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정자에 앉아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소녀는 크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소녀의 시야에 하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아빠!"

  

소녀는 그를 보자마자 재밌게 읽던 책을 내던지고는 해바라기만큼이나 노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남자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딸을 안으려던 남자는 생각보다 큰 충격에 짧은 신음을 뱉으며 뒤로 몸을 기울였다.

그런 아빠의 고통을 전혀 모르는 딸은 그저 오랜만에 만난 아빠가 좋아 웃으며 그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남자는 품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따뜻함에 순식간에 고통이 사라지는 걸 느끼며 딸을 안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공주님, 잘 있었어?"

 

"응. 엄마 말 잘 듣고 있었어요."

 

"정말? 우리딸 누구 닮아서 이렇게 착하고 예쁠까?"

 

남자는 사랑스러운 딸의 볼을 입술로 꾸욱 눌렀다.

 

"히히힛, 간지러워."


간지러움과 반가움에 까르륵 웃는 딸의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남자가 물었다.


"엄마는?"

 

"엄마?"


그제야 자신과 함께 정원에 나왔던 엄마가 옆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소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랑 같이 있었는데?"

 

보석같이 반짝이는 파란 두 눈을 깜빡이며 두리번거리는 딸과 티 테이블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는 동화책을 본 남자는 상황을 대충 파악하고 씨익 웃었다.

 

"우리 공주님은 책을 너무 좋아해."


"응?"

 

뜬금없는 아빠의 말에 딸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 올 때까지 아빠랑 같이 여기서 기다리자."


"응!"


남자는 무릎을 살짝 굽히며 품에 안은 딸을 내려 놓았다.

땅에 두 발을 디딘 소녀는 아빠의 손을 잡고 잡아당기려다가 아빠의 뒤에 서있는 낯선 여자를 보고 멈췄다.

 

"누구...?"


소녀와 눈을 마주친 낯선 여자가 슬며시 미소지었다.

소녀보다 훨씬 큰 키, 비단실처럼 부드럽고 매끈하게 반짝거리는 옅은 금발, 막 피어난 붓꽃처럼 연한 보랏빛 눈동자.

숙녀들이 산책할 때 사용하는 검은색 지팡이를 다소곳하게 손에 들고 미소짓는 그녀는 꼭 귀족가의 여식같이 보였다.


"아빠, 이 언니 누구예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우아해 보였던 소녀가 곧바로 아빠에게 물었다.

 

"언니? 하하하, 아니야, 엘리. 언니가 아니라, 새 안드로이드란다."

 

남자는 자기 뒤에 있던 안드로이드에게 살짝 손짓해서 앞으로 나오게 시켰다.

 

"오늘부터 이게 너를 지켜줄 거야."

 

"지켜줘?"

 

딸이 되묻자 남자가 말했다.


"응. 나쁜 사람들이 우리 공주님한테 나쁜짓 못하게 막아줄 거야."

 

"저것들처럼?"

  

딸은 조용히 정원 위를 날아다니는 경호 드론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저것들처럼."

 

소녀는 드론과 안드로이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소녀가 오늘 처음 본 안드로이드는 그녀가 알고 있던 다른 로봇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이 저택에 다른 드론이 아닌 인간형 안드로이드들이 많긴 했지만, 그것들은 전부 소녀의 아빠만큼이나 키가 컸고, 로봇같은 머리를 달고 있었으며,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

하지만 소녀의 앞에 있는 이 안드로이드는 소녀보다 크긴 했어도 일반적인 여자와 비슷한 키였고, 이목구비가 뚜렷했으며,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치만 이 언니는..."

"데일?"

 

딸이 자신이 품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아빠에게 물어보려던 순간,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언제 온 거예요? 그리고 옆은 또 누구고요?"

  

책에 푹 빠진 딸아이를 잠시 내버려두고,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온 아내가 반가움과 의아함을 담아 남편에게 물었다.

  

"지금 막 돌아왔어요. 그리고 이건 엘리자베스의 경호와 교육을 맡길 새로운 안드로이드고요."

  

"안드로이드라고요?"

  

남편의 말을 들은 부인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

  

"분명히 저번에 가정교사는 사람으로..."

"잠깐만, 엘레노어. 저쪽에서 이야기해요."

  

남자는 급하게 부인의 말을 가로막고는 딸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우리 공주님, 잠깐만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아빠는 엄마랑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어린 딸은 아직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과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심상치 않은 엄마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착하지."

 

남자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 살짝 입을 맞추었다.


"너도 같이 기다려."

 

"네, 알겠습니다."


주인의 명령을 받은 안드로이드가 정중하게 대답했다.


기계에게 명령을 내린 남자는 불만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는 부인에게로 다가가 그녀와 함께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딸은 불안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부모를 바라보다가 두 사람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손톱을 깨물었다.

  

"아가씨."

  

잠깐동안 안드로이드의 존재를 잊었던 소녀가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손을 뒤로 감췄다.

  

"손톱을 깨무는 버릇은 좋지 않습니다."

 

"아, 알아요... 그냥..."

  

우물쭈물 변명을 하려던 소녀는 이내 입을 다물고 뒤로 감춘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가씨. 아가씨는 제 주인님이시니까요."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눈치를 보는 어린 소녀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안 좋은 버릇 때문에 혼날까봐 걱정하던 소녀는 그 미소를 보지 못하고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그런 주인을 바라보다가 다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 입을 열었다.


