 총을 들었거늘!"

그건 할아방탱이 이상한 것 같은데요. 그는 입을 열려고 했지만 곧 다시 닫았다. 그래, 16살 때 징집돼서 21살 됐을 때에야 전쟁 끝났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40대의 나이가 총동원령으로 끌려오면 저렇게 될 수 밖에 없지. 암.

"그래요, 뭐, 그러면-"

-퓨슝! 쾅!

거대한 강철 통이 우리의 후방에 떨어지더니, 곧 그 안에서, 흉측한 모습의 짐승들이 튀어나와 달려들기 시작했다.

"공습! 공습! 공습!"

"전방에 프랑스군 오토마톤 대대! 중육상전함 대대와 인공 합성체들도 보임!"

"총원! 전투준비! 전투준비!"

"후방에 투하된 인공 합성체들부터 처리하라!"

-탕! 탕!

나는 재빨리 엎드려서 소총을 들고 앞을 조준했다.

"좆같은 개구리들...여기서 뒈질 것 같냐!"

방아쇠를 당기자 전방의 프랑스놈 하나가 턱 쓰려졌다.

난 새로 다른 놈을 조준하려고 했지만, 앞에서 날아오는 기관총알에 다시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젠장할! 이번에야말로 뚫겠다고 지랄을 하는군!"

그 말을 하기도 잠시, 내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위를 올려다 보았고, 곧 공포에 질릴 수 밖에 없었다.

거대한 강철의 다리가 육중한 몸체를 지탱하며 자신의 위로 걸어가고 있었다.

강철의 다리가 땅에 닿을 때마다 천지가 울리듯, 땅이 흔들렸다.

"씨이...발"

육중한 몸체에서 포와 총탄이 비처럼 쏟아지고, 철조망과 방어 시설들은 그대로 강철 다리에 밣혀 우그러졌다.

"씨이발! 대기갑포가 안 먹히잖아!"

"후. 후퇴! 다들 후퇴!"

저 멀리서 겁에 질린 목소리들이 들렸다.

씨발. 튀어야 하는데 다리가 안 움직인다. 좆된 듯 하다.

프랑스 새끼들, 대체 뭘 쳐만든 거냐.

"이보게! 정신 차려!"

내 정신을 차리게 해준 건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나와 이야기하던 보헤미아 할방탱이 내 뒷덜미를 잡은 것이었다.

그는 내 뒷덜미를 잡고는 자신의 등에 나를 걸쳐업은 채로 뛰어갔다.



***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자 내 팔에 꼽힌 링거가 보였다.

나는 일어섰고, 주변에 있던 위생병을 불렀다. 어떻게 된 것이냐.

모든 전선에서 프랑스군의 신병기가 출현했고, 서부전선의 독-영 연합군은 질서도 없이 급히 후퇴하다 차례차례 전멸당하고 있다는 모양이다

야전 병원의 천막 밖에서는 여전히 포성소리가 들렸다.

나는 손을 바닥에 짚고 일어나서 천막 밖으로 나갔다. 천막 밖으로 나가니 독일군 장교가 물었다.

"우리 독일의 병사가 자네를 끌고 온 건 기적이라네. 그곳에서 살아나오지 못한 이들은...뭐, 곧 이곳에서도 그때의 참사를 마주하겠지만. 소속이 뭔가?"

"브리튼 제국 12보병사단 제 67여단 제 1대대 2중대입니다."

"그런가? 그럼. 저기서 초각성제 받아가게."

나는 또 다시 지옥같은 참호로 향했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니까.



***

리사는 오랜 전쟁이 마침내 끝났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1945년 3월 16일. 영독연합군은 결국 뉴 파리와 모스크바를 점령했고. 프랑스국의 지도자, 자크 도리오는 뉴 파리의 지하벙커에서 스스로 목슴을 끊었다.


제정국을 곧 국제연맹으로 개편한다니, 뭐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리사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하나.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귀환이었다.

어릴적부터 그녀는 그 남자를 사랑했지만,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그 남자는 그녀보다 월등히 뛰어났다는 점.

하지만 결국 기회는 왔다. 그 남자는 부모와 함께 추락했고, 그녀는 온전히 그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그를 잘 알았다. 몇번 소리 지르고, 배신당했다는 티를 팍팍 내주면, 그는 오히려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자 노력할 것을.

이전처럼 그녀가 그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아닌, 그가 그녀에게 다가오고자 노력하는 것. 예상은 적중했다.

그라면 분명 군대에서도 영웅적인 과업과 임무를 수행했겠지.

그녀는 흥얼거리며 그를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준비를 했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과 디저트, 그리고...반지.

"후훗, 창피해하는 얼굴이 벌써부터 생각나네."

본래라면 그가 그녀에게 주는 것이 맞지만, 상관이 있을까.

그녀가 행복한 상상을 하던 그때. 문에서 똑똑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자신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을 문을 활짝 열었다.

"...리사, 안녕."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의 왼쪽 눈은 전자안으로 교체되어 있었고, 왼쪽 팔은 에디슨 사의 기계식 의수가, 그의 머리에는 에디슨 사의 로고가 그려진 네모난 칩이 꽃혀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 분명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안 들여보내 줄꺼야?"

"어.어! 드. 들어와!"

그녀는 그를 집 안에 급히 들였다. 그는 마치 여러번 이 자리에 와 본 듯히, 자연스럽게 의자에 털썩 걸텨앉았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하지만...여기까지 오는데 피곤해서 그런데. 조금만 쉬어도 될까. 리사."

"그.그래."


그가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축 늘어지자, 리사는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이정도라고? 아무리 전장이 잔혹했다고 하지만. 이정도라니...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은, 의자에 늘어져있던 그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발작하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정신. 정신 차려!"

그녀가 다급히 식은땀을 흘리며 입에서 거품을 쏟아내는 그에게 달려갔지만, 그는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듯 소리지를 뿐이었다.

"프랑스...프랑스 놈들이 온다...! 으아악...씨발....씨바알..기갑포. 기갑포 가져와-!!!!"


그녀는 눈물 흘리며 그의 몸을 미친듯이 흔들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엇인가를 크게 잘못 깨닫고 있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는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그의 옆에는 여전히 눈물 흘리는 리사가 있었다. 하지만...이상하게 그는 리사의 눈물을 닦아주고픈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는 위로의 말 대신, 그가 여기 오고자 한 이유를 그녀에게 전했다.

"좆...같은 년...너.너를...증오해...씨..."

리사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런던은 그 어느때보다 밝고 아름다웠지만, 런던 중심가의 한 저택에는 여전히 비가 왔다.



***

https://youtu.be/eIzLe4cxu8M?si=_Dy1FV3zLzY7I8dJ
요 호이 모드가 모티브
요 세계관 영국은 세계제국이고, 1대전과 2대전 모두 주요 전쟁터가 독일이라 영국 본토인들은 '어. 가만히 있는데 이겼네! 와!' 수준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