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온 뒷골목은 그대로였다. 여러 사람들이 안사불성인 채로 뒤섞여 나뒹군다. 시비를 걸고 다니는 싸움꾼도 젖가슴을 까며 호객행위를 하는 창녀들도, 쓰레기 봉투를 침대 삼아 잠을 자는 노숙자도 여전했다.

 

 “한 그릇.”

 

 그 중 가운데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입구를 막고있는 천막을 헤치며 주문을 마치고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았다. 이곳의 메뉴는 라면 뿐이다. 단가가 싸다나? 살면서 라면 가격표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무슨 말을 하겠냐는 듯 가게 주인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뒷골목의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고 먹는 것이다. 가격이 비싸 보이든, 그렇지 않든 불만이 없었다. 싸구려 라면가게 덕분에 하수구에 내버려진 실험용 생쥐보단 조금 나은 꼬질꼬질한 햄스터 정도의 삶을 사는 이들인지라, 그 누구도 가격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래, 10분의 1. 잊지 않았겠지?”

 

 잊지 않았다. 품 속에 주머니로 손을 푹 찔러 잠시 휘적거리다 동전 몇 개와 지폐 한 장을 내밀어 주인의 손 위에 올려뒀다. 누구에게나 같은 가격을 받는다. 가진 것의 10분의 1.

 

 뒷골목에 굶어 죽는 이는 없다.

 

 “나도 한 그릇.”

 

 그리 말하며 다른 여자가 내 앞에 앉았다. 그는 품 속에서 지갑을 꺼내고는 다시 그 지갑 속에서 지폐 몇 장을 내밀었다. 지폐의 색을 보고 잠시 머뭇거린 주인은 그것도 받아들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이네요.”

 

 눈 앞의 성녀는 답답한 듯 점퍼 후드를 벗었다. 뒷골목에서 갈라진 이후로 오래간 보지 못했던 그녀의 얼굴은 노숙자 시절보다 훨씬 안색이 좋아 보였다.

 

 “길을 걷다가 자기 얼굴이 보이길래 몰래 따라와 봤는데 알아챘죠? 옛날 생각 나네요.”

 

 “그러네.”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었다. 뒷골목에서 생필품을 거래한 적이 몇 번, 그리고 라면집에 자리가 부족해 같이 앉았던 적이 몇 번. 그리고 사이좋게 같은 시기에 뒷골목에서 나간 뒤로 소식이 끊겼다. 그녀는 교회로 향해 성녀가 되었고 나는 용사의 조직에 들어가 부왕이 되었다. 그녀의 직위 때문에 몇 번 저택에 온 적은 있었지만 그녀가 여자였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했다.

 

 건너 듣기로는 교육소를 차렸다고 들었는데.

 

 “아카데미. 제가 말 안했나요? 몰래 편지도 드렸는데.”

 

 “찢어버렸어. 용사는 질투가 심하니까. 편지지에 묻어 온 네 향수냄새를 용사가 맡으면 곤란해질테니....”

 

 “허. 그렇게 용사가 치마폭에 가둬두고 사는데 혼자 외출은 어떻게 한거람?”

 

 그리 말하는 사이 라면이 나왔다. 서로 똑같은 한 그릇. 있느니 마느니 한 고명을 라면 국물 속에 푹 집어넣었다. 

 

 “요새는 어떻게 지냈어요? 저번에 용사가 식을 올렸다는 말은 들었는데. 자식은 어째, 기미가 좀 보이나요?”

 

 “아니. 자식은 못 볼거같은데..”

 

 “허. 남편이 그렇게 원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하다니. 역시 좀 무서운 분.”

 

 헛소리다. 자식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게 아니니까. 입 밖으로 새려는 목소리를 젓가락으로 틀어막았다. 짜고, 느끼하고 맵고 달고 – 국물을 잔뜩 머금은 얇은 면은 그대로였다. 

 

 “어쨌든 오랜만에 보는데 이거나 안주 삼아서 이야기 보따리나 좀 풀어 보세요. 신혼은 잘 즐기시고 계신가요?”

 

 “그래... 잘 즐기고 있었지. 용사는 가문의 서류 업무로 바빠서 하루 종일 같이 있지는 못했지만.”

 

 “가문의 서류 업무! 듣기만 해도 끔찍하네. 그런 꽉 막힌 홀애비들 사이에서 치이면서 살기 싫어요, 저는.”

 

 용사도 치여 살지는 않는다. 그녀도 성군은 아니니까. 폭군이라 함은 과한 비난이지만, 유능한 독재자라 하면 입맛이 쓰긴 해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 어쨌든. 그렇게 일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방에 돌아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지. 하루는 그녀가 내가 만든 프렌치 토스트를 다시 먹고 싶다고 졸라대서 빵을 설탕물에 절여 두려는데, 그녀가 주방에 가는 나를 막아선 적이 있었어...”

 

 ‘나를 밟고 지나가라아아아!’

 

 “떨어지기 싫었나요? 비장하겠네요.”

 

 “그래, 옛날 장수처럼 바닥에 드러누워선 내 발목을 잡고 질질 끌려 다녔지. 시녀가 봤으면 기겁을 했을텐데, 그땐 나도 즐거워서 뭐라 말리질 못했어.. 그대로 같이 주방에 따라와선 익숙치도 않은 요리를 같이 해보겠다고 설치고. 그녀는 사람과 싸울때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지만 버너를 켜는건 위험해 보였어..”

 

 “...용사가 요리를 해 봤을리 없으니.”

 

 “그래. 그래서 그 날 베이컨은 다 타버렸어. 기름을 평소의 두 세배는 둘러서 주방 바닥은 기름 때문에 미끄러워졌고, 베이컨에선 쓴 맛이 났지. 내 제자가 주방에 들렸을 때 그걸 보고는 기겁을 했었거든. 그랬다가 용사한테 연무실로 끌려가선 둘 다 새벽에 저택으로 돌아왔고 제자는 3일간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어.”