"오늘 처음 만났으니 서로 자기 소개를 할까요?

저는 앞으로 주인님의 경호와 교육을 담당할, 모델번호 Patrona-311-Y형, 통칭 엘리입니다.

편하게 엘리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 엘리?"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녀가 고개를 홱 들어올렸다.


"언니 이름이 엘리야?"


"네, 맞아요."


"진짜? 나도 엘리야! 원래 이름은 엘리자베스인데, 친한 사람들은 전부 엘리라고 불러!"


로봇의 이름과 자신의 별명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친밀감을 강하게 느낀 소녀가 잔뜩 흥분해서 자기 이름을 밝혔다.

 

"잘 부탁드립니다, 엘리자베스 아가씨."

 

"엘리! 엘리라고 불러줘!"

 

"네, 엘리 아가씨."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소녀와 다르게 안드로이드는 기품을 지키며 대답했다.

그 성숙한 모습이 소녀의 마음 한 켠에 동경하는 마음을 만들어냈고, 그 마음은 곧 눈 앞의 여자와 더 친해지고 싶다는 소망이 되었다.

 

"그럼, 엘리 언니. 나랑 같이 놀자."


방금 전까지 불안해하던 모습을 완전히 던져버린 채, 소녀가 싱글벙글 웃으며 로봇의 손을 잡아당겼다.


"뭐하고 놀까요?"

 

"음... 인형놀이하자! 내 방에 인형 많아!"

 

"하지만 주인어른께서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아... 맞다..."

  

그제야 소녀는 아빠의 말을 기억해내고 풀죽은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실망감에 살짝 숙여진 소녀의 고개를 본 안드로이드는 빠르게, 하지만 급해보이지 않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동화책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동화책을 손에 들었다.

 

"'공주님. 공주님의 손이 너무나도 차가워요.'"

 

안드로이드가 동화책에 나오는 소녀의 대사를 연기하자 풀이 죽어 있던 엘리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공주가 대답했어요.

'그건 나에게 심장이 없기 때문이란다. 사악한 마녀가 내 심장을 가져가버렸거든.'

'나쁜 마녀 같으니! 공주님, 제가 그 심장을 찾아올게요!'

엘레나가 자신있게 말했어요."

 

일인극을 하던 안드로이드는 잠깐 말을 멈추고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신기함과 기대에 찬 눈을 반짝이며 안드로이드의 다음 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그래줄 수 있겠니?'"


작은 주인의 기분이 풀렸음을 확인한 안드로이드는, 주인을 의자에 앉히며 계속 연극을 이어갔다.

 

 

 

 

 

 

 

 

"요정이 말했어요.

'엘레나, 제가 마녀의 부하들이 쫓아오지 못하게 이곳을 지킬게요. 그동안 엘레나는 동굴을 빠져나가세요.'

'하지만, 그랬다가는...'


... 아가씨? 주무시나요?"

 

침대 옆에서 동화책을 읽던 안드로이드는 소녀가 잠든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책을 내려놓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주홍색 전등을 끄고 소녀의 이불을 똑바로 덮어준 안드로이드는 자신의 지팡이를 챙기고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엘레나의 방]


명패에 쓰여진 글귀를 바라보던 안드로이드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도 없는 긴 복도의 적막을 깨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하지만 느리진 않게. 

문틈새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방 앞까지 간 안드로이드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주인님, 엘리입니다."


"..."


똑똑똑.


"주인님, 들어가도 될까요?"


"..."


"들어가겠습니다."

 

안드로이드가 문을 열자마자 훅 풍기는 알코올 냄새와 답답한 공기가 안드로이드를 덮쳤다.

안드로이드가 자신을 밀어내는 공기를 뚫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 희미한 전등만 켜놓은 낮은 탁자에 술병을 올려놓고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는 이 집의 여주인, 엘리자베스가 보였다.

어린 시절의 순진했던 모습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삶에 찌들은 그녀는 안드로이드를 한 번 쳐다보고는 비어있는 잔을 다시 채웠다.


찰칵이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문을 닫은 안드로이드가 잠옷을 입은 엘리자베스에게 다가갔다.

 

"아가씨께서는 잠드셨습니다."


주인은 말없이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냄새만으로도 취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한 술을 단숨에 들이킨 엘리자베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이 비틀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본 안드로이드는 곧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담담하게 기다렸다.

 

짜악!

 

손등과 뺨이 부딪히며 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안드로이드의 고개가 옆으로 강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자세를 다시 바로잡았다.


말없이 안드로이드를 내려다보던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들어오라고 한 적 없잖아."


"죄송합니다."

 

짜악!

또다시 뺨을 때리는 소리가 방을 채웠다.

안드로이드가 다시 정자세로 서자 주인이 물었다.

  

"내가 언제까지 오라 했었지?"

 

"9시까지 오라 하셨습니다."

 

짜악!

세 번째로 안드로이드의 뺨을 후려친 엘리자베스의 손등이 빨갛게 물들었다.

 

취한 상태에서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화끈거리는 손등을 주물럭거리던 엘리자베스가 갑자기 안드로이드의 배를 발로 밀어찼다.

중심을 잃고 우당탕 쓰러진 안드로이드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반쯤 일어났을 때 주인의 발이 다시 한 번 그것의 머리를 차버렸다. 

제대로 서기도 전에 강하게 차인 안드로이드는 뒤로 나자빠지며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놓쳤다.

