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동료 고블린은 동굴벽에 동물피가 어지러이 칠해져 있는 것을 보고 갸웃거렸다.


고블린은 동료 고블린에게 예술이라고 당당히 설명하곤 있었지만, 자칭 예술가 고블린은 본인도 예술인지 아닌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자신이 직접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했다는 자부심은 있었다.


["이걸 하면 밥을 더 많이 먹나?"]


["아니."]


["그럼 왜 하는건가?"]


예술가 고블린은 대답을 쉽사리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작은 두뇌로 어떻게든 대답을 짜내었다.


["…문화 수준이 올라간다!"]


인간들의 예술을 엿보면서 주어들었던 것 같은 말을 적당히 꺼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자신도 모르는건 여전했다.


["문화 수준이 뭔가? 마력 같은거?"]


고블린도 어렴풋하게 마력이나 힘 같은 개념은 알고 있었다. 싫어도 몸으로 체감하기 때문이었다.


["그거하고는 다르다."]


["그럼 뭐에 좋은건가?"]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하. 딸딸이 말하는거구나?"]


["그거하고도 다르다!"]


["딸딸이는 기분 좋아지는 게 아닌가?"]


["그건 기분 좋아지는게 맞다! 하지만 예술하고는 다르다!"]


["기분 좋아지는 건 딸딸이다. 예술도 기분 좋아진다. 예술은 딸딸이다. 맞는거 아닌가?"]


둉료 고블린의 의도하지 않은 삼단논법에 예술가 고블린은 당황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딸딸이랑 별로 다른게 없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술가 고블린이 스스로 생각할 때는, 좀 더 예술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그걸 표현할 어휘력이 부족했다.


["예술가인 내가 이건 예술이라고 했으니까, 이건 예술인거다!"]


억지 발언이긴 했지만, 동료 고블린은 그걸 알아챌만큼 똑똑하진 않았다.


["그런가. 그럼 너는 사냥하는 자나 돌보는 자가 아닌 건가?"]


고블린들은 집안일을 하는 돌보는 자와, 바깥에서 식량을 구하는 사냥하는 자 두 부류가 있었다. 때문에 역할이라고 하면 그 둘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그, 그렇다."]


["그런가? 그런 것이 새로 생긴건가?"]


["내가 만들었다."]


["그런건 머릿님이 만드는게 아닌건가?"]


머릿님은 고블린들을 이끄는 수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말에 예술가 고블린은 식은 땀이 흘렀다.


동료 고블린은 별 생각 없이 순수한 궁금증으로 물어보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예술가 고블린은 그 동료 고블린 보단 조금은 더 머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반역으로 보일 여지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릿님은 모르는 일이다. 예술가는 사명이다."]


["사명? 그건 뭔가?"]


예술가 고블린도 스스로 잘 모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쨌든 이 동료 고블린에게 다른 정보를 주입해서 잊게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지금 배 안고픈가?"]


["배 고프다."]


["나무 열매 먹고 싶나?"]


["먹고 싶다."]


["그럼 이리 따라 와라."]


["알았다."]


예술가 고블린은 따라온 동료 고블린에게 자신 몫의 나무 열매를 조금 주었다. 동료 고블린은 그것을 받자마자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시 시험삼아 물어보았다.


["아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나?"]


["뭐 말인가?"]


["내가 저게 뭐라고 했는지 기억 나나?"]


예술가 고블린은 다시 벽쪽에 자신이 칠해놓은 피를 가리키며 물었다.


["뭐라고 했었나? 저건 피다. 동물 피."]


자주 봐왔던 것만큼은 기억하는 고블린들이었기 때문에 피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고블린 예술가가 보기에는 아까 예술이니 뭐니 했던 것들은 금새 다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 사실에 예술가 고블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엄밀히 보자면 이것만으로는 확실히 잊었는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예술가 고블린에게는 충분했다.


["알았다. 나는 바깥 살펴보기 하고 오겠다."]


["알았다. 머릿님에게는 그렇게 말하겠다."]


예술가 고블린은 거점 동굴을 빠른 걸음으로 나섰다.


자신의 예술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칭찬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동료에게 설명하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술가 고블린은, 동료 고블린들은 그런 것을 알 정도로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과 비교하면 예술가 고블린도 그렇게 똑똑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로 자기 객관화를 할 정도로 똑똑하지 않았다.


["인간과, 이야기 하고 싶다…."]


인간들이 위험하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술가 고블린은 인간과 대화하고 싶다는 욕망을 강하게 느꼈다.


