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여기도 꽝인가..."


지도에 x자 표시를 한 것도 이번이 50번째.

나는 지금 사람이란 존재를 찾고있다.


정확히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날 보고 눈을 까뒤집은 채 날 뜯어먹으려 달려드는 것이 아닌 최소한 적으로라도 인식해줄 사람.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공동체를 이루어야만 야생에서 안전의 첫번째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

이름도 어려운 이 알파벳 나열의 바이러스가 퍼진 이후론 더더욱.


허나 자동차 여행용 지도를 펼치고 인구가 많은 교외의 지역을 답사한지 어언 한달.

공동체는 커녕 이성을 유지하는 인간 한명도 보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지도에 쉰한번째 X를 그린 뒤, 산으로 가로막힌 옆 도시에 가보기 위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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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평생 안해본 산행을 하고 겨우 도달한 능선에서 내려오던 중.


"어 뭐야, 저거..."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공동체 수준이 아니잖아, 이건 대체..."


어두운 밤, 밝은 빛.


인프라가 작동치 않는 이 상황에서 절대 어울릴 수 없는 두 단어가 합쳐진 모습.

마치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 마냥 제대로 작동하는 가로등과, 가축들의 먹이를 주거나, 서로 모여 사교적인 대화를 하는 사람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잠시 현실에서 잊혀진 개념인 '문명' 그 자체였다.


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문명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 수도없다.

살기위해, 보호받기 위해 나는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


600m 남짓 남은 거리까지 하산했을까.

쉼없이 산을 내려오느라 숨이 찬 나는 잠시 멈춘 뒤 다시 그곳을 바라봤다.


여전히 그곳은 가로등으로 빛나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이 보이는 거리에 들어서자, 나는 본능적으로 수풀 뒤에 숨겼다.


내가 느낀것은 안도감이 아니었다.


오한과 식은땀, 주체못할 아드레날린으로 사지가 떨려 몸에 힘이 풀림.


공포.



그들은 대화를 하고있지만, 하고있지 않았다.

그들은 생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하고있지 않았다.


"저게 대체 뭐야, 저건 뭐냐고"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입도 열지 않은채로 마치 오래된 게임의 npc처럼 같은 제스처를 반복하고 있다.

가로등을 수리하는 것 처럼 보이는 저 사내는 1분간 더이상 조여지지도 않는 너트를 계속해서 휘적휘적, 렌치로 조이는 시늉을 반복했다.


길을 걷다 부딪힌 두 남자는 서로 사과나 시비가 붙은것이 아닌, 그저 부딪히고 나서 모습 그대로 괴이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동체를 형성한 선진 생존자 그룹같은게 아니었다.

공동체를 흉내내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