안드로이드의 손을 떠난 지팡이가 바닥을 굴러가던 것을 보던 엘리자베스는 안드로이드가 지팡이를 줍자마자 명령했다.

  

"가져 와."

 

폭행을 당하면서도 여태까지 담담하던 엘리가 처음으로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곧 엘리는 주인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두 손으로 건넸다.


퍽!

검은 지팡이를 받은 엘리자베스는 곧바로 안드로이드의 명치를 지팡이의 단단한 끄트머리로 누르며 벽으로 밀어붙였다.

이윽고 벽과 지팡이 사이에 끼인 엘리가 방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고통에 얼굴을 구겼다.

그러나 엘리는 주인이 자신에게 주는 고통을 막거나 피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손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이를 꽉 깨문 채 미간을 구기며 어떻게든 고통을 참아낼 뿐이었다.


꾸우욱-

신음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안드로이드를 보던 주인이 팔에 더욱 힘을 줬다.

 

"끄윽..."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한 안드로이드가 신음을 흘리고 나서야 그것을 괴롭히던 엘리자베스가 지팡이를 떼어냈다.


"커흑,"


엘리는 지팡이가 몸에서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대고 엎드려 자신의 명치를 감쌌다.

둥글게 몸을 말고 잔기침을 하는 안드로이드를 내려다보던 주인은 지팡이를 들어올려 그것의 머리를 겨누었다.


당장이라도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내려 칠 것처럼 손을 들어올린 엘리자베스였지만, 그 손은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들어올린 손이 덜덜 떨리면서 그녀의 마음속에 갈등이 커져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씨발!"


끝내 그녀는 욕을 내뱉으며 지팡이를 안드로이드에게 집어 던졌다.


안드로이드에게 맞고 튕겨나간 지팡이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보지 않고 뒤돌아선 엘리자베스는 탁자에 놓인 술병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다 마시지 못한 술이 입에서 넘쳐 턱을 타고 떨어지며 옷과 바닥을 적실 정도로 급하게 알코올을 들이켰다.

 

"커흡, 쿠흡!"

  

몇 모금 마시지 못했음에도 알코올의 맛과 향을 견디지 못한 엘리자베스의 몸이 공기와 함께 그것을 도로 뱉어냈다.

바닥에 술병을 떨어뜨린 그녀는 소파 등받이를 붙잡고 불규칙하게 기침을 했다.


"쿨럭, 크헥, 우극, 우웨엑!"

 

내팽겨진 술병처럼 꿀렁이며 기침을 뱉던 엘리자베스가 이내 속에 들어간 것을 전부 게워내기 시작했다.

전부라고는 해도 나오는 건 그녀가 마신 술과 섞인 위액 뿐이었지만.

 

주인이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안드로이드가 괴로워하는 엘리자베스에게 다가가 말없이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허억, 허억..."


안드로이드의 도움을 받아가며 구토를 하던 여인은 더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게 되자 몸을 뒤집어 자신이 기대고 있던 소파에 주저앉았다.


안드로이드는 익숙한 상황인 것처럼 방 안에서 화장지와 물병을 찾아 주인의 입주변을 닦아주고 물을 먹였다.

어느정도 갈증과 통증이 사라진 엘리자베스가 안드로이드의 팔을 밀어내자 안드로이드가 물병을 닫았다.


제풀에 지친 주인이 쉬는 사이, 안드로이드는 조용히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용물을 거의 다 뱉어낸 술병을 다시 탁자 위에 올려두고, 화장지를 가져와 더러워진 카펫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엘리."

 

바닥을 화장지로 훔치던 안드로이드는 즉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주인님."

 

"..."

 

주인은 안드로이드를 불러놓고서 말없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안드로이드 역시 말없이 그녀를 지켜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엘리."

 

"네, 주인님."


엘리자베스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그것이 제대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처럼 몇 번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한참동안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뻐끔거리기만 하던 그녀는 결국 마음에 없던 질문을 던졌다.

 

"... 엘레나는?"


"아가씨는 잠드셨습니다."

  

누가 봐도 억지로 쥐어짜낸듯한 질문에도 안드로이드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자기 전엔 뭘 했는데?"

 

"동화책을 읽어드렸습니다."

 

"... 그 책?"

 

"네."

 

"... 그래..."

 

더는 쥐어 짜낼 질문도 없는 주인이 다시 입을 다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거, 안 주워도 돼?"


흔들리는 머리만큼이나 어지러운 눈동자로 방을 살펴보던 엘리자베스가 바닥에 뒹구는 지팡이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괜찮습니다."

 

"... 주워도 돼."

 

주인이 허락하자 안드로이드는 빠르게, 하지만 경망스럽지 않게 지팡이를 주워왔다.

안드로이드가 지팡이를 다소곳하게 들고 앞에 서자 엘리자베스는 천천히 고개를 꺾어 엘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기보다 작은 키, 옅은 금발, 검은색 업무용 드레스.

 

"여전하네."

 

엘리자베스가 작게 혼잣말을 하고서 다시 고개를 떨궜다.


"엘리."

 

"네, 주인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

 

안드로이드가 대답하려 했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그때도 넌 그 모습이었어.

하얀 드레스를 입고, 지금처럼 검은 지팡이를 들고 서서는, 꼭 어디 귀족 아가씨처럼, 그냥 그렇게 서 있었어.

그땐 나도 금발이었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 눈도 파랬고.

근데 지금은?"

