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께서는 승리하셨고, 승리하시며, 또한 다가올 그날 승리하실 것이옵니다."


신은 죽었다.


"간구하오니, 이성의 시대가 당신의 자비를 흐리게 하지 마시고, 우리가 신실하게 하소서."


우리의 오만이 신을 죽였다. 우리가 부른 외신들이 신을 죽였다.


"소피아 권사, 퇴마를 위한 신앙석을 이쪽으로.. 다 떨어졌군요."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위로할 것인가? -자연철학자 니힐로-




"곤란한데.. 사제로써 예배를 드려야만 할텐데 말입니다."


나, 사제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제복의 긴 소매가 피부를 간지럽히는 듯 했다.


"용사님.. 이제 그만 하시는게 어떠세요..? 이번만이 아니라, 아예 사제일을요."


사제를 따르는 유일한 자, 신을 따르는 유이한 자인 소피아 또한 그 상황이 곤란한 듯 한 모양이다.


확실히 그렇다. 지금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작은 공업도시의 빈민가는, 공화국의 황제가 세운, 세상을 지탱하는 이성의 빛이 닿지 않는 곳


즉, 외신들과 마녀들에게 언제든 사로잡힐 수 있는 곳이다.


"소피아 권사, 기억하십니까? 제가 당신을 처음 만난 날."


"그날 말인가요.."


그녀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공장의 노동자이던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부자에게 팔아넘기려던 날.


"제국의 법은 참으로 이성적입니다. 최대한 많은 이들을 지키는 공리주의적인 법이지요."


그리고, 내가 주신과 구체제의 화신 그 자체, 용사로 소환된 뒤, 국가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명목으로 즉시 추방된 날.


"하지만 그렇기에, 주신의 자비와는 달리 모두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 네, 네, 수백번도 더 들었어요."


그녀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물렸다.


그녀의 주신에 대한 믿음이 한층 더 확고해짐에 따라, 마침 비어있던 신앙석에 황금색 빛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믿음이라는 것은 정말 놀랍군요, 공장을 돌릴 자원도 되고, 이렇게 외신들린 이를 도울 에너지도 되는 것이 말입니다."


그날의 퇴마는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더욱 성공적이었고, 사람들의 감탄을 샀다.


그러나, 죽은 신을 고작 이것으로 믿게 될 만큼 비이성적인 자는 이 뒷골목에 없었다.




"다른 도시로 갑시다. 최근 인클로저 운동이 다시 일어나 많은 이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는군요."


아쉽지만, 이번 실패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상퀼로트 황제가 공화국의 산업혁명을 장려하는 한, 많은 이들이 주신의 자비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렇게 여기며 떠나려던 때였다.


"오오! 동지, 많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


보랏빛 머리를 가진, 어설프게 뿔을 숨긴 한 여성 마족이 나에게 어설픈 공화국어를 하며 다가와서는,


"인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지요, 저 썩어빠진 혁명귀족들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정말 감격했습니다."


손을 잡고 동무, 동무 하며 연신 흔드는 것이 아닌가. 어림풋이 기억나는 저 모습은 역시..


"제가 쫒겨날때 궁정에 계셨던 마왕의 따님 아니십니까.. 어째서 저를 찾으시는지."


사천왕의 일익, 마왕의 딸. 그래 확실히 그녀가 맞다.


"혹여 용사인 저를 토벌하러 오신것인지요..? 용사의 직함은 내려놓은지 오래입니다만."


"아니오!!"


그녀는 조금 물러나서는 거의 격분하듯 말했다.


"나는 현재 사천왕이 아니오, 애시당초 외신들에게 주신이 죽은 이후로 숙적의 굴레는 깨어졌을 뿐더러,"


모자에 붙어있는 붉은 빛이 도는 천을 내어주며 말을 잇기를,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적기당의 당수로써 온 것이외다. 혁명의 지속이라는 위업에 선생을 초대하기 위해 말이오."


이게 무슨 말일까


상퀼로트 황제가 공화국의 제위에 오른 후로, 혁명은 끝났다. 혁명귀족들이 말하기를, 혁명은 완수되었다.


그러므로, 혁명의 지속은 공화국의 의지에 반하는 일이고, 즉 반란이다.


모조리 토벌된 줄 알았건만, 아직도 그들이 남아있었다는 말인가? 심지어 마왕령의 왕녀까지 감화시킨 채로?


이 반란군에게 내어줄 내 답은 뻔했다


"싫습니다. 제가 비록 사람들을 돕는다고 하나, 저는 주신의 백성에게 관심이 있지, 공화국의 신민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이만"


"맞아요, 용사님은 세속의 일엔 관심이 없으시다고요! 저리 가세요 반란분자!"


잠깐, 퇴마의식을 참관하던 사람들은? 왜 붉은 천을 쓴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거지? 언제부터?


"하핫 동지, 내가 맨입으로 그대를 낚으러 온 것은 아니오, 혹시 이 말을 들어보았소? 이성의 불빛은.."


"천사의 불빛이다. 옛 천사들이 우리를 이끌던 것과 같이, 이성이 지금은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뜻이죠."


소피아가 이어 대답했다.


"많은 이들은 자연철학자들이 신앙만이 아닌 이성에 대한 믿음 또한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발명해내었다고 하지. 그렇기에 주신이 죽고 마침내 신앙에서 해방되어 이성의 시대를 열 수 있게 되었다고 믿네. 비록 외신이 판치는 시대가 되었지만, 하나만큼은 긍정적인 변화라면서 말이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그렇게 마왕의 딸은 말하고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말일세, 그 이성에 대한 믿음조차도 죽은 주신의 찌꺼기에 의존하고 있다면, 어떤가."


그녀는 조금 더 작게 말했다.


"천사의 빛이 비유가 아니라면, 어떤가."


나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어전천사 시시포스, 그가 모든것을 짊어지고 전 공화국에서 온 이성에 대한 믿음을 에너지로 바꾸는 노예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는 실로 어떠한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성의 제국은 무너지겠군요."


"하지만 신의 제국은 부활하겠지, 안그렇소 동지?"





뭐 이런 느낌?