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건 어둠.

어둠, 또 어둠.

어둠, 모든 것이 검다.

아니 검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색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부 빨려 들어가 뭉쳐버린 듯한 그런 어둠이다.

 

“블랙홀은 이런 색이구나.”

 

스스로가 말해놓고서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남자는 웃어버렸다.

웃을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게 정확할 거다.

 

한 달 전.

우주로 쏘아 올려 진 외우주거주가능행성탐사선 콜롬버스호.

난파당했다.

초신성 폭발의 여파를 만나버린 배는 대부분의 기능을 상실.

거기에는 안타깝게도 냉동수면중인 승무원들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던 기능이 포함되어있었다.

자신이 죽는 것도 깨닫지 못한 체 숨을 거둔 인원수, 1999명.

운이 좋게 함의 정비를 위해 불침번 순서가 되어 깨어있던 남자, A019를 제외하고는 전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도 멀쩡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죽을까?”

 

스스로 죽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겠지.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까 살아있을 뿐.

그게 A019가 내린 결론이었다.

불침번으로 잠깐 깨어난다고 해서 냉동되어있던 육체를 완전히 해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깨우는 건 뇌만.

그 뇌로 외부에 있는 육체 대용 아바타를 뇌파를 통해 원격으로 조작하여 불침번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것이었다.

A019도 자신의 불침번 차례가 되어 열심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게 독이 되어버렸다.

깨어난 뇌.

움직이지 않는 몸.

망가진 아바타.

쓸데없이 고장 나지 않은 A019의 냉동캡슐.

보조 베터리로 아직도 작동 중인 생명유지장치.

이 모든 게 합쳐진 결과 A019는 뇌만 깨어있는 채 캡슐 속에 갇혀 우주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

 

“그냥 죽자.”

 

어떻게 죽을 거냐면서 스스로에게 딴지를 걸고 있다.

아바타도 폭발의 충격으로 망가져 더는 움직이지 않는데.

착잡함에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한숨을 셔줄 몸은 없었다.

짜증이 치밀지만 감싸 쥘 머리도 없고.

그나마 감을 눈이 있다는 건 다행이라며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위로를 자기 자신에게 해주며 웃는 남자였다.

 

“운이 좋은 건지 없는 건지…….”

 

아바타의 시신경은 살아있었다.

덕분에 아바타의 시선을 빌려 우주선 내부의 모습을 볼 수는 있었다.

다만 위에서 말한 대로 아바타는 망가져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그러니 고정된 한 장면 밖에 볼 수 없었다.

그게 함선 밖 우주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모니터라는 것만큼은 정말 운이 좋았던 거라면서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일 고개는 없었지만.

 

“오늘은 뭐라도 좀 보이려나? 마지막으로 본 게 뭐였더라, 음…, 아! 나사였어. 응 맞아. 나사가 좌에서 우로 가로질러 갔었어. 맞아맞아. 기억난다. 기억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휙 지나갔었어. 정확히 정중앙은 아니었지만 모니터가 나사의 궤적으로 쩍 갈라진 것처럼 보였었지. 보였었어보였었어. 나사가 휙! 하고. 옆으로 휙! 머리 부분, 뭉특한 부분이 앞으로 향해있었어. 기왕이면 꼬리부분 뾰족한 부분이 가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워. 만약 꼬리부분이 앞으로 가있었다면 더 빨랐을까? 빨랐겠지? 공기저항도 덜 받았을 거고. 아니 우주인데 공기저항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그래도 뭔가 암흑에너지 같은 게 있어서 느려질 수도 있잖아 면적이 넓으면. 그럼 뾰족한 꼬리부분이 더 빨랐을 게 분명해. 꼬리부분으로 날아가는 걸 직접 본다면 더 정확할 것 같은데……, 에휴.”

 

맥이 빠졌다.

대체 몇 번이나 그 나사 얘기를 혼자 중얼거려야 하는 거냐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는 한 마디 뿐이었다.

사고가 나고 대략 하루 정도 지난 뒤였다.

모니터에 나사 하나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가로지르는 장면이 비쳤었다.

그게 다였다.

그 뒤로 지금까지 다른 그 무엇도 모니터에 비친 적이 없었다.

깜깜한 우주의 어둠뿐.