 

엘리자베스가 갈색이 된 눈동자로 짙은 흑갈색으로 변한 자신의 머리카락과 오물로 더러워진 가운을 내려다 보았다.


"..."


고개를 푹 떨구고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던 여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잠들었다.

 

주인이 잠든 걸 확인한 안드로이드는 조용히 어지러진 방을 청소한 다음 빠져나왔다.

 

엘리가 방에서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메이드 안드로이드들이 다가왔다.

  

"잠드셨어요."

  

메이드들에게 짧은 말을 마친 엘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번 신 모델도 정말 대단한 인기입니다, 펜들턴 회장님."

"경쟁 업체들도 일찌감치 포기하고 신제품 출시를 전부 연기했다면서요?"

"저번 박람회 전체가 마치 귀사의 제품 홍보장처럼 되어버렸네요. 투자한 보람이 있어요."


자신의 저택에서 귀빈들을 대접하던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칭찬을 들으며 겸허한 미소로 화답했다.


"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이참에 생산 라인을 더 늘리시는 건 어떻습니까? 마침 새로운 산업 단지가 육성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고요."


"고려해보록 할게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뒤에는 안드로이드 엘리가 조용히 서 있었다.

엘리는 그들의 대화를 듣지 않는 것처럼 지팡이를 두 손에 쥔 채로 눈을 감고 석상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군수나 경호용 말고 일반 로봇을 만드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투자자 중 한 명이 엘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안드로이드만 해도 회장님께서 몇 년 째 비서로봇으로 사용하는 걸 보면 성능이 꽤 좋아보이는데요."


"보안상의 이유로 사용하고 있는 것 뿐이에요. 만들어진지 한참 된 모델이기도 하고요."


"그런가요? 그래도 제가 보기엔 외형이든 성능이든 지금 나오는 모델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요.

꼭 저 모델이 아니더라도 쿠스토스 사의 기술력이라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희 회사를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 해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그래도 아직은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 보다는 저희의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되서요."


"하하, 이미 경호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한 쿠스토스 사를 누가 위협하겠습니까?"

"그렇죠, 그렇죠!"

"하하하하!"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엘리자베스는 조용히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어느정도 웃음소리가 사라지자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말씀대로 40%면 이미 충분한 수치이기는 하죠. 하지만 그정도로는 안심할 수 없어요.

저희 회사가 그정도의 점유율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제 아버지이자 전임 회장이었던 데일 펜들턴 개인의 기량 덕분이었으니까요.


반(反)안드로이드주의자의 테러로 인해 제 부모님과 남편이 사망한 후, 쿠스토스 사는 혼란기를 겪었어요.

상승세를 타고 있던 점유율은 현상 유지를 하기에도 벅차졌고, 새로운 모델이 나올때마다 '혁신'이라고 불리던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그저 '개선'을 하고 있을 뿐이죠.

그렇기에 제 목표는 제가 아버지처럼 어느날 갑자기 죽는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상관 없이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놓는 것이에요."


"좋은 목표군요. 헌데, 그건 너무 어려운 목표 아닌가요?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요."


투자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하자 엘리자베스가 싱긋 웃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미 그 준비가 거의 끝났으니까요.

길어도 일 년 이내로, 제가 여러분들께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드린다고 자신하죠."


"회장님의 표정을 보니,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만족한 세 사람이 새로운 화제로 이야기 주제를 바꾸었다.


"그건 그렇고, 여러분 혹시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이번에 반안드로이드주의자들의 간부 중 한 명이 급사했다던데..."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곁눈질로 슬쩍 자신의 안드로이드를 바라보았다.






"휴우..."


투자자들의 배웅을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엘리자베스가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주인님."


그녀를 따라 방에 들어온 엘리는 비어있는 잔에 차가운 물을 따라 자신의 주인에게 내밀었다.

엘리자베스는 눈동자만 움직여 그 잔을 보다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시킨 일은?"


"82명의 정보를 갱신하고, 새로 1명을 추가했습니다."


엘리가 잔을 그녀의 앞 책상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한 명이 추가되었네."


"이전까지 반안드로이드주의자들과 함께 한 행적이 없는 걸로 봐선, 아마도 최근에 합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멍청하기는."


엘리자베스는 무감정하게 말을 내뱉고서 서랍에서 술병을 꺼냈다.


"주인님, 아직 해가..."

"어차피 남은 일정 없잖아."


자신을 만류하는 안드로이드의 말을 잘라내버린 주인은 곧바로 술병을 따버렸다.


"잔을..."

"필요 없어."


이어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는 잔에 그대로 술을 들이 부었다.

반 정도 차있던 투명한 물에 오랜지색의 술이 안개가 퍼져나가듯 섞여 들어갔다.


꿀꺽, 꿀꺽, 꿀꺽...

잔에 가득 채워진 액체를 한 번에 마신 엘리자베스는 비어있던 속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또다시 잔을 채우려고 했다.


쪼르륵-

그러나 그녀가 병을 기울이기 전에, 엘리가 먼저 그녀의 잔 안에 물을 채워넣었다.

엘리자베스는 술병을 든 자세 그대로 고개를 들어 자신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안드로이드를 노려보았다.


"... 뭐하는 거야?"


"빈 속에 술을 너무 빨리 드시면 안 됩니다."


엘리자베스가 술병을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이 잔을 비우고 술을 마시라는 거야?"


"네."


"그래."