 

 “용사 답네요. 아, 성격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활기차다는 뜻이지.”

 

 “맞아요. 활기차죠. 어린아이처럼.”

 

 물론, 내 제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 후 처음으로 맞이한 생일에 제자에게 받은 선물은 이혼 서류였다.

 

 “...아무튼. 그 뒤로 매일 주말마다 나한테 요리를 배우려 했었어. 가끔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주말에 소풍을 나간 적도 있고. 나중엔 아예 여행을 간 적도 있었고..”

 

 “행복하시겠네요.”

 

 “정말 행복했지. 정말...”

 

 내가 고개를 숙이자 성녀가 웃었다. 그는 내가 속으로 웃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때에 나는 웃고 우는 심정을 결코 표정으로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표정을 보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행복했어.”

 

 “부럽네요. 나도 결혼이나 하고 싶다~!”

 

 어느새 그릇은 비어 있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빗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렸지만 창문 없는 라면가게에선 밖을 볼 수가 없었다. 

 

 결혼이라.

 

 “행복할까?”

 

 “행복하겠죠. 당신도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요?”

 

 내가 일부러 소리내어 웃었다. 그녀는 의아한건지, 마음에 들지 않는건지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이어 소리냈다.

 

 “행복했지. 하루 시간이 지날때까지 방에서 그녀를 기다리면 영겁동안 지루할 것 같은데 그녀가 방문을 열고 내게 오면 그런 생각따위 다시는 들지 않을 것처럼 행복했어.. 내 인생의 유일한 행복이 그녀가 된다고 해도 난 좋아. 그런 사람이 내 반려가 된다는건 정말 좋은 일이지.”

 

 “....”

 

 한 번 더 웃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추억 속 행복한 시기가 스쳐간다. 

 

 압도적으로. 낙차란 무섭다. 가파르게 오르는 그 산이 높고, 위의 광경만을 올려다 보며 산을 오를때는 잊고 있던 그 두려움이 산을 다 타고 내려오는 순간에야 상기된다. 

 

 그 높은 곳에서 재빠르게 아래로 처박히고 나서야 그 두려움을 다 실감할 수 있기에, 더더욱 두렵다. 다시 눈을 떠 눈 앞의 여자를 본다.

 

 

 

 

 

 다시.

 

 

 

 

 

 압도적인 우울감이 나를 반긴다.

 

 “...왜 그래요?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당신. 어디 아픈게...”

 

 “죽였어.”

 

 “네?”

 

 “내가.”

 

 뒷 말을 삼켰다. 나는 아직도 이 뒷 말을 뱉어본 적이 없다. 인정도 실감도 하기 싫어 그렇다. 

 

 대신 웃는다. 입꼬리만 간신히 올려 웃는다. 누가 말을 걸면. 그녀가 바랬던 대로.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게, 입꼬리를...

 

 “내가 죽여버렸어.”

 

 웃어야 하는데.

 

 웃질 못하겠어, 용사. 내가 널 죽일 때 넌 내 표정을을 함께 저승으로 가져갔어.

 

 “....왜?”

 

 “왜냐니. 그야 내가 마왕이니까. 마왕이 될 운명이니까.”

 

 내가 왕국을 부수고, 인간을 잡아먹고 별을 태워버릴 운명이니까 그래.

 

 “예언... 그래, 믿을 수도 없는 빌어처먹을 예언 하나 때문에. 난 왕국에서 도망쳐야 했고... 그녀는 그리고 나를 쫓아와서 나를 위해 죽었어. 내 손에.”

 

 ‘네가 아무렇지 않게 웃었으면 좋겠어.’

 

 그녀는 아마 나를 위해 웃으며 그렇게 말해겠지만 그 말은 저주였다. 아주 아주 끔찍한 저주.

 

 “행복하지 않아, 성녀. 나는 그녀 덕분에 행복했지만.. 그녀와 만났기에.. 지금 행복하지 않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건 사약을 들이키는거야. 한 순간, 한 순간... 자신의 반려자와 함께 불행의 순간으로 들어가는거지. 사형수처럼, 누군가 한 명이 하늘로부터 사형을 선고받고 남은 한 명이 불행할 순간까지.. 결혼은 그저 긴 휴일에 불과해.”

 

 머리가 아파왔다. 양 팔로 머리를 끌어 안고 손으로 꽉 쥔다. 빗소리는 더욱 강해졌고 소음이 내 머릿속을 지우개처럼 닦았다. 뇌 속이 깨끗이 비워진다. 지우개가 지나간 종이가 걸레짝이 되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빗소리가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녀를 두고 밖에 나가자 어두운 밤하늘이 보였다. 비는 오고 있지 않았다. 환각을 듣고 있던 것이었다. 빗소리가.......

 

 내가 뒷골목을 빠져 나가자 정복을 입은 기사 몇이 나를 반겼다. 용사가 되지 못한 ‘용사 후보자’의 기사들이 새기는 문장이 보였다.

 

 용사의 선조가 그러했듯, 마왕의 피를 묻히고 ‘성검 보유자’가 아닌 용사가 되기 위해서. 마왕을 감싼 용사를 매도하고, 마왕의 목을 요구하던 성검을 찬 인간들이 떠올랐다. 그제서야 빗소리가 사라져간다. 내가 검을 뽑고 기사들의 몸에 흐르던 피가 비처럼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결심이 섰다.

 

 “곧 다시 만날거야, 내가 사랑하는 분...”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어떤 짓을 하더라고, 반드시.

 

 “네가 다시 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줄게.”

 

 그 세상이, 네가 알던 세상과 다르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