나사는 보이지 않았었냐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남자는 이제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혹시 모르지 않냐고 대답하는 자신을 수도 없이 마주해야 했다.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기대하고 기대하고 기대하고.

의심하고 기대하고 의심하고 기대하고.

 

……희망…….

 

자신이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 이 별 볼일 없는 나사 하나 따위의 희망 때문인 걸까?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이 참담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외면할 수 있게 해주는 기대감을 품고 있기 때문에?

남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로저을 고개는 없지만.

 

“…….”

 

사고가 정지했다.

더 이상 이어나갈 만한 사고거리도 없었거니와 A019는 지쳐있었다.

이제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정도로.

아니 머리만 남은 상태이니 그의 모든 것이 피로로 가득 채워진 거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하면 쉴 수 있을까?

죽는다면 편해질 수 있을 텐데.

손도 발도 없이 머리만 남은 자신이 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죽을 수 있었으면 그렇게 했겠지.

 

결국 그의 사고는 쳇바퀴가 돌아가듯 처음으로 돌아왔다.

대체 이 일련의 사고의 흐름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 것인가.

대체 몇 번이나 반복한 것인가.

 

“그냥 죽을까?”

 

모니터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아니 비치지 않는 게 아니라 모니터가 망가져 아무것도 비치고 있지 않는 게 아닐까?

저 검은 화면 자체가 우주를 비추고 있는 게 아니라 검게 암전된 모니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 뿐이라면?

그럼 자신은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바보같이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라는 건가?

확인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의문인데.

모니터로 다가가 전원버튼만 눌러보면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의문인데.

망가진 아바타는 그의 간절한 바람에도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살아있는 시신경으로 검은 모니터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한숨을 내쉴 수 있는 입도 폐도 몸도 없지만.

남자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사고를 이어나갔다.

 

“……어디까지 했더라? 아 그래, 그냥 죽을까, 까지 했었지. 그럼 다음은…그냥 죽자.”

 

스스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으면서 뭐가 그냥 죽자라는 거냐고.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를 자문자답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어차피 대답도 상황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데도.

이런 의미 없는 자문자답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A019는 떠올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생각하는 것밖에 할 수 없게 된 뇌뿐인 자신이 생각하는 것마저 멈춰버리면 뭐가 되겠냐고.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라며 그는 자기 자신을 설득했다.

 

“운이 좋은 건지 없는 건지…….”

 

이렇게 사고를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 어디냐고.

다른 1999명의 동지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가사상태에서 초신성 폭발의 여파로 모두 죽어버렸는데 자신은 살아있지 않냐고.

운이 좋게도 자신이 불침번을 맡게 된 타이밍에 일이 벌어졌다고,

자신의 냉동캡슐만이 고장 나지 않고 버텨주고 있다고,

생명유지장치도 가까스로 보조배터리를 통해 작동하고 있고.

이보다 낫은 상황을 상상할 수 없지 않느냐면서 A019는 몇 번째인지 모를 자기암시를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이렇게 살아있으면 언젠가 혹시 또 모르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지 않겠냐고도.

 

…희망…….

 

함선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알아차리고 지구에서 도움을 주러 누군가 올 수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비치고 있지 않은 모니터지만 곧 구조대의 배가 보이게 될 거라고.

그걸 직접 볼 수 있게 아바타의 시신경이 망가지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었다.

거기다 아바타가 작동 중인 걸 보고 더 빨리 구조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기대감이 A019를 들뜨게 만들었다.

들뜰 가슴은 없지만.

 

“…….”

 

사고가 정지했다.

과한 낙관이 지나고 남는 후유증은 너무나 아팠다.

그 아픔을 또 맛보고 싶지 않다는 회피본능이 A019가 고개를 가로젓게 만들었다.

가로 저을 고개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도 죽었더라면 이런 생각 따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니 스스로 죽을 수만 있었더라도 이런 고민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아바타만이라도 망가지지 않았더라면.

이 피로감 가득 찬 분홍색 살덩이 꽉 움켜잡아 터트리고 개운하게 편해질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 아쉽다면서 그는 거칠게 혀를 찼다.

찰 수 있는 혀도 없지만.

 

“그냥 죽을까?”

 

그러니까 어떻게 죽을 거냐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A019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