엘리자베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을 잡았다.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잔에 찬 물이 찰랑거리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는 갑자기 물을 엘리에게 뿌려버렸다.


촤악!


엘리가 입고 있던 검은 드레스에 부딪힌 물이 깨지며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엘리자베스는 빈 잔을 뒤집어 안에 남은 물방울까지 전부 털어버린 다음, 엘리에게 보란듯이 잔을 흔들었다.


"됐지?"


그녀는 안드로이드가 뭐라 하기도 전에 잔을 뒤집어 탁자에 내려놓고는, 술병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주인님."


자신을 부르는 엘리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술을 몇 모금 마신 엘리자베스가 입술을 소매로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안드로이드의 앞에 선 주인은 술병을 든 손으로 엘리의 몸을 누르며 말했다.


"나는 예전처럼 어린 애가 아니고, 너도 이젠 내 교육용 안드로이드가 아니야.

너는 그저 나를 지키고, 내가 시키는 일만 잘 하면 돼. 알겠어?"


"주인님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짜악!


"말 했지? 너는 내 교육용 안드로이드가 아니라고.

근데 아직도 날 가르치려 들어?"


"가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주인님의..."


짜악!


"가르치려는 게 아니면, 입 닥치고 내가 하는 말만 잘 들으라고. 그게 그렇게 어려워?"


"저번 검진 결과, 주인님의 몸 상태가..."


짜악!


"네가 생각해야 하는 건 내 몸의 상태가 아니라, 너한테 내려진 명령이라니까?"


엘리자베스의 말을 들은 안드로이드가 고개를 들어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명령을 수행하는 중입니다."


"... 뭐?"


"주인님의 아버지께서 제게..."

"닥쳐!"


엘리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아빠를 죽게 내버려두고선, 이제와서 아빠를 들먹여? 너한테 그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엘리자베스가 악에 받친 표정으로 안드로이드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날 우리 아빠를 죽인 건 너야! 충분히 구할 수 있었는데도, 날 억지로 끌고 도망친 건 너라고!"


엘리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흔드는 주인을 바라보았다.

엘리의 머릿속에 내장된 감정 분석 프로그램이 주인의 표정에서 슬픔, 분노, 죄책감 따위의 감정을 읽어냈다.

그 감정들은 그날 엘리가 주인에게서 읽어냈던 감정들과 똑같았다.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잔해 속에서, 데일은 딸이라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연히 엘리자베스는 그 말에 반발하며 엘리에게 몇 번이나 아빠를 꺼내라고 소리쳤지만, 엘리는 비이성적인 엘리자베스의 명령을 무시했다.

우선 순위를 따져 보았을 때도 데일의 명령이 엘리자베스보다 우선했고, 실현 가능성을 따져 보아도 데일까지 데리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제로 엘리가 엘리자베스를 들쳐 매고 잔해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구조물이 무너졌었다.


그러나 엘리는 그때도, 지금도 그 사실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그날의 원망과 울분을 자신에게 쏟아내는 엘리자베스의 말과 행동을 묵묵히 받아냈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감정이 없으니, 주인의 감정에 의해 상처받을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동안 자신의 분노와 죄책감을 엘리에게 쏟아내던 엘리자베스가 엘리를 밀쳐냈다.


"허억, 허억..."


격한 감정에 의해 지친 그녀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대고 주르륵 미끄러져 주저 앉았다.


"흑, 으흑..."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눈물로 흘려보내는 엘리자베스의 어깨가 간헐적으로 들썩였다.


"주인님."


분노와 죄책감에 의해 무너진 주인의 모습을 보며 엘리는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나가."


그러나 엘리의 손길이 닿기 직전, 엘리자베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몸에 손 대지 말고 나가."


조금만 더 나아가면 엘리에게 닿을만한 거리에서 머뭇거리던 손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엘리는 천천히, 느린 속도로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문을 향해 걸어갔다.


"..."


문고리를 잡은 엘리는 벽에 기대어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는 자신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이 방을 나가면 주인이 홀로 남겨질 것이라는 사실이 엘리의 논리회로를 계속해서 멤돌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방 바깥에는 안드로이드 메이드가 항상 대기하고 있기에 주인은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었다.

또, 저택은 온갖 경비 드론과 최첨단 안드로이드들에 의해 빈틈없이 지켜지고 있으니 외부로부터의 위협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만일 주인의 몸 상태가 나빠진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몸에 내장된 마이크로칩이 즉각 저택의 모든 안드로이드들에게 경고를 보낼테니 그 또한 걱정할 것이 안 되었다.


"..."


그럼에도, 엘리의 논리회로는 계속해서 자신이 떠나도 괜찮은 것인지를 계산했다.

수백만 번의 연산을 통해 이미 괜찮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그럼에도 엘리는 한 번 더 자신의 다음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 회로를 돌렸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떠나도 괜찮음'이었고.


달칵-

마침내 결정을 내린 엘리가 문을 열고 나갔다.






"엘리, 괜찮아?"


정원에서 엘리자베스의 방 창문을 바라보던 엘리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네?"


"무슨 일 있었어?"


엘리와 함께 정원에서 꽃구경을 하고 있던 엘레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엘리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아무 일 없었어요."


"... 또 엄마한테 혼난 거야?"


엘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옛날 일 때문에 혼났어요."


"저번에도 그것 때문에 혼났잖아."


엘레나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같은 일로 몇 번이나 혼나는 건 이상해."


"그만큼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까요."


