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의 산을 넘다보면 나무와 수풀 사이에 나오는 반쯤 무너져 가는 폐허가 있습니다.

그곳이 내 어릴적 아지트이자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가득찬 장소입니다.

거기는 참 오래간만에 가본 것입니다.

누가 거기를 가보라고 그랬나 모릅니다. 어쩌면 나의 억눌린 어린시절의 기억이 날 이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나도 퍽 변했습디다.

그 전에 흔들리던 전선줄들은 여전히 길게 늘어진채 여전하고, 차가운 오래전 신문들은 거무죽죽하게 변해버린 채 그 밑을 조용히 채우고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여기에 자주 오던 시절. 내 오랜 친구들은 다 헤어지거나 연락이 끊겼기에 지금은 불귀의 객이 된 몇몇을 제외하곤 그닥 안부조차 모릅니다.

안쪽엔 내가 그 시절 어디선가 몰래 가져다뒀던 매트리스와 이불이 여전히 보송보송 해보이는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차마 거기까지는 가지 않고 먼지 쌓인 의자에 앉아 혹여나 다른 친구가 오나 안 오나 멍하니 밖을 들여다보고 앉았습니다.

연락도 한번 안 했건만 내심 오길 바랬습니다. 난 그들을 잊지 않았기에.

어쩌면 그들도 한번즈음은 왔다 갔을지도 모를 일 입니다. 그들도 나처럼 이 의자에 앉아 온기를 잃은지 꽤나 되어버린 아지트에서 나를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

어느새 자라버린 덩쿨이 창문을 메울 기세입니다. 결국 회색빛의 폐허를 채운건 쾌락이 아닌 자연의 초록이었습니다.

어느샌가 천장도 구멍이 뚫렸는가 봅니다.

간밤 내렸던 비 때문인지 물은 그런 틈으로 잘 빠져 물로 가득한 양동이 –난 여기 온 일이 없으니 아마 제 친구들, 혹은 3자가 두고 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허나 중요치는 않았습니다.– 를 채우다 못해 넘치게 만듭니다.

허나 이리 변해버린 아지트를 한번 만져 보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내가 손을 댔다간, 결국 추억을 추억으로만 남기지는 못 할듯 싶었습니다.

바람 없는 저녁입니다. 문득 늘어진 전선 중 하나가 벽을 채찍질하듯 때립니다.

바람이 없는데 괴상할 노릇이지만, 이전에도 자주 그랬으니 난 의문 없이 자연스럽게 넘깁니다. 아마 저 전선에 전기가 아직 흐르기에 그러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머지 않아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면, 이곳은 어릴적 그때와 같이 어둠 속으로 아주 없어져 버립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칠흑입니다. 적응되지 않는 어둠입니다.

어릴땐 촉각과 청각으로 이런 어둠을 극복했습니다. 사실, 그땐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 함께 있었기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그 장소에 있었습니다. 그땐 잘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내 귓가에 울립니다.

야생동물이 사부작 사부작 땅을 밟는 소리, 이따금 들려오는 고라니의 비명소리, 전선이 점점 격렬하게 벽을 채찍질 하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같은 무언가, 뭔가 털썩 떨어지는 소리까지.

나는 조용히 배낭에서 라이트를 꺼내고, 라이트의 버튼을 누릅니다.

그리고, 침묵.

항상 이랬습니다. 이 장소는 불만 키면 모든 소리가 안 들립디다. 그저 어두움에 비롯되어버린 내 신경증일 확률이 큽니다.

나는 허탈히 웃으며 다시 의자에 앉아 저 방 한켠에 놓인 매트리스에서 보내온 순간들을 추억합니다.

그때는 모든게 즐거웠고, 영원할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영원이란게 있을줄 알았습니다.

산 한가운데에 버려진 폐허임에도 벌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이곳을 찾은 저는 그 당시 친구들과 매일매일 이곳에 왔었고, 친구만이 아니라 사촌동생들도 이따금 데리고 와서 함께 놀았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당시 즐거웠던 날들을 추억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아무 근심 없이 쾌락을 즐겼습니다.

허나 회상을 마치고 눈을 뜨자 방금까지 느껴졌던 그때의 온기는 온데간데 없고, 그곳엔 나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차가운 폐허에서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닥쳐와 그만 잠시 울먹였습니다.

이내 나는 혼자 크게 웃고는, 이 아지트를 찾을 누군가를 위해 양초 하나를 둔 채 나왔습니다.

내 즐거웠던 추억에 바치는 뇌물일까요. 양초를 두고 온 이유는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나의 옛 친구들이, 그 양초를 보고 우리의 추억이 담긴 아지트를 한번씩 들렀다 가길 바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려오다가 한번 더 허탈히 웃었습니다.

나는 중학교 시절의 나를, 그 경험들을 다 잊은척 굴었지만 이제 보니 나는 단 한번도 그 청춘의 나를 잊지 못하거나 아니한겁니다.


1줄 요약) 오랜만에 야간산행 해서 상쾌하니 야식으로 고기 먹을거읾,,,,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