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니 그게 아니라..."


"자불어 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으셨다! 이 불효막심한 후손 놈들아! 그 어떤 후손이 죽은 조상을 괴력난신으로 만든다더냐!"


분노한 조상이 길길이 날뛰었으나,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의 몸을 입은 상태인지라 무섭기는커녕 앙증맞기만 하였다.


그 날뛰는 것마저도 새로 입은 육체의 체력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어린 아해라면 단련한 군인보다 체력이 좋은 법이거늘, 어째서 병에 걸린 것처럼 몸이 약한걸꼬?


조상은 사소한 의문이 들었으나 차치해두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꺼냈다.


"...하필 소녀의 육신에 현현 시킨 이유가 무엇이더냐. 설마 내 후손 중 하나가 주상께 발칙한 짓을 벌여 조상인 내가 새로운 형태의 부관참시 형을 받고 있는 게냐?"


"아닙니다. 후손인 저희가 조상님을 모신 이유는...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섭니다."


"도움? 무슨 일이길래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것도 아니고 죽은 조상의 불알을 만진 것일꼬?"


남자 후손은 민망하다는 듯 눈을 돌렸고, 뒤에 있던 여자 후손은 웃음을 터트렸다. 속담인걸 알아도 단어의 파괴력이 굉장한 탓이었다.


"그래도 소녀의 몸이신데 불알이란 단어는 보기가 좀..."


"뭣이? 무례와 잘못을 저지른게 누구인지도 모르고 감히 주제넘게 훈계를 하느냐!"


조상의 노호성에 두 후손은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조상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죽었다 살아난 것도 황당한데, 후손이라는 놈은 뺀질거리고 있으니 뒤통수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됐다. 그것보단 왜 나를 괴력난신으로 되살린 것이며, 되살려도 하필 소녀의 몸으로 되살릴 이유가 있었는지 납득가게 말해야 할 것이야."


"...나라에 큰 재난이 닥쳤습니다. 저희가 무례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난으로 인해 죽어나가는 후손들을 어여삐 여겨주십시오. 저희는 조상님의 도움이 간절합니다."


후손들의 간곡한 부탁에, 조상은 아직 젖살이 덜 빠진 소녀 특유의 부들부들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수염이 없으니 허전하구나. 수염을 길러야 하나? 아니다, 기르지 않는 게 낫겠구나. 여인의 몸으로 수염을 기를 수 있을리도 없을 뿐더러, 길러봤자 추할 뿐이겠지.'


도움 요청에 대한 것 대신에 이제는 나지 않을 수염을 말이다.


한시가 바쁜데 왜 딴 생각이나 하고 자빠졌냐고? 그야 후손들이 괘씸하니까. 


그러니 복수랍시고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끄는 게 아니겠는가? 괘씸한 후손 놈들.


속을 썩여도 후손은 후손이다. 조상은 부탁을 듣자마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와주기로 마음 먹었었다.


'후손들이 고통받는다니 도와는주겠다만, 괴력난신이 된 것도 분통이 터져 죽겠는데 간곡히 부탁한다고 바로 들어주면 그게 머저리인 법이지.'


그렇다고 시간을 너무 오래 잡아먹을 생각은 없었기에 조상은 턱을 매만지던 손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일개 유학자인 내가 뭘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유학자이기에 후손들을 위해 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주마."


"조상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왜 아해의 몸으로 되살아났는지는 얼렁뚱땅 넘어갈 셈이더냐?"


"그, 그것은."


후손은 죄를 지은 죄인처럼 안절부절 못하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조상에게 진실을 실토했다.


"조상님께서 입고 계신 육체는... 제 딸아이의 몸입니다."


"...딸아이?"


충격적인 단어에 머리가 잠시 굳은 조상은 이내 불같이 화를 내며 후손의 멱살을 낚아채듯 잡았다.


"네 이놈! 어찌 아비가 되어서 자식을 괴력난신의 그릇으로 만든단 말이더냐!"


"큭..."


"넌 인두겁을 쓴 짐승이다! 어디가서 내 후손이라고 지껄이고 다닌다면 넌 내 손으로 직접 죽일 것이야!"


자신은 역겨운 아비다. 후손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었기에, 대의라는 핑계가 있음에도 합리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합리화란 결코 넘으면 안되는 선이다. 조상은 후손이 선을 넘지 않은 걸 알았기에 기회를 거두지 않았다.


"... 쯧, 그래서 뭘 어떻게 도우면 되지?"


"그건... 저희 가문과 정부측에서 힘을 다루는 법을 알려드릴 겁니다. 같이 가시지요."


"쯧, 알겠으니 그 더러운 면상 좀 치우거라. 후손들이 죽어나간다니 도와주는 것일 뿐, 네놈이 예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라."


"...알겠습니다."



아카선비 돌아와 시발... 선비물 보고 싶단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