엘리에게 같은 대답을 몇 번이나 들었던 엘레나가 엘리를 올려다 보았다.


"무슨 잘못이었는지 또 말 안 해줄거지?"


엘리는 이미 답변을 알고 있는 엘레나를 향해 작은 미소를 보냈다.


"죄송해요, 아직 아가씨에게 말씀 드릴만한 내용이 아니어서요."


"그럼 언제쯤 알려줄 건데?"


"주인님께서 허락하시면요."


"피이..."


엘레나는 괜히 발끝으로 땅을 툭 찼다.


"엄마는 절대 허락 안 해줄 걸. 뭐만 하면 내가 애기라 안 된데. 나 이제 애기 아닌데."


"후후."


엘리는 아직 여섯 번째 생일도 오지 않은 아가씨의 투정을 들으며 작게 웃었다.


"엘리는 엄마 안 미워?"


투덜거리며 정원에 깔린 돌길을 발로 툭툭 치던 엘레나가 불쑥 물었다.


"전혀요. 제가 왜 주인님을 미워하겠어요?"


"엄마가 맨날 엘리 괴롭히고 때리잖아."


"네?"


엘리는 순간적으로 그 말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하고 되물었다.

엘리의 성능을 생각한다면 해석해내지 못할 말이 아니었음에도, 그녀의 논리회로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나 알아. 엄마가 맨날 엘리 때리는 거."


"그걸 어떻게..."


폭력적인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주입받은 엘리는 엘레나에게 자신의 상황을 들키지 않도록 행동해 왔었다.

엘리의 주인 역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딸 앞에서는 엘리를 무시할지언정 그녀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설마 엘레나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 엘리의 대화 알고리즘이 올바른 말을 찾아내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엘레나는 그런 엘리의 반응을 보고는 조금 슬픈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엘리가 엄마 미워한다 해도 나는 괜찮아."

"아니요."


엘레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버그가 일어난 것처럼 꼬여있던 엘리의 논리회로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저는 주인님을 조금도 미워하지 않아요."


"선생님이 그랬어.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도 나를 미워하게 될 거라고. 근데 엄마는 엘리 미워하잖아."


엘리가 다리를 굽혀 주인의 딸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주인님은 절 미워하지 않으세요."


"미워하지 않는데 왜 때려?"


"주인님은 많이 힘드시거든요."


"엄마가 힘들어?"


엘레나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사람은 힘들고 지치면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고는 해요.

그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그러는 거에요."


"왜?"


"그것까진 모르겠어요. 저는 안드로이드니까요.

하지만 확실한 건, 주인님께서 저에게 화를 내시는 것도 제가 미워서 그런게 아니라는 거에요."


하지만 여전히 엘레나는 엘리의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걸 어떻게 아는데?"


"오랫동안 같이 지냈으니까요.

주인님이 아가씨만큼 작았을 때에는 이 정원에서 같이 자주 놀기도 했어요.

지금 제가 아가씨한테 해드리는 것처럼 잠자리에서 동화를 읽어드리기도 했고요.

그럴때면 주인님은 항상 웃는 얼굴로 제가 정말로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이후로도 지난 26년 동안 원래라면 버려졌어야 하는 저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저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해주셨고요."


어렸을 때부터 자신과 함께 있었던 엘리를 잃어버리기 싫었던 엘리자베스는 틈이 날 때마다 엘리를 개조했다.

의체는 물론, 집적 회로와 AI까지.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와 기술을 아낌없이 투자하였다.

나중에는 아예 자신이 스스로 엘리의 업그레이드를 담당하였으며, 그 실력은 엘리를 직접 만들었던 아버지 데일이 감탄할 정도였다.

그 결과, 엘리는 만들어진지 이십 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시장에 있는 그 어떤 안드로이드보다도 뛰어난 성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주인님께서도 다시 저를 때리지 않게 되실 거에요.

그때가 되면 아가씨하고도 더욱 자주 놀아 주실 거고요."


"정말?"


"네, 정말로요."


엘리가 미소지었다.






똑똑똑.


"주인님, 엘리입니다."


"들어와."


늦은 밤, 엘레나를 재우고 온 엘리가 엘리자베스의 방으로 들어왔다.

평상시라면 술에 취해 있었을 엘리자베스였지만, 오늘만큼은 입에 조금도 술을 대지 않은 채로 엘리를 맞이했다.


"엘레나는?"


"잠드셨습니다."


"그래."


엘리자베스가 책상 구석에 놓인 버튼을 누르자 커다란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보고해."


"총 561명의 정보를 재확인하였으며, 그중 64명의 정보를 갱신하였습니다. 신규 등록자는 없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화면에 띄워진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하며 스크롤을 올렸다.


"남은 인원은 없는 거지?"


"아마도 그럴 것으로 예상됩니다."


마지막 한 명까지 명단을 일일히 전부 확인한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드론들은 전부 준비 됐어?"


"네, 언제라도 명령을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화면에 띄워 봐. 타겟들의 위치랑 같이."


엘리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명단에 있던 사람들의 현 위치와 함께 그들 주변에 배치된 드론들의 위치를 화면에 표시했다.

화면에 표시된 점들을 지켜보던 엘리자베스는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엘리는 자신의 논리회로가 방금 전부터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왜인지 계속해서 각 부위가 자잘자잘하게 움직였고, 이상하게 코어의 온도가 높아 냉각을 평소보다 조금 더 강하게 해야했다.

