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판관님. 아무래도 사소한 오해가..."


용사의 말을 잠자코 듣던 심판관은 고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내는 윤간당하고, 자식들은 스튜가 되어 노숙자들의 밥이 되었다는 것과 대량학살을 저지른 것은 아무 상관 관계가 없습니다. 복수의 개념으로 보아도 터무니 없이 과합니다. 마왕은 죽어야합니다. 복수의 굴레를 끊겠어. 따위의 말은 마십시오."


"잠까..."


서걱.

거대한 처형검이 마왕의 목을 끝내 내리쳤다.

처량한 표정을 한 검은 얼굴이 땅바닥을 굴렀다.


"당신은...감정이 없습니까?"


아. 당신은 모르겠지.

이 마왕은 당신이 봐주었을 때 칼로 당신의 목을 친다는 것을.

전생의 난, 멍청히 그걸 쳐다보는 마법사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번생의 난, 이 순간 하나를 막기 위해 살았다는 것을.


몸에 흐르는 마나를 모두 비워내고.

연약한 몸이 거대한 대검을 다룰 수 있게 키워내면서.


"죄인을 벌한다. 심판관이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용사는 천성이 바보같이 착해서.

이번에도 봐줘버릴 테니까.


"당신같은 냉혈한을 동료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지."


"네. 평생 저를 미워하며 사십시오."


물론. 그것도 정의는 아니다.

당신을 구해준 사람을 증오한다니, 당연히 아니지.

다만, 내가 바라는 건 정의가 아니라, 당신의 행복이니.


"당신이 그것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나는 슬프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