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벌을 받을 거예요.”

 

 벨메일 박사는 침울한 목소리로, 옆에서 작업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료 체비셰프 박사에게 말했다.

 

 “무슨 뜻이십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죠. 우리가 지금까지 저지른 죄에 대한 벌 말이에요. 사치와 향락, 낭비, 그리고 외면과 도피까지.”

 

 체비셰프 박사는 챙겨온 캔커피를 벨메일의 손에 쥐여 주었다.

 

 두 사람은 모두 우주공학의 전공자였고, 몇 개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작업이란 전 인류의 우주 항해라는, 전례 없는 위업이었다.

 

 어쩌면 항해라기보다는 이주라는 말이 더 적합할지도 몰랐다. 지금 건설되고 있는, 작은 국가만 한 크기의 우주선은 지구에 남아 있는 모든 인간을 태우고 다른 별로 떠날 방주였으니까.

 

 그러나 그만한 인공물을 건축하기 위해서 인류는 너무 많은 것을 소모했다.

 

 이 행성의 풍부했던 금속 자원. 우주 시대를 열 수 있도록 해줬던 에너지원.

 

 인류는 지구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도 되는 양 대지에 뿌리박은 모든 것을 빨아먹고, 이제는 지구를 버릴 셈인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필요 없다고 생각된 모든 것들을 냉정하게 방치했다.

 

 새 행성의 테라포밍에 필요한 생물들만 슈퍼 컴퓨터의 시뮬레이션으로 추려내 방주에 밀어 넣고, 나머지 모든 것은 이 폐허에 남겨두기로 정했다.

 

 파헤쳐놓은 대지. 오염된 대기와 바다.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 숨 쉬는, 인류에게 필요 없다고 낙인 찍힌 생물들까지.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자기가 뭘 잃었는지조차 모르는 지능 낮은 생물들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영장이 되지 못한 게 죄라면 죄겠죠. 우리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줄 필요는 없어요.”

 

 그것이 그들의 원죄였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죄.

 

 “아니요. 자질 있는 동물들은 있었어요. 뗀석기에 들어선 원숭이도 있죠. 아직은 언어조차 없지만, 몇백만 년만 지나면 분명 문명을 꽃피울 수 있는 아이들이잖아요.”

 

 “몇백만 년. 참 기네요.”

 

 “진화란 뒤로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법이니까요. 인류라고 해봤자 고작 천 년 전만 해도 기계학습도 없었잖아요?”

 

 벨메일 박사는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서 몇 가지 논문과, 거기에 첨부된 동물들의 사진들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녀의 핸드폰은 벌써 3일째 충전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남은 배터리는 90%가 넘었다.

 

 이 또한 인류가 박탈해버린 은혜였다.

 

 상온 초전도체라든가, 영구수명 배터리라든가. 아마 지금도 조악한 뗀석기로 열심히 살고 있을 가여운 생물들은 만져보지도 못할 물건이었다.

 

 이미 인류가 모두 써버린 뒤였으니까.

 

 “저는 걱정할 따름이에요. 그 아이들은 분명 먼 미래에 비극에 처할 거예요. 그들에게 남은 에너지원은 대체 뭐가 있죠? 기껏해야 썩은 나무나 이끼를 불태우는 정도겠죠. 그딴 걸로 우주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도달할 수나 있을까요?”

 

 “음……뭐, 걱정할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백만 년은 충분히 긴 시간이니까요. 그사이에 멸종할지도 모르고, 지구가 회복될지도 모르죠.”

 

 “절 바보 취급하지 말아요. 행성의 물질비는 이미 행성의 탄생 순간부터 결정돼 있어요. 가뜩이나 얼마 없는 희귀 자원을 우리가 다 캐버렸는데 그게 어떻게 재생되겠어요?”

 

 벨메일의 반박에 체비셰프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박사에게 통할 변명은 아니긴 했다.

 

 그렇지만 체비셰프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정말 별다른 유감이 들지 않았으니까.

 

 인류의 역사란 늘 그러했다. 강대국은 앞서 모든 자원을 착취하고, 나중에 와서야 거드름을 피우며 자연이니 환경이니 후발 주자들을 통제할 따름이었다.

 

 그게 지금은 국가를 넘어 종(種)에 적용되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이론이 있기는 했죠. 자원이 고갈난 후속 인류는 결국 지구 밖으로 나가지 못할 거라고. 작은 감옥 이론이었던가요.”

 

 “네. 이 아이들은 지구의 패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평생 우물 안 개구리로 살 운명인 거죠. 혹은 그 전에 멸망하거나요.”

 

 체비셰프는 우울한 정취에 젖어 있는 벨메일 박사를 흘낏 쳐다봤다. 이과에 종업하는 인간이란 사람을 위로하는 데에 별 재능이 없는 법이었다.

 

 아마 지금 그가 하는 몇 푼의 말이 썩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으흠, 실례했습니다. 저는 슬슬 우주선 내부를 확인해야 하니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체비셰프 박사는 다 마신 커피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뒷짐을 지고 연구실을 나갔다.

 

 뭐, 그래 봤자 잠깐의 기분이겠지. 으레 도살당해 고기가 되는 가축에 대한 평가처럼.

 

 거대한 우주선에 탑승한 그는 내부의 조작실에 들어갔다. 우주선에는 탐지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지구 표면의 어디라도 관측할 수 있었다.

 

 문득 벨메일의 한탄이 떠오른 체비셰프 박사는 탐지 장치의 스크린을 몇 번 터치했다.

 

 ‘뗀석기를 사용하는 원숭이라.’

 

 벨메일 박사가 언급한 원숭이의 서식지는 알고 있었다. 좌표를 입력하자 부감 풍경으로 그 원숭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내리는 비를 피해 동굴로 달려가는 작은 원숭이의 모습이 어쩐지 퍽 우습게 느껴졌다.

 

 감히 이걸 인류와 같은 생물이라 취급할 수 있을까.

 

 “그래도 확실히 불쌍하기는 하군.”

 

 체비셰프 박사는 중얼거렸다.

 

 가여운 원숭이들이다.

 

 그들이 후발주자라는 이유만으로 잃어버린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에너지 크리스털이 고갈된 그들은 석유 따위의 열등한 에너지원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워프 입자가 고갈된 그들은 우주로 가기 위해 저급 연료만으로 지구의 중력을 뿌리쳐야만 할 것이다.

 

 상온 초전도체가 고갈된 그들은 싸구려 저온 초전도체 하나를 만들겠다고 액체 헬륨을 써야 할 것이다.

 

 풍부한 광맥이 고갈된 그들은 고작해야 쥐꼬리만 한 금속을 캐겠다고 저 깊은 땅속을 캐고 다녀야 할 것이다.

 

 문명을 우주로 옮길 자원이 고갈된 그들은 지구라는 행성이 찌꺼기만 남은 감옥이란 것도 모르며 평생을 감사하며 갇혀 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인류보다 늦었으니까.





 우리가 지구 문명의 선발 주자라 생각했습니까? 작은 카푸친 원숭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