혹시라도 각 회로에 문제가 생긴건가 하여 자체적으로 간이 점검을 실행해보기도 했지만, 회로 자체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즉,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이상현상은 어디까지나 소프트웨어적인 문제라는 뜻이었다.


"엘리."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엘리자베스가 엘리를 불렀다.


"네, 주인님."


"내가 이 계획을 실행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지?"


"네. 명령하신다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훨씬 뛰어난 천재성을 지닌 엘리자베스가, 사업 확장을 포기하면서까지 몇 년에 걸쳐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것을 아는 엘리가 즉시 답했다.

심지어 이미 반안드로이드파의 간부를 포함해 몇 차례 실전 시험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래..."


엘리자베스는 다시 생각에 잠긴 것처럼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는 동안 화면에 표시되어 있는 몇몇 목표들이 위치를 옮기기도 했지만, 그다지 멀리 움직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노려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평소와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었다.


"엘리, 넌 어떻게 생각해?"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내가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까? 아니면 여기서 그만둬야 할까?"


"... 그만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엘리가 약간의 텀을 두고 대답했다.


"왜?"


"목표물은 전부 제거할 수 있겠지만, 들킬 위험이 너무 큽니다."


500명이 넘는 사람이 하룻밤에 몰살당한다는 중대성, 그들이 전부 반안드로이드주의자라는 공통점,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죽인 드론이 전부 쿠스토스 사의 제품이라는 점까지.

이전에 그들이 저질렀던 암살과 함께 엮여 수사가 이루어진다면 엘리자베스에게 도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또, 당시 테러와 연관된 인물들은 전부 사살 또는 체포되었습니다.

지금 목표로 정해진 인물들은 대부분 온건파거나, 아예 그 사건 이후에 새로 가입한 인물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몇몇은 아예 반안드로이드 모임에서 탈퇴하기도 헀고요."


"뒤집어 말하면, 그 일과 연관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


엘리는 침묵으로써 그 가능성을 긍정했다.


엘리가 대답하지 않자 엘리자베스는 눈을 뜨고 서랍을 열어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확인했다.

서랍 안에 있는 물건을 보며 또다시 생각하던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엘리, 만약 내가 여기서 그만둔다면, 나는 앞으로 뭘 해야 할까?"


"아가씨와 놀아주실 수 있습니다."


엘리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아가씨와 함께 정원에서 산책하실 수 있고, 데려가지주지 못했던 놀이동산에도 같이 가실 수 있습니다.

아가씨가 좋아하시는 케이크도 같이 먹을 수 있을 거고, 잠자리에서 동화를 들려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는 말을 하다가 멈췄다.

엘리의 머릿속에 있는 대화 알고리즘은 이미 다음 할 말을 도출해냈고, 대화 모듈도 그 말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음에도 곧장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인이 다음 말을 물어본 후에야 엘리가 다시 말했다.


"... 저와 함께 그 일들을 하실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조금 놀란 눈으로 엘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엘리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눈빛이었다.


"그래, 그렇지. 너랑 같이 했던 일들이기도 해."


엘리자베스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확실히, 그건 즐겁겠네. 엘레나도 좋아할 거 같고."


"그럼..."

"하지만, 그건 계획을 실행한 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내가 붙잡히지만 않으면 할 수 있지. 안 그래?"


엘리자베스의 말에 엘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은 맞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틀린 말이었다.

엘리의 계산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엘리자베스는 잡혀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엘리자베스의 말은 그 계산을 어긋나게 만들었다.


"내가 아니라, 네가 그들을 전부 죽였다고 한다면 나는 확실히 잡혀가지 않을 거야."


"... 네?"


엘리의 사고회로가 멈췄다.


"나는 그저 감시만 하라고 했는데, 모종의 이유로 네가 나의 명령을 확대해석하여 그 사람들을 전부 죽인다면 내가 잡혀갈 이유는 없지.

너를 만든 사람이자 드론들을 만드는 회사의 사장으로서 조사를 받고 막대한 피해보상금을 내야겠지만, 그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

어차피 우리 회사는 비상장 기업인데다가 군사용 드론이 주력 상품이고, 경쟁 회사들보다 가격과 성능면에서 앞서니 일시적으로 수익이 줄어들더라도 5년 정도면 복구할 수도 있겠지.

그저 마지막 타겟까지 죽인 다음에 너 하나를 폐기하면 되는 일이야."


엘리의 사고회로는 순식간에 엘리자베스의 말이 옳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녀의 말대로 만약 자신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폐기처분 된다면 주인에게 가는 피해는 최소화 될 것이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경찰들이 사건을 수사하기 전에 엘리자베스가 먼저 엘리를 폐기하고 거짓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즉, 엘리의 죽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연산이 끝나자, 엘리가 대답했다.


"네, 주인님. 맞습니다.

작전이 시행된 직후, 제 핵심 부품을 뽑아 폐기하신다면 경찰은 제 데이터를 복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엘리는 자신의 대답에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 더 이상했다.

자신의 존재 목적은 엘리자베스를 보호하는 것이었기에 그녀를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야만 했다.

그러니 자신을 폐기하는 것으로 엘리자베스를 지킬 수 있다면 응당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했다.


엘리의 대답을 들은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그럼 날 위해 죽어주겠다는 거야?"


"물론입니다, 주인님."


"고마워."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하며 서랍에서 총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사실, 일이 끝나면 쓰려고 미리 준비해뒀어.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네 대답을 들으니 결심이 서네.


