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임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바꾼 그런 인생게임은 하나씩 있잖아.
 ...아닌가.

 아무튼간에. 내 경우엔 [한니발]이라는 판타지 게임이 그러했다. 게임 진행 방식은 턴제RPG. 평범한 컨셉의 게임이지만 수려한 그래픽과 캐빨로 인기를 끌었다. 막 인방에서 나올 법한 그런 게임은 아니더라도... 갤러리에 글이 하루에 10페이지는 나오는 정도.

 나는 이 게임에 과하게 몰입했다. 스토리보단, 한 캐릭터에.

 실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화면 속의 데이터 쪼가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병신이, 몇이나 될까. 이 말이다.

 그 병신이 바로 나다. 나는 이 마음을 중2병에 걸린 사춘기 소년이 자신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 만큼이나 쉽게 받아들였다.

 한 순간의 재앙에 모든 것. 가족을 비롯하여... 그냥 다 잃었다는 것부터 나랑 똑같은 캐릭터. 라헬 브라이트.

 그녀와 나의 다른 점은 하나다. 그녀는, 폐허를 딛고 일어섰고. 나는 혼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병신이라는 것.

 오늘도, 집에 박혀서 유산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똥글을 커뮤니티에 싸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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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제작사에게 전한다.
라헬살려내(118.230)

*초록 개구리가 식칼을 들고 분노하며 달려드는 짤*

 지금 당장 라헬 브라이트를 살려내는 업데이트를 진행하지 않는다면 난 바지에 똥을 싸겠다.

 이건 경고가 아닌 통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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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뭐 하자고 이 지랄을 꾸준히 해서 커뮤니티에서 네임드가 되고.

 2년. 이 게임에 쏟은 세월이 2년이다.

 이 게임에서 가능한 모든 루트를 통달했고, 라헬 브라이트가 살아남는 루트는 없었다.

 마족의 침입. 영지 붕괴. 친인척 및 가문 전원 전사. 영지민 중 3분의 2 사망. 영지군 와해.

 사실 게임 속에서 그녀가 잃은 건 겨우 내가 잃은 것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남은 최측근 집사, 엘리야 마티아스와 함께 영지민들을 규합시키고 영지를 되살렸다. 겨우 나이 15부터 시작해 6년 동안.

 아카데미로 갈 나이가 된 그녀는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영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집사에게 영주 대행을 맡기고 아카데미로 떠난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영지로 금의환향하여 영지 소생을 가속화할 생각으로 학창생활을 보내던 그녀의 고향은, 다시 한 번 침공을 받고 소생의 여지도 없이 잿더미가 된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영지에서 홀로 살아남아 아카데미로 달려온 그녀의 집사가 볼 수 있던 건, 목을 매고 죽어있던 라헬의 시체. 다음 날 아침, 엘리야 또한 라헬의 곁에서 단검을 목에 박아넣어 죽은 채로 발견된다.

 그리고, 게임의 선택지에는 브라이트 백작령을 돕는 것이 안배되어 있지 않았다.

 절대로 그 일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 정도는 하고도 실패해야 죽을 생각을 하는구나, 싶고.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게임을 시작한 지 한 달 후. 나는 그녀를 닮고 싶어 책을 펼쳤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게임에 투자하였고,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에 들이부었다.

 1년. 검정고시 합격까지.

 다시 1년. 대학 합격까지.

 나는, 오늘 그녀를 보낼 것이다. 한 때 내가 깊이 몰입하여 사랑하던 데이터 쪼가리를 컴퓨터에서 지울 것이다. 이 병신같은 감정 이입도, 과몰입도 오늘로 끝이다.

 다만,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컷신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보며. 내 추억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루자.

 이런 장면, 저런 장면. 넘어가다가. 그녀가 자살하는 현장의 컷신에 도달했다.
 
 어두운 밤. 아카데미 최상위 기숙사. 문을 두드리다 못해 부수고 들어간다.

 화장실 문은 부서져있고, 온갖 비싼 물건들이 박살나고, 부서진 채로 온갖 구석에 널브러져 있다.

 여기는 그녀의 방이었다.

 떨리는 숨소리가 조금씩 가빠지며.

[플레이어, <라헬살려내>. 당신은 그녀를 살려내고 싶나요?]

   “뭐...?”

 뭐지? 이런 알림창... 아니, 애초에 이게 뭐지, 진짜로?

 나는 홀린 듯, [예]를 찾아 눌렀고.

[최민수 씨. 정말로, 당신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 자신이 있습니까?]

 내 이름이 떠서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얼마 전에 본, 컴퓨터의 개인 데이터를 까서 사용자의 이름을 알아내는 미연시도 본 적이 있었기에 난 또 다시 아무렇지 않게 [예]를 눌렀다.

 그러고 보니... 내 컴퓨터에 저장된 내 이름은 minsoo3728인데. 내 이름을 알아내는건... 불가능하지 않나?

 뭔가 이상함을 느낄 때쯤.

 불길한 붉은 알림창으로 최후통첩이 날아왔다.

[이 선택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엘리야 마티아스.]
[그녀를 구하십시오.]

   “...?”

 그 순간, 심장이 아파온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며... 뒤통수가 얼얼하다.

 천장이 보인다.

   “아 씹, 설마--”

 점점.. 시야가 어두워지며, 내 세상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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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한니발 <공지>

신규 DLC, <엘리야>가 2주 후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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