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미술가의 새로운 작품이 전시된 귀족들의 살롱. 우아한 연미복을 입은 엘프가 허름한 옷을 입은 화가에게 다가와 격식있는 말투로 말했다.


"지금 씨발 장난 하시오?"

"......"


그는 허름한 화가를 후원하는 귀족 중에 한명이었다. 이 교양 넘치는 귀족계층의 우아한 화법을 풀이하자면 죽고싶냐는 뜻이었다.


"이딴걸 그림이라고 내놓았소?"

"......"


엘프 귀족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놀랍게도, 아무 형태 없는 형형색색의 색으로 뒤덮인 캔버스가 있었다. 


빨간색, 주황색, 주홍색, 레몬색, 오렌지색......


그저 어린아이가 물감장난을 친 것처럼 치덕치덕 바른...... 그림이라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화면. 오렌지 색깔의 물감을 거친 칫솔로 문대어 부드럽게 펴 바른 화면은 1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눈에 띄었다.


그저 표지판이나 태양광 반사판으로나 써야할 것 같은 애들장난 같은 그림.


그것을 바라 본 엘프 귀족은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살롱에서 열리는 용인족과의 교류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몇번이고 말했건만......!"


화가 김장붕은 그 모든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들었죠."

"그런데 이렇게 내 뒤통수를 쳐...?!"


그때, 구석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향해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주...... 인상적인 전시회였어요."

"공녀님......!"


또각 또각, 선명한 하히힐 소리를 내며 다가온 것은 놀랍게도 오늘 교류회의 주인공, 용인족의 공녀였다. 그녀는 붉은색 뿔과 어울리는 드레스를 입은 채로 미소짓고 있었다.


엘프 귀족과 화가 김장붕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예의를 표했다. 


용인족의 공녀는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화가 김장붕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저...... 독특한, 그림을 그린 이였나요."

"네, 그렇습니다."

"...... 그렇군요."


엘프 귀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모처럼 재능있는 예술가를 주워온 줄 알았는데...... 이런 미친놈일 줄은.'


용인족은 자신들의 명예를 더럽힌 이들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상대 종족의 왕족이라 할지라도, 전쟁을 일으키는 한이 있더라도 말살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기에.


엘프귀족은 김장붕이 오늘밤, 그들의 창에 꿰어 죽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용인족 공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그대를, 우리 나라에 초청하고 싶군요. 이런 재능있는 예술가를 만날 줄이야."

"감사합니다. 전하."

"저런 걸작을...... 정말이지 다른 종족의 손으로 만들었다곤 믿을 수가 없군요."


엘프 귀족은 경악스러운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저 3살배기 아기가 치덕치덕 그린 것 같은 얼룩을?!


그런 그의 속과는 별개로.


용인족 공녀는 붉은색 눈동자로 김장붕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용인족의 시야는 다른 종족보다...... 색을 더 잘 감지하죠. 그렇기에 사물의 형태 따위보다 좀더 근원에 가까운 감정과 마력의 움직임 마저도 포착한답니다."


용인족 공녀는 다시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붉은 색 눈동자는 한없이 떨리며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토록...... 이토록 완벽하게, 노을을 바라보는 감정과 애틋함을...... 용인족의 시야처럼 재현하다니."

"......!"


엘프 귀족은 그제서야 공녀의 말을 이해했다.


시력이 좋지 않아서 모든 것을 흐름으로 관측하는 용인족에게. 다른 종족의 시야로 재단한 도형과 형태 따위 잘 보이지도 않는 장난이었던 것이다.


'이 녀석......! 그렇다면 저건 설마......!'


그렇다.이 허름한 화가놈은. 인간족의 시야로 대상의 본질을 읽어, 시야가 다른 용인족마저 감동시킬 수 있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엘프귀족의 등 뒤로 식은땀이 한줄기 흘렀다.


드디어 이해했다. 저놈은 정말로 진지하게 용인족마저 이해시킬 수 있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감정과 현상이라고 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려낸 것이다.


마음을...... 감정을...... 그린 것이다.


'미친놈......! 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화가 김장붕은 엘프 귀족의 반응을 보면서도 여전히 침착했다.


공녀와 귀족은 그것을 천재의 태연함이라 여겼지만......


김장붕은 씁쓸한 눈으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수십명의 용인족 귀족들이 모여 감탄하는 그림. 하지만 그것은 전생의 화가 '마크 로스코'가 그린 것을 따라한 것에 불과했다.


'나는...... 그냥 다른 화가들의 명작을 따라할 뿐인 흉내쟁이.'


김장붕.


전생의 그는 인테리어용 명화를 복제할 뿐인......흉내쟁이였다.





뭐 이런거 나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