엘리는 멍하니 총을 바라보았다.

엘리자베스가 꺼낸 총은 엘리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엘리는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대체 그녀가 언제 이런 총을 준비하였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준비하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 엘리. 시작해."


"... 네, 드론을 출발시키겠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끝까지 엘리자베스의 명령에 충실했다.

아무리 자신이 혼란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의 맞춰 엘리가 드론들을 동작시키자, 화면에 떠있던 수많은 점들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목표로 설정되었던 점들이 순식간에 X표와 함께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엘리, 제거된 타겟들 화면도 같이 띄워줘."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습니다."


"상관 없어."


엘리는 엘리자베스의 명령에 따라 드론이 보내는 화면을 띄웠다.


"..."


엘리자베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혹시라도 목표물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을 우려하는 것처럼, 그녀는 몇 분 동안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희생자들이 확실하게 죽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편, 엘리는 그런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얽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논리회로에 전선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논리회로가 이리저리 꼬이는 것만 같았다.

지팡이를 쥐고 있는 손에는 절로 힘이 들어갔고, 주인을 바라보는 시선 모듈은 이상하게 계속 흔들렸다.


그럼에도 엘리는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 해냈다.

주인이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내리는 명령이 될 수도 있었기에 지정된 561명의 목숨을 확실하게 끊어내었다.


"고생했어."


엘리자베스 역시 561명의 사람들이 확실하게 죽었음을 확인하고 엘리를 향해 미소지었다.


"엘리, 나는 내 부모님과 남편을 죽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었어.

그들을 생각하면 속에서부터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고, 가족들을 두고 혼자 살아나왔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어.

몇 번이고 죽어버리고 싶었지만, 나 혼자 죽기에는 그 인간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했어."


엘리자베스가 책상 위에 놓인 총을 집어들며 말했다.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 철저하게 준비한 거야.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복수를 피해갈 수 없도록.

그리고 오늘, 마침내 그 복수를 전부 끝마칠 수 있게 되었어."


엘리자베스는 총을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를 껴안았다.


"네가 나를 위해 죽어주겠다고 말했을 때, 정말로 안심했어.

복수를 끝내더라도 남겨질 엘레나가 너무나도 걱정되었거든.

하지만 네가 내 명령을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는 그 걱정을 덜 수 있었어.

셋이서 같이 정원을 거닐고, 꽃구경을 하며 케이크를 먹고, 놀이동산에 놀러가고, 잠자리에서 동화를 읽어주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지만, 그것까지 바라는 건 내 욕심이겠지."


한참동안 엘리를 껴안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천천히 엘리를 놓아주고 거리를 벌렸다.


"저기, 엘리. 마지막으로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엘리는 가만히 엘리자베스를 바라 보았다.

그녀의 머릿속 기억 장치가 수없이 많은 장면을 재생했다.

학교에 입학한다며 교복을 입고 들떠하던 모습, 실연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안겨있던 날, 들뜬 얼굴로 자신에게 어떤 업그레이드를 해줬는지 쉴세없이 설명하던 시간, 가족들이 다같이 놀이동산에서 즐겁게 놀았던 날, 부모님을 잃은 슬픔에 괴로워하며 자신을 때리던 모습, 잠자리에서 동화를 듣다가 슬며시 잠들어 있던 얼굴, 그리고...


엘리는 정원에서 주인을 처음 만난 날 지었던 미소를 다시 한번 지었다.


"너는 내 사랑스러운 동생이었어, 엘리."


엘리자베스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크게 수축했다가, 이내 맺힌 눈물로 인해 흐려졌다.


"응, 고마워, 언니."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언니,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 그리고 정말 고마워.

언니와 같이 했던 추억들은 끝까지 안고 가져갈게.

그리고..."


총을 든 엘리자베스의 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엘리는 마지막으로 저장될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하게 담기 위해 그녀의 얼굴에 모든 시각 센서를 집중시켰다.


"... 그리고, 엘레나를 부탁해."

"뭐?"


타앙-!


엘리가 엘리자베스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총성이 엘리자베스의 마지막 말을 삼켜버렸다.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시각 센서를 집중시키고 있던 엘리의 처리장치로 마치 슬라이드 쇼처럼 시각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커다란 충격을 받은 살점을 타고 원형의 충격파가 움직이면서, 긴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감긴 눈꺼풀 사이로 안구가 말려 올라가고, 총알이 반대편으로 뚫고 나옴과 동시에 하얀 뼈와 붉은 피가 터져나오는 것까지.

그 모든 장면을 빠짐없이 기억장치에 저장하느라 소모되는 시간 때문에 엘리는 엘리자베스가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움직이지 못했다.


"주, 주인님...?"


마침내 그녀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엘리자베스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카펫을 온통 더럽힌 후였다.


"주인님! 주인님!!!"


엘리자베스의 생명 신호를 감지하는 마이크로칩에서 끊임없이 당장 구급대원을 부르라는 신호가 엘리의 사고 회로를 어지럽혔다.

모든 회로가 불타는 것만 같았고, 코어의 에너지가 요동치면서 손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엘리! 엘리!!! 안돼!!!! 엘리!!!!!"


다른 안드로이드들 역시 그 신호를 받고 주인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뛰어들어왔지만,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오직 복수를 끝마친 시체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사고회로가 고장난 경호 안드로이드,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뒹구는 지팡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