위험에 대한 경계보다, 그 욕망이 더 앞서고 있었다.


마침 오늘은 '바깥 살펴보기' 의 당번. 즉 자신의 순찰 차례였다. 순찰을 하다보면 인간을 만날 기회도 있었다.


본래라면 다른 고블린 여럿과 함께 조를 짜서 움직여야 했다. 그것이 머릿님이 정한 규칙이었다.


하지만 욕망이 앞선 예술가 고블린은 혼자서 거처 근처를 마구 돌아다녔다. 특히 인간이 다닐법한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다녔다.


그리고.


"후우.. 후우.. 괜찮아, 심호흡... 배운대로 하면 괜찮아…."


운명이라고 해야 하는지, 마침 고립된 인간이 있었다.


예술가 고블린이 보기에도 몸집이 작고 별로 위험하지 않을 것 같은 인간이었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원인은 몰라도 주저 앉은 채로 움직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실제로 이 어린 소녀는 약초를 채집하다가 넘어져 발목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걷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이 배웠던 치료마법을 떠올리면서 필사적으로 치료 마법을 발동시키려 하고 있었다.


예술가 고블린은 망설임 없이 그 소녀 앞에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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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 꺄악!"


갑작스럽게 고블린이 나타나자 소녀는 두려움에 떨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호위 해준다는 오빠랑 같이 올걸. 그리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소녀는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발목 통증이 상상이상이라서 도저히 걸을 수 없었다.


"으...으...."


고블린이 점점 다가왔다. 소녀는 눈을 감았다. 이젠 죽었구나, 하고 포기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의외로 자신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소녀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눈 앞에는 여전히 고블린이 있었다. 소녀는 고블린이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 막대기 하나를 들고는, 바닥에 뭐가를 마구 하고 있었다.


'마법진? 아니, 고블린이 마법을 쓴다는 이야기는 들은적 없는데…."


그런게 아니더라도 마법진이라기에는 그것은 너무 중구난방이었다. 표현하자면, 어린 아이의 낙서였다.


소녀는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익히 아는 고블린의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블린이라면 여러번 마주쳐보았다. 그 때는 같이 왔던 호위가 물리쳐주었었다.


고블린은 낙서를 다 했는지 나무 막대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녀를 쳐다봤다. 고블린에게도 표정이 있을까? 적어도 소녀는 그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쩐지 느낌으로 '이 낙서를 보라' 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


고블린은 계속해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낙서와 자신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봤다. 고블린이 무어라 막 소리를 낸다. 일단 자신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이해했다.


그럼 목적이 무엇인가? 이 낙서는 뭔가? 자신은 왜 계속 보는가?


소녀는 생각을 거듭한 끝에 말도 안되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 낙서를 봐달라고...?"


그러니까, 그림 자랑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소녀는 그 낙서를 보았다. 낙서. 그냥 아무렇게나 마구 마구 선을 그어놓은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 선들의 표현에는 어떤 경향이 있었다. 무엇인가를 '의도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흔적은 볼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녀의 추측으로는 나무, 아니면 사람, 아니면 고블린. 길쭉한 뭔가인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한계였다.


["인간, 이게 예술이다. 너는 인간이니까 예술이 뭔지 알겠지?"]


소녀는 고블린이 소리를 내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낙서에 관한 이야기일 것 같다고 느꼈다.


소녀는 자신이 해야 할일을 생각했다. 고블린은 지금은 공격하고 있진 않지만, 언제 자신을 공격할 지 몰랐다. 하지만 당장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우선 고블린을 자극하지 않기로 했다.


"어, 으응. 굉장히, 잘 그린... 좋은 그림이네?"


말을 알아 들을 리도 없었지만 일단 어쨌든 느낌이라도 전해지길 바라면서 말을 했다. 의외로, 고블린은 그걸로도 만족한 모양새였다.


"좋 아."


"뭐?"


소녀는 방금 고블린이 좋아라고 말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냥 비슷한 소리를 우연히 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온 다."


그러나, 고블린은 이번에도 인간의 언어 인 것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그 고블린은 다시 숲속 너머로 사라졌다.


소녀는 그 고블린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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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고블린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정확하게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좋다' 는 말 만큼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간은 좋다고 말했다. 역시 인간이라면 알아주는구나. 그리 생각했다.


또 온다고 말했다. 그리 말했으니, 자신의 예술을 좋다고 해준 인간이라면, 다시 꼭 오리라 그리 생각했다.


예술가 고블린은 다시 한번 더 인간과 만나기를 고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